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학교에서의 나의 이미지였다. 그렇기에 나는 이상하기도, 이상하지도 않은 일을 겪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냐고 웃기도 하고, 어이없어 하기도 하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의 나로서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고개 끄덕여지는 그런 어이없는 일.
시간은 3년 전, 교양수업이 끝나자마자 화장실로 향했고, 화장실을 나오는 도중에 어떤 여학생과 마주쳤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BGM 삼아, 그 다음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며, 빠르게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게다가, 그 아이도, 나도 여자인데 뭐 어때. 라는 생각이었다. 그때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내가 시스젠더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안이한 생각이었다. 몇 시간이 지난 후, 들어가 본 페이스북에서 이상한 글을 봤다. 친한 친구가 ‘좋아요’를 누른 글이었는데 화장실에서 치한을 봤다는 글이었다. 글에 비슷한 점이 많았다. ‘혹시’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나의 친한 친구의 후배가 나와 같은 교양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그 아이 역시 수업시간이 끝나고 화장실로 향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나와 반대 방향으로 딱! 마주친거지.
페이스북 메신저를 클릭했다가, 댓글 창을 클릭했다가를 반복하다가, 뭐 내가 실제 치한도 아닌데 어때, 라는 생각으로 그 친구와 같이 알고 있는 친구 몇 명에게 농담거리로 이야기하고는 넘겼다. 그땐 화장실에 관련된 문제가 그저 내가 목을 덮을 듯 말 듯한 숏컷인 머리를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첫 번째 학교에서는 별 다른 일은 없었고, 나는 여러 개인사적인 문제들로 인해 학교를 옮기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이 일이 이렇게 자주 생각나게 될 지는 몰랐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시스젠더라고 생각해왔으니까. 가끔씩 몸에 대한 불편감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내가 다른 젠더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두 번째 학교에 도사리고 있었다. 두 번째로 가게 된 학교는 서울에 있는 S여대였다. 입시결과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나는 무려 여자만이 가득한 여대에 가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늦은 시기에 선택한 자퇴이고, 늦은 시기에 선택한 제적이었기에 나는 동기들에게 ‘언니’라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듣게 되었다.
첫 번째 학교에서의 나의 이미지였다. 그렇기에 나는 이상하기도, 이상하지도 않은 일을 겪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냐고 웃기도 하고, 어이없어 하기도 하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의 나로서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고개 끄덕여지는 그런 어이없는 일.
시간은 3년 전, 교양수업이 끝나자마자 화장실로 향했고, 화장실을 나오는 도중에 어떤 여학생과 마주쳤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BGM 삼아, 그 다음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며, 빠르게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게다가, 그 아이도, 나도 여자인데 뭐 어때. 라는 생각이었다. 그때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내가 시스젠더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안이한 생각이었다. 몇 시간이 지난 후, 들어가 본 페이스북에서 이상한 글을 봤다. 친한 친구가 ‘좋아요’를 누른 글이었는데 화장실에서 치한을 봤다는 글이었다. 글에 비슷한 점이 많았다. ‘혹시’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나의 친한 친구의 후배가 나와 같은 교양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그 아이 역시 수업시간이 끝나고 화장실로 향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나와 반대 방향으로 딱! 마주친거지.
페이스북 메신저를 클릭했다가, 댓글 창을 클릭했다가를 반복하다가, 뭐 내가 실제 치한도 아닌데 어때, 라는 생각으로 그 친구와 같이 알고 있는 친구 몇 명에게 농담거리로 이야기하고는 넘겼다. 그땐 화장실에 관련된 문제가 그저 내가 목을 덮을 듯 말 듯한 숏컷인 머리를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첫 번째 학교에서는 별 다른 일은 없었고, 나는 여러 개인사적인 문제들로 인해 학교를 옮기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이 일이 이렇게 자주 생각나게 될 지는 몰랐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시스젠더라고 생각해왔으니까. 가끔씩 몸에 대한 불편감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내가 다른 젠더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두 번째 학교에 도사리고 있었다. 두 번째로 가게 된 학교는 서울에 있는 S여대였다. 입시결과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나는 무려 여자만이 가득한 여대에 가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늦은 시기에 선택한 자퇴이고, 늦은 시기에 선택한 제적이었기에 나는 동기들에게 ‘언니’라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듣게 되었다.
“언니, 이거 어떻게 푸는지 알아요?”
“언니, 언니는 이거 예전에 다 배운 거죠?”
“언니, 언니는 왜 우리 학교, 우리 과로 오게 됐어요?”
“언니, 오늘 과제 없었죠?”
나는 그야말로 ‘언니’라는 말에 대해 노이로제가 걸릴 것만 같았다. 내가 그 호칭을 이렇게나 싫어하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너무 멀리
왔는데, 심지어 이 학교에 와서 성소수자 동아리를 만들기까지 했는데, 여대가 내 적성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너무나도 힘겨웠다.
물론, 앞에서는 잘 대응했다. 과제가 있든 없든, 배웠든 배우지 않았든, 나의 최선을 다해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기숙사에 가면 울었다. 나는 왜 지정성별 여성인걸까, 나는 왜 여성 젠더를 가질 수가 없을까, 나는 왜 여대를 선택할 수 있었을까, 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서 했다. 나는 정말이지 싫었다.
여러 고민 끝에, 두 번째 학교는 한 학기 만에 제적을 선택하게 되었다. 단지 ‘언니’라는 호칭이 싫어서는 아니었다. 여러 고민 끝에 나는 시스젠더가 아니라는 것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나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임을 알았기 때문이며, 어린 시절부터 내가 무시해왔던 것들, 이를테면 여러 신체적인 변화, 유방의 존재 등이 디스포리아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나는 젠더퀴어로서의, 트랜스젠더로서의 삶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평생교육원에서의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 지금. 나는 모두에게 커밍아웃한다. 트랜스젠더라고. 이렇게 인지할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지금이, 나는 세한으로 있을 수 있는 것 같아 가장 행복하다.
_세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