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내려가면 그곳은 다른 세상이었다_한희


계단을 내려가면 그곳은 다른 세상이었다




  지난 주 약 1년 반 만에 자주 가던 CD(크로스드레서)바를 방문하였다한 때는 매주 당연한 듯이 들르던 곳임에도 이전과 그대로인 간판 앞에서 잠시 망설인 것은 내가 어딘가 달라졌기에그리고 나한테 그 공간이 갖는 의미가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첫 만남첫 풀업 업이란 드레스업(dress up)의 줄임말로, CD들이 이성의 복장을 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이 중 옷만을 입어보는 것을 부분업옷과 더불어 화장가발 등을 통해 패싱될 수 있는 이성의 모습을 갖추는 것을 풀업이라고 한다. 



 내가 처음으로 CD바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아마 중3무렵으로 기억한다당시 막 집에 깔린 인터넷으로 ‘여장’, ‘여장남자’ 등의 키워드로 검색을 하던 중 알게 된 서울에 존재하는 CD바들의 존재는 굉장한 충격이었다맘에 드는 여자 옷을 실컷 입어보고 화장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니당시 내게는 꿈만 같은 이야기들이었다하지만 당시 나에게 서울은 버스로 4, 5시간은 걸리는사실상 외국이나 다름없는 곳이었기에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서만 아쉬운 마음을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네트워크를 통해서만 바라보던 그곳을 실제로 방문한 것은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우연찮게 서울에 갈 일이 생기면서였다미리 위치와 영업시간을 확인하고도 차마 들어갈 용기가 생기지 않아 주변 동네를 몇 차례나 돈 이후에야 간신히 지하 공간에 위치한 Y구의 모 바로 들어간 것이 나의 첫 CD바 방문이었다사실 그 당시의 어떤 이야기를 했었는지는 명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가게 안을 가득 매운 담배 연기 속에서 마담언니에게 이끌려 어벙벙한 상태로 받은 화장몇 명 없던 남자손님들의 (그저 하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이쁘다는 소리에 마냥 기분이 좋아서 웃었던 정도랄까지금 생각하면 그 때 받았던 화장은 사실 영 아니었고 옷 역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유행이 지난 것들뿐이었다그럼에도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몇 시간을 보낸 후 화장을 지우고 다시 남자 옷을 입고 밤거리로 나왔을 때무언가 내가 있어서는 안 될 곳으로 돌아온 것만 같은 아쉬움을 느꼈던 기억은 아직 생생하다.



 그 후에도 서울에 갈 일이 있을 때는 따로 시간을 내서 몇 군데의 바를 더 들르고는 했다심지어는 회사 면접을 보고 나서 정장을 입은 채로 방문을 한 적도 있다그렇게 당시의 내게 CD바의 존재는 답답한 일상에서 가끔 벗어날 수 있는 해방구와 같은 공간이었다.



매주의 일상이 되다


 그러던 내가 본격적으로 업생활(?)을 시작한 것은 회사 취직과 동시에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돈과 혼자만의 공간을 갖게 되면서부터는 여자 옷과 화장품가발 등을 마음껏 사 모을 수 있었기에 더 이상 업을 위한 공간으로서의 CD바가 필요하지는 않았다그보다는 나를 털어 놓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놀면서 주중에 회사를 다니면서 쌓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공간으로서 그 곳을 찾았다.


 사실 그곳에서 보내는 주말은 그다지 특별한 것은 없었다. CD바라고 하면 무언가 접근하기 힘든 공간처럼 여겨지지만 기본적으로는 (조금 비싼술집이다다만 주된 손님이 CD, TG, 그리고 러버(CD러버/TG러버)일 뿐그렇기에 나 역시 주로 그들과 같이 어울리며 술을 먹고 노는 것이 그곳에서의 주된 일과였다그래도 드나든 지 몇 개월이 되어 바의 종업원 및 다른 단골들과 친해진 후로는 아예 1박 2일을 가게에서 지내고 가끔은 친한 사람 몇 명이 펜션에 놀러 가기도 하는 등 나름 즐거운 주말을 보내곤 했다덕분에 늘어난 주량과 밤을 새느라 푸석해진 피부월요일에 회사 동기들이 주말에 무엇을 했냐고 물을 때면 적당히 둘러내느라 고생한다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곳은 조각보 활동을 하면서도 만나보기 힘든 그야말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이전에 CD로서 화려하게 날렸으면서 이제는 업을 그만두고 러버로서 찾아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처음에는 러버로서 방문하였으면서 어느 샌가 업에 빠져 버린 사람도 있었다. CD들 중에서도 완전히 여성으로서의 성별 표현과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노래방에서 걸죽한 남자 노래를 부르고 업을 풀고는 다른 러버들과 사우나를 가는 등 단순히 업만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또한 CD와 TG(트랜스젠더)의 경계도 뚜렷하지 않아서 ‘TG성향 CD’,라는 기존의 정체성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용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다그 곳은 말 그대로 ‘젠더를 가지고 노는’ 공간이었다지금의 내가 젠더 다양성이란 개념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도 클 것이다


 그렇게 매 주말을 보내던 그 곳은 작년 초 친구들 및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이런저런 활동을 시작하면서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일부러 피했다기보다는 새로운 만남바쁘게 돌아가는 활동들그리고 무엇보다 더 이상 한정된 시간과 한정된 공간이 아닌 일상 속에서 여성으로서 지냄에 따라 점차 그곳을 방문할 이유를 못 느끼게 된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10여 년을 보낸 어두운 지하실을 벗어나 밝은 세상으로 나왔다는 해피 엔딩......이라고 결론지으면이 글을 쓴 의미가 없지.


계단 아래는 정말 다른 세상이었을까


 지난 2년여 동안 트랜스젠더 활동가로서 여기저기 얼굴을 비추면서 나에 관한 이야기들을 조금씩 풀어놓을 기회가 많았다어떨 때는 북콘서트에서어떨 때는 인터뷰에서어떨 때는 강연에서물론 그 때 한 얘기들은 모두 나를 드러내는 진실한 내용들이었고 청중들의 호응 역시 괜찮았다그런데 돌이켜 보면 어느 샌가 나는 CD업경험에 대한 이야기들을 거의 제쳐 놓은 채로아주 약간의 곁가지 정도로만 활용하면서 나의 이야기를 줄곧 해 온 것이다앞에서 봤듯이 그 경험은 내 인생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이야기임에도 말이다.


 그렇게 된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아마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나 스스로도 그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 전달에 있어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인식을 어렴풋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 큰 거 같다


 생각해보자주말의 나를 배제하고 주중의 내 생활만을 놓고 나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면 남자로서 회사를 다니고 학교를 다니고그러면서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다가 어느 날 결심을 하고 대사회적 커밍아웃과 트랜지션을 한 번에 해 버린 아주 모범적인(?) 티지가 된다실제로 친구들도 커밍아웃했을 때 ‘어떻게 참고 회사를 다녔어하면서 내 고충을 아주 잘 이해해주는 덕분에 술술술 잘 넘어갔다.


 하지만 주말의 나로 초점을 맞추면 어떻게 될까그냥 열심히 업하고 잘 놀던 애가 이제는 밖에서도 업하고 돌아 댕기는 이야기? CD생활 10년 동안 익힌 화장으로 패싱에 성공한 이야기커밍아웃할 때또는 트랜지션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이런 얘기를 했으면 재미있긴 하겠지만 뭔가 맥이 빠지는 느낌이 아니었을까부모님한테 이렇게 얘기했으면 아마 전혀 이해 못하셨을지도



 하지만 그것이 어색하다고 해서사람들에게 비우호적인 반응을 불러올지 모른다 해서 언제까지나 삭제해버리고 봉해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왜냐하면 그렇게 재단된 이야기는 실제와 다르다는 점에서도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트랜스젠더라는 존재를 웃기게도 정상규범으로 만든다는 점에서도 부적절하기 때문이다그렇기에 이런 지면을 통해서 조금씩 썰을 풀어나가는 것은 나한테도 매우 소중한 기회이자경험이다.


 성소수자의 현실을인권을 말함에 있어 삶의 이야기가 갖는 힘을 결코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그것이 한 명의 대표자에게 집중될 때또는 일종의 전형성을 띤 특정 장면시점에만 집중해서 개인의 온전한 삶을 드러내지 못할 때 이야기는 분명한 한계를 보일 것이다그래서 모든 성소수자 운동이 아마 그렇겠지만 조각보가 전개할 트랜스젠더 운동 역시 담론을 말함과 동시에다양한 당사자들과 주변인의 삶의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무언가 메시지를 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 안에서 내 역할은 뭐냐고?


글쎄모르겠다.


그냥 오늘 밤에는 CD바에나 놀러 가야지.




첫 풀업 때 사진을 찾아보고 영구봉인을 결심한 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