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보에서 만난 당사자들의 인터뷰입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트랜스젠더와 주변인의 삶의 모습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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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인터뷰는 5~10차례에 걸쳐 연재됩니다.

각 인터뷰는 참여자의 신상보호를 위해
이름, 장소, 직업을 비롯한 여러 요소를 내용이 왜곡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각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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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5. “첫발을 잘 내디딘 거 같긴 해요”

캔디 : 지호 씨를 아들로 대해야겠다고 생각을 하시고 대하고 있으시잖아요. 이전이랑 어떤 부분에서 달라지셨다고 느끼세요?


최원영 : 잘 모르겠어요, 그게 되게 혼란스러워요. 본인도 자기를 어떻게 불러도 상관없다고 하고. 예. 오히려 자기를 의식적으로 너무 그렇게 ‘쟤가 남자니까 어떻게 해야지’ 이런 거 싫대요. 자연스럽게 하라고… 근데, 응, 이제는 좀 그런 거 같아요. 그니까 하다못해 시장 갔다 올 때 무거운 거 들 때도 든든하고. [웃음]


초반에는 오히려 힘들었어요. 그니까 호르몬 치료 받으면서 많이 바뀌잖아요. 목소리도 바뀌고, 근육도 생기고 살도 찌고 막 그러잖아요. 그때는 밖에서 혹시 전화를 하면 ‘어? 얘가 누구지?’ 예. 그 기분을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어요. 생뚱맞고, 낯설고, 막 무서운 기분이 들어요. ‘얜 누구지? 내가 알던 지호가 맞나? 내 자식인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러고 어쩔 때 거실에 혼자 있다가 지호가 탁 나오잖아요. 그러면, 헉! 진짜 속으로 깜~짝 놀라요. ‘어머, 쟨 누구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진짜로. 외모가 바뀌니까, 이게 겁이 나요. 내가 알던 내 자식이 아닌 것 같은… 그런 이물감 같은 게 있어요. 근데 그거를 표현할 수도 없고… 그게 무섭더라고요…


근데 그게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더라고요. 옛날에는 그냥 뭐, 서로 그냥 옷도 벗고 다니고… 걔도 그냥 팬티만 입고 다니고 그랬었는데, 이제는 쪼끔 조심스러워져요. 그런 게 있더라고요. 근데 아직까지는 얘가 면도를 하고 그래도, 아직까지는 그게 막 자연스럽게 아무 때나 “아들~” 뭐 이런 소리가 나오지 않아요. 원래부터 아들이 있던 사람들은 전화를 할 때나 뭘 할 때나 “아들~” 뭐 이런 얘기들을 하는데… 하긴 딸일 때도 저는 “아휴~ 딸!” 이러진 않았으니까. [웃음] 그런 스타일이 아니니까.


근데 요새는 좀 의식적으로 그러려고 해요. 어제는 지호가 다 들리는데 지인하고 통화를 하면서, 우리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오니까 정~말 든든하고 좋았다고. 남편이 운전할 때는 그 차가 그냥 아무 생각 없었는데,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니까 뿌듯하고, 대견하고 그랬다고. 그랬어요. 근데, 뭐 그렇게 얘기하니까 좋더라고요! 하하~ [같이 웃음]


리인 : 지호님은 두 번 수술하신 거죠?


최원영 : 지금까지 두 번 했죠. 부산에 가서 이제 자궁, 그, 뭐지? [살짝 웃음] 갑자기 생각이… (캔디 : 적출!) 적출! 예, 그거랑 유방 절제하는 걸 하고, 유럽에 가서, 여기서 떼어내 가지고 성기 만드는 수술 하고, 좀 있다 가서, 그 뭐냐, 유도관 넣는 수술.


리인 : 두 번 다 같이 가 주신 건 아니죠?


최원영 : 이제 부산에 처음 갔을 때는 본인도 너무 두려워하고, 저도 이제 혼자 보내는 게 두려웠어요. 그래서 그때는 같이 가서 있었거든요? 근데 유럽 갈 때는 혼자 갔어요. 그게 훨씬 더 힘든 수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외국에 가는 거니까. 그리고 기간도 길고. 한… 한 달 넘게 40일 가까이 있었나? 근데 본인이 원해서 혼자 갔고, 이번에도 혼자 가요.


리인 : 같이 가셨을 때 되게, 힘드셨겠어요.


최원영 : 예… 쪼금 힘들, 힘들더라고요. 걔가 되게 겁이 많아요. 그 수술 동의서 쓰잖아요. 뭐, 이 수술하다 죽을 수도 있고 어쩔 수도 있고 그러니까. [웃음] 자긴 정말, 정말 너~무 무서웠다고. 나중에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근데 그걸 뒤집어 얘기하면, 저렇게 두렵고 무서운데도 불구하고 그걸 받는 거잖아요. 그래서 “아~ 오죽하면 저럴까…” 그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데 처음에 그렇게 한 번 겪고 보니까 두 번짼 별로 무섭지 않다라고 하더라고요.


리인 : 유럽에 보내셨을 때는 어떠셨어요? 좀 큰 수술이었잖아요…


최원영 : 예~ 그때는 근데 오히려 되게 담담했어요. 지호도 되게 담담하고. 가기 전에 몇 번을 물었죠. 진짜 혼자 가겠느냐. 그게 엄마한테 미안해서 그런 거면 내가 따라 가겠다. 왜 혼자 가고 싶어 하느냐. 그랬더니 그러더라고요. 이게 자기 인생에서 굉장히 큰일이기 때문에, 자기 혼자 겪어 보고 싶은 거…가 하나가 있대요. 그 이유가 컸고. 또 뭐라고 하더라? 아~ 이제 자기가 수술 받다 죽을 수도 있잖아요. 그거를 보이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가기 전에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자기가 잘못되면… 아 그때 뭐라고 하더라. 뭐 장기를 기증하고 또 어쩌고저쩌고 그딴 소릴. [같이 살짝 웃음] 그런 얘길 해서, “아~ 얘가 저런 마음가짐이면 정말 혼자 가도 되겠구나” 해서 안심이 되더라고요.


근데 나는 안심이 됐는데 남편이 불안해서 난리가 났었지~ 자기가 불안하고 두려운데 따라가지 못하니까, 나보고 자~꾸 가라고 막. 아휴. 그래서 그거 아니라고. 얘가 혼자 가야 되는 일이라고. 그렇게 하는데도 계~속 그래가지고, 어휴, 얼마나 미웠던지 정말. 남편 때문에 더 힘들었어요. [웃음] 보내고 나서도, 수술 받고 한동안 연락이 안 되잖아요. 수술한 직후에는 오히려 연락을 한 번 했었는데, 그때 비몽사몽하고 회복하는 기간 동안 하루 반인가, 이틀 동안인가, 연락이 안 됐거든요? 남편 완전 돌, 미쳐 돌아갔잖아~ 아후~ 나중에 대판 나랑~[웃음] 내가 처음으로 정말 이혼한다 그러기까지 했어! [웃음] 그렇게 불안했나 봐요. 그래서 아~ 남자들은 정말 다르구나~ 어쩜 그렇게~ 아휴, 그랬어요.


리인 : 그때 집안은 어떠셨어요? 일단은 한동안 떨어져 있었던 거잖아요. 수술 받으시느라.


최원영 : 그때 저도 힘들죠~ 왜 안 힘들었겠어요. 아주 기본적인 그런 믿음은 있었어요. 쟤가 잘 하고 올 거라는 믿음. 그런데도 불구하고 떨어져 있으니까… 어휴, 되게 불안하고 잘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만날 기도하고 뭐 그랬죠. 근데 가족들은 그때도 그랬어요. 되게 외롭고, 두렵고, 무서운데, 이 얘길 서로 못 하는 거야 또! [웃음] 서로! 각자!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동생은 동생대로 그랬던 거 같아요. 내가 “나는 지금 너무 힘들고 외롭고, 너무 무서워. 잘못 될까 봐” 이 얘기를 진~짜 못하겠더라고. 정말 힘든 순간에는 그 얘기를 못 하겠더라고요.


캔디 : 집안은 긴장의 공기가 계속 이렇게 흐른 거예요?


최원영 : 예예~ 그래서 서로 뭘 했냐면, 지호가 회복하는 기간 동안 움직이질 못하니까 가만있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 같은 걸 많이 다운받아 갔어요. 그래서 우리도 걔 받을 때 받아놓은 걸, 그걸 멍하니 앉아가지고~ 그거를 본 거야~!!! 다 같이 앉아가지고~!! [계속 웃음] 그게 한심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그게 그랬어요. 그래도 동생이랑 나는 얘가 잘 갔다 올 거라는 어떤 믿음이 있었어요. 그래도 남편보다는 더 지호랑 얘기를 많이 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둘이 나가기도 하고 그랬는데, 남편은 불안해서 나가지도 못해~ 한 번은 우리가 나갔다가 들어왔는데, 남편이 혼자 소파에 쭈그리고 앉아가지고, 그 재미도 없는 옛날 한국 드라마를 보고 앉아있는 거야!! 그걸 보니까, 아휴~ 저 속이 오죽하면 저러고 앉았을까 싶더라고. [웃음]


리인 : 경제적인 것도 영향을 많이 미쳤을 것 같아요. 수술을 두 번씩 하시고 호르몬도 있고…


최원영 : 예~ 근데 이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장단점이 있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경제적으로 우리는 수술을 하고 그러는데 문제가 되지 않고, 충분히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있었어요. 근데 얘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처음부터, “그거에 대해선 전~혀 걱정마라. 니가 뭘 하던, 어떤 수술을 하던, 우리는 다~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주겠다.” 그렇게 얘기를 했거든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지호가 그 부분을 되게 미안해했어요. 자기가 돈을 벌어서 해야 되는데 부모한테 부담까지 지운다는 게, 그게 자기가 못 할 짓이고, 미안하다고. 계~속 얘기를 하고 그랬거든요.


근데 이게 사람이 웃긴 게, 처음에는 그런 마음이었고 몇 년 동안 계~속 미안해했어요.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걔도 이제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거야~[함께 웃음] 부모가 계속 그렇게 얘기를 했고, 자기도 이게 너무 당연하고 여기는 거고. 그래서 어느 시점이 되니까 내가 ‘아~ 이건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이건 아닌데?’ 근데 그게 되게 웃긴 게, 여태까지 전폭적으로 다 지원 해주겠다고 하고, 갑자기 “아, 이제 못해” 그럴 수가 없잖아. 그니까 이게 관성에 의해서 어떻게 지금까지 온 거예요. 근데 ‘이게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면서, 얼마 전에 그 얘기를 했어요.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엄마는 한 2,3년 전부터는 이게 내가 잘못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니까 너를 위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너를 위한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차라리 조금씩 더 시간이 걸렸더라도, 도와주기는 도와주지만 너도 일정 부분 그거를 감당을 하고 우리도 감당하고 그런 식으로 갔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가 든다. 그래서 이번 수술까지 하고 와서 회복이 되면, 대학을 졸업했으니까, 이제 니가 알아서 무슨 일을 하던 해라.”


그리고 감정적인 것도 얘기했어요. 그러니까, 어… 지희하고 나한테 징징대지 말라고. 예. 우리 충분히 힘들다고… 그래서 “우리도 너무 고통스럽다. 우리는 우리 몫을 짊어질 테니까. 이건 뭐 누가 원한 것도 아니고 잘못한 것도 아니지만, 우리가 짊어질 몫은 평생 우리가 잘 짊어질 테니까. 니 몫은 제발 니가 짊어지고 우리한테 징징대지 말아라.” 그렇게 대놓고 얘기했어요. 8년 동안 그런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거든요. ‘뭔가 아니다’ 싶은 생각이 계속 들었는데도, 항상 걔가 중심이었고, 우리가 걔 기분을 살피고, 그 기분에 맞춰주고… 되도록이면 상처받게 하지 않으려고 보호하고.


어떻게 보면 우리가 잘못한 거지. 너무 그렇게 보호하려고 하고, 바람막이가 돼 주려고 한 게 잘못한 거구나. 그니까 이게, 감정을 탁 터뜨리는 집안 같았으면 미리 다 알았을 거야. 그래서 막 욕도 해가면서 상처 줘가면서, 막 그랬을 텐데, 서로 조심조심하다 보니까 이게 너무 오래가요. [살짝 웃음] 그걸 알면서도 얘기를 못 하는 거예요. 끙끙 앓다가 아, 이제는 아니다. 이게 올 때까지 온 거야. 그래서 지희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이건 아니다’는 서로 합의를 하고, 얘기를 한 거죠.


지호가 한… 한 달은 나를 안 봤을 거예요. 내가 서울에 가면 자기 방으로 들어가고, 내가 가면 나오고. 그니까 제가 어디 집 밖에 나가면 나와서 있다가, 내가 들어오면 자기 방으로 들어가고. 얼굴을 안 보더라고요.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 같아. 여태 몇 년 지나도록 그런 얘기 한 번도 안 하다가, 확 얘기를 했으니까. 근데 한 번은 해야 될 얘기였고. 그러면서도 아, 내가 많이 잘못했구나… 근데 이게 또 타고난 성격을 어떡하겠어요~. 내 성향이나 성격으로 봐선 또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걸. 근데 애가 그래서 더… 아니 애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다 오랫동안 더 힘들었던 거 같아요.


캔디 : 이제 지금 쫌 나아졌어요?


최원영 : 오, 이제 괜찮아졌어요. 속초 가서도 얘기를 하고. 그게 계기가 돼서 자기도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얘가… 처음엔 문학 쪽으로 공부를 하겠다고 그랬었거든요. 근데 그 공부를 한다는 것도 본인이 좋아하고 적성에 맞기도 하지만, 이게 사실은 남 보기에 그럴듯한 거잖아요. 내가 성소수자이긴 하지만 공부를 계속 해서 학위를 따고 뭐 이런 거 자체가, 그게 사실 남 보기에 좋은 거잖아요. 그니까 그거보다는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걸 생각해봤다고.


얘가 어릴 때부터 동물을 되게 좋아해요~ 정말 그 좋아하는 정도가 그냥 반려동물을 키우고 그런 정도가 아니에요. 이걸 어떻게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는데, 조금 달라요. 그래서 자기는 동물 관련된 일을 정말 하고 싶다고. 그 동물 전문 간호사가 있거든요? 우리나라는 그 전문적으로 동물을 다루는 간호사 배출하는 데가 없고, 그래서 자기가 수술 받고 오면 미국에 가든 어딜 가서 그거를 해보고 싶다고. 그거를 하다가, 동물심리에 대해서도 공부해보고 싶고. 자기가 진짜 그거를 하고 싶다고. 좋아하기도 하고, 하고 싶다고 그래서, 나는 적극 찬성한다고… 예, 그랬어요. 예.


그래서 일단은 그렇게 정리가 됐어요. 잘 될지 어떨진 모르겠는데, 하여튼 그런 얘기를 하고, 응. 너무 멀리 돌아왔는데~ [웃음] 하여튼, 하여튼 이제 첫발을 잘 내디딘 거 같긴 해요.


리인 : 얘기하시니까 좀 후련하세요? [살짝 웃음]


최원영 : 으으응. 응. 훨씬 후련하죠. 우리도 참 미련하다~[웃음] 그니까 가족 간에도 그러고 너무 조심스러웠어요. 근데 성향을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이게 아니라는 걸 계속 알고 있었어도 사실 관성에 의해서 흘러가는 게 있어요. 근데 사실 저는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한… 2,3년 전부터 들기 시작했거든요. 뭐가 우리가 잘못하고 있다.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성에 의해서 하던 대로 내 성격대로 계속 흘러갔죠. 그게 눈에 보이는데도 그거를 못 막겠는 거예요. 사실은 그게 또 편한 부분이 있기도 하고. 방향을 돌리려면 갈등을 겪고 에너지를 써야 되잖아요. 그니까, 어휴, 그게 힘들더라고요.


근데 진짜 이건 아니다. 애를 위해서도 아니고, 우리 모두를 위해서도 아니다. 그걸 말하는 용기를 내기까지가 시간이 오래 걸린 거죠… 한 2,3년 걸린 거예요. 그니까 이제 그렇게 얘기를 하면서 어쨌든 바로 잡겠다고 시작을 한 거예요. 지금 아주 첫발을 디딘 거니까, 잘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변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자꾸 예전처럼 가고 싶어 하지. 경제적으로든 뭐든 다 해주고 싶지. 근데 이게 정말 애를 잡는 일이고, 애한테 나쁘게 하는 일이고 우리한테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모두한테 다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걸 이제 아니까. 잘 해봐야 되는데. 잘 될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응.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