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언제까지고 용서 받지 못한 자

남성성이 느껴지는 댓글을 작성함, 밀리터리에 관심을 갖고 관련 커뮤니티에 참여함. 건강을 이유로 호르몬 치료를 중단함. 과거 한 트랜스여성을 병역기피 혐의로 기소한 검찰이 제시한 증거 중 하나이다. 어느정도 과거일까? 아직 고정된 젠더를 요구 받았던 1990년대? 젠더이슈가 간신히 고개를 들기 시작하고 트랜스젠더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는 2000년대 초반?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헛다리 짚은 것이다. 이 증거는 2015년 5월에 기소돼 10월에는 1심에서, 이듬해 7월에는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의 증거이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위의 판결이 내려지기 1년 전인 2015년, 병역면제 처분을 받은 트랜스여성이 병역기피로 기소당해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 행동, 트랜스젠더 인권 단체 조각보를 비롯한 여러 단체가 규탄 및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또한 '군 면제 위해 스스로 발기부전 주사 놓고 고환 제거'라며 인터넷에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짤의 실제 인물은 이미 무혐의 판정을 받았음에도 끝없이 인터넷을 떠돌며 누군가에게 모욕을 듣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이미 병역면제를 받고 있음에도 기소를 당하고 괴로운 재판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병무청은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제대로 인지하고 대처하고 있을까? 징병검사의 문제가 과연 트랜스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일일까? 의료적 조치를 받지 않는 트랜스젠더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한 질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트랜스젠더의 징병검사와 관련된 자료를 바탕으로 조심스럽게 분석해보고자 한다.


그 여자의 사정

2016년 9월 현재 트랜스여성의 병역 면제는 국방부령으로 제정된 '징병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의 ‘별표 2. 질병, 심신장애의 정도 및 평가기준’에 포함된 ‘정신과 진단 102.’에 근거하고 있다. 이 때 병역면제를 의미하는 고도의 증상은 GAF(기능평가척도)가 65점 이하이며 심각한 사회부적응 행동을 증빙하거나 6개월 이상의 치료 혹은 1개월 이상의 입원치료 경력 및 그에 따라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세계트랜스젠더보건의료전문가협회(이하 WPATH)의 ‘건강관리실무표준’(이하 SOC)에 따르면 성별위화감은 그 자체로 인간의 정신적 기능에 직접적인 저하를 동반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사회부적응과 기능의 저하는 트랜스여성의 징병검사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제 트랜스여성에게 남은 선택지는 6개월의 치료뿐이다. SOC에 따르면 트랜스젠더의 치료는 호르몬 치료, 성별표현 및 성역할 변화 치료, 외과적 수술, 심리 치료가 존재하며 치료의 가지수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의 의료기관에서 징병검사시 군의관들을 납득시킬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성표현-성역할 변화 치료나 심리 치료를 체계적으로 받기 어렵다. 설령 받는다 하더라도 군의관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병역면제 인정 여부가 달라진다. 2014년 트랜스여성이 1년여간 정신과 치료를 받았음에도 사위행위를 통한 병역기피 혐의로 기소 당한 것도 정신과 치료 준거의 유명무실함을 증명한다. 특히 징병검사를 받기 위한 연령대에서 사실상 개척하듯 충분한 의료적 진료를 받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외과적 수술이나 호르몬 치료는 병역 면제를 받을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일까? 그것도 아니다. 군의관이 외과수술을 강요해 사실상 강제로 고환적출수술을 받은 트랜스여성이 진정서를 낸 것이 2013년, 가슴 성형 수술까지 마친 트랜스여성이 검찰에 기소되어 무죄판결을 받은 것이 2015년, 건강을 위해 여성 호르몬 주사를 중단한 트랜스여성이 기소를 당해 무죄판결을 받은 것이 2016년의 일이다. 무죄판결을 받은 것은 정말로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결국 우리는 아무리 외과수술을 받아도 검사나 군의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문제 제기를 당한다면 비용적, 시간적, 정신적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트랜스여성은 어떤 의학적 조치를 취하더라도 고환 결손 등의 다른 병역 면제 기준을 충족하기 전까지는 절대 병역이 면제되었다는 확신을 받을 수 없다. 성주체성 정신과적 진단 및 치료, 외과적 수술과 호르몬을 둘러싼 여러가지 논쟁과 이야기와 별개로, 만약 여러분의 징병신체검사결과 통보서에 성주체성장애가 적혀 있다면 누군가 언제든 그 결과를 뒤집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할 것이다.

그 남자의 사정

사람들은 참 궁금한 것도 많다. 신체검사장에 온 20대 FTM이 의료기록 등을 제시하였음에도 CT촬영이나 '육안'으로 신체를 확인하려 하고, 수많은 이력서에 병역이라는 항목을 만드니 말이다. 군대 문제는 FTM들에게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고통스럽고 힘든 2차 수술을 마친 FTM 트랜스남성은 자신의 재생산권을 포기하고 사회적으로 남성의 신분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성별정정을 마친 20대 트랜스남성은 이유를 불문하고, 만 37세 이하라면 여권발급 등의 이유로 병적 증명서가 필요하기에 징병검사에 임해야만 한다. 이 징병검사에서 트랜스남성은 또다시 군의관 등을 대상으로 자신이 트랜스남성임을 증명해야 하고, 몇몇은 이 과정에서 신체 노출을 강요당하는 등 모욕적인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다행히 2007년 7월 20일 국가인권위원회가 트랜스남성의 신체를 직접 보는 것이 인권 침해라고 판단하여 부당한 요구에 확실하게 거부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고 더 이상 신체를 드러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여전히 군의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서류 외에도 CT촬영 등의 간접적 확인을 하는 등 일관적이지 않은 판단은 여전하다.


군 면제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 또한 트랜스남성이 겪는 문제 중 하나이다. 2013년 사람인이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 따르면 병역 경험이 실제 업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중이 88.6%에 이른다. 트랜스남성들은 군대를 가고 싶어 하더라도, 신체검사표 상 고환결손으로 분류되어 징병을 통해 군대를 갈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 면제자에 대한 사회 전역에서 이루어지는 차별은 트랜스남성들에게 피할 수 없는 문제로 다가온다.


마치며

이 글에서 다루지 못한, 다룰 수 없는 이슈는 아직 너무나 많다.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의 군문제, 군입대를 원하는 트랜스젠더들을 위한 제도의 부재. 예비군과 민방위 제도 등... 하지만 바이너리 트랜스젠더에 대한 기준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충분히 조사할 수 있는 자료, 사례조차 알 수 없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얼마 전, 한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2년에 가까운 호르몬 치료 증빙자료를 가지고 병무청을 찾아갔다가 병역면제 처분을 받지 못하고 돌아왔다. 부당한 현실에 분노를 느꼈지만 예비군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었기에 그냥 참고 넘어갈까 하는 유혹 또한 컸다. 고민 끝에 다시 한번 시도 하기로 결정하였지만 귀찮고 피곤한 일이 될 것이다. 이런 갈등은 결코 혼자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태평양 건너편 미국은 2016년 6월 트랜스젠더의 입대 금지를 폐기했다.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국가 제도에 맞는 제도를 마련한 것이다. 대한민국 또한 기존 제도에 맞춰 나아지는 길을 걸어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징병제 국가인 한국이 걸어갈 길은 아마도 생소하고 낯선 길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더 많은 목소리,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그 험난하지만 희망을 향해 나가는 길에 조각보자기가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그만큼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_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