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11월에 낸 <조각보자기>를 계기로, 조각보는 정기적으로 온/오프라인 잡지 <조각보자기>를 출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번 <조각보자기> 1호의 특집 주제는 공간, 혹은 장소입니다. 공간을 특집 주제로 선정한 데에 영향을 끼친 두 가지 맥락이 있습니다. 첫 번째 맥락은 올해 5월에 일어났던 강남역 화장실 여성살해 사건입니다. 한 여성이 서울 중심가의 공공장소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했고, 이 일은 갖가지 장소에서 일상적으로 폭력에 노출되어 있던 여성들의 공감과 애도, 연대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에 대해 경찰과 정부는 이것이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살인이라고 발표하며,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공포와 위협을 삭제하고, 정신질환과 장애에 대한 혐오를 생산하고, 여남 분리 화장실 의무화를 확대하는 정책을 내어놓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화장실에서 일어난 여성혐오살해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서 성별 분리 화장실 확대 정책은 어떠한 해결책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성혐오살해의 근간을 이루는 사회에 만연한 젠더폭력을 성별분리의 문제와 정신질환의 문제로 치환함으로써 또다른 혐오를 생산하고 젠더폭력을 재생산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맥락은 그 비슷한 시기에 특히 미국에서 트랜스젠더 화장실 이슈가 미국 전지역의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 것입니다.
동시대에 두 지역에서 화장실이라는 한 공간에 대해 각기 다른 논쟁이 벌어지고 있으니, 각각의 논쟁이 화장실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지점이 종종 동떨어진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미국의 화장실 이슈는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사용 이슈이고, 한국의 화장실 이슈는 여성에 대한 젠더 폭력 이슈인 것처럼 이야기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분리 아래 트랜스젠더가 여남분리 화장실에서 경험하는 젠더폭력과, 여성이 공용화장실에서 경험하는 남성에 의한 젠더폭력 간의 경중을 가려 지금 당장 어떤 정치적 개입이 필요한지 따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 사는 트랜스젠더의 위치에서 보면, 트랜스젠더 화장실 사용 이슈는 절대 한국과 동떨어진 미국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에 사는 많은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젠더비순응자, 젠더무법자들은 오늘도 여남분리화장실 앞/안에서 성별을 분리하는 폭력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화장실에서 일어나는 두 가지 형태의 젠더폭력, 즉 성별을 나누는 폭력과, 성별에 기반한 폭력은 절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설명하고 이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미 페미니즘, 장애활동, 퀴어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화장실에 대한 의미있는 비판을 생산하며 논의를 이어나가고 있고, <조각보자기>도 그에 한 줌의 이야기를 보태려고 합니다. 페미니스트 지리학자 린다 맥도웰은 “장소는 경계를 규정하는 규칙들을 구성하는 권력관계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말하며, “이러한 경계들은 경험의 위치나 현장뿐만 아니라 누가 어떤 공간에 속하는지, 누가 제외되어도 괜찮은지 등을 정해준다”고 지적합니다(맥도웰 2010: 25). 이렇게 볼 때, 화장실이라는 장소는 누가 어떤 화장실에 출입가능한지를 규제하고, 그 화장실에 출입하고 사용하기에 적절한 어떤 몸을 만들어내고, 그에 맞지 않는 몸들을 몰아냅니다. 화장실은 두 개의 젠더를 전제로 사람을 둘 중 하나로 분류하고, 그에 적합한 젠더표현/젠더실천을 강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젠더비순응자들의 몸과 경험은 많은 경우 삭제되거나, 부적절한 것이 됩니다. 동시에 비장애인의 몸을 전제하고 있는 화장실의 형태는 그에 부합하지 않는 다양한 몸, 장애를 지닌 몸들을 화장실 밖으로 몰아냅니다. 그러므로 현재 화장실은 강력한 젠더규제장치이며, 모든 몸의 형태를 분류, 위계화하고 특정한 몸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화장실이 앞으로 어떠한 형태로 (대안적으로) 구성되어야 할지에 대해 지금 당장 어떤 답을 내어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양한 위치의 사람들이 화장실 안에서/밖에서 마주하는 경험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화장실에 대한 논의를 계기로 삼아, 다양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어나는 다층적인 권력과 폭력의 작동에 대해 보다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병원, 공공기관, 탈의실, 길거리 등 일상에서 존재하게 되는 각각의 공간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몸을 배치하는 장치들입니다. 화장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간에 대한 논의가 보다 활발히 진행되길 바라며, 조각보자기 1호의 특집은 <공간>입니다. 특집에 실린 어느 글들은 트랜스/젠더/퀴어로 살며 경험한 공간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또 다른 글들은 트랜스젠더 화장실 사용과 관련한 논의의 흐름을 짚거나, 그를 비판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글들은 (우리)가 편히 있을 수 있는 공간, (우리)가 바라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해야하고 또 하고싶은 이야기에 비하면 한 줌의 이야기일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각보자기 1호>가 건넨 이야기가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질 거라 믿으며, 잘 부탁드립니다.
<참고자료>
맥도웰, 린다. 2010. 젠더, 정체성, 장소 : 페미니스트 지리학의 이해 (여성과 공간 연구회 옮김). 파주: 한울. (원서출판 1999).
장애, 탈병리화, 젠더/섹슈얼리티 연구모임(나영정, 서연, 루인, 김은정, 황지성). 2016. “[이슈 하나] 장애, 젠더/섹슈얼리티, 퀴어의 관점으로 바라본 “강남역 살인사건””. 장애여성의 시선으로 당신과 나누는 공감, 16, 26-38.
탁수연. 2016. “공중화장실과 젠더퀴어 : 몸과 장소로 물질화되는 젠더 이분법, 비규범적 주체의 탈장소화”. 제4회 서울대학교 대학원-학부 젠더연구 네트워킹 학술포럼(2016.7.7) 발표문. 미간행.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 2008. “성별이분화된 공간, 화장실 앞에서”. 2008년 전국인권활동가대회(2008.2.22) 주제별 워크숍 기획서. 미간행.
핼버스탬, 주디스. 2015. 여성의 남성성 (유강은 옮김). 서울: 이매진. (원서출판 1998).
_조각보자기 편집팀장 수엉
작년 11월에 낸 <조각보자기>를 계기로, 조각보는 정기적으로 온/오프라인 잡지 <조각보자기>를 출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번 <조각보자기> 1호의 특집 주제는 공간, 혹은 장소입니다. 공간을 특집 주제로 선정한 데에 영향을 끼친 두 가지 맥락이 있습니다. 첫 번째 맥락은 올해 5월에 일어났던 강남역 화장실 여성살해 사건입니다. 한 여성이 서울 중심가의 공공장소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했고, 이 일은 갖가지 장소에서 일상적으로 폭력에 노출되어 있던 여성들의 공감과 애도, 연대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에 대해 경찰과 정부는 이것이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살인이라고 발표하며,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공포와 위협을 삭제하고, 정신질환과 장애에 대한 혐오를 생산하고, 여남 분리 화장실 의무화를 확대하는 정책을 내어놓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화장실에서 일어난 여성혐오살해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서 성별 분리 화장실 확대 정책은 어떠한 해결책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성혐오살해의 근간을 이루는 사회에 만연한 젠더폭력을 성별분리의 문제와 정신질환의 문제로 치환함으로써 또다른 혐오를 생산하고 젠더폭력을 재생산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맥락은 그 비슷한 시기에 특히 미국에서 트랜스젠더 화장실 이슈가 미국 전지역의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 것입니다.
동시대에 두 지역에서 화장실이라는 한 공간에 대해 각기 다른 논쟁이 벌어지고 있으니, 각각의 논쟁이 화장실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지점이 종종 동떨어진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미국의 화장실 이슈는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사용 이슈이고, 한국의 화장실 이슈는 여성에 대한 젠더 폭력 이슈인 것처럼 이야기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분리 아래 트랜스젠더가 여남분리 화장실에서 경험하는 젠더폭력과, 여성이 공용화장실에서 경험하는 남성에 의한 젠더폭력 간의 경중을 가려 지금 당장 어떤 정치적 개입이 필요한지 따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 사는 트랜스젠더의 위치에서 보면, 트랜스젠더 화장실 사용 이슈는 절대 한국과 동떨어진 미국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에 사는 많은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젠더비순응자, 젠더무법자들은 오늘도 여남분리화장실 앞/안에서 성별을 분리하는 폭력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화장실에서 일어나는 두 가지 형태의 젠더폭력, 즉 성별을 나누는 폭력과, 성별에 기반한 폭력은 절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설명하고 이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미 페미니즘, 장애활동, 퀴어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화장실에 대한 의미있는 비판을 생산하며 논의를 이어나가고 있고, <조각보자기>도 그에 한 줌의 이야기를 보태려고 합니다. 페미니스트 지리학자 린다 맥도웰은 “장소는 경계를 규정하는 규칙들을 구성하는 권력관계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말하며, “이러한 경계들은 경험의 위치나 현장뿐만 아니라 누가 어떤 공간에 속하는지, 누가 제외되어도 괜찮은지 등을 정해준다”고 지적합니다(맥도웰 2010: 25). 이렇게 볼 때, 화장실이라는 장소는 누가 어떤 화장실에 출입가능한지를 규제하고, 그 화장실에 출입하고 사용하기에 적절한 어떤 몸을 만들어내고, 그에 맞지 않는 몸들을 몰아냅니다. 화장실은 두 개의 젠더를 전제로 사람을 둘 중 하나로 분류하고, 그에 적합한 젠더표현/젠더실천을 강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젠더비순응자들의 몸과 경험은 많은 경우 삭제되거나, 부적절한 것이 됩니다. 동시에 비장애인의 몸을 전제하고 있는 화장실의 형태는 그에 부합하지 않는 다양한 몸, 장애를 지닌 몸들을 화장실 밖으로 몰아냅니다. 그러므로 현재 화장실은 강력한 젠더규제장치이며, 모든 몸의 형태를 분류, 위계화하고 특정한 몸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화장실이 앞으로 어떠한 형태로 (대안적으로) 구성되어야 할지에 대해 지금 당장 어떤 답을 내어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양한 위치의 사람들이 화장실 안에서/밖에서 마주하는 경험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화장실에 대한 논의를 계기로 삼아, 다양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어나는 다층적인 권력과 폭력의 작동에 대해 보다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병원, 공공기관, 탈의실, 길거리 등 일상에서 존재하게 되는 각각의 공간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몸을 배치하는 장치들입니다. 화장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간에 대한 논의가 보다 활발히 진행되길 바라며, 조각보자기 1호의 특집은 <공간>입니다. 특집에 실린 어느 글들은 트랜스/젠더/퀴어로 살며 경험한 공간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또 다른 글들은 트랜스젠더 화장실 사용과 관련한 논의의 흐름을 짚거나, 그를 비판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글들은 (우리)가 편히 있을 수 있는 공간, (우리)가 바라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해야하고 또 하고싶은 이야기에 비하면 한 줌의 이야기일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각보자기 1호>가 건넨 이야기가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질 거라 믿으며, 잘 부탁드립니다.
<참고자료>
맥도웰, 린다. 2010. 젠더, 정체성, 장소 : 페미니스트 지리학의 이해 (여성과 공간 연구회 옮김). 파주: 한울. (원서출판 1999).
장애, 탈병리화, 젠더/섹슈얼리티 연구모임(나영정, 서연, 루인, 김은정, 황지성). 2016. “[이슈 하나] 장애, 젠더/섹슈얼리티, 퀴어의 관점으로 바라본 “강남역 살인사건””. 장애여성의 시선으로 당신과 나누는 공감, 16, 26-38.
탁수연. 2016. “공중화장실과 젠더퀴어 : 몸과 장소로 물질화되는 젠더 이분법, 비규범적 주체의 탈장소화”. 제4회 서울대학교 대학원-학부 젠더연구 네트워킹 학술포럼(2016.7.7) 발표문. 미간행.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 2008. “성별이분화된 공간, 화장실 앞에서”. 2008년 전국인권활동가대회(2008.2.22) 주제별 워크숍 기획서. 미간행.
핼버스탬, 주디스. 2015. 여성의 남성성 (유강은 옮김). 서울: 이매진. (원서출판 1998).
_조각보자기 편집팀장 수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