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수술이 끝났음에도 조각보를 시작한 이유
제가
이렇게 조각보에 발을 들이게 될 줄은 몰랐었습니다. 제목의 글처럼 저는 수술을 완료하고 호적정정중인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주변으로부터 조각보에 왜 들어온 거냐고 들었습니다. 왜?
저는
그토록 바라고 바랐던 호적정정 중(이 글이 실리게 될 시점엔 정정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인 상태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엔 새롭게 바뀌게 될 주민번호로 제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눈치 보지 않고 할 수도 있고, 새롭게
일자리를 구하면서 더 이상 주민번호로 인해 불안감을 가질 필요도 없게 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레 제게 부여되었던 ‘2’로부터 드디어 벗어나고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1’로 시작되는 대한민국의 법적인 남성이 됩니다. 20여 년 동안 나 자신을 감추면서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했던 저는 이제야 하고 싶은 개인적인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도중에 그만두었던 공부와 그토록 바랬던 남자로서 직장을 가지게 되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이뤄지는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인간관계. 드디어 내 자신이 ‘남자=나’라는 공간 안에서 주체가 되어
행위를 이루는 것들입니다.
ftm으로 태어난 저는 ‘남자’로서 태어나 자연스레 가지게 되는 일반 남성들의 소속감이 너무나도 간절히 원했던 것이었습니다. 애초에 지니지 않았다고 해서 남성성을 과다하게 표출하고 싶지도 않고 모든 이들에게 무리해서까지
남성성을 인정받아야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흔하게 존재하는 남성으로 평범한 하루하루를 쌓아가며
나와 같은 남자들의 세계 속에서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다고 어렸을 때부터 바란 제 미래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바란 신념같은 이상과 현실 속의 제 모습은 크나큰 차이가 있습니다. 수술을 하고 호적정정이 되어 사회적으로 남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모습을 볼 때마다 ftm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내게 이제는 체념한지 참으로 오래되었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면서도 속으로는 ftm이라는 거짓 형상에 발목이 잡히는 것 같아서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렇게
죽을 때까지 살아야 될 미래의 모습에 해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조각보를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깨우쳐주는
곳이기에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 속의 ‘외로움’을 조각보 내에 있는 것만으로도 해소가 되고 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필히 일시적인 위로일거라
단언했습니다. 그런 제가 조각보에 가끔 자원활동으로 모습을 비추게 되었습니다. 그 활동에는 우선 처음으로 참여 했던 조각보 행사, 2014년 11월에 있었던 사진전-낭송회 행사였습니다. 사진전은
주제였던 ‘노출’의
뜻대로 불특정의 사람들에게 공개가 되었고 많은 사진들이 걸려져 있었습니다. 그
동안의 제 생각으로선 절대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낸 사진 속의 주인공들이 참으로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6월에는 퀴어 퍼레이드에 구성원으로서
참가했었습니다. 부스운영을 조각보 멤버들과 같이 하였고, 퍼레이드 차량을 뒤에서 따라 걸으면서 트랜스젠더 깃발을 들고 있는 제 자신이 믿기지가 않았었습니다. ‘내가 여기 껴있어도 되는 건가’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같이 정해진 루트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물론 혐오세력의 무리를 지나치면서 열 받기도 하였지만
제가 들고 있는 깃발을 기점으로 그 안에서 같이 걷고 있는 사람들과 그 앞에 있는 트럭, 또
트럭 위에서 열심히 춤을 추고 계시는 분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동기가 된 것 같습니다. 한
달 전쯤에는 트랜스젠더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한편, 장편 영화 한편 이렇게 해서 같이 상영을 하고 느낀
점에 대해 같이 얘기해 보는 시간도 가졌었습니다. 우리들의 모습이 영화 속 주인공에게 투영된 듯함을
느껴서 영화 자체가 더 와 닿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서로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것을 더 많이
얘기를 나눌 수 있었고, 같은 주제의 영화를 보고도 이렇게 달리 생각이 들기도 하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 센터 띵동’기관방문을 하였습니다. 다녀오고
나서 느낀 점은 ‘내가 청소년이었던 시기에는 나는 도대체 뭘 했던 것일까, 요즘의 청소년들은 조금씩이지만 천천히 자신의 정체성들을 깨닫고 나아가고 있는데’였습니다. 내가 참 비겁했었구나. 이런 복잡한 감정을 느꼈지만 10여
년이 지난 이제야 천천히 걸어나가고 있는 저를 또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적당함으로 뭉쳤던 제 모습이 점점 가려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삶의 이유를 정당하게
찾아가는 모습에 대충 얼굴을 비추는 제가 한심했습니다. 그러나 또 현실로 돌아오면 혼자가 되었고 이제는 더
이상 신분의 불편함 없이 혼자만의 생활을 이어가는 데 지장이 없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돌아와 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동안 만나왔던 사람들 그 동안 겪었던 일들이 있어서 이렇게 내가 있는데 숨어버리게 되면 그 동안의 과정들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나라는 정체성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 같은 허망한 생각이 들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준 사람들과 일들도 없던 것으로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조각보에 들어가야겠다라는 마음이 확 들었습니다. 딱히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이루기 위한 목표 같은 것은 없습니다. 단지 조각보 내에서 움직이는 활동들에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이 나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절 위해서 조각보에 있고 싶고, 절
위해서 주위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습니다. 아직은 실감이 나지도 않고 많이 낯섭니다.
마음이
있으면서도 제가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와의 충돌로 인해서 확실히 결정을 내리는데 시간을 질질 끌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존재의 이유에는 소중한 분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감사히 생각하며 다시
처음부터 나를 알아가고 싶습니다. 끝.
촌스러운 타령 총각 범준
내가 수술이 끝났음에도 조각보를 시작한 이유
제가 이렇게 조각보에 발을 들이게 될 줄은 몰랐었습니다. 제목의 글처럼 저는 수술을 완료하고 호적정정중인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주변으로부터 조각보에 왜 들어온 거냐고 들었습니다. 왜?
저는 그토록 바라고 바랐던 호적정정 중(이 글이 실리게 될 시점엔 정정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인 상태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엔 새롭게 바뀌게 될 주민번호로 제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눈치 보지 않고 할 수도 있고, 새롭게 일자리를 구하면서 더 이상 주민번호로 인해 불안감을 가질 필요도 없게 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레 제게 부여되었던 ‘2’로부터 드디어 벗어나고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1’로 시작되는 대한민국의 법적인 남성이 됩니다. 20여 년 동안 나 자신을 감추면서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했던 저는 이제야 하고 싶은 개인적인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도중에 그만두었던 공부와 그토록 바랬던 남자로서 직장을 가지게 되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이뤄지는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인간관계. 드디어 내 자신이 ‘남자=나’라는 공간 안에서 주체가 되어 행위를 이루는 것들입니다.
ftm으로 태어난 저는 ‘남자’로서 태어나 자연스레 가지게 되는 일반 남성들의 소속감이 너무나도 간절히 원했던 것이었습니다. 애초에 지니지 않았다고 해서 남성성을 과다하게 표출하고 싶지도 않고 모든 이들에게 무리해서까지 남성성을 인정받아야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흔하게 존재하는 남성으로 평범한 하루하루를 쌓아가며 나와 같은 남자들의 세계 속에서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다고 어렸을 때부터 바란 제 미래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바란 신념같은 이상과 현실 속의 제 모습은 크나큰 차이가 있습니다. 수술을 하고 호적정정이 되어 사회적으로 남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모습을 볼 때마다 ftm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내게 이제는 체념한지 참으로 오래되었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면서도 속으로는 ftm이라는 거짓 형상에 발목이 잡히는 것 같아서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렇게 죽을 때까지 살아야 될 미래의 모습에 해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조각보를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깨우쳐주는 곳이기에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 속의 ‘외로움’을 조각보 내에 있는 것만으로도 해소가 되고 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필히 일시적인 위로일거라 단언했습니다. 그런 제가 조각보에 가끔 자원활동으로 모습을 비추게 되었습니다. 그 활동에는 우선 처음으로 참여 했던 조각보 행사, 2014년 11월에 있었던 사진전-낭송회 행사였습니다. 사진전은 주제였던 ‘노출’의 뜻대로 불특정의 사람들에게 공개가 되었고 많은 사진들이 걸려져 있었습니다. 그 동안의 제 생각으로선 절대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낸 사진 속의 주인공들이 참으로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6월에는 퀴어 퍼레이드에 구성원으로서 참가했었습니다. 부스운영을 조각보 멤버들과 같이 하였고, 퍼레이드 차량을 뒤에서 따라 걸으면서 트랜스젠더 깃발을 들고 있는 제 자신이 믿기지가 않았었습니다. ‘내가 여기 껴있어도 되는 건가’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같이 정해진 루트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물론 혐오세력의 무리를 지나치면서 열 받기도 하였지만 제가 들고 있는 깃발을 기점으로 그 안에서 같이 걷고 있는 사람들과 그 앞에 있는 트럭, 또 트럭 위에서 열심히 춤을 추고 계시는 분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동기가 된 것 같습니다. 한 달 전쯤에는 트랜스젠더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한편, 장편 영화 한편 이렇게 해서 같이 상영을 하고 느낀 점에 대해 같이 얘기해 보는 시간도 가졌었습니다. 우리들의 모습이 영화 속 주인공에게 투영된 듯함을 느껴서 영화 자체가 더 와 닿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서로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것을 더 많이 얘기를 나눌 수 있었고, 같은 주제의 영화를 보고도 이렇게 달리 생각이 들기도 하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 센터 띵동’기관방문을 하였습니다. 다녀오고 나서 느낀 점은 ‘내가 청소년이었던 시기에는 나는 도대체 뭘 했던 것일까, 요즘의 청소년들은 조금씩이지만 천천히 자신의 정체성들을 깨닫고 나아가고 있는데’였습니다. 내가 참 비겁했었구나. 이런 복잡한 감정을 느꼈지만 10여 년이 지난 이제야 천천히 걸어나가고 있는 저를 또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적당함으로 뭉쳤던 제 모습이 점점 가려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삶의 이유를 정당하게 찾아가는 모습에 대충 얼굴을 비추는 제가 한심했습니다. 그러나 또 현실로 돌아오면 혼자가 되었고 이제는 더 이상 신분의 불편함 없이 혼자만의 생활을 이어가는 데 지장이 없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돌아와 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동안 만나왔던 사람들 그 동안 겪었던 일들이 있어서 이렇게 내가 있는데 숨어버리게 되면 그 동안의 과정들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나라는 정체성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 같은 허망한 생각이 들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준 사람들과 일들도 없던 것으로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조각보에 들어가야겠다라는 마음이 확 들었습니다. 딱히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이루기 위한 목표 같은 것은 없습니다. 단지 조각보 내에서 움직이는 활동들에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이 나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절 위해서 조각보에 있고 싶고, 절 위해서 주위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습니다. 아직은 실감이 나지도 않고 많이 낯섭니다.
마음이 있으면서도 제가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와의 충돌로 인해서 확실히 결정을 내리는데 시간을 질질 끌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존재의 이유에는 소중한 분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감사히 생각하며 다시 처음부터 나를 알아가고 싶습니다. 끝.
촌스러운 타령 총각 범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