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보에서 만난 당사자들의 인터뷰입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트랜스젠더와 주변인의 삶의 모습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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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인터뷰는 5~10차례에 걸쳐 연재됩니다.

각 인터뷰는 참여자의 신상보호를 위해
이름, 장소, 직업을 비롯한 여러 요소를 내용이 왜곡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각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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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4. 가, 이제 가도 돼. 자유롭게 날아가

수은 : 어느 순간에 한국에 들어오시기로 결정하신 거예요?

로나 : 그런 거는 그냥... 계속. 처음에 취업 인터뷰할 때 머리를 좀 잘랐다가 일 하면서 계속 다시 머리 기르고 했어요. 이제 신경쓸 게 너무 없는거야~ 혼자 살지 내 집 있지 내 차 있지 내가 돈 벌고 살고 있지 하니깐. 집 잘 꾸미기 시작하면서 화장품도 이제 비싼 걸  좀 사기 시작했어요. 옷도 많이 사고. 머리도 처음에는 좀 남자 머리같이 길렀다가, 어느 순간 좀 여자 커트로 자르고. 그러고 난 다음에 머리도 더 기르고 여자 머리로 완전히 또 바꿔버리고, 회사에 약간 화장도 슬쩍슬쩍 하고 다니기 시작하고. 티 안 나게.

수은 : 티 안나게요? [웃음]

로나 : 어~ 티 안 나게. [웃음] 살살살살 하고 다니기 시작했죠. 말투도 옛날엔 일부러 굵게 냈는데, 이제 편하게 내가 원하는 말투로 그냥 하게 되구. 또 회사 분위기가 되게 자유로웠고 누가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어요. 그렇게 자유롭게 있다 보니깐 점점점 더, 외적인 걸 빼놓고 내적으로 내가 원하는 쪽으로 점점 발현이 되는 걸 보니깐 ‘아 나 어떻게 살아야 되나? 이제 커밍을 하고 나도 제대로 가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아, 그러면 현실적으로 직장을 그만 두고 다른 일을 해야 될 수도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구 막. 그런데 계속 일은 하면서 생각이 많다보니까 이러다가 또 내년도, 그 후에도 계속 이렇게 일하고, 이렇게 그냥 난 머물러서 이도저도 아니게 살게 되는 건가? 하는 느낌이 생기더라구요. 이렇게 가다 보면 어정쩡하게 중간에서 그냥 살게 되려나? 나이 먹고 위치도 올라가고 하면 오히려 더 커밍아웃 하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 편으론 들고.

그래서 더 이상 이게 일이 손에 잘 안 잡히는 거야~ 뭔가 내 인생을 어떻게 제대로 살아야 할지 먼저 결정을 내린 다음에 뭐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니까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어영부영 1년 2년 3년 4년 지나다가 이도저도 아니게 후회만 남을 것 같아. ‘아~ 그 때 이걸 했어야 되는데...’ 하는 후회가 남을 수도 있고, ‘난 지금 무슨 상태로 살고 있는 거지?’ 하는 후회도 있을 것 같고. 그래서 하든 안 하든 제대로 결정을 내려버리고 다시 돌아오자 해서. 이런 생각이 내 마음 속에서 너무 강해지니까.

수은 :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계속 그런 생각이 들곤 하죠.

로나 : 그러니까~ 그리고 스스로가 사람들한테 막 ‘아 그냥 말해버리고 살까?’ 하는 생각, 충동도 느껴지고.

수은 : 사람들이 뭐라고 하기도 하나요?

로나 : 아니 그냥 딱히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고, ‘쟤는 그냥 그런 애구나~’ 같이 일하는 내 부서에 있던 사람들은 날 다 아는데, 근데 다른 부서 쪽 사람들은 간간이 나를 오해하고. 다른 곳에 있는 애들은 가~끔씩 ‘쟨 남잔가 여잔가?’ [웃음] 오해를 많이 했고.

그러니까 마지막에 들었던 생각이, 이게 되게 충동적으로 잠깐 왔다가 가는 거려나? 아니면 진짜 내가 원해서 진지하게 커져서 오는 건가? 고민이 되더라구요. 그러면 일단 다 내려놓고, 이제 정말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자 했죠. 아, 물론 어느 정도 놀 돈은 벌어놓구. 돈도 없는데 내가 그럴 수 없지~ [웃음]

수은 : 안전장치 중요하죠. [웃음]

로나 : 어~ 어느 정도 몇 달 먹고 살 돈은 마련해 놓구. [웃음] 이제 좀 생각을 해볼려고 다 내려놓고 다 정리하구 한국에 들어왔죠. 그러니까 딱 10년 만에 제대로 귀국을 한 거죠. 그래서 그냥 쭉 돌아다니고, 사람들도 만나 보구, 어릴 때 살았던 데도 다 한 번 가 보구. 그러면서 이제 좀.

수은 : 언제 들어오신 거예요?

로나 : 한 9월 달에 들어왔거든요?

수은 :  9월에 들어오시기 전부터 한국에 아는 사람이 있었던 거예요?

로나 : 이쪽 세계에서? 아 이쪽 세계에서는 뭐 그냥 옛날에도 한국 올 때 이런 쪽 까페 같은 데 모임 있거나 하면 나가고 했으니깐 몇몇 아는 사람들은 있었죠. 그래서 한국에 오자마자 그런 쪽에서 일도 해 달라고 해서 잠깐 일도 했고.

수은 : 무슨 일을 하셨어요?

로나 : 이제 이 쪽에 막 오프라인 까페 같은 게 있거든요. 우리 같은 사람들 와서 노는 그런 데가. 난 ㅇㅇㅇ에서 일했었는데. 거기 사장 언니하고 개인적으로 친했었기 때문에. 그래서 일해달라고 막 부탁을 하길래 일 했다가, 일하는 사람들 다 친해져선 일 다 그만두고 나오면서 얼떨결에 다 같이 살게 됐어요. 그 때 이제 지금 같이 사는 저 언니를 만난거죠. 뭐 그 전에도 인터넷에서 보긴 했는데, 내가 인터넷에서 보던 그 사람하고 진짜 살게 될 줄은 몰랐어~ [웃음] 처음 봤을 때, 어~ 저 사람이 인터넷에서 보던 그 사람이었구나~ 오 신기하다~ [웃음]

수은 : 일 하는 건 괜찮았어요?

로나 : 여기 한국에서? 어 뭐~ 난 다시는 그런 쪽 일 안 하려고요. [웃음] 내가 생각했던 그런 데가 아니라서. 내가 생각했던 거는 막 진짜 성소수자들을 위한 공간이고 그럴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더라구요. 현실은 거기도 돈을 벌어야 되는 입장이니깐 술을 많이 팔아야 되고. 오히려 우리 같은 사람들을 찬밥 취급 하게 되고. 돈이 안 되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 편하게 놀다 갈 수 있는 놀이터 개념...을 생각했는데 그게 현실은 안 되더라구요.

그러니까… 이제 러버들한테 술 많이 팔아야 가게가 돌아가고 하니깐. 어느 순간, 어? 여기서 뭐 하는거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사장님도 처음에 취지는 진짜 막 성소수자들을 위한 공간이다 어쩐다 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이제 돈 욕심이 좀 나시는지 돈을 더 많이 벌자는 추세로 돌아갔어요. 그러니까 처음에 그 취지가 되게 무색해졌나 싶어서 나는 이제 그만 둔다고 하고 나왔죠. 사장님 뜻이 그렇게 바뀌었다면 난 더 이상 일 못 하겠다 하고.

수은 : 잘 했어요.

로나 : 그쵸~ [웃음] 원래 돈이 그렇게 아쉬웠던 게 아니니깐. 나는 그냥 도와달라고 해서 친했으니깐 도와주면서, 우리를 위한 이런 공간을 만드는 구나 생각했는데. 이제 그 의미가 퇴색됐으니깐 더 이상 내가 있을 필요가 있나 싶어서 나왔죠..

수은 : 그리고 또 한국 들어오셔서 뭐 하셨어요?

로나 : 원래 들어오자마자 한 두 세 달 여행 다니면서 고민하다가, 잘 되면 뭐 성형하고 호르몬 하고 그럴 생각이었는데. [웃음] 한 2달 반 일하느라고 너무 바쁘게 살아서 생각도 못 하고, 이제야 생각 정리가 끝났어요. 일을 그만두고 한 달 좀 넘게 놀면서 이제야 머리 속에서 복잡했던 생각이 많이 정리가 됐고, 이제야 정신과 갔다 왔고, 성형을 이제 할까? 알아보고 다니죠. 근데, 아~ 얘들이 왜 이렇게, 기집애들 성형을 많이 하는지. [웃음] 예약이 꽉 차있고 정말~

수은 : 그죠, 지금 개학 전까지 완전 꽉 찼을텐데?

로나 : 그러니까~ 짜증나가지고 진짜! [웃음] 갔는데 사람 많으니까 되게 막 대충대충 설명해주고 빨리빨리 그렇게 하는 식이니까 불편해가지고 되게.

근데 지금은 되게 마음 편해요. 조금만 더 진지하게 생각해서 이제 결정을 내려야죠. 마음 속으로는 준비가 됐어도, 막상 이제 호르몬을 딱 시작해야지 하고 맞으려고 하면 되게 또 막 떨릴 것 같아갖고. 아, 이제 강을 건너는 건가? [웃음] 정말 잘 살 수 있는거지? 하고서는 묻고 하려고요.

수은 : 그러면 진지하게 고민할 때는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들을 하세요?

로나 : 음, 허엉. 질문이 어렵다. 그냥 뭐... 그냥. 그냥. [웃음] 남들 신경 일단 다 배제해놓고 생각하는 거죠. 말 그대로 나만 생각해서. 왜냐면 내 인생이니까. 난 솔직히 이기적인 거일 수도 있는데, 어쨋든 내 인생이니까 남 신경 쓰고 살 필요는 절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신경쓰이는 거 하나는, 나는 남 신경 안 쓰고 잘 사는데, 남들이 나를 싫어해가지고 내가 원하는 걸 못 하게 막아버리는 그런 불상사가 생기는 거 때문에 지금 고민을 좀 더 하는건데. 하고 싶은 걸 못 하게 될까봐.

수은 : 하고 싶은 거...

로나 : 내가 정말 트랜스젠더로 잘 살 수 있을 것 같냐? 라고 질문에 ‘응.’ 이라고 말할 때 내가 많이 고민했던 거는, 내가 원하는 게 있는데, 너가 여자가 됨으로서 그걸 못 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나는 여자로 살아서 만족하고, 후회하지 않고, 아쉬움은 있어도 후회는 안 하고 살 수 있냐? 하는 그 질문을 나한테 많이 던졌거든요. 그래갖고서는 그래~ 하고 싶은 게 여기 있는데, 그거를 못 하고 그 밑에 있는 거를 뭐 한다고 해도, 그래도 여자로 살 수 있다면 좋겠다. 라는 대답을 이제 스스로가 많이 한 거죠. [웃음] 그래서, 정말 그 정도로 “너가 원한다면, 가라~.”

수은 : 스스로에게? [웃음]

로나 : 스스로에게.  “가, 이제 가. 가도 돼.” “자유롭게 날아가~” [웃음] 그런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