아니마 가입과 친목 활동
쭈느 :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게 된 게, 97~98년 당시 그때 뭔가 일이 있었어요?
명자 : 아~ 그러니까, 그 전까지도 물론 성향은 있는데, 사실 그때 당시에는 뭐 알려진 게 없잖아요.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근데 99년부터, 99년에 제가 제대를 해서. 그때 막 인터넷 처음 접속하고 이래 가지고, 그때 아예 아니마 활동을 시작을 했었거든요. 99년부터. 아니마를 시작을 했죠. 그래서 그때 지은 거죠.
쭈느 : 그럼 그 전에 ‘성향’이라고 한 건 어떤 거였어요? 그 당시에?
명자 : 아 그러니깐요. "전환을 하고 싶다!"라는 건 있었는데, 사실상 정보 같은 건 아무것도 없었고요. (그땐 전환이란 단어도) 없죠. 네. 뭘 어떻게 해야되는지도 몰랐죠.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 [살짝 웃음] 그러고 있었을 때인 거죠.
수은 : 대학 다닐 때부터 아니마 활동으로 시작한 거잖아. 처음에 어떻게 들어가게 된 거예요?
명자 : 검색해서. 그때는 아니마 밖에 없었고요. 아니 거의가 아니라 정말 아니마 밖에 없었고. 뭐라고 검색했는지는 너무 옛날 일이라. [웃음] 검색어까지는... 기사에 나왔을 거예요, 아니마라는 곳이 있다 라는 게. 어쨌든.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고요. 그때 기억나는 건, 그래서 온라인으로 연락을 하니까 전화번호를 알려달라, 그래서 면접봤어요. 정말 면접을 보고 [웃음] 네. 그래서 와라, 그래서 거의 모임을 호은네 집에서 했었죠.
쭈느 : 그럼 98~99년도에 아니마 하고, 근데 그때 바로 뭔가를 시작한 건 아니잖아요. 까페 활동이면, 그때 분위기가 어땠어요? 그때 구성원 대부분이 mtf들이었어요?
명자 : 그때는, 사실 지금과 달리, 그 사람들도 잘 몰랐죠. (ftm은) 한 명 있었어요. 호린이라는 동갑이 있는데, 걔 혼자 f-to-m이었고, 오프라인에서 제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요. 그때 하이텔이 막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아니마도 좀 시들해졌어요. 그때 사람들 막 다음 까페로 다 옮기고, 그때 아니마가 그렇게 빨리 그걸 대응을 못 했어요. 그래서.. 그때 프로그래밍을 하던 m-to-f한 분 계셨는데, 지금은 뭐 하는지 모르고요. 저보다 한 살 많았었고. 그 분이 프린세스라는 그 m-to-f 모임을 만들어가지고. 네. 그래서 그때부터 거의 m-to-f랑 f-to-m이랑 분리가 되기 시작을 하고, 자연스럽게 아니마는... (아니마가 줄어들고 나서) 저는 거의 술 먹으러 다녔죠. 그러다가 그 커뮤니티에 그때부터 막 러버들 들어오고 이러기 시작하면서 되게 이상해졌어요. 그래서... 뭐 그런 것도 있고. 제가 호주를 갔어요. 2002년에. 1년 간. 거의 한국하고 소식이 끊긴 것도 있고.. 숨어살았거든요. [웃음] 굳이 숨어 살진 않았는데 별로 연락할 방법도 없고. 하긴 그때는 호주에서 인터넷 접속이 그렇게 원활하지도 않았을 때고. 와이파이란 것도 없었고. 인터넷 졸라 비싸고. 그리고 저는 어차피 사람들하고 술 먹는 게 주된 일이었는데... 온라인 상으로 대작을 할 순 없으니깐요. [같이 웃음] (화상채팅 같은 것도)안 됐죠. 그런 거 없구. 뭐 디지털 카메라가 있어 가지고 사진을 올리고 막 이런 시절도 아니었고요. 그러다보니까 연락이 점점점 끊기고, 사실 (트랜스)젠더들은 또 잠수를 타잖아요. 한동안 잠수를 타고 뭐 이러니까. 옛날에 알았던 사람들은 지금 아는 사람이 없어요. 진짜 한 명도 없어요. 그러니까 그때, 프린세스 생기고 그 다음에 그게 넷포가 되었다가, 거기서 누가 업체를 차렸죠. 그래서, 러쉬가 오프라인, 그러니까 그 전에, 주로 가던 데는 해우소라는 분장 술집이었는데… 거기는 홍대 신촌 쪽에 있었어요. 지금 인형하고 러쉬하고 사이에 따로 있었고요. 거기는 사실 헤테로를 위한 공간인데, 코스프레하고 술 먹어라 뭐 이런. CD, TG들이 많이 갔죠.
쭈느 : 한창 활동하던 당시에는 용어가 뭐였어요? mtf, ftm…?
명자 : 맞을 걸요? 잘 모르겠어요. 기억은 잘 안 나요. 근데 아마 구분하는 단어는 있었을 테니까. 저는 그 단어 말고는… 모르거든요. 그래서 아마 그때도, m-to-f, f-to-m이라고 하지 않았나 싶어요. [살짝 침묵] 기록이 기억을 지배하는데... 기록이 안 남아 있으니…
각성, UP!!!!
수은 : 어렸을 때 서사랑 자기 지금 정체성이랑 연결 시키고 있는 게 있어요?
명자 : 별로. 거의… 저는 딱 어떤 시점부터 정말 본격적으로 확 간 거지. 그 전까지는 눌러오다가. 아니마 활동하거나 그리고 막 프린세스 만들고 그때. 사실 아니마에는 트랜지션을 하고 있거나 했거나 그런 트랜스젠더가 별로 없었어요. 그때 PC통신이라도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러니까 사정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었고. 물론 이태원 가면 여보여보 있고.. 그때 2개 있었는데? 여보여보하고 그 옆에 하나 더 해가지고, 그러니까 거기 다니는 애들이 거의 다였는데, 걔네들은 PC통신 한다거나 이러지는 않았던 것 같고. 근데 인터넷이 점점 보급화가 되면서 그런 애들이 눈에 보이게 된 거죠. 그래서 그때 허구헌날 같이 술을 먹던 문주라는 분이 계셨는데. 네 살인가 다섯 살인가 위였어요, 저보다. 예. 그 분도 한 술 하시거든요. 허구헌날 먹고 있다고. 어쨌든. 그 분하고 서로 얘기를 한 게, 어려서 트랜지션 하고 이런 애들 보니까 “캬 쟤넨, 저 추진력과 결정력. 저건 싸나이다!”, “쟤네들이 진정한 싸나이다” [같이 웃음] 그리고 그때는 이미 제가 사회생활을 시작을 해버렸고. 그리고 꽤나 메이져한 일을 하고 있었고요. 그러다 보니까 더 결정을 할 수가 없었고요. 지금도 부모님한테 얘기를 못 하고 있지만. 그때도 더더군다나. 어쨌든 그렇게 사람들한테 얘기를 못했으니깐요. 지금도 못하고 있고. 지금은 어느 정도 제가 자립할 능력이 있기 때문에 하는 거지.
수은 : 그때도 정체성이란 말을 썼어요? 성향이란 말을? 그런 성향에 대해서 얘기를 하거나 할 때 어떻게 했어요?
명자 : 그러니까 다들.. 아니마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름 거의 다 비슷했어. 그러니까... 어. 결정은 못 내리고 있거나, 시도를 못 하고 있거나.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모른다거나. 그때는 어떻게 해야되는지를 몰랐다는 게... 그리고 사실 절차도 복잡했어요. 호르몬 할 때 정신과 진단에 뭐에 뭐에 뭐에 뭐 되게 안 해주고. 그랬던 때니깐요. 그러니까 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던 시기고.
수은 : 그럼 그 전부터 성향이라고 불렀던 그런 게 있었어요?
명자 : 응. 있었죠.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는데, 남자는 아닌 거 같다는 그런 느낌 정도요? 그게 구체적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다라는 자료는 그렇게 많지가 않았죠. 뭐랄까. 그냥 그때 그 상태를 불만족스러워했었고. 보통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여자애들이나 친구들 보면 굉장히 부러워했던 거 같아요. 그러고 저렇게 살고 싶다 정도? 네, 그런 느낌이었던 거 같아요. 근데 그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지까지는 모르는 거죠.
수은 : 그때는 힘들거나 그런 느낌은 없었어요?
명자 : 별로 생각 없이 살아서. [웃음] 딱히 힘들다는 거는 잘 모르겠는데. 그니까 가끔씩 이렇게 술을 안 마실 때면. [웃음] 혼자 있고 그럴 때는 깊이 생각하고 이러는데. 사실 평소에 살면서 그렇게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그니까 생활하면서 하나하나가 힘들고 그런 지경은 아니었던 거죠.
쭈느 : 그 당시의 것을 성향이라고 하고. 그게 뭔지가 되게 모호하다란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때 재차 질문했을 때도 그냥 전환하고 싶다라는 마음이다라고 했는데, 그게?
명자 : 그니까 전환이라는 구체적인 방법이나 용어나 요런 것도 사실은 몰랐었고요. 뭐, 검색 같은 걸 해보면 외국 사례가 있기는 한데, 아니면 뭐 찌라시 기사 같은 거 나오는 거 보면.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저, 이태원에 업소들이 몇 군데, 두 군데 있었나 그때 그랬을 거예요.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아는데, 내가 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되나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무지했던 거죠. 남산 얘기는 꽤 최근에. 그 뭐냐. 호주 갔다 와서 사람들하고 알고 그러니까 접했던 정보였었고요. 그래서 아마 mtf들은 거의 다, 서울에서 사는 애들은 거의 다 한번씩 해봤을 텐데, 이태원에 가서 이렇게 찾기도 하고. 찾았는데 "아~ 여기를 들어갈까 말까" 막 고민도 하고. 한 번 정도 그랬던 거 같아요. 들어가진 않았죠. 그니까, 사실 대학생이었고 그때는 회사 다니고 그랬는데, 술집에 나가는 거잖아요. 업소잖아요. 근데 사실, 사실 구체적인 방법은 몰랐는데 거기에 샘플은 있고. 근데 그 방법으로 접근하고 싶지는 않았던 거죠. 근데 사실 달리 방법도 없고. 그랬던 시절이니까요.
쭈느: 그때가 롤 모델이, 가시화된 롤 모델이 그거 밖에 없던 시기?
명자 : 그렇죠. 그리고 그때도 물론 아니마를 활동을 하면서 정신과 진단 받고 이러면 되는데, 되게 겁이 난 거죠. 정신과를 간다는 거 자체가. 네. 알려지면 어떡하나 이런... 그런 것도 있었고요. 그니까 뭔가, 뭔가를 하고 싶기는 했는데. 응... 뭔가를 하고 싶기는 했는데 내가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안 보였어요. 그니까, 네. 술집 나가는 거 빼고는 안 보였는데, 그건 하긴 싫었고.
쭈느 : 그 성향이라는 것도 처음에 잘 모르고 볼 때에는 되게 지금하고는 다른 식의 의미였을 거 같은 데요? 그니까 뭐 그 당시에는 CD라는 게 있었을 거고, 단순하게 그 정도인 건가. 그니까.
명자 : 그렇죠. 그쵸. 단순하게 그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고요. 그니까 그때 농담으로 CD도 아니고 TG도 아니고 박쥐라고 막 그랬었거든요. [웃음] 근데 그니까 그 완전 실행에 옮기기에는 제가 너무 사회적으로 활동이 있었고. 학교도 다니고 회사도 다니고. 네. 그래서 뭔가 결심은 못 하고 그냥 네. CD로 그냥 살까 생각도 하기도 했었고, 근데 실제로도 그렇게 오래 살았고요, 네.
쭈느 : 그때도 옷을 샀어요?
명자 : 네. 잘 숨겼죠. 차가 있었죠. 트렁크에. 회사를 다녔으니까. 경기도에서 강남까지 출퇴근을 했으니깐요. 경차가 있었고. 그 아니마 사람들 만나면. 거기에 그 혼자 사시는 분이 있었거든요. 그분 집에 가 가지고. 감히 밖으로 나오진 못하고. 그리고 술 까고. 그랬었었죠. (입으면 느낌이) 그게 참 지금하고 틀린 게, 되게 허탈해요. 그니까 사실 거기에는 외모적인 것도 있었을 텐데, 안 어울렸어요. [웃음] 내가 나를 봐도 이상하죠. 사실 뭐, 원래 여성적으로 생기지도 않았거든요. 지금 각고의 노력 끝에. [크게 웃음] 그니까 그, 되게 보기도 싫었고 객관적으로 기준이 높은가 봐요. 외출 같은 것도 한 번도 안 했고요. 외출이, 이러고 밖에 나가는 것도 올해부터 했던 일이니깐요. 그 전에는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 그래서 그 트랜스 동생들이 막 나를 개조시켜주겠다고 부산으로 끌고 가서, 네 막 업을 시키고 클럽을 막 끌고 다니고 그랬었는데. [웃음] 작년 가을 쯤에. 어쨌든. 그러고 어차피 제가 뭔가. 그냥 그렇게는 살았지만 마음 속으로 원하는 건 또 그게 아니었잖아요. 그러니까 뭐, 거기 여보여보도 그 앞에도 서성거리기도 했고. 그리고 실제로 인제 그때는 프린세스나 그런 게 생기면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네. 그러니까 더 아예 치료를 받는 사람들, 전환 중인 사람들이나 그런 사람들을 더 접하게 되면서 그게 좀 많이 부러웠었죠. 그니까 그게 허탈한 거는, 네. 뭐, 굉장히 복잡했던 거 같아요. 그 감정이. 그냥 이렇게 살고 싶다라는 감정도 있었고. 야 너 왜 그 따위로 생겼니 라는 [웃음] 그런 것도 있고. 어차피 이렇게 계속 못 사는데,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어, 굉장히 그냥 자기 만족적인 거 같은 그런 느낌도 있었고요. 그래서 되게, 되게 허했어요. 옷을 입거나 그러면은. 2004~2005년 막 이럴 때는 그때도 물론 인터넷 쇼핑몰이 있었고, 어 그랬지만 사실 내 사이즈가 사이즈 찾기가 힘들었죠. 사실 거의 없다시피 했어요. 큰 옷 전문 막 이런 데서 사면은 거의 막 완전 아줌마. 하나도 안 예쁘고. 근데 어찌어찌 해 가지고 입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그 오프라인에서 살 때는 뭐 선물을 사는 거다 라고 하고 사고. 속옷도요. 근데 그게 그렇게 잦지는 못했죠. 일 년에 한 두 번? 해봤자? 엄청난, 엄청나게 긴장을 타는 일이거든요. 정말 정말 속옷을 사는 거면은 아무렇지도 않았을 텐데. [웃음]
옛날부터 기술 배우라 그랬어!
쭈느 : 사회생활 언제부터 한 거예요?
명자 : 1990년대 후반부터요. 제대하자마자. 회사 일을 했어요. 그때부터 시작을 했고… 제대 후 할 일이 없는데 휴학 기간은 남아있고. 근데 거기서 그 대학생들 상대로 시험을 봐 가지고, 인턴을... 가르켜준다는 미명 하에 싸게 부렸죠. 한 달 30받고 다녔는데. 인턴인데 아주 최저임금의. 예. 최저임금 반반 반의반의반의반 받고 다녔죠.
명자 : 그리고 이제 회사를 다니고, 그 전하고 상황은 비슷해진 거죠. 회사 다니고 뭐 이러고 있으니까. 사실상 트랜지션을 제대로 하기는 힘들었었고. 예. 이 IT 업계에서 휴가를 내기도 힘들고 쉽지가 않은데.
쭈느 : 회사 언제 그만뒀어요?
명자 : 으음~ 작년 11월인가? 물론 회사하고 트러블도 좀 있긴 하지만. 지금 그 회사 사람들 거의 다 나가 버렸다고 그러더라고요. 예. 그런 거(노동착취)에 가까웠죠. 어쨌든, 저는 최근 그 회사를 다닐 때는 웹디자인을 하려고 간 거였고요. 제가 외국에 나가는데, 그때까지는 거의 기획을 했으니깐요. 이러고 외국에 나가면, 언어장애가 있는 기획자가 되는 거잖아요. 누가 써줘요. [살짝 웃음] 그래서 옛날부터 기술 배우라 그랬어. 그래서 [살짝 웃음] 기술을 배워서 그럴려고 프로그래밍을 한 거고. 어느 정도 경력도 쌓였겠다. 실력도 좀 붙었겠다. 그래서 일단 나오고, 지금은 이제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는 거죠. 아, 하지만 구직 사이트 들어가면 진짜 예외 없이, 미국이나 영국이나 호주나 캐나다나, requirement에 한 마디 붙어 있어요. Great Experience of Communication Skill in English 이런 식으로.
수은 : 외국엔 왜 가고 싶어요?
명자 : 여기서 내가 이렇게 살기는 힘드니까. 계속. 아니면 집에 커밍을 하던지. 집에 커밍한다는 얘긴 다~ 커밍을 한단 얘기지. 그러기는 싫으니까. 응. 친구들한테도 그렇고. 안 만나지. 연락이야 지금도 계속 오고. "애들 만나니까 나와라~" 뭐, 그렇게 하는데.. 나는 그냥 걔네들한테 바쁜 놈이지.
아니마 가입과 친목 활동
쭈느 :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게 된 게, 97~98년 당시 그때 뭔가 일이 있었어요?
명자 : 아~ 그러니까, 그 전까지도 물론 성향은 있는데, 사실 그때 당시에는 뭐 알려진 게 없잖아요.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근데 99년부터, 99년에 제가 제대를 해서. 그때 막 인터넷 처음 접속하고 이래 가지고, 그때 아예 아니마 활동을 시작을 했었거든요. 99년부터. 아니마를 시작을 했죠. 그래서 그때 지은 거죠.
쭈느 : 그럼 그 전에 ‘성향’이라고 한 건 어떤 거였어요? 그 당시에?
명자 : 아 그러니깐요. "전환을 하고 싶다!"라는 건 있었는데, 사실상 정보 같은 건 아무것도 없었고요. (그땐 전환이란 단어도) 없죠. 네. 뭘 어떻게 해야되는지도 몰랐죠.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 [살짝 웃음] 그러고 있었을 때인 거죠.
수은 : 대학 다닐 때부터 아니마 활동으로 시작한 거잖아. 처음에 어떻게 들어가게 된 거예요?
명자 : 검색해서. 그때는 아니마 밖에 없었고요. 아니 거의가 아니라 정말 아니마 밖에 없었고. 뭐라고 검색했는지는 너무 옛날 일이라. [웃음] 검색어까지는... 기사에 나왔을 거예요, 아니마라는 곳이 있다 라는 게. 어쨌든.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고요. 그때 기억나는 건, 그래서 온라인으로 연락을 하니까 전화번호를 알려달라, 그래서 면접봤어요. 정말 면접을 보고 [웃음] 네. 그래서 와라, 그래서 거의 모임을 호은네 집에서 했었죠.
쭈느 : 그럼 98~99년도에 아니마 하고, 근데 그때 바로 뭔가를 시작한 건 아니잖아요. 까페 활동이면, 그때 분위기가 어땠어요? 그때 구성원 대부분이 mtf들이었어요?
명자 : 그때는, 사실 지금과 달리, 그 사람들도 잘 몰랐죠. (ftm은) 한 명 있었어요. 호린이라는 동갑이 있는데, 걔 혼자 f-to-m이었고, 오프라인에서 제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요. 그때 하이텔이 막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아니마도 좀 시들해졌어요. 그때 사람들 막 다음 까페로 다 옮기고, 그때 아니마가 그렇게 빨리 그걸 대응을 못 했어요. 그래서.. 그때 프로그래밍을 하던 m-to-f한 분 계셨는데, 지금은 뭐 하는지 모르고요. 저보다 한 살 많았었고. 그 분이 프린세스라는 그 m-to-f 모임을 만들어가지고. 네. 그래서 그때부터 거의 m-to-f랑 f-to-m이랑 분리가 되기 시작을 하고, 자연스럽게 아니마는... (아니마가 줄어들고 나서) 저는 거의 술 먹으러 다녔죠. 그러다가 그 커뮤니티에 그때부터 막 러버들 들어오고 이러기 시작하면서 되게 이상해졌어요. 그래서... 뭐 그런 것도 있고. 제가 호주를 갔어요. 2002년에. 1년 간. 거의 한국하고 소식이 끊긴 것도 있고.. 숨어살았거든요. [웃음] 굳이 숨어 살진 않았는데 별로 연락할 방법도 없고. 하긴 그때는 호주에서 인터넷 접속이 그렇게 원활하지도 않았을 때고. 와이파이란 것도 없었고. 인터넷 졸라 비싸고. 그리고 저는 어차피 사람들하고 술 먹는 게 주된 일이었는데... 온라인 상으로 대작을 할 순 없으니깐요. [같이 웃음] (화상채팅 같은 것도)안 됐죠. 그런 거 없구. 뭐 디지털 카메라가 있어 가지고 사진을 올리고 막 이런 시절도 아니었고요. 그러다보니까 연락이 점점점 끊기고, 사실 (트랜스)젠더들은 또 잠수를 타잖아요. 한동안 잠수를 타고 뭐 이러니까. 옛날에 알았던 사람들은 지금 아는 사람이 없어요. 진짜 한 명도 없어요. 그러니까 그때, 프린세스 생기고 그 다음에 그게 넷포가 되었다가, 거기서 누가 업체를 차렸죠. 그래서, 러쉬가 오프라인, 그러니까 그 전에, 주로 가던 데는 해우소라는 분장 술집이었는데… 거기는 홍대 신촌 쪽에 있었어요. 지금 인형하고 러쉬하고 사이에 따로 있었고요. 거기는 사실 헤테로를 위한 공간인데, 코스프레하고 술 먹어라 뭐 이런. CD, TG들이 많이 갔죠.
쭈느 : 한창 활동하던 당시에는 용어가 뭐였어요? mtf, ftm…?
명자 : 맞을 걸요? 잘 모르겠어요. 기억은 잘 안 나요. 근데 아마 구분하는 단어는 있었을 테니까. 저는 그 단어 말고는… 모르거든요. 그래서 아마 그때도, m-to-f, f-to-m이라고 하지 않았나 싶어요. [살짝 침묵] 기록이 기억을 지배하는데... 기록이 안 남아 있으니…
각성, UP!!!!
수은 : 어렸을 때 서사랑 자기 지금 정체성이랑 연결 시키고 있는 게 있어요?
명자 : 별로. 거의… 저는 딱 어떤 시점부터 정말 본격적으로 확 간 거지. 그 전까지는 눌러오다가. 아니마 활동하거나 그리고 막 프린세스 만들고 그때. 사실 아니마에는 트랜지션을 하고 있거나 했거나 그런 트랜스젠더가 별로 없었어요. 그때 PC통신이라도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러니까 사정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었고. 물론 이태원 가면 여보여보 있고.. 그때 2개 있었는데? 여보여보하고 그 옆에 하나 더 해가지고, 그러니까 거기 다니는 애들이 거의 다였는데, 걔네들은 PC통신 한다거나 이러지는 않았던 것 같고. 근데 인터넷이 점점 보급화가 되면서 그런 애들이 눈에 보이게 된 거죠. 그래서 그때 허구헌날 같이 술을 먹던 문주라는 분이 계셨는데. 네 살인가 다섯 살인가 위였어요, 저보다. 예. 그 분도 한 술 하시거든요. 허구헌날 먹고 있다고. 어쨌든. 그 분하고 서로 얘기를 한 게, 어려서 트랜지션 하고 이런 애들 보니까 “캬 쟤넨, 저 추진력과 결정력. 저건 싸나이다!”, “쟤네들이 진정한 싸나이다” [같이 웃음] 그리고 그때는 이미 제가 사회생활을 시작을 해버렸고. 그리고 꽤나 메이져한 일을 하고 있었고요. 그러다 보니까 더 결정을 할 수가 없었고요. 지금도 부모님한테 얘기를 못 하고 있지만. 그때도 더더군다나. 어쨌든 그렇게 사람들한테 얘기를 못했으니깐요. 지금도 못하고 있고. 지금은 어느 정도 제가 자립할 능력이 있기 때문에 하는 거지.
수은 : 그때도 정체성이란 말을 썼어요? 성향이란 말을? 그런 성향에 대해서 얘기를 하거나 할 때 어떻게 했어요?
명자 : 그러니까 다들.. 아니마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름 거의 다 비슷했어. 그러니까... 어. 결정은 못 내리고 있거나, 시도를 못 하고 있거나.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모른다거나. 그때는 어떻게 해야되는지를 몰랐다는 게... 그리고 사실 절차도 복잡했어요. 호르몬 할 때 정신과 진단에 뭐에 뭐에 뭐에 뭐 되게 안 해주고. 그랬던 때니깐요. 그러니까 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던 시기고.
수은 : 그럼 그 전부터 성향이라고 불렀던 그런 게 있었어요?
명자 : 응. 있었죠.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는데, 남자는 아닌 거 같다는 그런 느낌 정도요? 그게 구체적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다라는 자료는 그렇게 많지가 않았죠. 뭐랄까. 그냥 그때 그 상태를 불만족스러워했었고. 보통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여자애들이나 친구들 보면 굉장히 부러워했던 거 같아요. 그러고 저렇게 살고 싶다 정도? 네, 그런 느낌이었던 거 같아요. 근데 그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지까지는 모르는 거죠.
수은 : 그때는 힘들거나 그런 느낌은 없었어요?
명자 : 별로 생각 없이 살아서. [웃음] 딱히 힘들다는 거는 잘 모르겠는데. 그니까 가끔씩 이렇게 술을 안 마실 때면. [웃음] 혼자 있고 그럴 때는 깊이 생각하고 이러는데. 사실 평소에 살면서 그렇게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그니까 생활하면서 하나하나가 힘들고 그런 지경은 아니었던 거죠.
쭈느 : 그 당시의 것을 성향이라고 하고. 그게 뭔지가 되게 모호하다란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때 재차 질문했을 때도 그냥 전환하고 싶다라는 마음이다라고 했는데, 그게?
명자 : 그니까 전환이라는 구체적인 방법이나 용어나 요런 것도 사실은 몰랐었고요. 뭐, 검색 같은 걸 해보면 외국 사례가 있기는 한데, 아니면 뭐 찌라시 기사 같은 거 나오는 거 보면.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저, 이태원에 업소들이 몇 군데, 두 군데 있었나 그때 그랬을 거예요.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아는데, 내가 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되나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무지했던 거죠. 남산 얘기는 꽤 최근에. 그 뭐냐. 호주 갔다 와서 사람들하고 알고 그러니까 접했던 정보였었고요. 그래서 아마 mtf들은 거의 다, 서울에서 사는 애들은 거의 다 한번씩 해봤을 텐데, 이태원에 가서 이렇게 찾기도 하고. 찾았는데 "아~ 여기를 들어갈까 말까" 막 고민도 하고. 한 번 정도 그랬던 거 같아요. 들어가진 않았죠. 그니까, 사실 대학생이었고 그때는 회사 다니고 그랬는데, 술집에 나가는 거잖아요. 업소잖아요. 근데 사실, 사실 구체적인 방법은 몰랐는데 거기에 샘플은 있고. 근데 그 방법으로 접근하고 싶지는 않았던 거죠. 근데 사실 달리 방법도 없고. 그랬던 시절이니까요.
쭈느: 그때가 롤 모델이, 가시화된 롤 모델이 그거 밖에 없던 시기?
명자 : 그렇죠. 그리고 그때도 물론 아니마를 활동을 하면서 정신과 진단 받고 이러면 되는데, 되게 겁이 난 거죠. 정신과를 간다는 거 자체가. 네. 알려지면 어떡하나 이런... 그런 것도 있었고요. 그니까 뭔가, 뭔가를 하고 싶기는 했는데. 응... 뭔가를 하고 싶기는 했는데 내가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안 보였어요. 그니까, 네. 술집 나가는 거 빼고는 안 보였는데, 그건 하긴 싫었고.
쭈느 : 그 성향이라는 것도 처음에 잘 모르고 볼 때에는 되게 지금하고는 다른 식의 의미였을 거 같은 데요? 그니까 뭐 그 당시에는 CD라는 게 있었을 거고, 단순하게 그 정도인 건가. 그니까.
명자 : 그렇죠. 그쵸. 단순하게 그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고요. 그니까 그때 농담으로 CD도 아니고 TG도 아니고 박쥐라고 막 그랬었거든요. [웃음] 근데 그니까 그 완전 실행에 옮기기에는 제가 너무 사회적으로 활동이 있었고. 학교도 다니고 회사도 다니고. 네. 그래서 뭔가 결심은 못 하고 그냥 네. CD로 그냥 살까 생각도 하기도 했었고, 근데 실제로도 그렇게 오래 살았고요, 네.
쭈느 : 그때도 옷을 샀어요?
명자 : 네. 잘 숨겼죠. 차가 있었죠. 트렁크에. 회사를 다녔으니까. 경기도에서 강남까지 출퇴근을 했으니깐요. 경차가 있었고. 그 아니마 사람들 만나면. 거기에 그 혼자 사시는 분이 있었거든요. 그분 집에 가 가지고. 감히 밖으로 나오진 못하고. 그리고 술 까고. 그랬었었죠. (입으면 느낌이) 그게 참 지금하고 틀린 게, 되게 허탈해요. 그니까 사실 거기에는 외모적인 것도 있었을 텐데, 안 어울렸어요. [웃음] 내가 나를 봐도 이상하죠. 사실 뭐, 원래 여성적으로 생기지도 않았거든요. 지금 각고의 노력 끝에. [크게 웃음] 그니까 그, 되게 보기도 싫었고 객관적으로 기준이 높은가 봐요. 외출 같은 것도 한 번도 안 했고요. 외출이, 이러고 밖에 나가는 것도 올해부터 했던 일이니깐요. 그 전에는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 그래서 그 트랜스 동생들이 막 나를 개조시켜주겠다고 부산으로 끌고 가서, 네 막 업을 시키고 클럽을 막 끌고 다니고 그랬었는데. [웃음] 작년 가을 쯤에. 어쨌든. 그러고 어차피 제가 뭔가. 그냥 그렇게는 살았지만 마음 속으로 원하는 건 또 그게 아니었잖아요. 그러니까 뭐, 거기 여보여보도 그 앞에도 서성거리기도 했고. 그리고 실제로 인제 그때는 프린세스나 그런 게 생기면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네. 그러니까 더 아예 치료를 받는 사람들, 전환 중인 사람들이나 그런 사람들을 더 접하게 되면서 그게 좀 많이 부러웠었죠. 그니까 그게 허탈한 거는, 네. 뭐, 굉장히 복잡했던 거 같아요. 그 감정이. 그냥 이렇게 살고 싶다라는 감정도 있었고. 야 너 왜 그 따위로 생겼니 라는 [웃음] 그런 것도 있고. 어차피 이렇게 계속 못 사는데,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어, 굉장히 그냥 자기 만족적인 거 같은 그런 느낌도 있었고요. 그래서 되게, 되게 허했어요. 옷을 입거나 그러면은. 2004~2005년 막 이럴 때는 그때도 물론 인터넷 쇼핑몰이 있었고, 어 그랬지만 사실 내 사이즈가 사이즈 찾기가 힘들었죠. 사실 거의 없다시피 했어요. 큰 옷 전문 막 이런 데서 사면은 거의 막 완전 아줌마. 하나도 안 예쁘고. 근데 어찌어찌 해 가지고 입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그 오프라인에서 살 때는 뭐 선물을 사는 거다 라고 하고 사고. 속옷도요. 근데 그게 그렇게 잦지는 못했죠. 일 년에 한 두 번? 해봤자? 엄청난, 엄청나게 긴장을 타는 일이거든요. 정말 정말 속옷을 사는 거면은 아무렇지도 않았을 텐데. [웃음]
옛날부터 기술 배우라 그랬어!
쭈느 : 사회생활 언제부터 한 거예요?
명자 : 1990년대 후반부터요. 제대하자마자. 회사 일을 했어요. 그때부터 시작을 했고… 제대 후 할 일이 없는데 휴학 기간은 남아있고. 근데 거기서 그 대학생들 상대로 시험을 봐 가지고, 인턴을... 가르켜준다는 미명 하에 싸게 부렸죠. 한 달 30받고 다녔는데. 인턴인데 아주 최저임금의. 예. 최저임금 반반 반의반의반의반 받고 다녔죠.
명자 : 그리고 이제 회사를 다니고, 그 전하고 상황은 비슷해진 거죠. 회사 다니고 뭐 이러고 있으니까. 사실상 트랜지션을 제대로 하기는 힘들었었고. 예. 이 IT 업계에서 휴가를 내기도 힘들고 쉽지가 않은데.
쭈느 : 회사 언제 그만뒀어요?
명자 : 으음~ 작년 11월인가? 물론 회사하고 트러블도 좀 있긴 하지만. 지금 그 회사 사람들 거의 다 나가 버렸다고 그러더라고요. 예. 그런 거(노동착취)에 가까웠죠. 어쨌든, 저는 최근 그 회사를 다닐 때는 웹디자인을 하려고 간 거였고요. 제가 외국에 나가는데, 그때까지는 거의 기획을 했으니깐요. 이러고 외국에 나가면, 언어장애가 있는 기획자가 되는 거잖아요. 누가 써줘요. [살짝 웃음] 그래서 옛날부터 기술 배우라 그랬어. 그래서 [살짝 웃음] 기술을 배워서 그럴려고 프로그래밍을 한 거고. 어느 정도 경력도 쌓였겠다. 실력도 좀 붙었겠다. 그래서 일단 나오고, 지금은 이제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는 거죠. 아, 하지만 구직 사이트 들어가면 진짜 예외 없이, 미국이나 영국이나 호주나 캐나다나, requirement에 한 마디 붙어 있어요. Great Experience of Communication Skill in English 이런 식으로.
수은 : 외국엔 왜 가고 싶어요?
명자 : 여기서 내가 이렇게 살기는 힘드니까. 계속. 아니면 집에 커밍을 하던지. 집에 커밍한다는 얘긴 다~ 커밍을 한단 얘기지. 그러기는 싫으니까. 응. 친구들한테도 그렇고. 안 만나지. 연락이야 지금도 계속 오고. "애들 만나니까 나와라~" 뭐, 그렇게 하는데.. 나는 그냥 걔네들한테 바쁜 놈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