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기록2026 제27회 서울퀴어문화축제 부스 후기: 우리가 서로를 알아보는 하루

우리가 서로를 알아보는 하루

서울퀴어퍼레이드 조각보 부스 참여 후기


서울퀴어퍼레이드 현장 사진. 포토존 앞에서 활동가 이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2026 서울퀴어퍼레이드 현장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 이로


서로를 알아보는 날

2026 서울퀴어퍼레이드에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부스로 참여했다.


수많은 깃발과 부스가 도로를 채운 날, 나는 조각보의 이름 아래에서 사람들을 마주했다. 퀴어퍼레이드는 우리가 평소보다 훨씬 크게 보이는 날이지만, 내게는 서로를 길게 설명하지 않고도 알아보는 날에 조금 더 가깝다.


조각보 부스 안에 걸린 트랜스 플래그 앞에서 활동가 이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트랜스 플래그가 걸린 조각보 부스


조각보 부스 천막 안에는 커다란 트랜스 플래그가 걸려있었다. 뜨거운 거리 한가운데서 그 색은 단순한 장식이라기보다, 우리가 잠시 머물 수 있는 벽이자 서로를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배경처럼 느껴졌다.




교집합의 색을 모아 그리기


조각보 부스에서는 '교집합의 색을 모아 그리기'를 진행했다. 하나의 종이에 여러 사람이 각자의 마음과 생각을 자유롭게 이어그리는 참여형 행사였다. 모든 페이지에는 조각보 회의에서 정한 주제가 제시되었다. 사진에 보이는 '나를 드러내는 패션 아이템' 역시 조각보 회의에서 정한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부스 모습. 후원 굿즈가 진열되어 있고, 프로그램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부스 전경

스케치북의 상단에 '나를 드러내는 패션 아이템'이라고 적혀있고, 사람들이 그 밑에 그림을 그렸다. 티셔츠, 물살이, 나비, 해파리, 하트, 트랜스 플래그 등이 보인다.


사진: '교집합의 색을 모아 그리기'의 한 페이지 - 조각보 회의에서 정한 주제: '나를 드러내는 패션 아이템'


사람들이 무언가를 덧그릴 때마다 종이는 이전과 다른 그림이 되었다. 누군가는 먼저 그림을 시작했고, 누군가는 그 옆에 새로운 마음을 보탰다. 각기 다른 주제의 페이지에서는 말과 색, 모양이 서로의 다음 자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아주 많은 페이지의 이어그리기가 완성되었다.


이어그리기는 스케치북 두 권을 가득 채웠다. 한 사람만의 그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안에 남은 개별적인 흔적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서로의 선과 색이 겹쳐지고 다음 사람에게 이어진 시간은 두 권의 아카이빙으로 의미 있게 남았다. 그것은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함께 존재하는 방식과도 조금 닮아 있었다.




작은 참여가 남긴 것


조각보 부스 프로그램 결과물 사진. 고양이, 강아지, 나를 드러내는 패션 아이템, 기분 등의 주제에 대한 사람들의 그림이 그려져있다. 무지개와 트랜스젠더 플래그 색 등이 보인다.


'교집합의 색을 모아 그리기'에 참여하고 예쁜 파일을 받아가는 작은 참여였지만, 그날 우리가 주고받은 것은 물건만은 아니었다. 누군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잠시 멈추고, 다른 사람이 먼저 남긴 흔적 옆에 자신의 흔적을 보태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연결은 짧았지만 분명히 그 자리에 있었다.


거리의 다른 부스에서 받은 '레즈비언 라이센스'를 들고 사진도 찍었다. 제도가 우리에게 좀처럼 허락하지 않거나 끊임없이 증명하도록 요구하는 이름과 자격을, 우리는 때로 농담과 놀이의 형태로 서로에게 발급한다.




퍼레이드가 끝난 뒤에도


활동가 이로가 한국레즈비언상담소의 '레즈비언라이센스'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서울퀴어퍼레이드 현장의 '레즈비언 라이센스'


그 유쾌함은 가볍지만, 그 안에 놓인 현실까지 가벼운 것은 아니다. 퍼레이드가 끝나고 깃발과 부스가 사라진 뒤에도 트랜스젠더의 삶에는 여전히 수많은 증명과 설명이 요구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성별을 인정받기 위해 삶을 해명해야 하고, 어떤 사람은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감추어야 한다.


그래서 프라이드는 자랑스러움만의 이름은 아닐 것이다.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하는 일, 다른 사람의 존재를 부끄러운 것으로 만들지 않기로 하는 일, 그리고 누군가 홀로 자신을 증명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그날 조각보 부스에서 우리는 거창한 답을 만들기보다 각자의 흔적을 여러 장의 종이 위에 이어놓았다. 누구의 선도 함부로 지우지 않은 채로.


거리에서 가능했던 그 연결이 우리의 일상에서도 계속될 수 있기를 바란다. 잠시 서로를 알아보았던 사람들이 퍼레이드가 끝난 뒤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그리고 조각보가 그 존재와 목소리를 오래 기록하고 연결하는 곳으로 남기를 바란다.


-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