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보에서 만난 당사자들의 인터뷰입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트랜스젠더와 주변인의 삶의 모습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름을 클릭하면 연재 중인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 명의 인터뷰는 5~10차례에 걸쳐 연재됩니다.

각 인터뷰는 참여자의 신상보호를 위해
이름, 장소, 직업을 비롯한 여러 요소를 내용이 왜곡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각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글을 읽고 여러분의 이야기도 함께 댓글로 남겨주세요.

게제된 글을 무단으로 전제/ 도용할 시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기범2. “너 거기 정확한 위치가 어디냐? 내가 데리러 갈 테니”

에디 : 제자 분과 졸업 후에 알게 되신 거잖아요. 그 뒤에 다른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 어떻게 지내셨는지 말씀해주세요.


기범 : 사실 그 제자가 대학교에 들어간 다음에 군대 간다고 해서 만난 적이 있어요. 군대 간다고 만나서 내가 저녁인지 점심인지 사주고 잘 갔다 오라 했는데, 1년 후에 전화가 왔어요. 전 당연히 ‘아, 휴가 나왔나 보다' 여기고 “휴가 왔니?" 물어보니 아니래요. 이태원에 있대요. 그래서 무슨 말인가 했더니 이태원에서 일을 하고 있대요. 그래서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죠. 그리고 궁금했어요. 그러니까 자기가 게이가 되고 싶어서 게이라고 표현했는지 정확히는 기억은 안 나는데. (그 시기에) 주병진 쇼에 과거 게이 3명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되게 예쁘게 차려 입고 화장도 하고 나왔겠죠. 난 그때 그 쇼를 못 봤는데 걔가 그 쇼를 보고서 그 사람들의 생활이 되게 동경이 되었는지 아니면 나도 저 사람과 같은 마음인데라고 생각했었는지... 그냥 이태원에 찾아갔대요. 방송국에서 주소 같은 걸 얻어서 이태원에 찾아갔대요. 거기가 어디라고 했었는지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그 클럽이 없어졌어요. 쪽 거기서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때가 그곳에서 일 한 지 한두 달 됐을 거예요. 한 달? 두 달은 됐을 거예요. 근데 자신도 스스로 불안해 했던 거 같아요. 걔가 그때 나이가 스물 두 살? 한두 살 정도 됐을 때였는데, 자기가 호르몬 주사를 맞고 있다고 그랬어요. 뭘 불안해 했냐면,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내 미래에 대해서." 스무 살이니까 스물 한 살, 두 살이니까 (앞 일은) 모르는 거죠. 그래서 나한테 일종의... 내 생각에는 “선생님, 저 여기 있어요” 아니면 “저 여기에 있는데, 저도 지금 이 생활에 대해서 불안을 느껴요”라고 아마 구원을 청하는 전화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해요.

그 당시 생각으로, 나는 사명감을 갑자기 느끼게 됐어요. 내가 얘를 거기서 끄집어내 와야겠다. 여기에 대해서 불안해 하니까 그래서 내가 “너 거기 정확한 위치가 어디냐? 내가 데리러 갈 테니. 삼촌이라 하고 데리고 나올 테니까.” 그렇게 말을 했죠. 내가 “너 왜 거기에 있니?" 설득도 하고 너 거기에 있으면 안될 거 같은데... 그렇게 이야기 했었기 때문에 얘도 마음이 선생님 따라 집에 가야겠다고 더 생각했던 게 아닌가 생각해요. 근데 그때가 방학 때였는데 보충수업을 마치고 오후에 찾아 갔죠. 찾아 가서 무작정 아이가 보이자 마자 우악스럽게 마치 삼촌인 것처럼 가장해서 끌고 나왔죠. 그리고 한강변에서 이야기를 좀 했어요. 이렇게 이야기했죠. “니가 왜 거기에 있냐? 그리고 니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호르몬 주사 맞는다고 해서 니가 여자가 될 수 있는 거 아니지 않냐? 또 가슴이 나온다 해도 니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거 아닌 거 아니냐.” 그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이 시대는 20년 전이죠. 그러면서 빨리 들어가라고, 얼마나 기다리시겠냐고 그랬어요. 그곳에서 두어 시간 이야기 하고 보냈죠. 집에 갔죠.

그러고 한동안 연락이 없었어요. 다만 이태원에서 생활하면서 호르몬 주사 맞는 그거는 끝내고 안 했던 거... 거기서 끝났던 거죠. 근데 그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호르몬 주사를 몇 번 맞으면 성적 기능이 퇴화되기 때문에 아마 아이를 못 만든다고, 정자 생산이 이상이 생기니까...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나는 궁금한 거, 그러니까 게이들의 생활이라든지 은어 있죠? 은어를 많이들 쓰는데 궁금해서 많이 물어보기도 했어요. 그리고선 그 친구가 나중에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차분하게 잘했죠. (직장 생활) 하면서 나하고 계속 연결이 됐어요. 간혹 1년에 한 두 차례 또는 2~3년에 한 차례 연락을 계속 해왔으니까.


에디 : 그러면 그때 군대를 간 게 아니었던 거죠?


기범 : 네. 군대를 간 게 아니었죠. 군대에서 귀향?


에디 : 못 나오셨을까? 스스로 (제자 분이 일했다고 하는 그 술집에서) 그때 왜 못 나왔을까요?


기범 : 그때 아마 그 친구들이 대여섯 명씩 한 방에서 단체 생활을 했대요. 근데 서로가 서로를 감시 비슷하게, 감시라고 해야 되나 뭐라고 해야 되나? 감시라기보다는 같이 지내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자기 혼자 나가겠다고 말을 못했다는... 그랬다고 그러더라고요.


에디 : 어떻게 보면 그분은 당시 포기를 하신 거였겠네요?


기범 : 그죠. 그 순간에 포기를 했던 거죠.


에디 : 그때 호르몬을 한 번 하셨다가 포기하신 거네요. 미래가 너무 확실하지 않으니까요. 하긴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성형이 발달한 때도 아니었고 수술법에 대해서 가이드를 쉽게 구할 수도 어려웠고 인터넷 같이 정보 구할 그런 곳도 없었으니까요. 그 당시에는 정말 트랜스젠더 성향을 가진 분들은 다들 힘드셨을 거 같아요.


기범 : 지금은 내가 트랜스젠더와 게이를 구별... 구분 할 줄 알아요. 근데 그때만 해도 트랜스젠더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거예요. ‘이 친구는 그냥 게이다’ 이렇게만 생각했던 거죠.


에디 : 많이 놀라지 않으셨어요? 교복 입고 이러던 애가 이태원에 갔는데 갑자기 예쁘게 하고 앉아 있었을 거 아니에요.


기범 : 예쁘게 하고 있진 않았어요. 본인이 여성이고, 여성이 되고자 했지만. 물론 그 학생, 제자는 예쁘게 생겼어요. 예쁘게 생겼는데, 그렇다고 여성 옷을 입지는 않았고요. 당시가 여름이니까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주사를 맞았기 때문에 약간 봉긋한 느낌이 들었죠. 그리고 앉을 때도 다소곳하게 앞에 다리를 모아서 앉는다든지 그런 모습을 보였죠.


에디 : 그러면 졸업하고 나서 관계는 계속 지속된 거죠? 그런 식으로 먼저 연락해오고?


기범 : 아무래도 제자니까 간혹 가다가 1년에 한 두 번 “저 뭐 하고 있어요”라고 연락이 왔었죠. 그리고 중견 기업에 취직하고 나서는 1년에 한 두 번씩 고정적으로 전화로 연락을 하곤 했어요. 그래서 만나 볼 때도 있었고 그랬죠.


에디 : 그럼 그 후로는 사회적으로 남성으로서 살았던 거네요?


기범 : 그렇죠. 그랬죠. 그렇지만 그 회사에서 맡았던 일이 좀 여성성이 드러날 수 있는 일이었어요. 일 자체가 말이죠.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다 말하면 직업이 그대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그걸 말하지는 못하는데, 회사 내에서 하는 일이 여성들이 택하는 전공이기도 했으니까요.


에디 : 그 관련해서 이후로 계속 더 이야기 들려주실 만한 게 있을까요?


기범 : 있어요. 전공 마치고 취업을 하고, 그곳에서 몇 년 동안 일 잘 했죠. 그러다가 개인 사업을 한다고 다니던 회사를 나와서 실패를 한 적도 있고요. 그래서 그때 내가 작은 도움을 준 적도 있어요. 몇백만 원을 빌려준 적도 있죠. 왜냐하면 이 친구, 그 제자가 믿을 만한 제자였기 때문이죠. 그간의 행동에서 이제껏 해왔던 것들 통해서 믿을 만했기 때문에 재기하는 데 보태라고 돈을 융통해줘서 빌려준 적도 있죠. 물론 나중에 다 갚았고요.


에디 : 그럼 지금은 잘 살고 계신 거죠?


기범 : 그런 거죠. 그 점은 말씀드릴 수 있죠.


에디 : 뿌듯하실 거 같아요.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잖아요. 그게 쉽게 할 수 없는 일이거든요. 부모님한테도 게 전화를 못 하거든요. 특히 (트랜스젠더에 대해) 이해가 없는 분들에게는요. 그런데 이제 그 제자 분께서 선생님한테 했던 그 용기가... 그리고 선생님이 해주신 걸 보면, 선생님은 지금 잘 모르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아마 많은 도움을 주셨을 거 같아요. 지금 그게 크게 느껴지네요.


기범 : 근데 그 친구가 신뢰성이 있는 친구였기 때문이에요. 착실하고 계속 연락을 해주고 그랬기 때문에... 지금도 연락을 하고 그렇게 지내는 거죠.


에디 : 갑자기 궁금해진 건데, 어떤 점에서 그 제자 분이 신뢰 간다고 느끼셨나요?


기범 : 신뢰... 그건 성소수자였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었고요. 신뢰라는 건, 성실하기도 했지만 약속을 잘 지키고 말하는 데 있어서도 특별히 과장되거나 아니면 꾸미거나 그런 게 아니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왔고. 또 무엇보다도 오랜 세월 지나는 동안에 보여지는 모습, 일관된 모습 그런 게 있었기 때문에 믿음이 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