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디 : 그래도 저희 이렇게 얼굴 본지는 되게 오래된 거 같아요. 그쵸. 7년 정도…? 7년 전에 이제 아신 거예요?
최원영 : 가만있어보자… 정확하게는… 걔가 고등학교 2학년 때니까 열일곱… 열여덟 살 지금 스물여섯 8년 전 인가 봐요. 네… 거의 십 년 가까이 됐어요. 진짜 까마득하다.
캔디 : 그때 어느 날 그냥 갑자기….
최원영 : 아니에요. 그러니까 본인이 느낀 건 그 전부터였던 것 같아요. 뭔가 내가 좀 이상한 거 같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우리 가족들한테는 얘기를 안 하고. 근데 그때는 되게 심각해졌었나 봐요. 그래서 일기를 계속 썼는데 동생이 이상하니까… 얘가 제일 가깝잖아요. 그래가지고 뭔가 암튼 낌새가 이상해서…
캔디 : 여동생이에요?
최원영 : 네네. 여동생.
리인 : 여동생이 말해준 시기에 그 분이 나이대가 어느 정도였어요?
최원영 : 동생이 열다섯 살이지. 지호가 열일곱, 열여덟… 그때예요. 그러니까 걔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도 못해요. 네, 그래서 일기를 본 거예요. 그랬는데 내용이 심각하니까 동생이 나한테 와서 얘기를 했어요. 일기에 뭐 그런 내용들이 쓰여 있고, 생리할 때 너무 힘들고 죽고 싶고 뭐… 그런 얘기들을 써서, 이거 엄마가 알아야 되겠다고 가지고 와서 보여주더라고요. 그렇게 알고, 그 다음에 애랑 얘기를 했죠.
리인 : 먼저 대화를 거신 거예요 그러면?
최원영 : 아마 그랬을 거예요. 그걸 보고 놀래가지고 네… 그래서 엄마는 그런 거 별로 이상하게 생각 안 하고 잘 받아 드릴 수 있으니까 우리 얘길 해보자. 그때 걔가 막… 머리가 아프다고 그랬어요, 한동안… 그게 말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아가지고 머리가 엄청나게 아팠던 거죠. 그래가지고 병원에 가서 MRI도 찍고 그랬어요. 근데 아무 이상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 그게 연관돼서 알았지. 얘가 그것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게 두통으로 왔구나. 그랬어요…
그래서 알게 되고 그 다음에는 이제… 검사를 하러 정신과에 갔지. 내가 알고 있던 상식으로는 그 시기에는 누구나 성정체성의 혼란을 느낄 수도 있으니까, 이걸 확실히 좀 알아봐야 되겠다 싶어서 가까운 대학 병원에 가서 심리검사를 일단 쫙 하고 그랬더니 아무튼 성정체성의 혼란을 되게 느끼는 걸로 나오고 우울증이 되게 심하다고 나왔어요. 그래가지고 이제 그 의사랑 상담을 시작했거든요. 근데 그때 잘못한 거야. 지금 생각해보니까 너무 잘못했어요. 근데 그때 내가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 도와주긴 해야겠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전혀 모르니까. 일단은 전문가한테 데려가면 그래도 뭔가 얘가 편해지지 않을까, 그리고 나도 뭔가 좀 더 납득할 수 있고 편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그냥 그렇게 한 거였는데. 지금 보니까 결과적으로는 잘못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캔디 : 어… 왜요?
최원영 : 그러니까… 그 의사는 얘를 음… 어떤 식으로 대했냐면 우울증이 심하니까… 얘길 안 하잖아요. 그러니까 “무조건 너는 약을 먹어야 되겠다.” 그렇게 얘기했어요. 그래서 얘가 되게 충격 받았어요. 자기는 그래도 의사한테 가면 이해를 받고 도움을 얻고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약 얘기를 먼저 꺼내니까… 얘가 자긴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가지고 몇 번 상담을 받다가 그만두고 그래서 이제 다른 상담자를 찾아봤어요.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갔는데 또 이상한 사람이 걸렸어요. 그러니까 진짜 그… 상담자를 조심해야 되는 게, 지호하고 내가 처음 갔을 때 내가 그랬거든요. “우리는 얘를 뭐…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상으로 바로 잡으려는 게 아니다. 얘가 혼란을 느끼고 있는데 이게 정말 맞는 건지 그걸 알고 얘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어서, 근데 그것이 상담을 통해서 어떻게 좀 더 잘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온 거다. 그러니까 얘를 절대로 바꾸려고 하지 말고, 얘가 원하는 대로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분명하게 얘기를 했거든요. 근데 그분은 아마 자기 가치관이나 신념에 이게 아니었던 거 같아. 근데 그때 얘기를 해줬으면 되는데, 본인도 알았다고 그렇게 하겠다고 얘기를 해놓고서는 계속 상담을 하는 도중에 얘를 계속 바꾸려고 했던 거야…
캔디 : 어머…
최원영 : 그러니까 지호가 굉장히 많이 충격을 받은 거야 또 더 많이 충격을 받았어요. 약 먹자고 들이댄 거 보다 훨씬 더 많이 상처를 받았어요. 애가 점점 더 이상해지고 점점 더 우울해지고 막 이상한 꿈을 꾸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이건 뭔가… 아닌데, 아닌데, 싶었거든요. 근데 계속 한 몇 달은 다녔을 거야. 일주일에 한번씩… 근데 나중에 좀 이상해서 상담자보고 내가 만나자고 해가지고 했더니 어떤 얘길 하냐면, 얘는 부모도 멀쩡하고. 응? 애도 별 이상이 없고, 어릴 때도 별 문제가 없는데 이상하다는!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스스로 결론을 냈냐면 얘가 정신분열증 초기다. 그러니까 다른 신경정신과에 가서 제대로 검사를… 하… 그래가지고 정말… 이런 상담자가 있다니 (한숨) 정말 저도 충격 이였어요.
그게. 그러니까 자기 스스로 이걸 용납을 못하는 거예요. 그런 사람도 있더라고요. 멀쩡하게 다 심리학 박사학위까지 따고 오랜 상담경험을 가지고 있고 나이도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 이 성소수자 문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그렇게 몰고 가더라고요. 그래야 자기가 납득할 수 있으니까. “아, 전문가가 이럴 수 있구나…” 저한테도 충격이었고, 지호가 되게 많이 상처받았었어요. 그래서 지호는 정말 시작이 안 좋았어요. 그 사람들이 나를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이렇게 나를 수령에 빠뜨려서 힘들게 하는구나. 그래서 상담자에 대한 불신이 굉장히 높아졌죠. 그래서 그 다음엔 저도 안 되겠다 싶어서 어떻게 어떻게 연락이 돼서 그… 옛날에 민노당에 최현숙 의원을 어떻게 만나게 되고 그 다음에 정철 씨를 만나게 되고 그러면서 이제 모 정신과 선생님이 그래도 조금 낫다는 얘기를 듣고 거기를 갔어요. 근데 그때는 이미 지호가 너무 많이 상처를 받아가지고 정신과 의사나 상담자는 믿을 사람이 못된다고 딱 하고. 가서도 얘기 잘 안하고. 그래도 암튼 일 년 넘게 다니긴 했어요.
원하는 대로 수술 받고 하려면 의사 진단서가 필요하니까. 또 그때는 의사가 일 년 정도 두고 봐야 한다고 하니까. 억지로 억지로 가고 우울증 약도 나중엔 좀 먹고 그러긴 했는데, 그때도 얘기를 못했… 잘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참 힘들었어요. 그 시간이 그러니까… 그 와중에 또 대학을 갔거든요
캔디 : 그 와중에 대학을 갔어요?
최원영 : 그… 와중에 갔어요. [웃음] 그 와중에 대학을 가고 그러니까, 집에서도 늘 처박혀 가지고 나오지 않았어요. 가족들을 또 안보고 그래가지고 제가 저러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족들은 늘 하고 있고. 그래가지고 아빠가 가서 다른 건 다 해도 되는데 죽는 것만은 안 된다고 만날 손 붙잡고 얘기하고 그랬었는데… 걔가 그때 동물을 키웠거든요 그러면서 괜찮아졌어요.
최원영 : 하여튼… 그래서… 힘들게 지내고. 학교 가서도 계속 힘들었죠. 응… 근데 한 대학교 1학년 때인가 2학년 때부터 이제 호르몬을 하겠다고 그랬어요. 근데 나중에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자기 스스로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그걸 인정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계속 하나님을 원망하고. 왜 나냐고.[웃음] 왜 하필이면 나냐고. 다른 사람들은 멀쩡한 거 같은데,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이런 일을 이렇게… 닥치게 하냐고. 그래서 계속 원망하다가 “아… 내가 진짜 이거구나” 하고 받아들이기까지 한 삼사 년 쯤 걸렸대요. 그게 제일 힘들었대요. 그걸 받아들이는 게. 그러니까 생리하고 이런 것도 너무 죽을 만큼 힘들지만, 이게… 진짜 내 일이다. 내 삶이 이렇게 정해졌구나… 하는 걸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다고. 그러면서 자기가 그걸 인정하고, 우리한테 와서 호르몬을 하겠다고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캔디 : 음… 어떠셨어요? 처음에… 어쨌든 일기장 보고 되게 충격 받으셨을 거 아니에요.
최원영 : 처음에는 오히려 충격 안 받았어요.
캔디 : 아, 진짜요?
최원영 : 근데… 우리 집사람 식구들이 스타일이 전부 그래요. 그게 감정을 다 안 쓰고 다 머리를 쓰는 사람들… 넷이 거의 다 그래요. 그러니까 오히려 처음에는 조용했어요. 이게 굉장히 큰일인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정말 큰일인데. 뭐 누구 하나 화도 내지 않고 울지도 않고, 우리는 이걸 이성적으로 잘 해결할 수 있어. 아주 조용하고 담담하게.
근데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긴 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까 또 그것 때문에 정말 힘들었어요. 사람이 큰일이 생기면 막 분노도 하고 화도 내고 뭐 울고불고 싸우기도 하고 막 그랬어야 되는 건데, 그런 과정을 안 거친 게 나중에 더 힘들게 나타나더라고요. 근데 하여튼 그 당시에는 너무 담담했어요. 저도 막 정말 투사가 된 것처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아… 나는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어. 나니까.” 그러면서… 음… 그러면서 “나는 그렇게 울고불고 안하고 이성적으로 잘 해결할거야.” 이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잘 해결할 수 있어.”’ 이런 식으로 마음을 이렇게 먹고 그랬었거든요
캔디 : 그럼 아예 처음부터 “얘가 그렇다면 받아들여야지.” 그렇게 생각을 하신 거예요?
최원영 : 네. 그러니까 그것도 그때는 머리로 받아 드린 거죠 사실은 다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얘가 원하는 대로 우리는 다 해줄 거야 그랬… 그랬죠.
캔디 : 바로 호칭도 바꾸시고… 그렇게…
최원영 : 응?
캔디 : 호칭도 바꾸시고 …
최원영 : 아뇨. 그러진 않았어요. 원래 쓰던 게 있으니까 그리고… 그 본인이 그렇게… 그러니까… 의식적으로 바꾸길 원하질 않았어요.
캔디, 리인 : 음…
최원영 : 네 그래서 편한 대로 부르라고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편한 대로 부르라고 해요. 그런데 우리는 집에서 이름을 잘 안 불렀어요. 별명을 주로 부르기 때문에 그러니까… 별명에는 성정체성이 들어나질 않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그냥 늘 별명을 불렀기 때문에 별 문제 없었어요.
리인 : 진짜 신기하다… 가족끼리 별명 부르는 거! [웃음]
최원영 : 네네. [웃음] 우리는 좀 늘 그래 와서 [웃음]
캔디 : 그래도 저희 이렇게 얼굴 본지는 되게 오래된 거 같아요. 그쵸. 7년 정도…? 7년 전에 이제 아신 거예요?
최원영 : 가만있어보자… 정확하게는… 걔가 고등학교 2학년 때니까 열일곱… 열여덟 살 지금 스물여섯 8년 전 인가 봐요. 네… 거의 십 년 가까이 됐어요. 진짜 까마득하다.
캔디 : 그때 어느 날 그냥 갑자기….
최원영 : 아니에요. 그러니까 본인이 느낀 건 그 전부터였던 것 같아요. 뭔가 내가 좀 이상한 거 같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우리 가족들한테는 얘기를 안 하고. 근데 그때는 되게 심각해졌었나 봐요. 그래서 일기를 계속 썼는데 동생이 이상하니까… 얘가 제일 가깝잖아요. 그래가지고 뭔가 암튼 낌새가 이상해서…
캔디 : 여동생이에요?
최원영 : 네네. 여동생.
리인 : 여동생이 말해준 시기에 그 분이 나이대가 어느 정도였어요?
최원영 : 동생이 열다섯 살이지. 지호가 열일곱, 열여덟… 그때예요. 그러니까 걔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도 못해요. 네, 그래서 일기를 본 거예요. 그랬는데 내용이 심각하니까 동생이 나한테 와서 얘기를 했어요. 일기에 뭐 그런 내용들이 쓰여 있고, 생리할 때 너무 힘들고 죽고 싶고 뭐… 그런 얘기들을 써서, 이거 엄마가 알아야 되겠다고 가지고 와서 보여주더라고요. 그렇게 알고, 그 다음에 애랑 얘기를 했죠.
리인 : 먼저 대화를 거신 거예요 그러면?
최원영 : 아마 그랬을 거예요. 그걸 보고 놀래가지고 네… 그래서 엄마는 그런 거 별로 이상하게 생각 안 하고 잘 받아 드릴 수 있으니까 우리 얘길 해보자. 그때 걔가 막… 머리가 아프다고 그랬어요, 한동안… 그게 말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아가지고 머리가 엄청나게 아팠던 거죠. 그래가지고 병원에 가서 MRI도 찍고 그랬어요. 근데 아무 이상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 그게 연관돼서 알았지. 얘가 그것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게 두통으로 왔구나. 그랬어요…
그래서 알게 되고 그 다음에는 이제… 검사를 하러 정신과에 갔지. 내가 알고 있던 상식으로는 그 시기에는 누구나 성정체성의 혼란을 느낄 수도 있으니까, 이걸 확실히 좀 알아봐야 되겠다 싶어서 가까운 대학 병원에 가서 심리검사를 일단 쫙 하고 그랬더니 아무튼 성정체성의 혼란을 되게 느끼는 걸로 나오고 우울증이 되게 심하다고 나왔어요. 그래가지고 이제 그 의사랑 상담을 시작했거든요. 근데 그때 잘못한 거야. 지금 생각해보니까 너무 잘못했어요. 근데 그때 내가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 도와주긴 해야겠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전혀 모르니까. 일단은 전문가한테 데려가면 그래도 뭔가 얘가 편해지지 않을까, 그리고 나도 뭔가 좀 더 납득할 수 있고 편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그냥 그렇게 한 거였는데. 지금 보니까 결과적으로는 잘못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캔디 : 어… 왜요?
최원영 : 그러니까… 그 의사는 얘를 음… 어떤 식으로 대했냐면 우울증이 심하니까… 얘길 안 하잖아요. 그러니까 “무조건 너는 약을 먹어야 되겠다.” 그렇게 얘기했어요. 그래서 얘가 되게 충격 받았어요. 자기는 그래도 의사한테 가면 이해를 받고 도움을 얻고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약 얘기를 먼저 꺼내니까… 얘가 자긴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가지고 몇 번 상담을 받다가 그만두고 그래서 이제 다른 상담자를 찾아봤어요.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갔는데 또 이상한 사람이 걸렸어요. 그러니까 진짜 그… 상담자를 조심해야 되는 게, 지호하고 내가 처음 갔을 때 내가 그랬거든요. “우리는 얘를 뭐…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상으로 바로 잡으려는 게 아니다. 얘가 혼란을 느끼고 있는데 이게 정말 맞는 건지 그걸 알고 얘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어서, 근데 그것이 상담을 통해서 어떻게 좀 더 잘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온 거다. 그러니까 얘를 절대로 바꾸려고 하지 말고, 얘가 원하는 대로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분명하게 얘기를 했거든요. 근데 그분은 아마 자기 가치관이나 신념에 이게 아니었던 거 같아. 근데 그때 얘기를 해줬으면 되는데, 본인도 알았다고 그렇게 하겠다고 얘기를 해놓고서는 계속 상담을 하는 도중에 얘를 계속 바꾸려고 했던 거야…
캔디 : 어머…
최원영 : 그러니까 지호가 굉장히 많이 충격을 받은 거야 또 더 많이 충격을 받았어요. 약 먹자고 들이댄 거 보다 훨씬 더 많이 상처를 받았어요. 애가 점점 더 이상해지고 점점 더 우울해지고 막 이상한 꿈을 꾸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이건 뭔가… 아닌데, 아닌데, 싶었거든요. 근데 계속 한 몇 달은 다녔을 거야. 일주일에 한번씩… 근데 나중에 좀 이상해서 상담자보고 내가 만나자고 해가지고 했더니 어떤 얘길 하냐면, 얘는 부모도 멀쩡하고. 응? 애도 별 이상이 없고, 어릴 때도 별 문제가 없는데 이상하다는!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스스로 결론을 냈냐면 얘가 정신분열증 초기다. 그러니까 다른 신경정신과에 가서 제대로 검사를… 하… 그래가지고 정말… 이런 상담자가 있다니 (한숨) 정말 저도 충격 이였어요.
그게. 그러니까 자기 스스로 이걸 용납을 못하는 거예요. 그런 사람도 있더라고요. 멀쩡하게 다 심리학 박사학위까지 따고 오랜 상담경험을 가지고 있고 나이도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 이 성소수자 문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그렇게 몰고 가더라고요. 그래야 자기가 납득할 수 있으니까. “아, 전문가가 이럴 수 있구나…” 저한테도 충격이었고, 지호가 되게 많이 상처받았었어요. 그래서 지호는 정말 시작이 안 좋았어요. 그 사람들이 나를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이렇게 나를 수령에 빠뜨려서 힘들게 하는구나. 그래서 상담자에 대한 불신이 굉장히 높아졌죠. 그래서 그 다음엔 저도 안 되겠다 싶어서 어떻게 어떻게 연락이 돼서 그… 옛날에 민노당에 최현숙 의원을 어떻게 만나게 되고 그 다음에 정철 씨를 만나게 되고 그러면서 이제 모 정신과 선생님이 그래도 조금 낫다는 얘기를 듣고 거기를 갔어요. 근데 그때는 이미 지호가 너무 많이 상처를 받아가지고 정신과 의사나 상담자는 믿을 사람이 못된다고 딱 하고. 가서도 얘기 잘 안하고. 그래도 암튼 일 년 넘게 다니긴 했어요.
원하는 대로 수술 받고 하려면 의사 진단서가 필요하니까. 또 그때는 의사가 일 년 정도 두고 봐야 한다고 하니까. 억지로 억지로 가고 우울증 약도 나중엔 좀 먹고 그러긴 했는데, 그때도 얘기를 못했… 잘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참 힘들었어요. 그 시간이 그러니까… 그 와중에 또 대학을 갔거든요
캔디 : 그 와중에 대학을 갔어요?
최원영 : 그… 와중에 갔어요. [웃음] 그 와중에 대학을 가고 그러니까, 집에서도 늘 처박혀 가지고 나오지 않았어요. 가족들을 또 안보고 그래가지고 제가 저러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족들은 늘 하고 있고. 그래가지고 아빠가 가서 다른 건 다 해도 되는데 죽는 것만은 안 된다고 만날 손 붙잡고 얘기하고 그랬었는데… 걔가 그때 동물을 키웠거든요 그러면서 괜찮아졌어요.
최원영 : 하여튼… 그래서… 힘들게 지내고. 학교 가서도 계속 힘들었죠. 응… 근데 한 대학교 1학년 때인가 2학년 때부터 이제 호르몬을 하겠다고 그랬어요. 근데 나중에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자기 스스로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그걸 인정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계속 하나님을 원망하고. 왜 나냐고.[웃음] 왜 하필이면 나냐고. 다른 사람들은 멀쩡한 거 같은데,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이런 일을 이렇게… 닥치게 하냐고. 그래서 계속 원망하다가 “아… 내가 진짜 이거구나” 하고 받아들이기까지 한 삼사 년 쯤 걸렸대요. 그게 제일 힘들었대요. 그걸 받아들이는 게. 그러니까 생리하고 이런 것도 너무 죽을 만큼 힘들지만, 이게… 진짜 내 일이다. 내 삶이 이렇게 정해졌구나… 하는 걸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다고. 그러면서 자기가 그걸 인정하고, 우리한테 와서 호르몬을 하겠다고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캔디 : 음… 어떠셨어요? 처음에… 어쨌든 일기장 보고 되게 충격 받으셨을 거 아니에요.
최원영 : 처음에는 오히려 충격 안 받았어요.
캔디 : 아, 진짜요?
최원영 : 근데… 우리 집사람 식구들이 스타일이 전부 그래요. 그게 감정을 다 안 쓰고 다 머리를 쓰는 사람들… 넷이 거의 다 그래요. 그러니까 오히려 처음에는 조용했어요. 이게 굉장히 큰일인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정말 큰일인데. 뭐 누구 하나 화도 내지 않고 울지도 않고, 우리는 이걸 이성적으로 잘 해결할 수 있어. 아주 조용하고 담담하게.
근데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긴 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까 또 그것 때문에 정말 힘들었어요. 사람이 큰일이 생기면 막 분노도 하고 화도 내고 뭐 울고불고 싸우기도 하고 막 그랬어야 되는 건데, 그런 과정을 안 거친 게 나중에 더 힘들게 나타나더라고요. 근데 하여튼 그 당시에는 너무 담담했어요. 저도 막 정말 투사가 된 것처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아… 나는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어. 나니까.” 그러면서… 음… 그러면서 “나는 그렇게 울고불고 안하고 이성적으로 잘 해결할거야.” 이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잘 해결할 수 있어.”’ 이런 식으로 마음을 이렇게 먹고 그랬었거든요
캔디 : 그럼 아예 처음부터 “얘가 그렇다면 받아들여야지.” 그렇게 생각을 하신 거예요?
최원영 : 네. 그러니까 그것도 그때는 머리로 받아 드린 거죠 사실은 다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얘가 원하는 대로 우리는 다 해줄 거야 그랬… 그랬죠.
캔디 : 바로 호칭도 바꾸시고… 그렇게…
최원영 : 응?
캔디 : 호칭도 바꾸시고 …
최원영 : 아뇨. 그러진 않았어요. 원래 쓰던 게 있으니까 그리고… 그 본인이 그렇게… 그러니까… 의식적으로 바꾸길 원하질 않았어요.
캔디, 리인 : 음…
최원영 : 네 그래서 편한 대로 부르라고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편한 대로 부르라고 해요. 그런데 우리는 집에서 이름을 잘 안 불렀어요. 별명을 주로 부르기 때문에 그러니까… 별명에는 성정체성이 들어나질 않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그냥 늘 별명을 불렀기 때문에 별 문제 없었어요.
리인 : 진짜 신기하다… 가족끼리 별명 부르는 거! [웃음]
최원영 : 네네. [웃음] 우리는 좀 늘 그래 와서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