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 상담 문의 및 정보 제공 요청에 대한 안내 -



안녕하세요,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입니다.

조각보에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께 감사한 말씀을 전합니다. 


조각보에는 여러 건의 상담 문의 및 정보 제공을 요청하는 메일이 끊임없이 들어옵니다.

필요하다 판단되는 상담에는 진중하게 응하는 게 원칙이지만

조각보는 상담 전문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업무에는 나름의 규정을 갖고 응하고 있습니다.

또한 무례하거나 절대 응할 수 없는 요청들에 대해 단체와 활동가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마련할 필요 또한 있습니다.

따라서 상담 문의 시에는 아래의 사항을 지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조각보는 상담 문의를 상담실을 통해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SNS 메신저 및 개인적 경로로 전하는 문의 역시 상담실을 통해 접수되어야만 공식적으로 응할 수 있습니다. 접수된 상담 문의는 늦어도 일주일 이내 답변을 원칙으로 하되, 저희 측에서도 자문이 필요하다 판단될 시에는 조금 더 지체될 수 있습니다.


2) 상담 문의는 반드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구체적인 개인정보를 달라는 의미가 아니라, 적어도 "나는 OO입니다"는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본명이 아니어도 괜찮고, 가명이나 닉네임이어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호명해야 할지도 모르는 이를 상담할 수는 없습니다.


3) 상담을 문의하실 때는 가급적 사정과 요청사항을 명확히 밝혀서 요청해주시기 바랍니다. 문의주신 분이 어떠한 사정에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외로워요, 힘들어요, 도와주세요" 만 쓰여있는 문의에는 답할 방법이 없습니다.


4) 조각보는 불확실한 사유 및 의료 정보, 성별정정 정보에 대한 단순 정보 취득을 위한 면담과 상담에 응하지 않습니다. 조각보는 트랜스젠더 인권을 위해 활동하고 젠더 이슈에 대해 사회적/문화적 플랫폼을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이지, QnA 센터가 아닙니다.


5) 조각보는 의료기관에의 동행 및 재정적 지원 요청, 사법 및 행정과 관련된 서류 작성 요구, 법원에의 동행 요청 등, 오프라인 상에서의 조력을 원칙적으로 제공하지 않습니다




상담실 바로가기(Click!)



- 인터뷰 및 섭외 요청에 대한 안내 -



안녕하세요,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입니다.

 

조각보에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께 감사한 말씀을 전합니다. 

 


 

조각보에는 다수의 인터뷰 섭외 요청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에, 저희에게 문의 연락을 전하기 전에 아래의 사항을 지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조각보 측에 인터뷰를 섭외하거나 인터뷰이 섭외 협조 요청을 할 시에는 반드시 사유와 목적을 명확히 밝혀서 메일을 통해 요청해주시기 바랍니다.


2) 조각보는 활동가 개인 혹은 단체 전체로서든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인터뷰와 섭외 요청에 일체 응하지 않습니다.


3) 조각보는 불확실한 사유 및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에 대한 단순 정보 취득을 위한 면담/섭외에도 응하지 않습니다. 


4) 조각보는 언론보도, 영상물 제작, 학술적 발표 등을 위한 트랜스젠더 당사자 섭외 (특히 인터뷰이 섭외)를 대신 해주는 기관이 아닙니다. 문의자가 이미 제작/진행하고 있는 보도 내용이나 창작물, 학술 연구 내용에 대한 자문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조각보는 트랜스젠더 당사자를 섭외해주거나 연락처를 전달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5) 조각보는 인터뷰에 활동가로서만 응합니다. 활동과 무관한 내용에 대한 문의에는 별도의 답변 없이 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6) 내용 자체로는 활동에 대한 문의이지만, 학교의 과제, 수행평가, 조별 발표 등에 자료로 첨부하고자 인터뷰 섭외 및 정보 문의를 해오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역시 활동을 알리고 공유하며 연대한다는 의미에서 응하지 않을 바는 아니지만, 제출을 이유로 기한을 촉박하게 문의를 주거나 답변만 받은 후 아무런 피드백이 없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지 않는 한, 이에 대한 응답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7) 또한 문의 내용에서 '(국내외) 트랜스젠더 인권 현황 전반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모두 다 답을 해달라'는 질문도 종종 받곤 합니다. 물론 포괄적인 질문에도 답을 다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조각보 측의 답변이 트랜스젠더 인권운동의 정답 혹은 유일하고 고정된 입장으로 읽히는 것은 경계합니다. 나아가 서면으로만 문의해오는 경우에는 메뉴얼 식 답변만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깊이 있고 다양한 결의 답변을 듣고 싶으시다면, 가급적이면 사전에 일정을 잡고, 직접 방문하는 방식의 문의를 바랍니다.



 

더 자세한 문의는 아래 이메일 주소로 연락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tgjogakb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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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꿔온 생존자의 말하기를 지지합니다>
#박원순_시장을_고발한_피해자와_연대합니다
 


7월 8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대한 고소장이 접수되었습니다. 전형적인 권력과 위계에 의한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이었습니다. 피해자는 4년여에 걸쳐 이어진 성폭력에 대해 고발하고자 용기를 내어 나섰지만, 응당 본인의 행동에 대해 답을 하고 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이는 다음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사건이 뉴스에 보도된 날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페미니스트와 성폭력 생존자 동료들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제 주변의 많은 이들이 호소했던 감정은 무력감 그리고 좌절감이었습니다. 성폭력 가해자라 하더라도, 누군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다면 많은 이들이 비통함을 느낍니다. 피해자도 예외는 아니며, 가해자와 평소 친밀한 관계였다면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저와 제 주변인들이 느꼈던 감정은 무력감이었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받은 이가 세상을 떠난다면, 생존자가 어렵게 말한 피해 경험에 대한 이야기는 쉽사리 묵살되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는 결코 법적, 공적인 영역에서의 말하기가 되지 못하고, 피해에 대해 말해본들 “고인이 된 이에 대해 나쁜 말을 하지 말라”라는 등의 말과 함께 따라오는 2차 가해에 부딪혀 공허하게 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 중 누군가는 사건이 가져다주는 무력감과 좌절감에 휩싸였고, 누군가는 자신이 겪었던 유사한 피해를, 비슷한 가해자에 대한 기억을 되새겼습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에게 쏟아지는 2차 가해들을 보며 함께 고통을 느꼈습니다.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의 죽음이 가지는 의미는 이렇습니다. 
가해자의 죽음 앞에서 피해 고발은 사회적, 법적으로 존재치 않았던 사건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남은 피해자는 사건이 남긴 2차 가해와 계속해서 싸워야 합니다.

전 서울시장의 위력에 의한 성추행 사건에 대한 형사 고소는 피고소인이 고인이 되었기에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위력에 의한 가해는 피해자가 이 사건을 고발하면서부터도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 피해자가 고소를 진행한 지 하루도 안 되어 그 사실이 피고소인에게 보고되었습니다. 
- 일터 내에서 일어난 성폭력이며,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을 가능성이 큰 사건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진상조사가 시급한 사안입니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어떠한 조사도 진행하고 있지 않았으며, 오히려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전 서울시장의 장례를 진행했습니다. 
- 피해자의 신상을 캐고 사건의 모든 것을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등 2차 가해가 연이어 지속되고 있습니다. 
- 심지어 장례위원회 측은 피해자 지원단체가 기자회견을 진행하자 자신들과 연결되는 모든 기자들을 통하여 기자회견에 참여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연락을 돌렸습니다. 

이 얼마나 숨 막히는 위력인가요. 성폭력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그 권위와 위력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사건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습니다. 
가해자는 성폭력 사건에 있어 피해자의 말하기에 책임을 지고 답해야 할 주체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성폭력 문화 또한 사건을 방조하고 있습니다. 현 상황에서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사건의 해결과 재발방지를 위해 나서야 할 주체는 서울시입니다. 공소권 없음으로 경찰 수사가 종결된 상황에서, 서울시는 한 기관의 기관장으로서 고인의 장례를 진행했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와 관련된 모든 것은 그렇게 그 사람의 공적(功績)만이 이야기되고 있으며, 피해자가 고발한 사건은 공적 영역에 있서 ‘중요하지 않은 일’처럼 취급되었습니다. 사건에 대한 그 어떤 해결책도 고민하지 않는 서울시가 진행하는 서울특별시장(葬)은 그래서 너무나도 부적절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서울시의 책임있는 후속 조치를 촉구합니다. 피해자가 처음 피해를 호소했을 때 그것이 어떻게 묵살되었는지, 어떻게 4년여 간 피해가 고발되지 못했던 것인지 서울시 내부의 성폭력 문화를 낱낱이 점검해야 합니다.



이제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세상을 바꾸어나가야 할 때입니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모든 문제제기는 피해자의 고발로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생존자의 말하기는 세상을 바꿉니다. 한 때 성폭력은 ‘없던 일’이고 ‘숨겨야 할 일’ 이었습니다. 분명히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 그동안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싸워 왔던 핵심 중 하나입니다. 생존자의 말하기 없이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말하기는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 성폭력 문화에 대한 저항이자 더 이상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지금 가장 귀를 기울이고 무한한 지지를 보내야 할 것은 생존자의 말하기입니다.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라고 피해자는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습니다. 이제 우리는 위계와 위력의 존재를, 성폭력이 존재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가능케 했던 데에는 성폭력 문화가 함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의롭게 해결될 수 있도록 생존자의 말하기를 이어나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또 이로 인해 지속되고 있는 2차 가해에 고된 압박감을 느꼈을 성폭력 피해생존자와 그 주변인들에게 위로를 보냅니다. 지금도 살아나가고 있는 모든 이들을 지지합니다.

2차 가해에 맞서, 그리고 사건 해결을 위해 싸우고 있는 모든 페미니스트와 연대합니다. 우리는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분노하고 연대하며 서로의 힘이 되어 이 사회의 성폭력 문화와 싸워나갈 것입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을 이번 사건의 피해자에게 무한한 지지를 보냅니다. 당신이 보여준 용기로 드러날 수 있었던 이 사건이 정의롭게 해결되도록, 그래서 당신이 우리 모두가 마땅히 누려야 할 일상적인 평화를, 존엄한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_조각보 활동가 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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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LIVES MATTER



지난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가 경찰 폭력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플로이드는 비무장 상태로 그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음에도,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인해 목숨을 잃어야 했고, 현재 미국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라는 규탄 시위가 전국적으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위에서는 플로이드 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불리고 있습니다. 


응급의료요원이었던 브리오나 테일러(Breonna Taylor)는 집에 있던 도중 살해당했습니다. 마약사범을 쫓던 경찰이 주소를 잘못 알고 테일러의 집을 급습했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지 모릅니다. "트랜스젠더 인권운동과 흑인 민권운동이 무슨 상관이야?" 


하지만 우리의 정체성은 단일하지 않고, 우리의 삶은 언제나 교차하며 이어지고 있습니다. 


트랜스젠더 인권운동의 초창기를 이끌어갔던 마샤 P. 존슨과 실비아 리베라는 트랜스젠더 여성임과 동시에 성노동자였고, 유색인종이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소수자는 언제나 연대로서 공권력이 가하는 폭력에 저항하며 권리를 찾아왔습니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시작이 된 1969년 스톤월 항쟁에서, 가장 앞서서 벽돌과 술병을 던지며 경찰 폭력에 맞서 싸웠던 마샤 P. 존슨과 실비아 리베라처럼 말이에요.


흑인 트랜스여성 활동가 마샤 존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가질 때까지, 그 누구도 제대로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 


여러분이 트랜스젠더 인권의 지지자라면,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세요. 우리는 언제나 연대로 함께 나아갑니다.


#BlackLivesMatter #BlackTransLivesMa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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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K.롤링의 트위터)



‘People who menstruate’. I’m sure there used to be a word for those people. 
Someone help me out. Wumben? Wimpund? Woomud?
‘생리하는 사람’. 예전에는 이런 사람들을 부르는 다른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뭐였는지 누가 좀 도와줘. 요좌? 여좌? 여어자아? 



<COVID-19 판데믹 시국에서 생리하는 사람들을 위해 더 나은, 평등한 환경 만들기>를 제안하는 칼럼이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J.K. 롤링은 위와 같이 해당 칼럼이 여성이 아니라 ‘생리하는 사람(people who menstruate, menstruater)’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에서 문제를 제기했지요. 

이후 롤링은 긴 입장문을 통해, <자신은 트랜스젠더를 혐오하지 않고 존중하며, 가정폭력과 성폭력 생존자라는 입장에서 트랜스여성이 겪는 남성폭력에 공감하고 연대한다. 다만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단어는 남성폭력적인 시각에서 여성을 바라보고 물화(物化)하는 단어이며, 결코 중립적인 단어가 아니다> 라며 다시 한 번 자신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는 트랜스젠더 혐오임을 지적하기 시작하면서 논쟁이 일고 있습니다. 심지어 한국 트위터에서는 ‘생리하는 사람’이 실시간 트렌드로 오르기도 했습니다. 대체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어떤 문제가 되기에 이렇게나 시끌시끌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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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를 오독하는 전형적인 예시.)

출처: 열다북스 페이스북


모 출판사가 말한 것처럼, ‘생리하는 사람’은 정말 트랜스젠더만을 위한 단어인 걸까요?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생리하는 사람=여성’이라는 도식은 누구를 배제하고 있는지, 또 월경권 이슈에 있어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단어가 왜 중요한지를 짚고 넘어가려 합니다. 

월경을 한다는 것이 반드시 여성됨과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여성은 단순히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람’으로만 존재하지 않으며, 월경을 하지 않는 여성도 많기 때문입니다. 인터섹스 여성, 난임 여성, 재생산에 필요한 난자가 형성되지 않는 중년 여성처럼요. 마찬가지로 ‘생리하는 사람’들이 모두 여성인 것 또한 아닙니다.  트랜스남성이나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등 AFAB(Assigned Female at Birth : 태어날 때 여성으로 지정받은) 트랜스젠더와 몇몇 인터섹스 당사자들은 월경경험을 겪습니다. 

누군가는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여성들, 특히 신체적인 이유에서 월경을 겪지 않는 여성들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그 말도 맞습니다. 여성을 신체 부위별로 평가하고 물화하는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대부분 여성이 주로 겪는 신체 현상을 있는 그대로 칭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줄 수도 있습니다. 모든 언어가 그렇듯이,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말도 결코 완벽한 대안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기존의 언어와 담론이 배제하던 것이 무엇이었고, 대안으로 제안하는 언어로서 어떤 이들의 경험을 포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할 때, 우리의 세계는 점점 더 넓어질 것입니다.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여성의 삶이 포궁(자궁)이 있고 임신을 할 수 있다는 것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음을 선언하며, 월경을 겪는 더 많은 비여성 당사자들의 월경경험을 포용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모두를 위한 월경권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기 위함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수많은 논의와 고민을 뒤로 제쳐두고,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단순히 트랜스젠더의 ‘기부니’를 맞추기 위한 단어라 칭한다면 이 얼마나 편협한 생각인지요. 





누구나 건강하고 안전하게 월경을 할 권리를 월경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부터 우리 모두에게 불편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바로 트랜스젠더의 월경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트랜스젠더의 월경권은 당사자들 사이에서도 불편한 주제입니다. 트랜스젠더, 특히 트랜스남성에게 월경이란 단순한 신체적 불편함을 넘어서 극심한 젠더 디스포리아를 겪게 하는 경우가 많고, 어쩔 때는 월경에 대한 경험이 트라우마틱한 기억으로 남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경하는 트랜스젠더의 고충에 대해서는 당사자 커뮤니티 안에서도 잘 이야기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커뮤니티 안에서 월경으로 인한 고충을 토로하면 “빨리 호르몬 시작하셔라.”라는 조언과 위로가 대부분입니다. 사실 호르몬 치료만 시작해도 빠른 시일 내에 비월경 상태가 찾아오기 때문일까요, 트랜스남성으로서 월경은 젠더 디스포리아를 느끼게 하는 부분 중에서도 가장 먼저 극복되면서, 그렇게 '지나간 일'이 되고, 그만큼 쉽사리 잊혀지고 이야기되지 않음을 절실히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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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떤 남자는 이미 하고 있다.)

출처: 현실문화연구


이제와서 고백하지만 정체화 초창기 시절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옷을 사 입고 밖을 돌아다니던 때, 넘치는 자신감으로 남자 화장실을 들어갔더랩니다. (사실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면 여기 여자 화장실이라고! 라며 모르는 사람에게서 등짝을 맞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도 지겨웠습니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생리가 터졌던 어느 날, 화장실에서 느꼈던 불안함, 남자 화장실에는 생리대를 버릴 곳이 없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아채고 들었던 당혹스러움을 같은 트랜스남성 지인들에게 이야기 했더니 “그러게 (의료조치도 안 했는데) 왜 남자 화장실을 쓰냐” 라는 쿠사리만 들었더랬죠. 

농담조로 제 이야기를 풀어놓았지만, ‘생리하는 트랜스젠더’는 사실 이보다 더 많은 고충을 겪습니다. 많은 당사자들이 매번 월경이 시작될 때마다 심각하게 아웃팅을 걱정하고, 월경으로 인한 아웃팅이 성폭력의 위협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성별 정정에 있어 생식 능력이 없을 것을 요구하는 대법원 예규는 트랜스젠더의 재생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 비판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 포궁 적출 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남성 당사자가 건강상의 이유로 월경 또는 포궁에 대한 진료를 받으러 가려면 병원 문을 들어설 때부터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 트랜스젠더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의료진 등 수많은 관문을 넘어서야 합니다. 

건강하고 안전하게 월경할 권리를 위해서는 우선 우리의 경험이 이야기되어야 함에도 트랜스젠더의 월경은 시스젠더 여성의 월경과는 다른 결에서 계속해서 터부시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트랜스남성의 월경권은 재생산권에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안전한 월경권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월경하는 비여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월경하는 비여성 당사자들은 일상에서부터 자신의 월경경험으로 인해 수많은 장벽에 부딪힙니다, 이것은 단순히 당사자가 ‘지금부터 마음을 잘 다잡아서’ 해결하거나 긍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 사회가 인식을 바꾸고 함께 고민해나가야 할 종류의 것입니다.
 

그래서 ‘생리하는 사람’은 우리에게, 특히 트랜스젠더의 월경권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단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존재가 계속해서 지워지고, 상상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트랜스남성의 월경경험은 분명 실재하는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안전하게 ‘생리하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논의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자신의 ‘불편한’ 월경경험을 이야기하고 안전한 월경권을 누릴 수 있는 포용적인 공간을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나가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트랜스젠더의 월경권에 대한 불편한 말들이 이어지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생리를 한다는 것이 여성됨과 반드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판단입니다. 

어떤 트랜스젠더는 생리를 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생리하는 사람’이어서 지금 이 순간에도 겪고 있는 경험은 지금도 존재합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트랜스남성은 남성입니다.
어떤 비여성은 월경경험을 겪습니다.
그리고 트랜스젠더의 월경권 또한 존중받아야 합니다.



_활동가 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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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5일.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법사위를 통과했고 이틀 뒤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아마 그 과정을 지켜보며 복잡한 기분을 느낀 사람은 나만이 아닐 것 같네요. 특히 저에겐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의 내용에서 사실상 gender violence에 대한 내용이 실종되었다는 점이 너무나 크게 다가왔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놀랍거나 당황스럽지는 않았습니다. 또 소식을 접한 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을 제정하기 위해 사람들이 해온 노력과 고난을 볼수록 오히려 존경심에 가까운 마음이 더 들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시감마저 느껴지는 그 과정은 입맛을 씁쓸케 했습니다.

‘정치역학에서 타협은 필수이다.’ 정치학을 배울 때 교수님이 즐겨하신 말이고 저도 공감하고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일어난 희극적 상황이 적지 않죠. 특히 2013년 강간죄 성립요건이 크게 바뀌었던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있던 유사강간죄를 굳이 만들어 성교와 성교 아닌 것을 구분하고 가해자가 삽입해야지만 성립되는 참 희극적인 법 개정이 기억납니다. 물론 이 개정으로 성폭력으로 피해를 입는 성소수자가 법률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근거가 생겼기에 굳이 말하자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지만요.

차별금지법도 당시로 돌아가면 참 긴박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시한 안은 혐오세력의 말을 들은 법무부에 의해 ‘타협’의 대상이 되려고 했죠.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이 빠진 것을 비롯해 병력, 언어, 출신국가 등이 빠진 반쪽짜리 안이 입법예고되기까지 하였습니다. 입법을 막기 위한 수많이 소수자 단체와 이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 끝에 수정안이 통과되는 참사가 일어나진 않았지만, 차별금지법과 같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법에서도 타협은 여지 없이 일어나려 했지요. 씁쓸한 기억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타협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핵심적인 곳에서 타협이 일어났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네요. 여성폭력의 정의가 바뀌면서 법률의 의미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입니다. 법사위에서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이 한 말 이 머리에 멤도네요. ‘최초로 이 법이 보호하려고 하는 대상이 100 이라고 하면 실제로 여성만 대상으로 하면 그 범 위가 85나 90으로 줄어든다고 할 거예요. 그러면 100은 안 되더라도 90을 보호하는 정도 수준으로 해서 입법을 할 건지 판단하셔야 됩니다. 더 이 상 끌 수는 없어요.’ ...그 말을 수용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비난만 할수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같은 회의에서 언급되었듯 누군가는 “동성애법”이니 뭐니 하는 식의 지적을 하고, 간신히 통과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는데 지금 실패하면 앞으로 영영 기회를 잡을 수 없다는 두려움도 있었겠죠. 하지만 기본법은 관련된 수많은 법률 및 행정에 영향을 줍니다. 앞으로 대한민국 사법/입법/행정에 영향을 줄 기본법에서   손상된 취지가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게 될지... 앞으로의 해석과 사회에서 적용되는 양상을 봐야겠지만 우리는 과거 다른 나라가 여성폭력/젠더폭력을 둘러싸고 수십년간 했던 논쟁과 시행착오를 쓸데 없이 무의미하게 반복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 통과된 이후 바로 개정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말 잘된 일이고 또 응원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원안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겠죠. 특히 입법과정에서 트랜스젠더퀴어에 대한 담론과 생각이 전혀 담기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지금 이 법이 원안에서, 그리고 현재의 법안에서 당사자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예측할 수 없으니까요. 또 원안과 현재의 법안이 한국의 제도가 젠더폭력을 인지하는 방식을 어디까지 반영하고, 또 앞으로 한국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구조와 거기서 나타나는   젠더폭력을 어떤 방식으로 대처하려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는지도 살펴봐야겠죠.  조각보는 앞으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추구하는 바, 즉 젠더폭력의 방지에 트랜스젠더퀴어에 대한 고민이 담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성별이분법을 당연한 사실이라고 가정한 채 형성되어온 젠더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차근차근 해부하고 재정립하려 합니다.

조각보는 앞으로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자체와 법률의 대상이 될 다른 제도 및 사회적 이슈들을 트랜스젠더퀴어적 관점에서 탐구할 것입니다. 또 여성폭력방지법뿐만 아니라 성별이분법을 기반으로 형성된 수많은 제도와 관습을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그 방향성이 지금의 개정 준비를 비롯해 지금까지 있었던, 그리고 앞으로 있을 수많은 이슈에 적극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또다시 타협 속에서 트랜스젠더퀴어의 삶이 침묵 속에  일방적으로 휩쓸리는 일이 없도록 차근차근 놓치는 것 없이 준비해 나가겠습니다.



_조각보 활동가 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