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디 : 평범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시지만 어쨌든, 되게
최원영 : [웃으며] 평범하진 않지 근데~
캔디 : 아니, 어떤 가족들은 아예 누구도 만나지 않고 되게 조용하게 이런 거 다 처리하고 조용히 살잖아요. 근데, 사람들하고도 연락도 하고 다른 커뮤니티를 만나기도 하고 부모님들을 만나기도 하고 이렇게 하시잖아요? 이러지 말고 그냥 우리 더 조용히 살 걸 이런 생각은…
최원영 : 난 그런 생각은 없어요. 쟤는 스스로도 만날 그래요. 자기는 그래도 너무 운이 좋다고 얘기를 해요. 경제적으로 힘든 애들, 또 부모가 이해하지 못해서 힘든 애들이 너무 많으니까. 근데 이것도 어떤 보상심리가 있었을 수도 있어요.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그런 애들한테 신경을 쓰고 도와주면, 지호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웃음] 그런 마음도 분명히 무의식중에 깔려 있었을 거예요.
근데 제가 치료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했었거든요. 어떤 애들이랑 많이 했냐면, 그 성매매 하다가 탈성매매 해서 쉼터에 있는 애들이랑 프로그램 한참 동안 했었거든요? 근데 거기서 보면 하아… 열 몇 살, 십 대부터 삼십 대까지 정말, 험한 일을 겪은 애들 많잖아요. 근데 걔네들이랑 오랫동안 뭐, 같이 프로그램 하면서… 하유, 정말 저것들이 잘 살아야 내가 잘 살겠다. 쟤네들이 저렇게 살면 이게 결국엔 나도 못 살겠구나. 나는, 그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니까 지호 일도 겪고, 그런 애들을 실제로 만나면서, 아~ 저런 애들, 아니면 누가 됐든 내 옆에 누군가가 행복하지 않으면 그게 나도 행복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그때 정말 와 닿았거든요. 그래서 이제 뭐, 앞으로 어떤 일이 됐던 해나가면서, 그게 경제적인 일이 됐건, 아니면 내가 다른 부모를 만나거나 가족들을 만나는 일이 됐건, 열심히 하려고 그래요. 응. 응.
캔디 : 예은이 어머니는 2007년에 만나신 거예요?
최원영 : 그랬을 거예요. 어떻게 정철 씨 통해서 연락이 오고, 그래서 우리 집으로 오시라고. 그래서 예은이 데리고 왔었어요, 예. 예은이 엄마하고 둘이서 만난 건 벌써 오래됐지. 얼마 전엔 또 베트남에서 오신 트랜스젠더 어머님하고 애들이 있는데, 예은이 엄마하고 같이 만났었어요.
요새는 금방 어떻게 알고 연락을 하시더라고요. 얼마 전에 다른 분들도 알게 됐는데 애가 고등학교 자퇴하고 집에 틀어 박혀 있다고. 근데 어머님이 지금 쉰… 쉰 넷 되셨더라고. 애가 늦둥이인 거지. 그러니까 막 그러시는 거야. 나는 사십 대에 그걸 겪어서 너무 좋겠대. 자기는 오십 대에 이걸 겪으려니까 힘들다고 막 그러시는데. 뭘 좀 점심도 대접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못 드시더라고요. 먹질 못하겠대.
그래서 어쨌든 그 예은이 어머님이랑 그 어머님이랑 저랑 이제 한 달에 한 번씩 일단 무조건 만나기로 했어요. 별의별상담소에서 소개해 줘가지고 만난 분도 또 계시거든요. 근데 그 분도 일을 하셔. 하여튼 그 분도 연락 해가지고 시간 맞춰서 넷이 만나서 뭔가 시작해 볼라고. 베트남에서 오신 그 분은 카톡으로 만날 얘기해요. 그러니까… 이제 내가 아는 분은 다섯 명이에요.
캔디 : 다른 가족들을 만나는 게 도움이 많이 되셨어요? 얘기를 나누거나 그러는 게?
최원영 : 이제 예은이 엄마도 저를 만나서 도움이 많이 되셨다고. 어쨌든 제가 먼저 겪었으니까 도움이 많이 되셨다고 하고, 저도 그랬어요. 그 다음부터는 이제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만났거든요? 만나서 둘이 막 울기도 하고~ 애들 욕도 하고~ 무슨 일 있으면 전화통화를 하다든지… 그게 진짜 많이 의지가 되더라고요. 다른 사람은 암~만 얘기해도 우리 시누처럼 남자 속옷이 왜 필요하냐면서 그딴 얘기를 하는데~ [웃음] 한마디 딱 하면 뭐를 얘기하고 싶은지 뭐 때문에 힘든지 딱 알아듣잖아요. 그러니까 정말 위안이 되더라고요. 전 좋았어요. 그래서 이런 부모모임이 꼭 있어야 되겠다. 우리가 이제 만들어 보자! 근데, 그 사람 하나 모으는 게 그렇게 안 돼가지고. [웃음]
캔디 : 엄마들이 이렇게 열심이면 아빠들도 계속 관심을 많이 보여주세요?
최원영 : 예은이 아버지는 되게 관심이 있으신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는 지호 아빠도. 음. 그래. 베트남에서 오신 그 트랜스젠더 어머님하고 애들이 있는데 얼마 전에 만났었어요. 그 분이 남편이랑 같이 오셨댔거든요? 그 남편은 베트남에서 아주 오래 사셨기도 하고 가부장적이어서, 전혀 용납을 안 한대요. 그래가지고 그 엄마가 지호 아빠 한 번 만나게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약속까지 다 잡았는데… 그 남편 분이 베트남에서 공장을 하세요. 근데 공장에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가지고 먼저 들어가셔서 불발이 됐어요. 만났으면 쪼금 더 나았을 텐데. 아무리 부인이 얘기하는 것보다, 그래도 남자가 만나서 한 마디 하면 훨씬 더 이해하실 것 같아서 약속 잡아놨었는데. 이제 지호아빠는 그런 거라면 자기는 언제든지 좋다고 그랬는데, 못 만났어요.
리인 : 우리 엄마를 좀 만나보시면 [같이 웃음]… 너무 달라서 재밌어요, 사실은. [같이 웃음]
최원영 : 그러니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웃음] 예. 근데 저 같은 엄마…가 엄마였으면 되게 피곤했을 거예요. 진짜 그래요. 아이들이 나중에 그런 얘길 했어요. 그니까 저도, 내가 되게 잘 사는, 바람직한 엄마라고 생각했거든요? [웃음] 남편한테도 바람직한 부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내가 공부를 하면서, 이, 이게 별로 좋지가 않네? 그러면서 애들하고 남편한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사실은 자기네들은 너무 힘들었다고. [웃음]
캔디 : 아, 정말요? 이렇게 듣기에 정말, 정말 그냥 엄마 같은데…
최원영 : 어. 얘기를 하더라니까. 항상 너무 이성적이고 냉정해가지고 가까이 다가가기가… 그니까 엄마로서 아내로서 이렇게, 막 친근하게 다가기가… 막 달려가서 확 안기고 싶고 그런데, 엄마를 보면 진짜 약간 주춤하게 되는… 애들도 그러고 남편도 그랬대요. 그래서 되게 조심스러웠다고… 그런 얘기를 커서 얘기하더라고요. [살짝 웃음] 그니까 이게, 저도 많이 바뀐 게 이 정도예요. 옛날에는 좀 더, 더 이렇게 폐쇄적이고, 하여튼 그랬어요. [웃음] 그랬는데 많이 좋아졌어요. 그니까 이제는 어디 가서도 얘기 잘 하고… 낯선 사람 만나서도 불편해하지 않고 하는데, 옛날에는 많이 심했어요. 쫌 약간, 정상적이지 않았어요. [같이 웃음]
캔디 : 상상이 안 가요.
최원영 : 으응. 그랬답니다. 응.
리인 : 이게 약간 그렇지만…좀 힘들어하는 부모님들이나, 아니면 폭력적이거나 강압적인 부모님들이 있잖아요. 그런 분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사실 궁금해요. 어떤 얘기를 해 주고 싶으신지도 궁금하고요. 일단 만나볼 순 없겠지만 그들이 나중에 이걸 볼 수도 있잖아요, 사실. [살짝 웃음]
최원영 : 아, 그런 분들한테? 어떻게 얘기를 해야 되나…? [웃음] 내가 그런 분들에게… 제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서. 하…근데 정말 그게 돌이킬 수 없잖아요, 부모자식 간에 아주 치명적인 상처는. 하… 그거는 아닌 것 같아 정말. 돌아올 수 없는… [살짝 웃음] 상처 주는 말이나 그것만은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너무 이성적인 것 또한 나쁘지만. 근데 부모 노릇 할 때 그 균형점을 찾는 게 사실은 제일 힘들어요. 나도 부모 노릇을 26년을 했는데도, 어떻게 하는 게 제대로 된 건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하… 예.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저는 지호 일을 겪으면서 어떤 부모여야 하는지 계속 물음을 던지고. 또 부모 이전에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계속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이제 제가 조금씩 조금씩 자라고 성장해가는 것 같아요. 그니까 다 같이 커가는 것 같아요. 쟤만 크는 것도 아니고 남편만 크는 것도 아니고. 나도 부모로서,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성장하는 것 같아요. 그런 부모님들한테 어떻게 하라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 분들도 어떤 일을 겪으면서, 자기 자식을 겪으면서, 아무리 그래도 조금씩은 달라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달라지고 자기를 돌아보게 되고. 그러면서 조금씩 나아지시지 않을까 싶어요.
리인 : 속도의 차이인가?
최원영 : 어… 속도의 차이가 있고. 근데 그게 남이 얘기한다고 되는 게 절대 아니거든. 본인이 깨달아야 되는 거거든요. 근데 나도 아직. [웃음] 아직도 멀었어요. 아직도 멀었어. 그냥, 조금 더 나아지겠지, 조금 더 나아지겠지. 그냥 그렇게 생각해요. 뭐 죽을 때까지 안 나아져도 할 수 없고. [웃음] 근데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서 조금 대견하긴 해요. 응. 응. 스스로. 옛날보다 훨씬 나아지고, 좋아졌어요. 그래요.
캔디 : 평범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시지만 어쨌든, 되게
최원영 : [웃으며] 평범하진 않지 근데~
캔디 : 아니, 어떤 가족들은 아예 누구도 만나지 않고 되게 조용하게 이런 거 다 처리하고 조용히 살잖아요. 근데, 사람들하고도 연락도 하고 다른 커뮤니티를 만나기도 하고 부모님들을 만나기도 하고 이렇게 하시잖아요? 이러지 말고 그냥 우리 더 조용히 살 걸 이런 생각은…
최원영 : 난 그런 생각은 없어요. 쟤는 스스로도 만날 그래요. 자기는 그래도 너무 운이 좋다고 얘기를 해요. 경제적으로 힘든 애들, 또 부모가 이해하지 못해서 힘든 애들이 너무 많으니까. 근데 이것도 어떤 보상심리가 있었을 수도 있어요.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그런 애들한테 신경을 쓰고 도와주면, 지호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웃음] 그런 마음도 분명히 무의식중에 깔려 있었을 거예요.
근데 제가 치료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했었거든요. 어떤 애들이랑 많이 했냐면, 그 성매매 하다가 탈성매매 해서 쉼터에 있는 애들이랑 프로그램 한참 동안 했었거든요? 근데 거기서 보면 하아… 열 몇 살, 십 대부터 삼십 대까지 정말, 험한 일을 겪은 애들 많잖아요. 근데 걔네들이랑 오랫동안 뭐, 같이 프로그램 하면서… 하유, 정말 저것들이 잘 살아야 내가 잘 살겠다. 쟤네들이 저렇게 살면 이게 결국엔 나도 못 살겠구나. 나는, 그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니까 지호 일도 겪고, 그런 애들을 실제로 만나면서, 아~ 저런 애들, 아니면 누가 됐든 내 옆에 누군가가 행복하지 않으면 그게 나도 행복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그때 정말 와 닿았거든요. 그래서 이제 뭐, 앞으로 어떤 일이 됐던 해나가면서, 그게 경제적인 일이 됐건, 아니면 내가 다른 부모를 만나거나 가족들을 만나는 일이 됐건, 열심히 하려고 그래요. 응. 응.
캔디 : 예은이 어머니는 2007년에 만나신 거예요?
최원영 : 그랬을 거예요. 어떻게 정철 씨 통해서 연락이 오고, 그래서 우리 집으로 오시라고. 그래서 예은이 데리고 왔었어요, 예. 예은이 엄마하고 둘이서 만난 건 벌써 오래됐지. 얼마 전엔 또 베트남에서 오신 트랜스젠더 어머님하고 애들이 있는데, 예은이 엄마하고 같이 만났었어요.
요새는 금방 어떻게 알고 연락을 하시더라고요. 얼마 전에 다른 분들도 알게 됐는데 애가 고등학교 자퇴하고 집에 틀어 박혀 있다고. 근데 어머님이 지금 쉰… 쉰 넷 되셨더라고. 애가 늦둥이인 거지. 그러니까 막 그러시는 거야. 나는 사십 대에 그걸 겪어서 너무 좋겠대. 자기는 오십 대에 이걸 겪으려니까 힘들다고 막 그러시는데. 뭘 좀 점심도 대접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못 드시더라고요. 먹질 못하겠대.
그래서 어쨌든 그 예은이 어머님이랑 그 어머님이랑 저랑 이제 한 달에 한 번씩 일단 무조건 만나기로 했어요. 별의별상담소에서 소개해 줘가지고 만난 분도 또 계시거든요. 근데 그 분도 일을 하셔. 하여튼 그 분도 연락 해가지고 시간 맞춰서 넷이 만나서 뭔가 시작해 볼라고. 베트남에서 오신 그 분은 카톡으로 만날 얘기해요. 그러니까… 이제 내가 아는 분은 다섯 명이에요.
캔디 : 다른 가족들을 만나는 게 도움이 많이 되셨어요? 얘기를 나누거나 그러는 게?
최원영 : 이제 예은이 엄마도 저를 만나서 도움이 많이 되셨다고. 어쨌든 제가 먼저 겪었으니까 도움이 많이 되셨다고 하고, 저도 그랬어요. 그 다음부터는 이제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만났거든요? 만나서 둘이 막 울기도 하고~ 애들 욕도 하고~ 무슨 일 있으면 전화통화를 하다든지… 그게 진짜 많이 의지가 되더라고요. 다른 사람은 암~만 얘기해도 우리 시누처럼 남자 속옷이 왜 필요하냐면서 그딴 얘기를 하는데~ [웃음] 한마디 딱 하면 뭐를 얘기하고 싶은지 뭐 때문에 힘든지 딱 알아듣잖아요. 그러니까 정말 위안이 되더라고요. 전 좋았어요. 그래서 이런 부모모임이 꼭 있어야 되겠다. 우리가 이제 만들어 보자! 근데, 그 사람 하나 모으는 게 그렇게 안 돼가지고. [웃음]
캔디 : 엄마들이 이렇게 열심이면 아빠들도 계속 관심을 많이 보여주세요?
최원영 : 예은이 아버지는 되게 관심이 있으신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는 지호 아빠도. 음. 그래. 베트남에서 오신 그 트랜스젠더 어머님하고 애들이 있는데 얼마 전에 만났었어요. 그 분이 남편이랑 같이 오셨댔거든요? 그 남편은 베트남에서 아주 오래 사셨기도 하고 가부장적이어서, 전혀 용납을 안 한대요. 그래가지고 그 엄마가 지호 아빠 한 번 만나게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약속까지 다 잡았는데… 그 남편 분이 베트남에서 공장을 하세요. 근데 공장에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가지고 먼저 들어가셔서 불발이 됐어요. 만났으면 쪼금 더 나았을 텐데. 아무리 부인이 얘기하는 것보다, 그래도 남자가 만나서 한 마디 하면 훨씬 더 이해하실 것 같아서 약속 잡아놨었는데. 이제 지호아빠는 그런 거라면 자기는 언제든지 좋다고 그랬는데, 못 만났어요.
리인 : 우리 엄마를 좀 만나보시면 [같이 웃음]… 너무 달라서 재밌어요, 사실은. [같이 웃음]
최원영 : 그러니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웃음] 예. 근데 저 같은 엄마…가 엄마였으면 되게 피곤했을 거예요. 진짜 그래요. 아이들이 나중에 그런 얘길 했어요. 그니까 저도, 내가 되게 잘 사는, 바람직한 엄마라고 생각했거든요? [웃음] 남편한테도 바람직한 부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내가 공부를 하면서, 이, 이게 별로 좋지가 않네? 그러면서 애들하고 남편한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사실은 자기네들은 너무 힘들었다고. [웃음]
캔디 : 아, 정말요? 이렇게 듣기에 정말, 정말 그냥 엄마 같은데…
최원영 : 어. 얘기를 하더라니까. 항상 너무 이성적이고 냉정해가지고 가까이 다가가기가… 그니까 엄마로서 아내로서 이렇게, 막 친근하게 다가기가… 막 달려가서 확 안기고 싶고 그런데, 엄마를 보면 진짜 약간 주춤하게 되는… 애들도 그러고 남편도 그랬대요. 그래서 되게 조심스러웠다고… 그런 얘기를 커서 얘기하더라고요. [살짝 웃음] 그니까 이게, 저도 많이 바뀐 게 이 정도예요. 옛날에는 좀 더, 더 이렇게 폐쇄적이고, 하여튼 그랬어요. [웃음] 그랬는데 많이 좋아졌어요. 그니까 이제는 어디 가서도 얘기 잘 하고… 낯선 사람 만나서도 불편해하지 않고 하는데, 옛날에는 많이 심했어요. 쫌 약간, 정상적이지 않았어요. [같이 웃음]
캔디 : 상상이 안 가요.
최원영 : 으응. 그랬답니다. 응.
리인 : 이게 약간 그렇지만…좀 힘들어하는 부모님들이나, 아니면 폭력적이거나 강압적인 부모님들이 있잖아요. 그런 분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사실 궁금해요. 어떤 얘기를 해 주고 싶으신지도 궁금하고요. 일단 만나볼 순 없겠지만 그들이 나중에 이걸 볼 수도 있잖아요, 사실. [살짝 웃음]
최원영 : 아, 그런 분들한테? 어떻게 얘기를 해야 되나…? [웃음] 내가 그런 분들에게… 제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서. 하…근데 정말 그게 돌이킬 수 없잖아요, 부모자식 간에 아주 치명적인 상처는. 하… 그거는 아닌 것 같아 정말. 돌아올 수 없는… [살짝 웃음] 상처 주는 말이나 그것만은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너무 이성적인 것 또한 나쁘지만. 근데 부모 노릇 할 때 그 균형점을 찾는 게 사실은 제일 힘들어요. 나도 부모 노릇을 26년을 했는데도, 어떻게 하는 게 제대로 된 건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하… 예.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저는 지호 일을 겪으면서 어떤 부모여야 하는지 계속 물음을 던지고. 또 부모 이전에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계속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이제 제가 조금씩 조금씩 자라고 성장해가는 것 같아요. 그니까 다 같이 커가는 것 같아요. 쟤만 크는 것도 아니고 남편만 크는 것도 아니고. 나도 부모로서,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성장하는 것 같아요. 그런 부모님들한테 어떻게 하라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 분들도 어떤 일을 겪으면서, 자기 자식을 겪으면서, 아무리 그래도 조금씩은 달라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달라지고 자기를 돌아보게 되고. 그러면서 조금씩 나아지시지 않을까 싶어요.
리인 : 속도의 차이인가?
최원영 : 어… 속도의 차이가 있고. 근데 그게 남이 얘기한다고 되는 게 절대 아니거든. 본인이 깨달아야 되는 거거든요. 근데 나도 아직. [웃음] 아직도 멀었어요. 아직도 멀었어. 그냥, 조금 더 나아지겠지, 조금 더 나아지겠지. 그냥 그렇게 생각해요. 뭐 죽을 때까지 안 나아져도 할 수 없고. [웃음] 근데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서 조금 대견하긴 해요. 응. 응. 스스로. 옛날보다 훨씬 나아지고, 좋아졌어요.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