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보자기 Vol.2 -가족-


텀블벅 후원자들을 위한 선행공개 버전입니다. 타인과의 공유는 지양해주세요.


일반 공개는 2026년 1분기에 진행할 예정입니다.


목차>


- 시작하며 : 『조각보자기』 소개 _다니


특집 : 가족

- 가족. 익숙한, 그러나 새로운 _희정

- 결혼과 트랜스젠더, 법적으로 풀어보기 _이승현

- 임신한 트랜스젠더로 존재하기 - 트랜스젠더와 가족, 그리고 재생산권 _리나

- 가족 안에서 나 되어가기 _낙타

- 벽장 너머에서, 다시 만난 세계 _민성

- 부모의 입장에서 _라라

- 가족이라면 _다니

- <가족> 특집을 마무리하며 _리나


이슈

- 전근넷을 만나다 : 전환치료근절운동네트워크 인터뷰 _희정

- 패닉 방어 전략 : 트랜스포비아와 이성애 규범성 _리나


문화

- 『소녀, 소년을 만나다』

- 오타쿠와 트랜스젠더, 소비 속에 녹아 있는 작은 의식들 _희정

-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비평 _민성


젠더 이론

- 트랜스여성혐오와 근본주의적 (유사-)페미니즘에 대한 단상 _준우


카툰

 - 속눈썹 _상화


커밍아웃

- 나의 소녀시대 _무무


우리들의 목소리

- 가발 _이시연

- 재봉선 _낙타

- 연옥에서 살아남는 법 _린

시작하며 : 『조각보자기』 소개

다니


 안녕하세요. 『조각보자기』의 문을 열게 된 다니입니다.


 오랜 시간의 회의와 몇 차례의 편집을 통해 드디어 『조각보자기 vol.2』가 완성되었습니다. 『조각보자기 vol.2』는 2017년부터 미뤄져서 2018년인 올해 발매하게 되네요. 여러 활동가분들과 몇몇 외부 섭외로 이번 이슈도 흥미진진한 주제들을 모아 멋진 글들을 보여드립니다.

 『조각보자기 vol.2』는 ‘가족’이라는 주제를 특집으로 잡았습니다. 조각보에서 진행하는 트랜스젠더 지지모임 TGG를 통해 당사자들과 의미 있는 대화들을 나누었는데 그 중에서 저희에게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가족에 대한 얘기들이었습니다. 트랜스젠더 당사자에게는 가족이란 여러 감정을 일으키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 슬픔과 서운함도 기쁨과 사랑도. 가족으로부터 자신에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길 수도 있고 또한 가족으로부터 많은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각보자기 vol.2』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을 풀고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가족’을 특집으로 잡고 글들을 모아봤습니다. 특집 안에서는 트랜스젠더로서 법적 그리고 사회적 측면에 있어 가족의 의미를 바라보기도 하고 당사자의 입장은 물론 당사자의 가족의 생각도 담아봅니다. 트랜스젠더 당사자에게는 앞으로 어떤 모양의 가족이 그려질까요?

 특집 외에도 『조각보자기 vol.1』과 같이 문화, 이슈, 이론섹션 안에서 다양한 글들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패닉방어 전략이 뭔지 궁금하셨죠? 전근넷의 활동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아시나요? 래디컬 페미니즘은 과연 트랜스혐오적일까요?
또한 이번 호에는 ‘우리의 글’이라는 섹션을 새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당사자로서 당당하게 내세우는 우리의 표현, 우리 목소리 꼭 읽어 보셨으면 합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앞으로도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에 활동에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가족. 익숙한, 그러나 새로운

희정


1.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2.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 

- 민법 제779조, 가족의 범위 제1항

  이 두 가지는 우리나라 법에 적혀 있는 가족의 정의이다. 보다 보면 이만큼 속 편하게 정했다 싶은 말도 없다. 본래 없애려고 하였다가 여론의 반발로 남게 된 이 문구는(이은정, 2006) 법이 먼저인지, 인식이 먼저인지 토론할 것까지야 없겠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 속에 가족을 생각하게 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남아있다. 혈족에 의한 가족이 나쁜 것은 아니다. 혈족이라는 관계는 태어날 때부터 시작되어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인간관계에 깊은 안정감과 극적인 반전을 이루기도 하는 것이 혈연이 가진 힘이니까.

 성소수자의 입장에서도 혈연으로 이어진 사람들은 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도, 세상 풍파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특히 트랜스젠더들은 젠더 행위의 수행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커밍아웃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하는 탓인지 다른 성소수자 집단에 비해 가족에 커밍아웃을 하는 비율이 높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가족에 대해 가지는 정서적인 영향력도 더 크게 드러나며 그만큼 가족으로 인해 괴로워 하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그렇기에 이런 의문이 든다. 혈연이 나에게 괴로움만을 줄 때, 그리고 그 괴로움이 너무 커서 나를 갉아 먹으며 커지기만 할 때, 그 때도 우리는 혈연으로 이어진 사람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둘 이상의 사람들이 친숙한 한 가족이라고 여기고, 밀접한 감정적 유대와 ’가정‘이라는 생활공간, 생물학적‧사회적‧심리학적 요구의 충족에 필요한 역할과 과제를 공유하는 집단 

- 하트만과 레어드(Hartman and Laird, 1983)

왜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할까? 가장 현실적인 금전적인 지원 외에도 우리는 가족으로부터 사랑과 유대감, 그리고 나를 향한 굳건한 신뢰감,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성애적/비성애적 사랑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어떤 이유를 더 중시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무엇 하나 빠질 수 없는 이유들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가족은 항상 그렇게 아름답게만 움직이지 않는다. 때로는 무서우리만큼 갈등하고 저주스러운 존재가 되어 나를 괴롭히는 존재가 된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언제나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지만 그 파국으로 치닫지 않으려 노력하는 과정이 오히려 더 큰 상처로 이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럴 때에도 그들을 가족이라 부른다. 괴로워 하는 자신조차 그들을 가족이라 말하기도 한다. 기대하는 것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아 기대를 완전히 져버리는 그 순간까지도 한번 가족은 영원한 가족이라는 듯한 태도로 바라보는 세상 속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을 쉬이 놓지 못한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결과가 안 좋을 것을 예상하면서도 가족이 알아주기를 바라며 커밍아웃 해 나갈 용기를 다져 나가고, 몇 번이나 거절 당해도 다시 도전하고, 결국 웃지 못하고 눈물을 훔치는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짐짓 태연한 척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심정을 한숨으로 대신 내뱉게 된다. 그리고, 가족이 가족과 함께 할 이유를 충족하지 못한다면 가족과 함께 할 이유가 정말로 있는 것인지 고민한다.

그들 스스로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건강한 가족생활에 필수적인 의무, 기능, 책임을 수행하는 두 명 이상의 사람들 

- NASW가족분과위원회(National Association of Social Workers, 1982)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며 몇 번 정도 `가족과도 같은` 사람을 만났을 것이고, 아직 만나지 않더라도 적어도 인생에서 한번쯤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경험을 소망한다. 그런데, 왜 그들은 가족이 아니라 가족 같은 사람일까? 또, 사람들이 뭉쳐 있는 집단을 살펴보면 왜 `아빠 역`, `엄마 역`과 같은 이름으로 집단 내에 자리잡은 사람들이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는 것일까? 왜 그들은 `같은`이고 `역`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가족은 결코 영원불멸한 한 가지 개념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고리타분한 고대의 공유경제나 씨족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이혼에 대한 최근 수십 년간의 인식 변화나, 결혼이 가진 `독립`의 개념이 확장되어가는 과정을 보면, 그리고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수많은 형태의 공동체가 `가족과도 같은` 유대를 가졌다고 말하며 우후죽순 생겨나는 것을 보면 다수의 사람들의 추상적인 인식 속에 확고히 바로잡은 가족의 개념. 그리고 그 가족의 불변성이 강력한 고정관념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가족 같은 존재를 가족이라고 부르기를, 그리고 기존의 가족의 형태를 답습하지 않은 자신만의 공동체를 편안하게 형성해 나가기를 마음으로 기원한다. 가족이라는 것은 분명 단순한 인간관계와는 다른 어떤 무게감을 주는 단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치 신성불가침한 것처럼, 특히 혈족관계 없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단어처럼 사용되는 것은 혈족에 고통 받고, 가족에게 원해왔던 것들을 얻지 못했던 사람들을 구속하는 데 사용될 뿐이다. 혈족을 벗어나 자신이 정말로 원했던 가족으로서의 모든 것을 나눠 받고 나눠 줄 수 있는 가족을 형성할 수 있다는 인식. 그것이 우리 모두가 진정한 가족의 일원으로서 대등한 개인이 될 수 있는 길이다.

가정은 누구나 "있는 그대로" 의 자기를 표시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다.

- A.모루아(Harley, 2016에서 재인용)

이 글을 보고 바로 가족을 떠나거나, 새로운 가족을 떠나는 것을 결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글을 쓴 필자도 가족과 많은 갈등 속에서 마지막까지 나의 혈족과 웃으며 지내는 날을 꺼내며 내 나름대로 이를 악무는 마음으로 가족과 이야기를 계속 하고, 갈등을 조심스레 풀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까닭은 가족이라는 존재가 나에게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존재로 다가올 때, 가족으로부터 버림 받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절망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기존의 가족을 떠나 새로운 가족 집단을 구성하는 것은 우리가 인생에 선택할 수 있는 많은 대등한 선택지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닫고 실행해 나갈 수 있음을 알기를, 그리고 가족에 대한 슬픔으로 너무 힘들어하지 않기를 기원한다.


Harley, Jin, 『경기도: 가족이 함께 읽는 명언』, 이페이지, 2016.

Hartman, Ann, and Laird, Joan. Family-Centered Social Work Practice. Free Press, 1983.

National Association of Social Workers, "Changes in NASW Family Policy", NASW News,27(2), 1982.

이은정, 「가족의 범위」, 『가족법연구』, Vol.20, No.1, 193-218쪽, 2006.

결혼과 트랜스젠더, 법적으로 풀어보기

이승현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다양한 형태로 인생의 파트너를 찾는다. 서로의 이끌림으로 친밀한 관계를 지속해 온 연인들도 그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들이 보다 장기간의 고정적인 관계를 맺으며 가족을 구성하고자 할 때 흔히 이용하는 제도가 결혼 제도다. 결혼 제도는 현대사회의 어느 나라나 가지고 있는 제도이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 간의 결합을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방법이 결혼 제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는 동거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하거나, 파트너십 제도를 도입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한국은 현재 결혼 제도만이 도입되어 있는 상태이다.

 한국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결혼'이라고 지칭되는 것은 한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 사이에서 이루어지며, '가족'은 이 부부를 중심으로 부부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로 구성된 집단이라고 여겨진다. 이것은 현행법이 이해하고 있는 '결혼'과 '가족'의 개념이기도 하다. 민법 제779조는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그리고 생계를 같이 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법원은 '결혼'을 ‘남녀의 애정을 바탕으로 하여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도덕적, 풍속적으로 정당시되는 결합(대법원 2015.2.26. 2014므4734, 4741)’, ‘남녀 간의 육체적, 정신적 결합으로 성립하는 것으로서, 우리 민법은 이성(異性) 간의 혼인만을 허용하고 동성(同性) 간의 혼인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대법원 2011.9.2. 2009스117), ‘혼인은 근본적으로 애정과 신뢰를 기초로 하여 남녀가 결합하는 것’(헌법재판소 2011.11.24. 2009헌바146)이라고 하고 있다.

 물론 법이라는 규범은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형태로 규정되기 때문에 그 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늘 해석이 필요하고, 그래서 결혼과 가족의 개념도 해석의 여지가 있다. 다만, 현재 한국사회의 인식이나 다른 법률 및 법률 규정과의 관련성에서 본다면, 민법을 비롯하여 현행 법률이 이해하고 있는 '결혼', '부부', '가족'은 한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의 결합을 전제로 한다고 보여진다(단, 법률 보다 상위규범인 헌법에서 그러한 전제를 가지고 있는가는 또 다른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트랜스젠더에게 이러한 한국사회에서 '결혼'하는 것은 언제 가능한 것일까? 여기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법적으로 '여성', '남성'이 무엇인가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현재 법적으로 결혼이 가능한 것은 ‘법적 여성’과 ‘법적 남성’ 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과 남성의 정의는 어느 법률에도 없다. 다만, 법원에서 법적 성별이 무엇인지 밝힌 적이 있다. 바로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 사건에서이다. 대법원은 법적인 성별을 ‘성염색체의 구성을 기본적인 요소로 하여 내부 생식기와 외부 성기를 비롯한 신체의 외관은 물론이고 심리적·정신적인 성과 이에 대한 일반인의 평가나 태도 등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2006년 50대의 트랜스남성에 대해 법적으로 남성이라고 판단하고 성별정정을 허가하였다. 그리고 트랜스젠더가 법적 성별을 변경할 수 있는 경우를 상세하게 제시하였는데,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이렇다. 즉 트랜스남성이라면, 생물학적인 성이 여성이라는 불일치감 및 위화감·혐오감, 남성이라는 성에 귀속감, 성전환증 진단과 호르몬 치료, 외부성기를 비롯한 성전환수술, 남성으로 공고한 정체성을 가지고 외관, 성관계, 직업 등과 같이 개인적.사회적인 영역 모두에서 남성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주변 사람의 인식도 남성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경우에 법적으로 남성임을 인정한다고 하고 있다(대법원 2006.6.22 2004스42).

 이러한 기준에서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현재 한국사회에서 그리고 있는 전형적인 남성/여성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거나 수술을 원하지 않거나 하지 못하는 트랜스젠더는 어떻게 되는가. 예를 들어 머리를 기르고 ‘여성스럽게’ 말하거나 남성 연인이 있는 트랜스남성, 근육질에 군인인 트랜스여성, 외부성기 수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건강상 이유로 외과수술이 불가능한 트랜스젠더는 자신의 성별 정체성이나 혹은 그에 따라 현재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성별에 맞게 법적으로 성별을 변경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성별표현이나 성 역할은 어떻게 숨길 수 있다고 하더라도) 특히 외과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의 경우에는 현 시점에서는 대법원까지 올라가서 싸워보지 않는 이상 성별변경이 허용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럼, 이제 결혼을 할 수 있는 트랜스젠더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성전환수술을 하지 않아서 법적으로 남성인 트랜스여성은 법적으로 여성인 누군가와 결혼할 수 있고, 성전환수술 이후 법적으로 여성이 된 트랜스여성은 법적으로 남성인 누군가와 결혼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나의 성별 정체성, 성별표현, 성적지향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내가 트랜스여성이지만 법적으로 남성이면, 법적으로 여성인 트랜스남성이나 이성애자.레즈비언 여성과 법적으로 결혼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대신 법적으로 남성인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성이나 성별정정한 트랜스남성과는 결혼할 수 없다. 이 상황은 성별정정하여 법적으로 남성인 트랜스남성에게도 완전히 동일하다. 그리고 성별정정한 트랜스여성이나 성별정정하지 않은 트랜스남성의 경우는 위에 예시가 반대로 적용될 것이다.

 그런데, 현재 법원이 요구하는 성별정정의 요건에는 의료적 요건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혼인 중이 아닐 것’과 ‘미성년자 자녀가 없을 것’이라는 요건도 요구되고 있다. 현재 법적으로 결혼 중인 상태라면, 이혼 후여야만 성별정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재 법적으로 결혼상태인 트랜스젠더가 상대방과 이혼할 예정이고 상대방과 협의이혼이 가능한 상태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런데, 서로 이혼할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도 성별정정을 위해서라면 이 커플은 원치 않는 이혼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부지영 감독, 공효진.신민아 주연)에서 인상 깊은 마지막 장면을 생각해보자. 이 장면에서 비추어진 중년의 한 시스젠더 여성과 트랜스여성은 법적으로는 어떤 관계일 수 있을까. 두 사람이 만약 과거 혼인신고를 하여 법적으로 부부였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성전환수술을 하고 다시 돌아온 이 트랜스여성이 성별정정을 포기했다면 두 사람은 여전히 법적으로 부부일 것이지만, 성별정정을 하였다면 두 사람은 법적으로 남남이다. 이혼을 해야만 성별정정이 가능하고, 성별정정을 하면 두 사람 모두 법적으로 여성이라서 법적으로 결혼할 수 없는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두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을 법적으로 방해하는 것은 없다. 이혼하고 성별정정한 후부터는 동성커플과 마찬가지 상황이 될 뿐이다. 그리고 동성커플과 마찬가지 상태가 되는 것은 성별정정을 하지 않는 트랜스젠더와 시스젠더의 이성애자 커플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한다. 예를 들어 성별정정하지 않은 트랜스남성은 법적으로 여성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여성인 여성과 아무리 오랫동안 부부로서 살아왔다고 하더라도 법적으로는 남남인 것이다. 결국 동성커플이 겪는 법적인 불이익을 똑같이 경험하게 될 것이다

 위 경우는 서로 결혼관계를 유지하려고 할 때 발생하는 문제일 것이고, 사실 더 큰 문제는 상대방이 이혼할 생각이 없는 상태이다. 예를 들어 법적 여성으로 시스젠더 남성과 결혼한 상태인 트랜스남성이 성별정정을 위해 이혼을 요구하였는데 '남편'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 때는 협의이혼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혼소송을 할 수 밖에 없다. 재산분할이나 위자료 등 법적 공방이 이루어질 수도 있으며, 정신적.경제적 손해도 감당해야 한다. 아이가 있다면 친권과 양육권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여기서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자녀가 있는 경우이다. 설사 이혼이 성립되고 상대방이 자녀의 친권이나 양육권을 가져간 상태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자신은 법적으로 아버지나 어머니인 상태이다. 이 때 자녀가 미성년자라면, 자녀가 성년이 되기까지 성별정정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대법원은 2011년 미성년자 자녀를 가진 트랜스여성에 대해서 성별정정을 인정하지 않은 사건에서 명시된 바 있다.(대법원 2011.9.2, 자, 2009스117) 비록 당시 사건에서 13명 대법관 중 5명은 반대의견을 내었기 때문에 다음 번 다시 대법원에서 다루어질 때에는 변경될 가능성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수술을 포함하여 다른 요건을 모두 충족했더라도 자녀가 성년이 되기까지 기다려야 할 가능성이 크다.

 자신의 파트너와의 관계와 생활이 법적으로 보호됨으로써 다른 커플들과 차별 받지 않고 법적.사실적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것, 그렇게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가족을 꾸릴 권리는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기본적 인권이다. 그러나 현행 법률은 트랜스젠더의 삶의 모습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법 안에 트랜스젠더의 존재는 지워져 있는 상태, 정확히는 아예 인식도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 상태는 인간존엄성 보장을 최고의 가치로 하는 헌법에 반하는 것이 아닌지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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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에 관한 법률은 현재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각 사건마다 법원 내부 규칙인 대법원예규를 참고하여 개별 판사가 판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법원이 제시하는 기준을 완전하게 따르지 않는다고 무조건 성별정정 불허가를 받는 것은 아님에 주의 해주세요. 위에 예시를 든 사건들에서도 한 두건 씩 예외적으로 통과된 사례도 있습니다.

* 현재 우리나라는 ‘법적 성별 변경’과 ‘가족관계등록부(구 호적)상 성별 표기 변경(즉 성별정정)’이 동일하게 취급되고 있으며, 이 글에서는 ‘법적 성별변경’과 ‘성별정정’을 혼용하여 쓰고 있습니다.

임신한 트랜스젠더로 존재하기 - 트랜스젠더와 가족, 그리고 재생산권

리나


“아이를 갖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1]


임신을 선택한 트랜스남성인 트리스탄 리즈. 트리스탄은 인터뷰에서 “남성인 동시에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나, 혹은 나의 파트너를 닮은 아이를 가지고 싶다-라는 욕망은 트랜스젠더에게도 존재한다. 의료적 트랜지션을 시작하기 전, 정자 혹은 난자 보관을 선택하는 트랜스젠더도 많다. 해외에는 이러한 이들을 위한 가이드도 존재한다.[2] 2008년, 임신을 선택한 트랜스남성 토마스 베티가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와 남성으로서의 임신 경험을 대중에게 이야기한지 10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한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일상에서 상상하는 일은 쉽지 않은 모양이다.

트리스탄이나 토마스처럼 ‘직접 아이를 낳겠다’는 트랜스남성들은 항상 같은 질문을 받는다. ‘왜 입양을 선택하지 않는가’,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왜 임신을 선택하는가’ 라는 질문. 트랜스남성에게 이러한 질문을 집요하게 묻는 이들은, 시스젠더 여성에게는 결코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묻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를 입양한다고 말했을 때에 ‘직접 낳아 기를 수 있는데 왜 입양을 선택하는가’라고 물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질문을 다시 돌려주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어째서 트랜스남성이 임신을 원한다고 말할 때에만 이러한 질문이 따라붙는 것일까? ‘직접 아이를 낳는다’라는 선택지는, 왜 트랜스남성에게는 기본적으로 배제된 것처럼 여겨질까?


트랜스남성의 임신은 성별 규범에 대한 도전이다. 제시 험펠은 타임즈 지에 트랜스남성인 동생 에반의 임신에 대한 글을 기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에반과 같은 트랜스남성의 임신은 우리 사회의 성별 규범에 대한 문화적인 인식을 허뭅니다. 우리는 이제서야 여성으로 지정되었어도 남성일 수 있다는(트랜스젠더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죠.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 신체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나 자신은 남성이라 생각하면서도,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여성들만의 독점적인 의례(traditionally exclusive rite of womanhood)에 참여하려는 남성이 된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종류의 남성이 되는걸까요? 이러한 질문은 사람들을 성가시고, 불편하게 만듭니다.’[3]


트리스탄 또한 ‘임신한 트랜스남성’이었기 때문에 ‘남성이 아니다’라며 공격받은 적이 있다.[4] 트랜스남성이 태어나면서 지녔던 생식 능력은 그 자신을 남성답게 하지 못하는 부분으로 취급되고 있다. 임신한 트랜스남성은 존재 자체로 그간 사회가 ‘남성의 몸’을 정의해왔던 방식을 위협한다. 트리스탄은 남성의 몸에 대한 규범을 위반했기에 공격받은 것이다.



1) 대한민국 국적자, 2) 만20세, 3) 행위능력자, 4) 현재 혼인 중 여부, 5) 미성년자 자녀 존재 여부, 6) 성전환증, 7) 정신과 치료 혹은 호르몬요법, 성전환수술을 받아 외부성기를 포함한 신체외관 변경, 8) 성전환수술의 결과 생식능력 상실, 재전환 가능성 없거나 희박, 9) 범죄 또는 탈법행위 등에 대한 이용 의도·목적 여부, 그리고 10) 부모 동의(첨부서류로 부모 동의서가 명시되어 있다)이다.[5]


위는 가족관계등록예규 제 435호에서 확인할 수 있는, 법적으로 성별 정정을 하려 할 때 법원의 판단기준을 정리한 것이다.[6] 지금까지 살펴본 해외 사례에서 경청한 임신한 트랜스남성의 이야기들이 사회적 인식 차원에서 겪는 차별의 문제였다면, 한국은 성별 정정 단계에서 ‘생식 능력 상실’을 요구하며 법적 그리고 제도적 차원에서 임신한 트랜스남성의 존재를 지우고 있다. 적어도 성별 정정을 하거나 원하는 트랜스남성에게 임신을 통해 가족을 구성하는 것은 애초부터 고려할 수 없게 된다. 법과 제도가 남성의 모습을 규정한다.


트랜스남성의 임신, 그리고 가족구성권은 결국 법률이 규정하는 몸에 얽매이게 된다. 임신에 대한 이야기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낙태죄 폐지 이슈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낙태죄는 한때 사문화된 법이었지만 출산율이 문제되기 시작한 90년대 이후부터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여성주의 활동가들은 출산율과 낙태죄를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것은 ‘여성에게 재생산 의무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사고[7]이며, 모든 여성을 어머니로서 정상 가족 안에 욱여넣으려는 시선이 여전히 있다[8]고 지적한다. 법률은 낙태죄를 생명권의 이유를 들어 설명한다.[9] 그러나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에는 임신 24주 이내의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생명의 존귀함을 근거로 들지만, 우생학적 근거를 이유로 어떠한 생명의 권리는 인정하지 않는 현 법률. 결국 생명권이 아닌 ‘어머니로서의 여성 신체에 대한 통제’이며 기존 사회의 근간을 이뤄온 ‘이성애규범 속 정상 가족’의 유지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트랜스젠더의 재생산권도 마찬가지로 규범 속 정상 가족이라는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 그렇기에 트랜스젠더의 가족구성권과 재생산권을 말하는 것은 낙태죄 폐지와 맥락을 같이 한다.


대법원과 예규가 제시하고 있는 성전환자의 기준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전형성(stereotype)을 제시하고, 성별정정 기준으로 적용함으로써 이를 스스로 공고히 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10] 트랜스젠더에게 요구되는 전형성은 기존의 성별이분법-이성애 가족 질서에 순응하는 ‘평범한 남성’이 요구 받고 보여야 하는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이 질서 내에서 남성의 모습을 한 채로 임신을 해서는 안 되기에, 트랜스젠더는 원하지 않는 불임 수술을 거쳐서라도 그에 순응할 것이 강제된다.


따라서 트랜스젠더가 임신할 권리, 트랜스젠더의 재생산권에 대한 이야기는 트랜스젠더의 가족구성권에 대한 논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존의 성별이분법-이성애 가족 질서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낙태죄 폐지 운동이 여성의 신체를 되찾고 여성의 사회적 권리를 되찾는 운동이 되는 것처럼, 트랜스젠더의 재생산권 또한 같은 맥락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기존의 가족 질서 바깥에서도 가족은 여전히 존재해왔고 그러한 가족도 존중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트랜스젠더로서 나의 몸을 사유하고 어떻게 가족을 만들어갈 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몸을 내가 사유하며 다양하고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만들어나가는 것, 트랜스젠더의 가족구성권과 재생산권은 이처럼 다양한 맥락에서 논의되고 상기되어야 할 것이다.



  

[1] Lawson , Declan. “[허프 인터뷰] 게이 트랜스 남성과 파트너가 첫 임신에 대해 이야기하다”,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2017년 6월 12일자. (링크 : http://www.huffingtonpost.kr/2017/06/12/story_n_17049070.html )

[2] Kylstra , Carolyn. “20 Things Transgender People Might Want To Know About Fertility”, BuzzFeed, Jine.24.2015. (링크 : https://www.buzzfeed.com/carolynkylstra/transgender-fertility?utm_term=.nsagq1Kzl#.ewArDABg1 )

[3] Hempel , Jessi. “My Brother‘s Pregnancy and the Making of a New American Family”, TIME, Sep.12.2016. (링크 : http://time.com/4475634/trans-man-pregnancy-evan/ )

[4] “악랄한 메일들도 있었다. 그건 보지 말 걸 그랬다. “아가씨, 우리 남자들을 훔쳐 가지마.”라고 쓴 어느 게이 남성이 있었다.” 

[5] 이승현, 「성전환자 성별정정 국내외 현황 및 문제점」, 『제5회 SOGI 콜로키움: 성전환자 성별정정 10년, 의마와 과제 자료집』, SOGI법정책연구회, 2016년 11월 19일: 39쪽.

[6] 한국에서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 요건을 규정한 법률은 없으나, 해당 예규에 기준을 두고 개별 법원에서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위의 글, 39쪽).

[7] '강남역 10번출구 미디어팀' 이찬우 발언 중 인용(“[제1134호] 낙태죄의 숨은 죄인은 국가다”, 『한겨레21』,  2016년 10월 24일자. 링크 :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2523.html ).

[8] '인문학카페 36.5도 운영자' 홍승은 발언 중 인용(위 기사).

[9]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며, 이러한 생명에 대한 권리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헌법재판소 2012. 8. 23. 자 2010헌바402 결정. 링크 : http://search.ccourt.go.kr/ths/pr/ths_pr0101_P1.do?seq=0&cname=&eventNum=30803&eventNo=2010%ED%97%8C%EB%B0%94402&pubFlag=0&cId=010200&selectFont= ) 

[10] 이승현, 앞의 글, 44쪽.

 


가족 안에서 나 되어가기

낙타


빰빰빰 빰빠바밤 빰빠바밤~ <라스트 제다이>. 끝날 것 같았던 스타워즈 시리즈는 여전히 계속될 것 같다. 나의 라스트 커밍아웃도 언제나 X번째 커밍아웃이 되고 만다. (다행히도?) 스타워즈 시리즈만큼 오래되진 않았지만 내 커밍아웃 스토리도 어언 15년이 넘었다.

“너 ㅇㅇ이랑 사귀니?”
중 3이던 나를 맥주 집에 데려가시더니 어머니께서 물으셨다. “네.” 가족에게 한 나의 첫 번째 커밍아웃이었다. 그 당시 나는 나를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했다. 애인에게 오빠 소리를 듣고 싶었지만 그 욕구를 드러낼 수 없었던 레즈비언. 나의 커밍아웃은 그 이후로 계속되었다. 커밍아웃은 때때로 마침표처럼 느껴진다. 선언적 의미를 가지기 때문일 수도 있고, 가족에게 레즈비언이라고, 혹은 트랜스맨이라고 커밍아웃 한번 하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길 바라는 기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의 커밍아웃은 언제나 쉼표이다. 특히나 가족에게 하는 커밍아웃에는 ‘내가 이런 사람이다’라는 선언적 의미와 동시에 내가 이런 사람임을 알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요구적 의미가 섞여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6년 전 포궁(자궁)암과 난소암으로 입원해있을 때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여자를 사귀어서 그렇게 아픈 거고 (그 당시) 애인과 헤어지지 않으면 너는 죽을 거”라고 하셨다. 그 때 나는 여전히 어머니의 호모포비아와 내 안에 학습된 호모포비아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나는 죄지어 마땅히 벌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메시지와 싸우고 있었다. 이렇게 나대로 살아도 괜찮은 것임을 나에게 그리고 어머니에게 설득하고 싶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나를 ‘받아줄 착한’ 남자를 구해서 결혼하기 바라는 부모님의 기대에서 나의 정체성은 매번 낯선 것이었다. 그렇기에 당신이 부정하든 어떻든, 암이 나를 죽이든 어쩌든 상관없이 나는 레즈비언이라고 계속 말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살아남았다.
감사하게도 그 과정에서 나는 내 성적지향에 덧붙여진 죄책감을 많은 부분 털어낼 수 있었다. 정말로! (소위) 부인과 암과 레즈비언 정체성 간에는 아무 상관이 없다! 말하면서도 어이가 없을 만큼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몸으로 받아들이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자니 오래 눌러왔던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오빠라고 불리고 싶었던 그 중3 레즈비언의 재등장. 수많은 자료들을 찾아보고 FTM 유투버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끊임없는 자기의심을 통해 결국 나는 인정하였다. 나는 시스젠더 여성이자 레즈비언이라기보다는 트랜스맨이며 헤테로섹슈얼 그 언저리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라는 것.
 폭주 기관차. 종종 나의 친구들이 나를 표현하는 단어이다. 하나에 꽂히면 결국엔 어떤 행동을 하고야 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빠른 시간 안에. 트랜스맨으로 나를 정체화하고나니 내가 평생 느끼던 불편감(dysphoria)의 정체를 알게 되었고 이를 해결하고자 곧장 진단서를 받고 새해가 되자마자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였다. 그 어떤 성호르몬도 거의 나오지 않는 상태로 5년을 살아서인지 호르몬의 작용이 생각보다 빨랐다. 목소리가 한 달 만에 급격히 낮아지기 시작해서 당장 설에 부모님 얼굴 뵐 것이 걱정되었다. 다시 한번 폭주기관차가 달렸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할거.’라는 마음으로 예상보다 훨씬 빨리 가족들에게 커밍아웃 하기를 결심했다. 호르몬 했을 때 내 몸에 미칠 수 있는 영향들에 대한 의학적 정보들,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이야기, 내가 나에 대해 느끼는 것과 부모님과 누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담은 편지를 준비했다.

“저 할 말 있어요.”
서울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 밤, 가족들을 불러 모았다. 사실 부모님 댁에 간 첫날부터 부모님께서는 어떤 변화를 눈치 채셨고 어머니께는 어느 정도 운을 띄어놓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모두를 불러 놓고 말하고 싶었다. 그 예전처럼 누군가 먼저 눈치를 채서,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는 상태에서 은근히 여자친구가 있음을 티 내는 식으로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커밍아웃 방식들이 나를 더 유령처럼 만든 것 같았다. 이번만큼은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명백하게 정확한 단어를 써서 그들이 외면할 수 없도록 하자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의학적인 트랜지션을 선택한 나로서는 필수불가결한 결정이기도 했다.
설 연휴 기간 내내 나는 긴장 상태에 있었다. 이렇게 ‘대놓고’ 말하는 것이 가족들에게는 처음이었으니까. 가정폭력 생존자라는 또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이런 결정이 어떤 폭력적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더욱 긴장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나를 믿기로 하였다. 또 타인을 믿기로 하였다. 주변에는 나를 지지해줄 소중한 사람들이 많았다. 손에 땀이 흥건한 채로 부모님과 누나에게 준비해간 편지와 자료들을 보여드렸다. 차마 말로는 제대로 전달하지 못 할 것 같다는 나의 예상은 적중하였고 편지는 정말이지 신의 한 수였다.

부모님께 나는 여전히 딸이다.
종종 조롱 섞인 말들을 들을 때도 있다. 그런 반응들이 나를 화나게 만들고 좌절하게 만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커밍아웃을 후회하지 않는다. 일단 그들은 내가 트랜지션 ‘과정을 살아가고 있음’을 알고 있고 여전히 나는 그들의 가족 구성원이다. 아직 트랜스젠더가 어떤 의미인지, 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해 혼란스러운 과정에 있으신 것이라 생각한다. 솔직히 나도 그러하지 않았는가? 그들에게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나만 트랜지션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족들도 함께 그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끊임없이 기꺼이 커밍아웃할 것이다. “어, 나 딸 아니고 아들인데?”라고. 이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비록 과거에 많은 아픔들을 지나왔지만 나에게 가족은 소중한 존재들이다. 나는 나의 인생에서, 내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그들이 함께하기를 바란다. 내가 부모님 댁에 두고 온 자료들이 언젠가 부모님 손에 들려있길 바란다. 이 글의 끝은 내가 부모님과 누나에게 썼던 편지의 일부로 대신하고 싶다.

“많이 당황하셨을 것이고 화도 나고 이해할 수 없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에게 너무나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트랜스젠더라니, 듣기만 해도 생소하고 나쁜 이미지들이 잔뜩 붙어있는 그런 정체성인데 내 딸이 미친 것 같고 잘못된 길을 간다고 생각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도, 저도 인간이고 정말 많은 고민을 통해서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하고 행복하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부모님과 언니 모두 저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릴 뿐 아예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믿어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저에게 물어봐 주세요. 제가 대답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답해드릴 수 있어요. 혹시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또 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가고 싶은 것인지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여러 자료들도 함께 준비해왔습니다. 언젠가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성소수자들이 많이 숨겨져 있을 뿐 세상에 정말 많이 존재하고, 그런 그들을 사랑하는 가족, 부모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렇게 용기를 내어 편지를 썼습니다. 당신들의 아들, 남동생으로 살아갈 기회를 저에게 주시길… 저의 트랜지션(성전환) 과정에 겪을 어려움과 설렘, 변화들을 함께 목격하고 지지해주시길…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부모님께서 저를 잘 못 이상하게 키워서 이런 것이 아니라는 것 알아주시길 바래요. 저는 그저 저이기를 선택하고 싶은 것일 뿐입니다. 가족들이 알던 제가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제 자신과 일치하는 삶을 알아가고 싶은 것이지요. 언제나 당신들의 자식이고 동생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벽장 너머에서, 다시 만난 세계

민성


  트랜스여성은 트랜스여성이라고, 아디치에의 말에 문득 외로웠다. 아빠는 당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누나는 자신이 퀴어 페미니스트라고 말했다. 아빠의 말을 믿은 적 없었다. 누나의 말을 의심한 적 없었다.

 아빠는 고개를 끄덕였다. 되짚으며 읊조린다. 트랜스여성은 트랜스여성이지. 아빠의 말이 흩어질까 누나가 주워담으며, 아닌 척 내게 흩뿌렸다, 트랜스들은 여성주의를 후퇴시키지, 근데 자기를 흑인이라고 느끼는 백인은 흑인일까, 묻는다, 흠뻑 젖을 때까지.

 말을 머금고 축 늘어진다. 누나는 엄마아빠에게 커밍아웃하지 못한 나를 갖고 놀듯 애매한 말들로 장난친다. "너에겐 중요한 문제겠지만." 놀란 나는 이불을 끌어 얼굴을 덮는다. 식은땀이 흐르며 등 언저리가 서늘해진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면 얼마쯤 기다려야 할까. 잠에 들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무거운 말들에 짓눌려 잠든 사이 창문을 열고 말들을 빼내주었다. 도망치듯 잠든 나를 깨워 고양이를 보여주었다. 앞머리를 정리해주며 나를 일상으로 돌려놓았다.

 벽장 속에 산다는 것은 어쩌면, `나를 혐오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일이다. 살아내는 일이다. 살아남는 일이다. 믿음은 이토록 무의미하다. 무의미한 일로 하루를 채워 다음 날은 다시 걸었다.

 어렴풋이, 잡히지 않아 답답했겠다. 엄마가 나를 "동성애 그 비슷한 거"라고 알고 있다고 어느 날 누나에게 들었다. 막연하다. "동성애 그 비슷한 거"라는 긴 정체성이 엄마에겐 얼마나 버거울까. 진부한 말이지만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딸이란 존재는 또 하나의 미지의 근데 세계였을 텐데, 이젠 좀 알겠다 싶어지는 스무 살이 지났는데 다시 또 큰 우주에 놓인 기분이 아닐까.

 벽장문을 만지작거렸다. 닫고 있기엔 애처롭고 열기엔 막막한 문장이었다. 나는 성소수자가 맞고, 그렇지만 아직 커밍아웃할 수 없다고 말한 이후의 일이었다.

 통금문제로 몇 달을 부딪혔다. 학내 퀴어 모임에서 운영진을 맡고 있다고 말하지 못했다. 나는 설명하지 못 하고 엄마는 이해하지 못 하는 밤이 수백 겹 쌓여 11월 말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가방 세 개를 채워 새벽 한 시에 집을 나왔다. 춥고, 무겁고, 비 오고, 정처 없었다. 친구의 친구가 흔쾌히 이불을 내어주었다. 친구의 친구에게 가방을 맡기고 다음 날은 민중총궐기에 갔다. 무지개깃발을 들고 사람들을 따라 걸었다. 다른 곳이 아닌, 광장에서 엄마와 마주친다면 더 서글프겠지, 마스크를 썼다. 깃발은 내리지 않았다. 두리번거렸다.

 집을 구하고 한 달 쯤 지나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통금을 지킬 수 없었던 이유를 적어 보냈다.

- 저는 그날 자정 넘어서까지 퀴어 모임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근데 엄마에게 말할 수 없더라고요. 네가 어떤 사람이든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거란 확신이 없었거든요.

 한참 지나 엄마에게 답장이 왔다.

- 엄마가 지켜줄게, 대신 싸워줄게, 사랑한다.

 자주 본가에 놀러 갔다. 본가에 갈 때면 드로즈와 바인더를 벗었다. 엄마는 내 긴 머리를 귀 뒤로 넘기는 걸 좋아했는데 머리를 짧게 자른 이후 내 머리를 잘 만지지 않았다. 자꾸만 내게 예쁘다고 말했다. 더 이상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길 수 없어 손을 댔다가도 주춤, 금방 손을 떼버리며 꺼내놓는 그런 짤막한 말 덩이에서 나는 불안을 읽는다.

 내가 (시스젠더) 레즈비언일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던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차라리 내가 (시스젠더) 레즈비언이길 바라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남자아이 얘길 할 때면 안심하는 듯 미소 짓던 엄마가 어느 순간부터는 그 아이 얘기에 표정을 굳혔다.

 내가 틀어준 <꿈의 제인>을 보는 내내 엄마는 영화에 집중하지 못 하고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다. 내가 왜 그 영화를 다운받아주었는지 생각하다 두려워졌을까. 그러나 몇 달 후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를 같이 봤던 날, 엄마는 트랜스젠더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래, 성기 같은 건 아무 의미도 없는 걸.' 그 말에 벽장 문을 빼꼼 열고 하냥 엄마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집 어딘가, 누나와 아빠가 서지 않은 자리에 서서, 어쩌면 엄마는 일찍이 아들의 설 곳을 지켜주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혐오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기대며 살아가는 일은 외롭고 위태로웠다. 나는 엄마가 만든 안전한 자리를 몇 번이고 어루만졌다.

 이곳은 다시 만난 세계다. 어두운 벽장에서 나와 다시 만난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다. 내가 언제나 그대로였다는 걸 이해해줄 때까지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처럼 알아가고, 친해져야 한다. 그러는 동안 나는 쉼 없이, 끝없이 이야기할 것이다. 인사를 건네고, 관계를 재구성하다 보면 스치는 표정에서, 말투에서, 몸짓에서 나를 알아보라고, 그럼 재구성한 것들을 옛날 그것들과 이어가자고. 엄마는 나와 텔레파시가 통한댔으니까, 나를 금방 알아보라고.



부모의 입장에서 

라라


 

  얼마 전 미국에서 트랜스젠더 의료권에 대한 연구를 하고 오신 교수님과 통화한 일이 있었다. 트랜스잰더를 위한 키즈 센터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셨는데, 4세 아이부터 방문해 긴 기간 동안의 상담과 관찰기간을 거치고, 16세(호르몬 투여 시기도 14세로 낮추는 논의가 있다고 한다) 이전에는 2차 성징을 늦추는 요법을 통해 2차 성징에 의한 젠더 디스포리아(성별위화감)를 최소화하고 이후에 자신이 원하는 성호르몬을 맞음으로 온 가족이 행복한 모습으로 트랜지션 과정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통화 후 mtf트랜스젠더인 큰아이의 4세 때의 모습과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어느 날은 목욕을 시키기 전 소변을 보게 하려고 변기에 앉혔는데 성기를 잡아 떼려는 듯한 행동을 했었다. 나는 유아 성희의 한 가지쯤으로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같은 해 늦가을 이모의 결혼식 날 새벽 온 가족이 가까운 온천에 갔는데 큰애는 아빠와 함께 남탕 목욕탕에 보냈는데 한사코 거부하는 아이 때문에 남편도 목욕을 못하고 돌아온 일도 있었다. 한두 살 더 자란 시절에 이웃집에는 또래 남자애들이 있었고,골목에서 포켓몬 딱지치기를 하고 놀았다. 큰애도 함께 놀았으면 싶어 함께 놀기를 권하니 이웃집 한 아이가 “여자 아니었어요? 여자인줄 알았어요”라 했다. 짧은 커트머리에 남자 아이들이 입는 옷을 입고 신발을 신었는데도 그렇게 말하는 게 의아했었다. 큰아이는 18세 생일이 지나자마자 이름을 바꾸었다. 여성적이고 예쁜 이름이었다. 그런데도 나와 가족들은 큰애의 정체성 때문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젠더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런 의문도 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청소년기에 겪은 큰아이의 성별위화감으로부터 오는 고통은 오롯이 혼자서 겪어 내야만 했다는 것이 지금도 안쓰럽고 마음이 아프다.

 일찍부터 학교 공교육에서 다양한 젠더 교육이 이루어져서 몰라서 도움을 제때 주지 못하는 일과 학교에서 일어나는 놀림과 차별 등으로부터 보호해야 하겠다.

 어쩌면 큰아이의 성정체성을 본인의 커밍아웃을 통해 알았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좀더 갈등하는 시간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되돌아 생각해보면 너무나 가슴이 아픈 일을 통해 알게되었고 너무 놀란 나머지 바로 인정하고 도움을 강구하는 일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그러나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성소수자 부모모임’, ‘트랜스젠더 부모 모임’에 나가서 조금씩 배우고 다른 부모님들과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내게는 많은 위로와 고립감의 해소가 되었고,경험과 지식의 공유를 통해 불안감을 떨칠 수도 있었다.
 큰애를 ‘아들’에서 ‘ 딸’로 바꿔서 부르게 된 것도 모임에서의 다른 회원의 지적 때문이었다. “왜? 어머니는 계속 아들이라는 말을 사용 하냐”고 했다 ,나는 무언가로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과 함께 깨달음이 왔다. 그날 이후로 우리 가족은 큰 아이를 ‘딸’로 ‘언니’로 인정하고 그렇게 불러주었다. 아이도 참 기뻐했다. 딸이라고 부르다 보니 딸이 되었다. 가족들 앞에서 힘들어 하던 치마를 입는 등의 젠더 표현도 편하게 하게 되었다.

 1년이 넘는 동안 호르몬을 맞으면서 트랜지션을 위한 수술 준비도 해 왔었는데 2015년 가을 비수술을 선언했다. 그것도 부모모임 정기모임에 참석해서 였다.
 트랜스잰더라면 mtf나 ftm으로 정체화 하고 의료적 트랜지션을 하고 성별정정을 한 후에 일반인처럼 산다고 생각했던 생각이 깨지기 시작했다.
트랜스젠더의 자기 신체에서 느끼는 위화감의 정도에도 차이가 있고, 수술을 원하지 않는 비수술 트랜스젠더와 젠더퀴어 논바이너 리등 좀더 다양한 젠더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어 큰아이의 정체성을 내가 알고 있는 틀에 맞춰보려는 일을 멈추고 그대로 원하는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세상에는 남녀로 구성된 성별이분법을 기초로 결혼 제도나 사회의 거의 모든 법이나 제도들이 마련되어 있고 사람들의 생각도 대부분 그렇게 고정되어 있어서 그 안에서 얼마나 불편한 생활을 할지 눈에 그려지기에 참 마음이 편치는 않다. 성별정정 요건에 맞추어 수술할 생각이 없는 사람은 평생 자기의 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가게 되는 현실도 답답하게 느껴진다.

 큰아이 덕분에 하게 된 젠더의 다양성에 대한 사색들은 어릴 때부터 돼지라는 별명을 들으며 갖게 된 나의 외모에 대한 낮은 자존감도 치유해 주었다. 바비처럼 날씬하고 갸름한 얼굴을 갖고 예뻐야 한다는 ‘여성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버리게 해주고, 세상을 바라보는 편견들도 조금은 사라져 경제(가난), 사회(비정규직노동자로서 갖는 )적 상황에서 오는 전체적인 자기비하를 벗어나 좀더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

 제대로 된 정보를 누구나 배워서 세상에 성소수자 혐오가 없어지고 나아가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가 없어지기를 보다 많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 다름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 커밍아웃이 지금처럼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닌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1회 제주 퀴어퍼레이드에도 다녀왔다.

가족이라면

다니


이 글은 한 트랜스젠더 활동가로서의 관점입니다. 트랜스젠더 삶 안에 존재하는 수 많은 경험들을 하나에 통일된 글로는 묘사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의 인생은 다양하고 공통점이 있음에도 차이점들도 분명 있습니다. 이 글 하나를 넘어, 수 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주세요. 트랜스젠더 가족에게는 무엇보다도 당사자성을 존중해주는 게 맞습니다.  


  트랜스젠더 당사자에게는 커밍아웃 후 모든 일상은 망가지고 수 많은 변화들로 시련을 받습니다. 친했던 친구들과도 멀어지고, 직장이나 학교에서의 미래가 불확실해지고, 밖에 나가는 것조차 두렵고 힘들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당사자에게 가장 큰 힘이 될 수 있는 건 가족에 지지와 응원입니다. 물론 가족에게도 트랜지션에 과정은 쉬울 수만은 없습니다. 사랑하던 누군가가 바뀌는 모습이 어색할 수도 있고, 늘 불러왔던 이름을 이젠 못 부르는 게 슬플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사자는 아마도 많은 각오를 염두하고 커밍아웃을 했을 것입니다. 트랜지션을 원한다면 열심히 고민하고 끝없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젠 가족이라면 사랑하는 자식, 동생 언니, 누나, 형, 오빠, 부모님에 새로운 모습과 정체성을 받아들여 주세요.  


커밍아웃을 했어요
  가족으로서 당사자의 커밍아웃은 당황스럽고 혼란스럽기 마련입니다. 생각지도 못했을 수도 있고 뭔가 다르다는 짐작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커밍아웃한 후 어떤 반응을 보여줘야 될지도 많이 고민되기도 하지요. 당사자가 당신에게 커밍아웃을 한 건 신뢰하고 존중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만큼 반응에 따라 상처받기 쉬운 순간이기도 하죠. 그럼 어떻게 하면 당사자와의 커밍아웃을 잘 헤아려 나갈 수 있을까요?


우선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세요. 분명 쉽게 이야기하는 건 아닐 거예요. 당사자에 말을 믿어주세요. 많은 생각과 각오를 먹고 한 커밍아웃일 거예요. 무엇보다도 당신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겨 더욱 깊은 인연을 맺고자 커밍아웃을 한 걸 것입니다. 그러니 ‘그냥 잠시 혼란스러운 거야’,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이런 말은 오히려 역효과를 나타내고 당사자 마음에 상처를 남길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다 이해하기는 어려울 수 있어요. 그리고 물론 당황할 수 있어요. 하지만 지나치게 부정적이거나 걱정하는 태도보다도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부탁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며칠 동안 생각과 감정을 다듬고 그 후에 다시 이야기하면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다만 없었던 일로 하지 말아주세요. ‘시간을 두면 생각이 바뀔 거야’ 라는 생각에 이 주제에 대해 얘기를 외면하고 무시하지 말아주세요. 커밍아웃의 과정은 이야기를 꺼낸 그 시간 안에 끝나는 게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야 합니다.

 초기에는 이름이나 호칭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당사자가 원하는 이름과 호칭으로 불러주세요. 새 이름 부르는 것을 열심히 연습해야겠죠? 만약 성별 호칭들이 (오빠, 누나, 딸, 아들,… ) 아직은 어색하다면 당사자가 원하는 이름을 불러주시고 자주 불러주세요. 만약 이전 이름을 부른다든가 잘못된 호칭을 사용했다면 얼른 사과를 하고 실수를 고쳐주세요. 핸드폰에도 연락처 이름을 바꿔두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앞으로 가족으로서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물어봐 주세요. 이러면 지지한다는 의향도 전달되고 앞으로 같이 나아갈 방향도 그려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르는 게 있으면 당사자에게 질문해주세요.

 시간이 지난 후 감정을 나누세요. 분명 가족으로서의 의견과 감정도 인정해주고 들어주어야 합니다. 서로의 감정을 숨기지 말고 같이 차근차근 얘기해 나가면서 더욱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과 서로의 입장을 들으려는 마음이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트랜스젠더의 커밍아웃은 당사자 혼자만이 겪는 일은 아닙니다. 가족으로서도 자식, 형제, 자매, 부모가 이제는 이렇게 정체화하고 이렇게 살아간다는 사실은 숨기지만은 못합니다. 친척들에게는 물론, 동네 지인들과 친구들에게 가족이 당사자에 커밍아웃에 대해 언급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부정적인 반응들과 태도에도 가족들 또한 맞서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며
커밍아웃 후로 이어지는 트랜지션 과정에는 많은 변화들이 시작됩니다. 모습에 변화가 있을 수 있고, 젠더 표현이 예전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특히 의료적인 트랜지션을 택하시는 분들 중 테스토스테론을 복용하는 분들은 목소리도 낮아지고, 에스트로겐을 투여하시는 분들은 가슴도 나오곤 합니다. 이로 인해 트랜지션 초기에는 밖에서는 원치 않게 사람들에 시선이 주목되고 같이 다니는 것만으로도 거북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원하는 젠더로 패싱이 되기는 힘듭니다. 남들에게는 젠더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이런 시기일수록 더욱 더 지지해주고 응원 해주어야 합니다. 작지만 당사자에게 크게 느껴질 수 있는 지지의 행동들로 응원을 보이면 어떨까요?

 트랜지션의 첫 걸음은 당사자에게도 어색하고 두려울 겁니다. 아무리 자기가 원하는 표현을 찾아가는 거라지만, 처음에는 당사자에도 모든 게 새롭고 낯설 수 있습니다. 당사자가 트랜지션을 할 때에 그의 젠더 표현에 맞는 무언가를 선물하는 것도 그를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특히 성별 이분화된 화장실 같은 공간은 힘들기 마련입니다. 당사자의 패싱이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할 때, 공공장소에서 마땅히 갈 수 있는 화장실 찾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가족으로서 같은 성별이라면 같이 화장실을 가는 것 역시 당사자에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과 같은 성소수자 앨라이(ally) 공동체의 모임을 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다른 가족분들의 경험을 들으며 공감하고 정보도 공유는 물론, 새로운 친구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긍정적인 태도를 갖추세요. 당사자와 젠더 여정을 함께하며 힘든 일도 겪을 수 있지만 재미있는 일, 행복한 일들도 그만큼 많을 겁니다. 당사자가 원하는 젠더를 찾아가면서 자신감을 얻는 모습, 트랜지션을 통해 가족으로서 성장하는 서로의 관계, 이런 일들 안에서도 즐거움은 많습니다.  


스스로를 정체화하면서 자신에 성별을 처음부터 되찾아가야 하는 시기에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에게 가족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가족은 집이고 가족은 의존할 기둥입니다. 함께 사소한 일상을 나누면서, 정체성을 떠나서 그냥 하나의 가족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면 어떨까요?

 <가족> 특집을 마무리하며

리나


 “가족이 아니라면 그 어떤 쓸 만한 소재도 생각해낼 수 없다. 가족은 다른 모든 사회 영역의 상징이다.”


  작가 애너 퀸들런이 했던 말입니다. 퀸들런의 말처럼, 가족은 트랜스젠더에게도 역시 다양하고 복잡한 의미를 지닙니다. 성별 정정 등 법적인 영역에서 가족의 존재는 정정 여부에 크나큰 영향을 줍니다. 트랜스젠더의 재생산권은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어떻게 가족을 만들지에 대한 가족구성권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커밍아웃을 하고 ‘트랜스젠더인 나’로서 어떻게 가족에게 다시 다가갈지는 당사자에게 있어서 언제나 큰 고민이 되겠지요. 트랜스젠더인 가족을 받아들이는 입장도 커다란 파도를 마주하고 헤쳐 나가는 기분일 것입니다.


 이번 『조각보자기Vol.2』 특집은 트랜스젠더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존재가 가진 여러 의미에 대해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결혼, 가족, 성별정정 등 트랜스젠더와 관련된 법률의 영역을 되짚어보고, 트랜스젠더의 가족구성권, 재생산권 등 트랜스젠더가 가족을 만들 권리에 대해 말했습니다. 벽장을 나와 가족에게 트랜스젠더로서 커밍아웃하던 순간들, 또 트랜스젠더인 가족을 받아들이던 순간의 기억을 듣고 더 나아가 트랜스젠더인 가족과 함께 하는 법에 대해 미약하게나마 조언을 담아보려 했습니다.


 이번 특집이 가족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공감이, 누군가에게는 조언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가족과 못다 했던 이야기들을 함께 풀어가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 전근넷을 만나다 : 전환치료근절운동네트워크 인터뷰

_희정



  2015년, LGBTQ 커뮤니티 내에서 오랫동안 다들 알고 있었지만 수면에 잘 떠오르지 않았던 한 가지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트랜스젠더 당사자이며, 가족의 강요로 폭력이 수반된 전환치료를 받은 연희 님의 이야기[1]를 알게 된 것이죠. 이렇게 한 개인의 사건이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있을 수 있는 사건을 통해 전환치료라는 행위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낀 여러 단체들이 모여 만들어진 자리가 ‘전환치료근절운동네트워크(이하 전근넷)’입니다.
 2017년 한 해, 성소수자 상담경험 실태조사를 비롯한 활발한 활동을 해온 전근넷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리고 ‘전환치료란 정확히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전환치료의 위협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안전할 수 있을까?’ 그런 궁금증과 전근넷에 대한 호기심을 담고 전근넷의 활동가 미묘 님을 만나보았습니다.

 
- 전근넷이 어떤 단체인지 간략하게 설명 부탁드릴게요.
- 전근넷은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모든 종류의 전환치료를 근절하기 위해 법, 심리상담, 종교, 건강, 페미니즘 관련 활동단체들 및 성소수자 인권단체들 등 성소수자를 향한 전환치료를 주제로 다양한 단체들이 모인 네트워크예요. '전환치료는 폭력이다.'를 기치로 걸고 전환치료 근절을 위해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어요. 현재 저와 같은 개인 활동가를 포함해서, 로뎀나무그늘교회,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감리교 퀴어함께, 건강과대안 젠더건강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성평등과정의분과, 섬돌향린교회, 장애여성공감,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한국성폭력상담소가 함께 하고 있어요(2018년 3월 기준).

 

- 지금 인터뷰에 응해해주시는 미묘 님께서는 전근넷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계신가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 저는 개인 활동가 자격으로 전근넷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현재 전근넷은 법, 심리상담, 의료 및 보건, 청소년, 여성, 종교 등 전환치료 관련 의제에 대해 다방면에 걸쳐서 접근하고 있어요. 저의 경우 현재 상담기관들에서 상담심리사로 일하고 있기도 해서, 전근넷에서 주로 심리상담과 관련된 부분으로 전환치료 이슈에 접근하며 참여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성소수자 상담경험 실태조사나 전환치료 근절 가이드북 제작 등에 참여했고, 상담 현장에서 접하는 심리상담과 관련된 전환치료 현안을 전근넷에서 논의하거나, 전환치료 피해자 심리지원에 대해 자문하기도 해요.

  

- 독립된 단체가 아닌 여러 단체들이 연대하는 네트워크로서 활동하는 의미가 있나요?
- 연희 님 사건을 통해 전환치료 이슈가 사회적 문제로 드러나게 되면서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을 비롯한 여러 단체들이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했고, 전환치료 피해에 대한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된다는 합의점에서 출발하여 2016년 3월 전환치료근절운동네트워크가 구성되었죠. ‘네트워크’라는 형태에는 연대적 의미도 물론 있지만, 전환치료에 대해 단순히 어느 한 영역에서만 고민할 게 아니라 다양한 전문 영역에서 통합적으로 접근하려는 목적도 있어요. 또한 전환치료와 관련하여 성소수자 공동체 내에서 다양한 경험과 고민들을 발굴하고, 전환치료 피해에 대한 사례수집 및 대응을 진행하는 등 공동체적 접근을 위해서 ‘네트워크’의 형태로 힘을 모으기 위함도 있어요. 


- 전환치료는 무엇이고, 어떠한 예가 있을까요?
- 성소수자 상담경험 실태조사를 진행하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탈동성애’ 선전물은 접한 적이 있지만 정작 ‘탈동성애’ 시도, 즉 전환치료라는 용어에 대해선 잘 모르신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전환치료(‘conversion therapy’ 혹은 ‘reparative therapy’)란 성소수자로서 정체성을 비성소수자로, 개인의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성별 표현을 바꾸는 걸 목표로 시도하는 모든 치료적 행위를 뜻해요. 사람들은 혐오나 차별의 극단적인 형태의 하나로 전환치료를 많이 떠올리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으로 인한 차별부터 극단적인 형태로 성소수자 당사자에 대한 교정 강간이나 사람의 정체성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행위를 주로 떠올리죠. 그리고 영화나 TV 프로그램 같은 미디어에서도 전환치료는 이런 형태로 많이 나오고요. 특히 물리적인 폭력이 동반되는 형태가 흔하고 한국 사람들도 주로 그런 방식을 생각하는 것 같아요.

 
- 그러면 실제로 전환치료를 받고 있어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네요.
- 전환치료의 범위는 정말 넓어요. 방금 말씀드린 물리적인 폭력이 동반된 안수기도나 집단 폭행, 강간과 같은 형태가 있다면, 물리적 폭력이 없어서 사람들이 비교적 가볍게 여길 수 있는 형태의 전환치료도 있어요. 예를 들어, 일반적인 심리상담에 받고 있는 도중에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성소수자로서 정체성을 바꾸는 것을 상담 목표로 제시하는 것이나, 이를 합의하거나 합의하지 않거나 그 목표로 상담을 진행하는 것도 모두 전환치료이지요. 또 상담 과정에서 성소수자 정체성에 대해 부모님과의 관계나 양육 태도를 원인으로 제시하며 설명하려고 하거나, 내담자에게 이성에 대한 관심을 가져보라고, 태어난 성별은 소중한 것이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보라고 제안하는 것도 전환치료에 포함되지요. 그리고 성소수자 당사자가 본인의 정체성에 대해 커밍아웃을 하거나 정체성 관련 고민을 얘기했을 때 거기에 대해서 부정하거나 의심하는 것 역시 전환치료적 시도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도 있죠.

 
- 전환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전근넷에 도움을 요구한다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저희에게 피해자분들이 직접 연락을 주시기도 하고 당사자분이나 지인분들이 도움 요청을 간접적으로 할 수도 있어요. 현재 전근넷은 24시 핫라인처럼 즉각적인 대응을 해드리긴 어렵지만, 연락을 주시면 우선 저희는 최대한 신고자분께 어떤 종류의 개입이 필요한지 파악하는 걸 우선으로 하고 있어요. 가령 피해자 분이 입원 치료를 강요받거나 감금당할 위험이 있는 상황에 있다면 우선 피해를 받는 공간에서 분리되어 나와서 물리적 폭력에 대한 법적인 대처를 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방법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외에도 현재 전환치료 피해를 받고 있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전환치료 경험으로 인한 트라우마 등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도록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는 기관으로 연계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성소수자 친화적인 종교단체 등 새로운 성소수자 공동체를 연결해드리는 등 해당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고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이와 관련해서 전근넷이 발간한 자료로 『전환치료 안 사요!』라는 전환치료 근절 가이드북이 있어요.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본인의 안전을 위해서 단호하게 대처를 하시는 게 중요해요. 가족이나 주변인들이 전환치료 시도를 하려고 하거나 권할 때 거절하는 게 중요해요. 물론 쉽지 않을 수 있어요. 또한 상대가 전환치료로 종교적인 의식 혹은 상담이나 약물치료와 같은 전문성을 빙자한 비전문적인 행위를 제안하거나 강요할 수 있는데 먼저 스스로 이런 행위가 비윤리적인 행위라는 것을 먼저 아셔야 하고요. 일단은 거부를 하시는 게 제일 중요하고, 만약 물리적인 구타를 동반할 경우엔 경찰에 신고하는 방법도 있고요. 그렇게 대응하는 것이 여의치 않을 수도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전근넷을 통해 연계 받아서 법률자문을 받아보시는 것도 가능합니다.

 

 또 잘못된 정보를 기반으로 한 전환치료 선전을 접하기 쉽다 보니 호기심에, 아니면 스스로 너무 힘드니까 ‘내 정체성을 바꾸면 삶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기 쉬워요. 하지만 전환치료는 학술적으로 근거가 없고, 정신의학계와 심리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비전문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들이라는 것, 그리고 때로는 물리적 폭력이 동반되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일들이라는 것을 기억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 폭력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있을 수도 있는데, 그 해답이 전환치료가 될 순 없다는 것을 아시는 것 또한 중요해요. 분명 쉬운 일은 아닐 수 있어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있을 때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여러분 자신의 안녕을 위해 스스로 온전한 ‘나’를 지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꼭 알아주셨으면 해요.

 


-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전환치료가 다른 전환치료 케이스와 다른 점이 있는지요? 혹은 전환치료와 트랜스젠더 관련 이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 트랜스젠더와 전환치료에 대해서도 개인의 성별 정체성을 바꾸려고 하는 시도가 여러 가지 형태로 일어날 수 있을 듯해요. 더군다나 성별 정체성 같은 경우에는 패싱의 문제가 있고, 가시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서 위협감이나 공포가 더 클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예를 들어, 본인 스스로의 젠더에 대해서 상담에서 이야기할 때, 상담자가 내담자의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그 사람의 지정된 성별을 강화시키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등의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요. 주변에서도 상대방의 성별을 존중하지 않고, 그 사람의 법적으로 지정된 성별로 행동할 것을 계속 요구를 할 수 있고요. 그런 면에서 생각했을 때, 트랜스젠더들에게 전환치료는 좀 더 일상적인 위협 혹은 항상 노출되어 있는 환경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미국심리학회나 미국상담학회에서 전환치료를 논할 때 언급되는 것은 주로 성적 지향을 바꾸려는 시도였어요. 하지만 전근넷은 연희 님 사건으로 결성되고 시작한 만큼 그 대상이 단순히 성적지향에만 한정해서 접근하고 있지 않아요. 트랜스젠더의 전환치료는 가시화되어 있진 않은데다 아직 실태조사나 연구가 많이 안 되어 있어요. 트랜스젠더를 둘러싼 사회적 사건들이 단순히 폭력의 범주에서만 다뤄질 뿐 전환치료로 다루고 있진 않은 것 같아요.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사례가 성소수자 공동체 차원에서 드러나서 알려지고, 사회적인 의제로서 적극적으로 가시화할 수 있길 바라요.

 

- 그러면 트랜스젠더 당사자나 지지자들이 전근넷과 직간접적으로 상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 무엇보다 전근넷을 많이 홍보해 주시고, 주변에 널리 알려주셨으면 해요. 사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전환치료’란 표현을 굉장히 낯선 개념으로 느끼는 경우도 많아요. 커뮤니티에서는 아직 전환치료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고요. 게이 커뮤니티, 레즈비언 커뮤니티도 그렇긴 하지만 트랜스 커뮤니티 안에서는 전환치료를 SRS, 트랜지션과 관련된 표현으로 오해하는 분들도 있어요. 아마 ‘전환’이란 단어 때문에 성전환을 연상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요. 그 외에도 전환치료에 대한 개념을 많은 분들이 모르는 것 같아요. 전환치료 이슈에 대해서 구성원들 간에 많은 대화가 진행되고 지속적으로 회자되면 좋을 듯하고, 또 전환치료에 대해 알고 계신 분들은 주변에 관련 이슈들을 많이 알려주시면 고마울 것 같아요. 또 전근넷 활동을 지켜보고 앞으로도 많은 관심 가져주셨으면 해요. 아직 후원계좌가 없긴 하지만 후원해주신다면 후원도 언제든지 환영이에요. [웃음]

- 앞서 말씀하신 가시화와 관련해서 생각하면 될까요?
- 가시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들은 보통 트랜스포빅, 지금은 트랜스포비아로 다 명명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것이 당사자에게는 성별에 대해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원치 않은 성별을 강요 당하고 자신을 바꾸려고 하는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거예요. 스스로 느끼든, 느끼지 않든 그런 형태의 시도 자체가 전환치료 시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끝으로, 『조각보자기 Vol.2』를 보시는 분들께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 이 책을 보는 분들은, 성별불편감(dysphoria))나 트랜지션에 대한 고민 등 다양한 고민을 하는 분이 많을 것 같은데요. 패싱과 같은 일상생활 속에서 본인의 성별을 둘러싼 어려움과 고민이 있으실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가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명제는 본인의 성별은 본인이 제일 잘 안다는 것, 본인이 느끼는 성별이 본인의 진실이라는 것, 그걸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이건 가족, 친구, 그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어요. ‘Your gender is your truth.’ 한 외국 사이트에서 자신의 성별에 대해 고민하는 트랜스젠더 당사자에게 답변자가 쓴 인상 깊은 문장인데 꼭 마음에 새기셨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진행하며, 한 마디 한 마디 신중하게, 그리고 깊게 고민하며 대답하는 미묘 님의 모습을 보며, 전환치료근절운동네트워크가 걸어온 과정, 그리고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반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 온 과정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이 전환치료에 관심을 갖고, 더 많이 느끼고, 나에게 다가올 수 있는 위협 속에서 덜 아프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전환치료근절운동네트워크의 자료는 연대하는 단체를 통해 배포되고 있으며, 아래의 이메일로 요청하셔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전환치료근절운동네트워크

 

Twitter : https://twitter.com/LGBTQ_SOS

Facebook : http://www.facebook.com/lgbtqsos/

E-mail : lgbtqsos@gmail.com


[1] 전환치료근절운동네트워크의 설립 계기가 된 연희 님 사건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를 참조 : 이은혜, '트랜스젠더, 때리면 치유되나요?', 『조이앤뉴스』, 2016년 3월 2일. (링크 :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2241 )

 


패닉 방어 전략 : 트랜스포비아와 이성애 규범성

리나


· ‘홧김에 살해’당하는 트랜스젠더

 

"박씨는 지난 23일 오후 6시 30분쯤 대구 남구 봉덕동의 한 여관에서 애인 김모씨와 말다툼을 벌이다 주먹을 마구 휘둘렀고, 이 과정에서 김씨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중략] 경찰 관계자는 "박씨가 3년 전부터 만나온 애인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알고 너무 화가나 이런 짓을 저지른 것 같다고 진술했다"[1]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에서, 법정에 선 가해자가 자신이 저지른 행위의 근거를 피해자의 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에 대한 정당방위라 주장하는 것을 패닉 방어 전략(panic defense)이라 한다. 패닉 방어 전략은 말 그대로 가해자가 성소수자-특히 게이와 트랜스젠더를 상대로 폭력을 휘둘렀던 자신의 행위를 방어하기 위한 전술이다. 2015년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에서 펴낸 『판결문과 사례 분석을 통해 본 성적 소수자 대상 ‘혐오 폭력’의 구조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패닉 방어 전략에서 가해자는 성소수자인 상대방의 성적인 접근이 자신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그로 인해 패닉 상태에 빠졌고 결과적으로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2]

2010년 대구에서 한 트랜스여성이 살해당했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트랜스젠더란 것을 알게 되자’, ‘너무 화가 나서 홧김에’ 연인을 살해하게 되었다 주장한다. 당시 대부분의 언론 보도는 위에서 인용한 기사와 동일한 논조로 해당 사건을 다루었다. 평범한 남성이 트랜스여성을 만나 얼마나 놀랐고 우발적인 살인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주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받아 적어 보도했다. 패닉 방어 전략의 전형적인 서사 중 하나다.

이성애자(물론 시스젠더임을 전제로 한) 정체성 혹은 이성애적 관계를 가장 올바르고 유일한 성 규범으로 인식하며, 그 외의 것은 모두 규범에서 벗어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이성애 규범성(heteronormaltivity)이라고 한다. 패닉 방어 전략은 이성애규범적 질서를 근간으로 한다. 가해자인 시스젠더-이성애자인 남성들이 피해자로부터 느꼈다고 주장하는 위협은, 자신의 이성애-남성 정체성에 가해진 위협을 말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키멜은 “남성성이란 ‘여자 같이 보이지 않는 데'서 만들어진다(being a man means 'not being like woman')”고 말했다. 이성애규범적인 사회에서는 여성을 욕망하고 소비하는 것이 곧 남성성으로 연결된다. 자신의 이성애자-남성 정체성을 증명하고자 하는 이들은 오로지 이성애적 관계 내에서 여성을 소비함으로써 스스로의 남성성을 재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여성을 욕망한다’는 곧 정체성으로 이어지기에, 이성애자-남성에게 내가 욕망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욕망 당하는 객체가 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따라서 남성 동성애자는 이성애자-남성 정체성에게 크나큰 위협이다. 남성 동성애자는 기존에 이성애자-남성이 여성을 소비하던 방식으로 다시 이성애자-남성을 소비하려 드는 존재이며 소비 당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나는 더 이상 남성성을 증명하기 어려워진다. 이성애규범적인 사회 내에서 이성애자 남성의 목표는 ‘동성애자처럼 보이지 않기’에도 있다.

2013년 뉴욕 길거리를 걷던 아일런 네틀스는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던 남성에게 살해당했다. 가해자 제임스 딕슨은 아일런 네틀스를 길거리에서 희롱하다가 네틀스가 트랜스여성이란 걸 알게 되자 격분하여 네틀스가 죽을 때까지 폭행했다. 딕슨 또한 법정에서 트랜스 패닉 방어 전략을 사용했는데, 자신의 친구들이 “트랜스젠더를 꼬시려 했다“고 자신을 놀리자 “바보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I just didn't want to be fooled)"라고 진술했다.[3]

트랜스 패닉 방어 전략에서, 트랜스여성의 젠더 표현과 외형, 성별 정체성은 고려되지 않는다. 설사 여성으로 패싱되었다 하더라도, 알고 보니 ‘생물학적 남성’이기 때문에, 트랜스여성은 남성으로 간주된다. 트랜스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는 ‘남성과의 원하지 않는 성적 접촉’을 겪게 되었고 동성애자로 보일까 두려워하는 심리에 동정과 공감을 이끌어내려 한다. 오히려 ‘자신의 본래 성별’을 감추려 한 트랜스여성을 가해자로 상정한다. ‘그녀(she)’가 알고 보니 ‘그(he)’였을 때 가해자는 어쩔 수 없이 자제력을 잃게 된다는 논지다.[4]

 

· 동성애는 반대해도 트랜스젠더는 괜찮다?

 

이성애 규범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는 정상성과 영영 동떨어진 존재로만 남아있게 되는 걸까. 아이러니하게도 ‘트랜스젠더만 허락하는’ 성소수자 혐오도 존재한다. 지난 대선에서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의원은 성소수자에 대한 의견을 질문 받자 이렇게 답했다.

 

“나는 그게, 거 생각이 좀 달라요. 그거(동성애)를 소수자 인권 측면에서 보시는 분도 있지만, 그게 하늘이 정해준 것을… [중략] 성전환 수술을 하고 이러면 별개예요. 그렇게 하지 않고, 동성애자는, 나는 그거 아니라고 봅니다.”[5]


동성애는 반대하지만, 트랜스젠더는 성전환 수술을 ‘완전하게’ 하고 온다면 여성/남성으로 간주해 줄 수 있기에 허락한다는 논지다. 이런 이들에게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은 다른 개념이고 트랜스여성 레즈비언, 트랜스남성 게이도 존재한다는 것 까지 이해시키는 것은 지금 단계에서는 힘들어 보이니 일단 넘어가도록 하자.

‘수술’에 대한 집착이 눈에 띈다. 트랜스 패닉 방어 전략에서도 가해자가 피해자와 성관계를 맺으려고 하다 피해자에게 소위 말하는 음경으로 불리는 형태의 외부 성기를 발견하곤 충격을 받아 패닉 상태에 빠졌으며 그 상태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즉 이성애-남성성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형태가 가장 익숙한 형태다.‘[6]

이를 고려했을 때 SRS(Sex Reassignment Surgery)를 비롯한 모든 의료적 조치를 ‘완전하게’ 마친 이성애자 트랜스젠더는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고 안전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한 때 SNS상에서 ‘수술 다 한 트랜스젠더는 시스젠더나 마찬가지다’라는 라는 말이 갑론을박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자신의 성별 정체성대로 완전히 패싱되고, 할 수 있는 의료적 트랜지션을 모두 진행했으며 법적인 성별 정정까지 완료한 트랜스젠더를, 그 정도면 이 사람은 트랜스젠더인지 아무도 모를 텐데, 왜 굳이 스스로를 트랜스젠더로 부르며 살아야 하냐는 뜻이다. 성소수자를 소재로 작품을 그리던 한 웹툰 작가 또한 한 때 동성애자는 결혼할 수 없지만 트랜스젠더는 법의 보호를 받는다[7]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위에 언급한 모든 사례에는 트랜스젠더는 소위 말하는 정상성에 편입할 수 있는 존재다-라는 시선이 녹아 들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랜스젠더를 정상성에 머물도록 해 주었던 그 허가는 언제든 철회될 수 있다. 트랜스젠더는 한때 사회에서 성에 대해 지정한 규범을 넘어섰지만, ‘완전한 수술’같은 조건 하에 다시 그 안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언제까지나 이성애 규범성이 임시적으로 허락하는 선에만 머무르게 된다.

JTBC는 2016년 한국, 홍콩, 일본 등을 오가며 모바일 메신저를 활용해 성 판매를 한 태국인 일당과, 이들에게서 성을 매수한 한국인 남성 2명이 체포된 사건을 〈태국인 트랜스젠더에 홀려〉 라는 문구와 함께 보도했다.[8] ‘성전환 사실을 숨기며 1시간에 20만원의 화대를 받았다’라는 보도에서, 성 매수 남성은 트랜스젠더에게 홀린 피해자처럼 묘사된다. 비-퀴어 남성과 트랜스젠더 여성이 같은 범죄에 연루되었을 때, 우리 사회에 속하지 않는 이질적이고 특이한 존재로 묘사되는 것은 트랜스여성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폭력에서, 혐오는 폭력을 촉발하는 동인이 아니라 가해자가 한껏 휘두른 폭력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도구로 쓰인다.[9] 2010년 대구 트랜스젠더 살인사건에서 피해자가 트랜스젠더였던 것은 결정적인 살해 동기가 아니었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트랜스여성임을 몇 년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으며, 피해자와 말다툼을 벌이다가 그 후 살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는 ‘알고 보니 트랜스젠더였다’는 트랜스 패닉 방어 전략을 사용했고,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적어 보도했다. 가해자는 자신에 대한 동정표를 사고 공감을 얻을 수 있으리란 판단에서 패닉 방 어 전략을 동기로 채택했다. ‘성소수자를 혐오한다’는 것 자체만이 동기가 되어 혐오 범죄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혐오 범죄는 혐오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우리 사회에 어떤 혐오가 만연해있는지를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폭력이기 때문이다.[10]

문제는 성소수자 혐오와 트랜스혐오다. 특정 조건을 충족함으로써 이성애규범적 사회의 허가 아래 안전함을 보장받은 것 같다 해도 그것은 임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트랜스젠더는 언제나 이질적인 존재였으며, 그렇기에 그 어느 때에도 트랜스젠더임을 이유로 공격받을 수 있다.


· 우리 주변의 트랜스혐오

 

네가 바라본 쇼윈도에 가방 다 사줄게

너의 밤까지도 Girlish 한 너의 취향을 알아

넌 천상 여자인 걸

처음이야 수줍은 듯 이불

가려 내가 불을 끌 때까지 기다려 Baby / 넌 조금 겁이 나 내게 말을 못했데 뭔데

사실 난 말이야 사실 말이야 하며 / 이불을 걷는 순간

거짓말이야/ 이럴 수는 없어 / 다 거짓말이야

정말 사랑했는데 Baby / 거짓말이야 / 넌 왜 그게 있어

심지어 나보다 큰데 Oh Lady 정말 예뻤는데 / Oh Lady 멋진 게 있었네 Baby

이건 반칙이잖아 / 근데 그래도 네가 예뻤어 / 그래 넌 넌 넌 넌

- 허밍 어반 스테레오, 'Wonder Man' (2016)



천상 여자처럼 보였는데 알고 보니 소위 말하는 ‘남성기’가 달린 여자친구. ‘남자같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과장된 ‘여성적’ 제스처를 통해 여성성을 어필하려는 여장 개그맨들. 대중문화는 트랜스젠더를 다룰 때 온갖 호들갑과 함께 반전을 주는 웃음의 소재로 사용해왔다. (그렇다, 트랜스남성이나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의 존재는 또 지워진다.)

‘트랜스젠더여서 살해했다’라고 말하는 이들과 비교하면 “명품 가방까지 사 줬는데 나보다 더 큰 게 달려있네” 라며 성기 크기에 대한 열등감을 자조적으로 풀어놓는 이들은 차라리 온건하고 때로는 측은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허밍 어반 스테레오의 노래와 트랜스 패닉 방어 전략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정서가 있다. 트랜스젠더의 신체는 기만이다. 트랜스여성의 수술하지 않은 성기는 배신이다. 트랜스젠더의 존재 자체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인 나에게 사기나 마찬가지다. 2002년 트랜스여성 그웬 아로조가 살해당한 사건에서, 가해자 매짓슨의 변호사는 트랜스젠더가 자신을 트랜스젠더라고 밝히지 않는 행위 자체가 다른 사람을 기만하는 사기에 해당하며, 따라서 가해자는 분노하고 패닉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고 그 상태에서 살인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Lee p.516).[11] 누군가에게는 반전이고 처량한 소재에 불과하겠지만, 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트랜스젠더는 늘 폭력의 위협에 노출되며 살아간다. 정녕 ‘트랜스젠더를 만났던 나’에 대한 자기연민의 정서가 트랜스젠더가 실제로 마주하는 폭력보다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져야 할까? 우리는 모두 답을 알고 있다.

가해자가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를 공감대로 제시하며 책임을 피해자에게 지우려 할 때, 우리는 가해자에게만 혐오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 ‘나를 속인 트랜스젠더의 존재가 나에게 패닉을 불러왔다’라는 자기방어가 가능한 정서에 항의해야 한다. 트랜스 패닉 방어 전략을 들고 나올 때, “충격이겠지만 그래도 살인은 좀…”이란 반응이 아니라, 먼저 “트랜스젠더인 것은 혐오 받을 그 어떤 이유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 주류의 공감대로 형성되어야 한다.

패닉 방어 전략은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기만이라 부르는 사회 내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특정 사건의 가해자에게만 책임을 물지 않고,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트랜스혐오적 정서, 트랜스배제적 정서를 늘 주시하고 책임을 지워야 할 것이다.


  

[1] 김은주, '트랜스젠더였어?" 20대男 연인 홧김에 살해', 『뉴데일리』, 2010년 5월 28일. (링크 :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0/05/28/2010052800042.html )

[2]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판결문과 사례 분석을 통해 본 성적 소수자 대상 ‘혐오 폭력’의 구조에 대한 연구』, 2015, 42쪽.

[3] McKinley Jr., James. “Man’s Confession in Transgender Woman’s Death Is Admissible, Judge Rules”, The New York Times, April.2.2016. (링크 : https://www.nytimes.com/2016/04/02/nyregion/mans-confession-in-transgender-womans-death-is-admissible-judge-rules.html ) 

[4] Lee, Cynthia and Peter Kwan. The Trans Panic Defense: Heteronormativity, and the

Murder of Transgender Women. Hastings Law Journal 66. 2014: pp.77-132.

[5] 이승한, '하리수는 되는데 홍석천은 안 된다?', 『시사IN』, 2017년 5월 24일. (링크 :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9170 )

[6]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위의 글, 49-50쪽. 

[7] 완자, 『모두에게 완자가』 83화, '트렌스젠더에 관하여', 2013년 3월 23일 등록. (링크 :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471283&no=84&weekday=thu ).

[8] 권순택, '‘트랜스젠더’를 문제삼지 마라', 미디어스, 2016년 6월 17일. (링크 :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0081 )

[9]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앞의 글, 17쪽.

[10] 위의 글, 22쪽. 

[11] 앞의 글, 49쪽.

 


『소녀, 소년을 만나다』



  『소녀, 소년을 만나다』는 오비드의 메타모르포시스의 한 신화를 현대 바탕으로 다시 재현 하면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오비드의 신화 안에선 리그드스와 텔레투사는 임신한 가난한 부부다.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지참금을 낼 수 없어 아버지 리그드스는 딸이 태어나면 하는 수 없이 죽이기로 결심을 해버린다. 여자아이가 태어나지만 텔레투사는 그 사실을 남편에서 숨기고 딸에게 중성적인 이름 ‘이피스’를 지어주고 그녀를 남자아이로 키운다.

 알리스미스는 이 신화를 재해석하여 현재 스콧트랜드 인버네스로 바탕을 바꾼다. 『소녀, 소년을 만나다』에서는 이피스는 로빈(영어권에서 로빈은 중성적인 이름이다)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야기는 대부분 로빈과 사귀게 될 소설 주인공 안테아와 그녀의 언니 이모젠의 관점에서 펼쳐진다. 안테아는 생수회사에서 일하고 로빈은 물의 상품화를 반대하는 환경 활동가다. 이 둘간에 사이는 그렇게 엮이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주인공 안테아는 로빈을 통해 젠더와 이성애를 초월하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해 나아간다.

 『소녀, 소년을 만나다』는 젠더의 개념을 뛰어넘는 소설이다. 로빈은 여성으로서의 모습 남성으로서의 모습 그리고 이 성별이분화된 체제에 반항하는 다-젠더적인 모습도 모두 보여준다. 로빈의 캐릭터는 지금 사회에서 불가피한 정체성의 대한 고민을 넘어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면 자기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인식하는 이상을 나타내지 않는가 싶다.

오타쿠와 트랜스젠더, 소비 속에 녹아 있는 작은 의식들

희정


  오타쿠 장르는 전형적인 '상품화된 성'을 다루는 장르이다. 오랜 시간 동안, 그리고 지금도 열심히 일본의 서브컬쳐를 즐기는 개인으로서 너무나 크게 동의하는 말이다. 그 속에서 특히 지정성별 남성으로 살아가는 퀴어들을 대하는 태도는 가혹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그런 일본의 서브컬쳐 속에 숨어 있는 성에 대한 크고 작은 고찰들은 우리가 충분히 다루고 생각해 볼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소위 '트랜스섹슈얼 장르[1](이하 TS물)' 오타쿠를 자처하던 사람으로서, 그리고 트랜스여성 당사자로서 나에게 TS물은 결코 반면교사의 의미만 갖지는 않는다. 그리고 최근 본 다양한 서브컬쳐 중에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1. 『프루누스 걸』

 

첫 번째 작품은 『프루누스 걸』이다. 『프루누스 걸』은, 완결 직전까지 학교에서 지정하는 여성 교복과 여성 의상으로 분류되는 사복을 입으며, 자신의 성별을 밝히지 않는 아이카와 키즈나와 마키 마키토가 연인관계로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담는 만화로, 어찌보면 1980년대 초 '스톱! 히바리군#2'에서 이어지는 크로스드레스 장르의 연속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전형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작품이 그럼에도 깊은 인상을 준 것은 키즈나가 마키와 확실하게 연인관계를 정립하는 완결 시점까지, 작품 내에서 키즈나의 섹스나 젠더가 분명하게 정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1화에서 마키가 키즈나에게 남자를 상징하는 소다 맛 사탕과 여자를 상징하는 복숭아 맛 두 가지 사탕 중 하나를 입에 넣어주어야 하는 상황에서 두 사탕 모두를 먹인 모습은, 키즈나의 성별을 자신이 멋대로 생각하거나 결정하지 않겠다는 마키의 다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완결 이후 작가가 "키즈나는 남성입니다"라고 말하긴 하였지만, 적어도 작품 내에서 읽을 수 있는 메세지는 '성별이라는 것이 사랑에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불러온다. 특히, 일본 서브컬쳐 속에 크로스드레싱이라는 행위가 일종의 결핍, 부재나 아이 됨을 의미하며 결핍이 채워지거나 성장하고 나면 크로스 드레싱을 그만두면서 마무리되는 걸 생각하면, 마지막까지 크로스드레싱을 하는 키즈나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라 할 수 있다.

 
2. 『마녀의 하인과 마왕의 뿔』

 

두 번째 작품은 『마녀의 하인과 마왕의 뿔』이라는 작품이다. 작품 자체는 남성향이라고 불리는 즉,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성 오타쿠를 주 독자층으로 설정한 작품에 가깝지만 작품 곳곳에 성소수자에 대한 작가의 깊은 고찰이 담겨 있다. 이 작품 내에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성소수자의 모습은 '이 세상에 1~10%의 사람만 가지고 있는 특징은 또 있어. AB형.’이라는 말로 정리된다. 이러한 모습은 작품 내의 캐릭터에 대한 표현으로도 어린 시절 여성스러운 신체로 변한 남성 캐릭터는 자신의 외형이나, 행위성과는 별개로, 호감을 가진 시스젠더 남성에 대한 감정을 ‘남성으로서 남성에 대한 호감’으로 인지하고 받아들인다. 또, 자유롭게 신체의 성적인 외형을 바꿀 수 있는 캐릭터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젠더 행위를 하거나, 반대로 거부하면서도 외모에 의해 젠더가 흔들리는 일 없이 명확하게 자신의 젠더를 인식하고 있다. 그 외에도 마물이나 마녀라는 이름이라는 낙인 지어진 집단 간의 차별, 겉으로 드러나는 신체로 결정되는 사회적 권력관계, 무지에 의해 드러나는 평범한 개인에 의한 차별과 이를 앎을 통해 극복하는 과정 등이 작품 속에 조용하게 드러나고 있다. 남성향 작품이라는 한계성을 감안하고 볼 수 있다면 작가가 드러내는 다양한 생각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3. 『사춘기 비터 체인지』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사춘기 비터 체인지』라는, 시스젠더 남성과 여성의 신체가 바뀌는 고전적인 TS장르이다. 어린 시절 우연한 사고로 인해 서로의 신체가 바뀐 두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진학할 때까지도 바뀐 모습 그대로 살아가며 갈등을 겪는 모습을 그린 이 만화의 줄거리는 TS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하품이 날 정도로 지겨운 플롯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 안의 두 주인공은 일반적인. TS물에서 보기 힘든 한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성별 정체성을 사춘기가 지나고 나서도 어린 시절의 형태로 강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정성별 남성의 신체를 갖게 된 유이는 자신을 여성으로 정체화 하고 있으며, 지정성별 여성의 신체를 갖게 된 유우타는 상대적으로 자신의 신체와 사회적으로 주어진 역할에 덜 거부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나 이는 성별불편감을 덜 느끼는 상태에 가까우며 자신을 여성이라고 정의 내리고자 하는 압력에 대해 불쾌함을 내비친다. 덕분에 이 작품은 TS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혹은 당혹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성별불편감을 어린 시절부터 느낀 사람들이 사춘기를 어떤 방식으로 보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만화의 묘사는 오히려 현실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TS라는 장르를 본격적으로 접한 지 16년, 나는. TS물 덕후라는 장난스러운 별명으로 자처하며 살아갔다. 1970년대의 만화부터 최신 만화까지 다양한 작품을 접하고, 지금도 탐독하고, 평하고, 창작하는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그저 재밌다는 이유 혹은 트랜스젠더 당사자로서의 공감이라는 무거운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TS물은 나에게 처음으로 성별 이분법의 경계가 생각보다 흐릿하고 인공적이라는 걸 깨닫게 한 첫 계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TS장르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1980년대 초반 소년점프에 연재되고 애니메이션이 된 ‘스톱! 히바리 군’이 일본 PTA(Parent Teacher Association)강력한 항의에 방영중단의 위기를 맞이했을 당시 나왔던 ‘TS물은 성 질서를 흐트러트린다’는 말. 그리고 최근 TS장르를 둘러싼 ‘TS물은 성별이분법을 강화한다.’는 말, 이 두 가지 명제는 결코 모순되는 주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존재 자체로 이 사회에 내재된 성별 고정관념을 뒤바꾸는 데 일조하고 스톤월 항쟁 등을 통해 사회를 바꾸는 데 함께 발을 맞춰 온 MtF, FtM 트랜스젠더들이 현대의 누군가에겐 성별이분법을 강조하는 존재로 인식되기도 하는 것은 트랜스젠더가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다. 트랜스젠더는 어떤 역사적, 사회적 사명을 띈 인공적인 개념이나 단체가 아닌, 그저 몇 가지 유사한 개성을 가지고 있을 뿐인 수없이 많은 개인을 부르기 위해 만든 단어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유사성에 벗어난 개성으로 개인들의 묶음을 설명하니 모순적이면서 모순적이지 않은 주장들이 생겨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TS물 또한, 결코 한 가지 주장만으로는 그 존재를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창작물의 모음이며, TS물 또한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각자의 개성을 자랑해 나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제법 쌀쌀한 날이다. TS물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이 글을 쓴 이유는 단 하나다. 함께 TS물을 보고, 그 감상을 함께 나눌 친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만화책을 잔뜩 빌려다가 친구와 함께 하루 종일 감상하며, 이 작품이 "재밌다", "별로다" 하고 진지하지만 즐겁게 투닥이는 것처럼, 함께 작품을 즐기며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번외 편: 『타고난 성별이 잘못되었다』

 

몇 년 전, ‘와! 이건 절대 국내에 정식 발매 안할 것 같다.’하고 생각했던 작품이 발간되었다. 코니시의 『타고난 성별이 잘못되었다』라는 이름의 만화이다. 만화 작가이자 MtF 트랜스젠더인 코니시가 성적합 수술을 받기 위해 태국으로 가 겪은 일들을 그린 만화로 자신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그린 만화이다. 트랜스젠더가 등장하고, 또 트랜스젠더의 이슈에 대해 진지하게 다룬 작품은 많지만, 성적합 수술이라는 과정 그 자체를 한 개인의 이야기로 고스란히 이야기는 드물기에, 트랜스젠더 당사자에게도, 비당사자에게도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올 것이라 확신한다.

 


  

[1] 트랜스섹슈얼 장르는 좁은 의미로는 성별이분법을 기준으로 규정된 여성/남성이 남성/여성의 신체로 변하는 것을 주제나 소재로 하는 서브컬쳐 장르를 의미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성별이분법 상의 여장, 남장이나 성역할에 따른 갈등, IS 등을 소재나 주제로써 포괄하는 장르로 사용된다. 여기서는 넒은 의미의 트랜스섹슈얼 장르를 이야기 한다.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비평

민성



  영화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는 주인공을 선별해내기 어려운 영화다. 외롭고 담담한 손길로 영화를 여는 열한 살 ‘토모’와 그런 토모의 손을 잡고 가족공동체를 꾸려나가려는 토모의 삼촌 ‘마키오’, 트랜스젠더 여성으로서의 삶과 관계를 누구보다 지혜롭게 만들어나가는 마키오의 파트너 ‘린코’ 모두가 극의 주인공을 맡고 있다. 나아가 게이인 자신을 긍정하고 삶을 이해하려는 토모의 친구 ‘카이’와 엄마로서의 삶이 답답하고 버거운 토모의 엄마 ‘히로미’ 역시 무겁게 극을 지탱하고 있다.

 영화는 제목에서부터 ‘진심으로 엮는 그들’을 주인공으로 세우고, 행위와 관계들에 집중한다. 지금부터 그들이 엮어나간 매듭들을 살펴보려 한다.


1) ‘번뇌’를 엮다

 린코에게 뜨개질은 무엇보다도 ‘번뇌의 산물’이다. 린코는 극 전반에 걸쳐 두 개의 형상을 뜨개질로 만들어낸다. 하나는 뜨개고추, 다른 하나는 뜨개가슴이다. ‘번뇌’는 이들 중 뜨개고추에 관한 이야기이다.

 린코는 틈이 나는 대로 뜨개질을 한다. 매번 같은 모양의 형체를 만드는데, 양말 같기도 하고 손 모아 장갑 같기도 하다. 토모는 린코에게 묻는다. 린코는 이것을 본인의 ‘번뇌’라고 말하고는, 성기수술을 하던 당시의 고통을 상기한다. 그러면서 ‘내 남근에 바치는 제물’이라고 덧붙이고 108개를 만들고 나면 호적을 바꿀 것이라고 일러준다.

 이 뜨개고추는 성기로 인한 번뇌의 표현이다.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의 성기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성기수술을 받는다. 린코 역시 자신의 성기에 대한 거부감이 많은 사람이었고, 성기수술 역시 받았다. 그러나 수술 후에도 수술 전 성기 모양이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감정과 번뇌를 정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린코는 무작정 감정을 억누르는 대신 뜨개고추를 만들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번뇌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다.

 뜨개고추는 성기중심주의에 대한 번뇌의 표현이기도 하다. 린코 개인의 성기에 대한 거부감을 넘어서, 성기를 통해 성별을 구분하고 단정하는 성기중심주의적 고정관념에 대한 영화 전반의 번뇌가 담긴 소재이다. 감독은 이 뜨개고추를 던지며 노는 장면과 태우는 장면을 통해 관객과 해방감을 공유하고, 성기중심주의가 개인과 집단에게 미치는 영향들을 상기시킨다.

 나아가 린코는 뜨개고추를 뜨며 트랜스젠더로서 겪는 차별과 혐오를 견뎌낸다. 사실 ‘무조건 참는다’, ‘화가 풀릴 때까지 뜨개질을 하며 기다린다’는 태도를 쉽게 응원하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상황에서 ‘참고 기다릴 것’을 직간접적으로 강요 받아왔고, 이것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할 수 없이 폭력적인 요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린코 개인이 압도적인 폭력적 분위기와 상황 앞에서 그저 참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주목하고, 얼마나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되묻는 것 역시 못지않게 중요하다. 다시 말해, ‘참고 기다리는 태도’는 영화의 지향점이 아니라 참담한 현실의 반영일 것이다.

2) ‘관계’를 엮다

 린코의 엄마 ‘후미코’가 린코와의 관계를 엮는 것을 시작으로, 린코와 토모, 마키오는 서로와 주변인들을 끈끈하게 엮어나간다.

 ‘가슴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딸 린코에게, 후미코는 직접 뜨개질한 가슴을 선물한다. 후미코의 뜨개가슴은 강한 연대의 상징물이다. 후미코는 뜨개가슴을 통해 딸의 정체성과 욕구, 감정에 대한 무한한 지지를 보낸다.

 토모와 마키오는 뜨개고추를 통해 린코에게 연대한다. 처음에는 린코 혼자 108개의 뜨개고추를 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지만, 극 중반에는 토모가 뜨개고추 뜨기에 동참하고, 중후반에 이르러서는 마키오까지 합류해 세 명이 함께 이곳 저곳에 앉아 뜨개고추를 뜬다. 린코의 뜨개질과 달리 토모와 마키오의 뜨개질은 후미코의 뜨개질과 마찬가지로 연대의 표현이다. 토모와 마키오가 린코와 함께 뜨개고추를 뜨는 장면은 이들이 린코의 번뇌를 함께 감당하고 해소에 동참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담아낸다.

 또한 극 중반에 린코가 병원으로부터 차별 받는 것을 보고 토모가 화를 내는 대신 울먹이며 뜨개질을 하는 모습을 통해, 차별과 그로 인한 아픔 역시 린코의 토모가 함께 감당해나가고 있고, 토모가 그 과정에 있어서도 린코의 방식을 존중하고 지지함을 알 수 있다.

 특히 제목에서 ‘엮일 때’라는 표현 대신 부자연스러움을 감수하고라도 ‘엮을 때’라는 표현을 쓴 것은 단순히 관계에 얽혀버린다는 뜻이 아닌, 당사자에 대한 주변인들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연대’를 나타내고자 함일지라.

3) ‘가족’을 엮다

  마지막 장면을 장식한 뜨개가슴은 앞서 말한 ‘번뇌’나 ‘연대’의 의미보다는 ‘가족공동체’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린코는 토모가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이해하고, 토모는 린코를 어느 정도 엄마로 받아들이는데, 이러한 두 사람의 감정은 토모가 린코의 가슴을 만지며 잠드는 장면을 통해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태어나서부터 11년 간 자신을 키워온 엄마 ‘히로미’와 린코 중 누구의 딸이 될 것인지 토모가 선택하는 장면에서 히로미, 토모, 린코 세 사람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말들은 지금껏 사회가 시스젠더 여성에게는 철저하게 강요하고 트랜스젠더 여성에게는 철저하게 금지해온 모성이라는 ‘신화’에 대한 비판이자 모든 여성의 기본적 권리에 대한 깊은 이해의 표현이기도 하다.

 부자연스럽게만 느껴지던 영화의 제목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에는 먹먹하고 강렬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 진심으로 서로를 ‘엮어나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당사자와 가족이 어떻게 연대하고 서로를 지지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수동적이고 헌신적인 이미지를 재생산한다는 비판을 상징하는 '뜨개질'이라는 소재를 오히려 적극 이용한 점이 매우 신선하고 훌륭했다. 영화는 뜨개질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오히려 사회가 여성에게 수동적일 것을 강요해온 탓에 많은 트랜스젠더 여성들 역시 차별과 혐오에 맞서기 위해 ‘참고 기다리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음을, 그렇기에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주의의 적(敵 )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피해자임을 시사한다. 나아가 ‘뜨개질’이라는 행위를 부정적인 의미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연대의 매개로 이용함으로써 ‘여성적’인 것으로 여겨져 온 여러 특성에 대한 관점을 환기시킨다.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는 꼭 다뤄야 하는 주제들인 성소수자와 여성, 차별, 혐오, 연대 등을 담담하고 따뜻하게, 정말 ‘뜨개질’하듯 잘 엮어낸 영화다. 오늘은 린코를 따라서 번뇌, 또는 연대의 뜻을 가득 담아 뜨개질을 시작해보면 어떨까?

트랜스여성혐오와 근본주의적 (유사-)페미니즘에 대한 단상

준우


2017년 가을쯤에 있었던 일이다. 여성을 위한 음악 축제를 기치로 내건 행사의 참가자 모집 과정에서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아닌 이들의 참여 신청에서의 검열 여부'를 두고 SNS 상에서 소소한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논쟁이 벌어지자 주최 측은 문제를 인식하고 곧바로 사과문을 올렸고, 추후에 그러한 ‘검열’스러운 일은 재발하지 않았다. 이후 행사 장소 변경 등 여러 우여곡절이 더 있었지만 그 행사는 성공적으로 치뤄졌고 많은 수의 참가자가 ‘여성’으로서 편안한 음악 행사를 잘 즐겼다는 후기들을 접할 수 있었다. “응? 잠깐, 여성’?! 누구까지?”

*출처 : https://twitter.com/boraXfemicamp/status/908597727394635776


사실 이 일은 색다르게 벌어진 일도 아니었고, 특별한 이슈를 담고 있는 이슈도 아니다. '여성만 출입 가능'이란 문구에서 여성은 과연 누구일까라는 질문은 한국 사회에서 퀴어 커뮤니티가 처음 생기던 때부터 - 그리고 페미니즘의 주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늘 수면 위로 올라오는 - 수십 년은 훌쩍 넘어선 소위 ‘케케묵은’ 화두이니까 말이다.

서구 페미니즘의 흐름 속에서도, 1960년대부터 – 사실은 그 이전부터 있어왔지만 공공연하게 수면 위에서 분란을 일으켰던 경우를 생각하면 60년대부터라고 불러보자 – ‘여성이란 누구인가?’ 논쟁은 페미니즘의 가장 중요한 이슈였다. 섹스와 젠더를 개념상으로 구분하고 이를 운동의 동력으로 삼기 시작한 시기부터, 그리고 생물학적 환원론의 관점으로는 도저히 ‘아다리가 맞지 않는’ 존재들 – 트랜스섹슈얼, 트랜스젠더, 드랙, 트랜스베스타잇, 크로스드레서, 패곳, 스톤부치 – 은 기존의 스테레오타입을 그대로 답습하는 듯한 성별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새로운 남성성/여성성을 상상하고 실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문화인류학적 연구들은 불에 기름을 붓듯 “저쪽 오지에 가면 이렇게나 신기방기한 젠더(들)이 잔뜩 있어!”라는 포트폴리오를 펼쳤다. 제 3의 성, 뒤바뀐 성별 역할, 기괴한(queer) 성별 표현과 성적 실천들과 관행들… 문화적 다양성의 이름 아래 성별 이분화의 기조는 ‘보편성을 담지한 일반론’으로서의 지위를 잃을 것처럼 보였고 세상의 섹슈얼리티는 바뀔지도 모를 전망이 있었다. 반전과 평화, 아나키즘, 히피즘, 자연주의, 누디즘, 해방과 자유,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적 사조들은 한편으로는 분명히 퀴어 커뮤니티에도 페미니즘 입장론에도 넓고 지울 수 없는 영향을 상호 미치고 있었다.

그러나 성별 이분법은 해체되지 않았다.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중심적 언어로 구성된 현 세계의 대안으로서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문화와 언어, 욕망을 찾고자 하였고 왜인지 이 흐름은 성별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인식을 ‘생물학적 환원론’으로 환원시켰다. 7~80년대 당시 이러한 인식에 경도되었던 이들 개개인의 잘잘못을 따지기엔, ‘성별 이분법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고 보는 게 맞지 않나 생각 든다. 오늘날 TERF(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급진적 여성주의, 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m)의 모태 격인 이 흐름은 이후 젠더 다양성의 이론적 토대이기도 했던 페미니즘 속에서 여전히 남아 있었고, 명맥을 유지해왔으며, 오늘날과 같이 긴장과 혐오와 분노가 표현되기 적/당/한 시기에 재림하였다.


*트랜스여성이 여성 전용 화장실, 샤워룸, 탈의실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수십 만 명의 성폭력 가해자들을 비롯한 ‘남성’들과 당신들의 딸이 화장실을 함께 써야 한다는 캠페인 문구. 많은 TERF들에 의해 이 주장은 실증되었다고 일컬어졌으나 통계적 사실은 이 주장과 크게 달랐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여, LGBT의 법적 권리 투쟁이 가시화되고, 그에 대한 성과가 생겨나는 2010년 전후의 시기를 거치면서 전 세게 수십 개 국가에서는 동성결혼이 법적 지위를 얻게 되었고, 더 제약이 없는 성별정정 혹은 본인의 선택에 따른 ‘열린 성별 표기’ 등의 제도적 변화가 생겼다. “Which is NEXT?”라는 모 커뮤니티의 게시판 제목처럼, 이미 굵직한 이슈들은 해결되어가는 듯했고, 다음은 누구 차례인지가 궁금해지는 긍정적 전망도 있었다. 적어도 미국 내에서 그 다음 차례는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사용권’에 대한 이슈가 차지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조각보자기 Vol.1』에 수록된 ‘트랜스젠더 화장실 사용권의 의미 : 미국 내 법제화 논쟁을 중심으로’라는 글을 참조하길 바란다. 링크 : https://tgjogakbo.blog.me/220864274372 )


서구에서 페미니스트들의 트랜스젠더를 비난하는 입장은 화장실 전쟁이 한창이던 2015년에 처음 등장한 게 아니다. 그 흐름은 1960~70년대의 근본적 여성성을 찾았던 페미니스트들의 TERF로, 1950년대 조겐슨의 트랜지션 의료적 조치를 알리는 소식에 응대한 미국의 미디어의 반응에서, 1930년대 릴리 엘베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많은 이들이 ‘세상이 망한다’고 한탄했던 시절(이 이야기는 2016년 영화 <대니쉬 걸>의 배경이 되었다)로, 톰보이를 뒷담화 거리로 삼던 19세기 세기말의 살롱들에서, 고어로서의 ‘bisexual’(이 용어가 오늘날 용래인 성적지향 정체성의 뜻이 아니라, 요즘 용어로 치면 ‘이분법적 정상 성별이 아닌 이들’을 두루뭉술 모두 지칭하던 성별 정체성을 뜻하는 말로 쓰였던 19세기 중후반)을 둘러싼 사교계 논쟁에서, 우리는 TERF가, “누가 여성인가?”의 답변으로 성별 이분화된 생물학적 환원론으로서의 여성 찾기가 지속해왔다는 계보적 사실들을 알고 있다.

더하여, "트랜스젠더는 성별 이분법을 강화하는가?"라는 질문도 늘 함께 따라온다. 이 질문은 '트랜스젠더'라는 용어가 만들어진 시작부터 현재까지 단 한 번도 멈춘 적 없이 트랜스젠더 존재에 던져지던 질문이다. 미국 최초로 SRS 수술을 받았다고 간주되는 크리스틴 조겐슨의 사연이 1952년 『뉴욕 데일리 지(The New York Daily』에 실렸을 때에도, 제니스 레이몬드가 1979년 출간한 『트랜스섹슈얼 제국』을 통해 '트랜스섹슈얼(여성)은 … 페니스 없이도 여성을 강간하고 여성을 기술로써 침략하는 존재'라고 비난하던 때에도, 2014년 실라 제프리스가 펴낸 책 『젠더가 상처받다』를 둘러싸고 그의 주장이 과연 트랜스혐오적인가 아닌가의 논쟁이 촉발하던 때에도, 그리고 트랜스여성에게 여성 전용 화장실을 쓸 권리를 주면 성폭력이 확산된다고 주장하는 TERF가 재등장한 최근에도... 트랜스여성의 존재 자체가 성별 이분법 담론을 강화하는 게 아니냐고 추궁하는 일련의 흐름은 여성을 어디까지로 한정지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강박적 질문이 되어 늘 있어왔으며, 종종 생득적 성별, 생식기관, 염색체로 상징되는 생물학적 환원론을 내포한 채 귀결되곤 하였다



* 실라 제프리스의 『젠더가 상처받다』 표지와 관련 기사 타이틀


현재 한국 사회에서 TERF는 온라인 상의 몇몇 ‘여성(!)’ 커뮤니티들로 대표되고 있다. 지난 11월에는 한 연예인 지망생으로 알려진 유명인이 SNS를 통해서 “트랜스여성은 여성이 아니다”라는 멘트를 함으로써, 시시때때로 수면 위로 올라와서 반복-촉발되는(reignited) 이 사회의 징후이다. 2001년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커밍아웃하여 데뷔한 연예인에 대하여 당시 몇 편 있지도 않던 여성주의 잡지의 한 꼭지를 할애하여 “트랜스젠더가 진짜 여성인가?”를 거하게(?) 묻던 시절부터 이 사회의 기저에 깔려 있던 트랜스혐오와 트랜스 가시화에 대한 반동적 태도는 트랜스여성 관련 기사에 숱하게 달리는 “근데 (누나가 아니라) 형이지?” 류의 밈(meme)이 된 댓글의 낄낄거림으로, 여성혐오폭력 사건에 대응하는 일에 트랜스여성의 연대 (따위)는 필요 없다는 서사로, 임신 중지의 권리를 요구하는 캠페인에 ‘자궁도 없는’ 트랜스여성이 자연스레 배제된 채 진행되는 양상에서, 결국 “그들은 페니스가 있으니 (생물학적) 여성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존재로, 잠재적 성폭력 가해자로 보아야 한다”는 SNS의 수많은 멘션들에서, 트랜스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은 어쩔 수 없는 거다라는 식의 트랜스패닉에 기반한 응대들에서, 트랜스여성이 과도한 여성성을 재현하고 과장하고 있어서 오히려 반여성적 존재라는 논설의 문장에서 유유히 흐르고 있다.

*2016년 전세계적으로 일어났던 임신중지권리에 대한 캠페인의 이미지


학계에 몸을 담고 있는 어떤 학자들은 비체가 어떻고 퀴어함이 무엇이고 정체성이 무슨 개념인지를 논하며 결국 말하고픈 결론인 “그래서 트랜스/젠더퀴어와 인터섹스들은 진짜 여자가 될 수 없어”를 말한다. 이를 이론적(?) 근거로 삼아 많은 재확산이 이뤄지고 있고, 그 언사의 만연함은 또 다시 TERF스러운 이야기를 또 하나의 대등한 주장으로, 나름 합당한 입장으로 재확인시키는 양상이 거듭되고 있다. 혐오의 생산과 확산의 또 다른 일면이다.

이 글에서는 지금껏 이를 지칭하며 TERF, 즉 트랜스를 배제하는 래디컬 페미니즘으로 지칭해왔다. 래디컬에 급진적이라는 뜻 외에 근본적이란 뜻이 함께 담겨 있듯, 이 페미니즘의 사조는 엄정한 자기성찰이 없다면 그저 생물학적 환원론의 아류에 지날 뿐이다. 이 논지가 남성중심적이고 이성애중심적이며 성별 이분법적 지배 담론이 지속되는 데에 얼마나 크게 기여해왔는지는 따로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이 글을 쓰면서도 조심스러운 부분은 있다. 설령 저러한 주장을 펼치는 이들에 대해서 내가 ‘너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야’라고 판정할 권한 같은 게 있는가라는 조심스러운 자성이 자꾸만 입을 막는다(그리고 그 누구도 페미니스트임을 판정 내리고 지위를 내릴 권한 따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역시 사실이기도 하다). 다만 그 논지 자체가 페미니즘적인지에 대한 비판은 할 수 있으리라. 그것은 전혀 페미니즘적이지 않다. 굳이 TERF라는 약자의 한 단어로 'Feminism'의 이름을 갖다 쓴다면 그것은 그저 유사(pseudo-)페미니즘에 불과할 것이다.

페미니즘 입장론 분야에서 필자가 좋아하는 말 중에 “페미니스트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보부와르의 유명한 문구를 오마주한 S.하딩의 말이다. 페미니즘이 오직 생물학적으로 여성으로 태어난, 여성 성별로 지정된, 자궁을 가진, 질과 보지를 가진 여성들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듯, 트랜스여성을 비롯하여 다양한 여성 주체들이 페미니즘적 실천을 펼칠 수 있고 연대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또한 트랜스젠더 입장론을 비롯하여 젠더 다양성에 대한 고민이 없이 어찌 페미니즘이 페미니즘다울(?)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그 주장이 과연 “유사-“라는 딱지를 뗄 수나 있을지 자성해야 할 거라 본다. 트랜스 인권과 페미니즘은 절대 대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페미니즘과 트랜스젠더 입장론이 이제 만나야 할 거라고 (미래형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예전부터 트랜스 인권은 페미니즘에 필요조건이었으니까!



나의 소녀시대

무무

  나는 지금 여자로,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금’이라는 말이 어찌 보면 어울리지 않을 수 있지만 정말 어떻게 하다 보니 나는 길을 정했고 그 길을 따라서 걷고 있다.


 돌아보면 나는 어렸을 적, 그것도 아주 어렸을 적부터 약간 특별했다. 남자 아이로 지정되어 자라났음에도 다른 남자아이들과 다르게 미미인형을 좋아하고 유치원 학예회 땐 여자아이들만 하는 ‘핑클’의 공연에 참가하지 못해서 울음을 터트렸으니. 부모님은 그저 자라는 과정이라고, 애가 시간이 지나면 이러지 않을 거라 믿으시고 오히려 내가 자유롭게 인형놀이를 하게 놔두셨다. 그때 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여자’라는 개념조차 생각하지 못하였고 동시에 내가 ‘남자’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어린이라는 이유로 성별 구분이 모호하게 되던 시절이었기에 어떻게 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평온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사춘기가 되면서 나는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나는 그 곳에서 ‘남자 반’ 이라는 충격적인 상황을 경험한다. 물론 나도 내가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었다는 건 예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너는 남자아이니까 이렇게 해야 해’, ‘남자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니?’같은 질문을 거의 공기처럼 받아들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인지였을 뿐이지 인정이 아니었다. 그것을 인정하게 된 개학 날, 나는 지금 생각해보니 꽤 잘 적응했던 것 같다. 아마 예전처럼 그냥 무시하면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리라.

 나는 중학생이 되면서 남성의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굵어지고 털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체모 정도는 옷으로 감출 수 있었지만 수염은 감출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털을 뽑고 옅은 화장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 하지만 서투른 화장은 곧 친구들에게 들통났고 나는 그때부터 ‘화장하는 남자애, 그루밍 족, 게이’같은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나는 곧 ‘아웃사이더’로 취급되었고 나는 내 입지를 지키기 위해서 오히려 그들에게 소위 ‘게이’같은 면을 부각시켜서 미드 <글리>의 커트 험멜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여자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며 메이크업, 패션 등 주요 관심사들을 꿰뚫고 오히려 내가 그들보다 앞장서기도 했다.

 그 결과로 고등학교 2~3학년 즈음엔 여자들보다 화장품을 더 잘 아는 ‘화잘알’, 여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카운셀러’로 활약했었다. 그때 나는 ‘내가 여자가 아닐까’ 와 같은 고민을 시작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게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게이 어플에서 친구들을 사귀곤 했었다. 친구들과 노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애인을 사귀게 되었을 때 아주 심각한, 내 인생에서 결정적인 문제를 직면하게 되었다.

 바로 내 애인이 나를 ‘남성’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물론 애인 사이의 친밀감은 당연했지만 내가 그를 ‘형’이라 부르고 그가 나에게 ‘남자 옷’을 선물했을 때 나는 굉장히 이상한 불쾌감을 느꼈다. 아마 친구 사이에서 내가 남성으로 대우 받는 것을 참을 수 있었던 건 일생에 걸친 세뇌에 가까운 학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사랑 받고 사랑해줄 땐 여자로 온전히 행해주고 싶었고 그것이 불일치 되던 매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지옥 그 자체였다. 난 결국 내가 여자라고 스스로 인정했고 그것을 알게 된 애인은 나에게 이별을 고했다. 여자로 대우받을 수 없으면 부질없었기 때문에 깨끗이 정리했고, 그 후 내 인생은 아주, 그것도 아주 많이 방향이 틀어지게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는 현재의 애인을 만나게 되었고 그는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주었다. 그와 함께 사랑하며 그가 주는 사랑, 내가 주는 사랑이 그에게도 나에게도 내가 ‘여성’으로서 행하는 것임이 너무 행복했다.

 그 후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나의 대학생활은 모호함 그 자체였던 것 같다. 일단 나는 지정성별 남성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MT도 가지 않았고 학과행사에는 아예 참석자체를 하지 않았다. 또한 친구들과 친해지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조용히 공부하고 그러다 졸업하는 학생이 되고 싶었던 것이랄까. 그런 무력한 생활 중 화창한 5월, 나는 어머니께 커밍아웃을 하게 되었다. 정말 나조차도 예상할 수 없이 이루어 진 아주 대책 없는 커밍아웃이었다. 내가 학교에 친구가 없다 말하며 내가 여자 같으니까 그렇다고 어머니께 말씀 드리니 어머니는 ‘너는 그럼 원래 여자였던 게 아닐까?’하고 진지하게 물으셨다. 난 그 질문에 긍정으로 답했고 그 후의 대화는 말 안 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는 꽤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셨고 그날부터 나는 ‘딸’로 살아가게 되었다. 말 그대로 여성복을 입고 다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웃들이 날 ‘아들’로 아는 상태에서 그것은 상당한 모험이었고 어머니는 그것에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으셨다. 어머니는 어서 아버지께 커밍아웃을 해서 대책을 강구하자 하셨고 나는 상당한 고민을 했지만 결국 6월에 나는 아버지께도 커밍아웃을 하게 되었다. 평소 나의 모습을 여성스럽다며 싫어하시던 아버지셨기에 많이 떨렸지만 아버지는 묵묵히 들으시더니 그럼 같이 병원을 가보자고 하셨다. 정신과와 의료조합을 다니며 설명과 나에 대한 진단을 들으신 아버지는 끝내 나를 인정하셨고 나는 부모님의 동의 하에 호르몬 치료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계속 같이 살기에는 아웃팅이 걱정되었기 때문에 난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일자리도 구하게 되었다. 나는 자취 이후 전화번호를 바꾸고 내가 평소에 연락하던 몇몇 이들을 제외하고 소위 인맥을 정리하였는데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든 내 곁에 항상 있어주던 친구 ‘공룡이’는 차마 안볼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중 '공룡이'가 어머니께 내 번호가 바뀐 것 같다고 내 소식을 궁금해 하였고 그것에 용기를 내어 나는 전화를 걸어 커밍아웃을 하였다.

 그는 내 변화를 담담히 받아들였고 그것은 친구 사이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음을 나에게 인지시켜 주었다. 그는 예전의 ‘나’와 지금이 ‘나’가 달라진 것은 성별뿐이며 우리가 친구인 것은 변함이 없다 하였고 그날 나는 밤새 실실 거리며 웃었다더라.


 나의 어린 시절, 그러니까 ‘소녀시대’는 솔직히 아픈 기억이 더 많다. 지금에서야 덤덤히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아프고 아름다운 추억들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살아갈 방향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들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후회하지 않는다.


 커밍아웃도 마찬가지이다. 대책 없는 커밍아웃 이었다곤 하지만 누구든 그 단어 그 자체를 떠올리기 이전에 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겪었을 것이리라.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평생 숨기고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기도 하다. 소중한 이에게 진실된 당신으로 다가가는 것은 그 사람에게 신뢰를 준다는 것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에게도 선물을 준다는 일임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또한 커밍아웃을 하지 못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길 바란다. 나 자신을 다른 이에게 드러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에 많은 생각과 경험이 필요할 것이다. 조급해 하지 말고 천천히 하면 된다. 실패가 걱정되거나 만약 실패하더라도 당신은 남이 정의하는 게 아닌 당신 스스로가 만들어 나가는 것을 알고 자기자신을 소중히 아껴주길 바란다.

가발

이시연


금요일 밤, 나는 면도칼을 들고 욕조에서 시간을 흘려 보낸다. 허물을 벗고 뒤꿈치가 헌 하이힐, 두루마리 휴지를 쑤셔 넣은 브라, 핑크색 피부로 새롭게 갈아입는다. 나는 가발이다. 소금과 피 냄새가 나는 몸이 떠다니는 바닷물의 흐릿한 형태. 이 방에는 나 말고 누군가가 늘 같이 있다. 새로 산 실크 속옷의 천 사이로 그는 모습을 들어낸다. 4년 전 연락을 끊은 친구의 전화. 화장실 거울에 미처 지워지지 않은 흰색 얼룩들. 그는 나를 침대에 눕히고선 놓아주지 않는다. 목을 조르고, 내 목소리 속 회의들을 잠재운다. 그리고 그녀는 가라앉는다.


재봉선

낙타



거울을 보며 중얼거려본다.

‘가슴에 가로줄 두 줄- 배에 세로줄 큰 거 한 줄-‘

‘타투가 한 개 두 개 세 개 네 개’

현재를 몸에 기록함으로써 과거를 기억하려는 시도들.

나에게 꼭 맞는 옷을 입기 위해 

그어진 가로 세로 재봉선들.

가로줄. 두 줄.

누군가는 보통 남자 가슴보다 유륜이 크고 젖꼭지가 크기 때문에 성형을 하라고 한다.

세로줄. 한 줄.

누군가는 네 배에 난 수술 자국은 남자라면 있을 수 없는 수술 자국이라고 한다. 

가슴에 가로줄이 나있는데다 유륜이 크고 젖꼭지가 크며 배에 큰 세로줄이 난 당신은 

남자가 아닙니다- 

유륜이 크고 젖꼭지가 크며 배에 큰 세로줄이 난 당신은 남자가 아닙니다-

배에 큰 세로줄이 난 당신은 남자가 아닙니다-

당신은 남자가 아닙니다-

남자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나는 아닙니다-

남자가 나는 아닙니다-

배에 큰 세로줄이 없는 남자가 나는 아닙니다-

유륜이 작고 젖꼭지가 작으며 배에 큰 세로줄이 없는 남자가 나는 아닙니다-

가슴에 가로줄이 없는데다 유륜이 작고 젖꼭지가 작으며 배에 큰 세로줄이 없는 남자가 나는 아닙니다-

네 개의 타투와 두 개의 가슴에 난 가로줄과 한 개의 배에 난 큰 세로줄. 

한 땀 한 땀 기억과 아픔을 동여맨 재봉선들은 여전히 여기에. 

거울 속 모습이 꽤나 그럴싸하다.



- 연옥에서 살아남는 법

_린


  우리 학교는 여고다. 대화여자고등학교라는 학교 간판을 볼 때마다 나는 마음에 가시가 박힌다. 그러나 나는 그 가시가 남기는 상처를 모르는 척 하고 교실까지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다. 당당하게, 치마를 입던 평소보다 조금은 당당하게. 인간으로서 최소의 권리를 가진 것마냥 힘차게 걸어서 대화여고 2학년 3반에 들어간다.


 아직 아침이고, 조회 전이기에 몇몇 반 친구들은 책상에 쓰러져 자고 있고 다른 몇몇은 수다를 떠는 평범한 풍경이 펼쳐졌다. 나는 맨 구석 내 자리로 가 앉아, 짝에게 아침인사를 하고 책상에 쓰러져 잠들었다. 잠에서 깨었을 땐 담임선생이 교탁에 서 있었다. 아직 담임은 내가 청바지를 입고 왔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데 담임은 오늘이 복장 규정을 선도하는 날이라는 걸 말했고 반 전체는 야유했다.

 멋을 부리는 몇 명은 치마 길이로 벌점을 받았고, 몇 명은 어이없게도 이름표가 없다고 경고를 받았다. 담임은 이제 내 짝의 완벽한 교복 차림을 확인하고 나를 단번에 노려보았다. “너 장난하냐? 어디서 학교에 사복을 입고 와? 1교시 끝나고 교무실로 와라.” 예상했던 반응에 나는 조금은 겁을 먹었다. 그러나 조금은 행복했다. 내 몸에 꼭 맞는 바지 밑단을 손으로 가다듬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곧 다가올 담임의 폭풍 같은 멸시를 상상하며 내 숨이 드디어 트여, 자유롭게 숨쉬는 순간을 꿈꾸었다.


 1교시, 엄청나게 잠을 부르는 비문학 수업이 끝나고 나는 교무실로 내려갔다. 체크무늬 주름치마를 입은 여자애들 속에서 홀로 와이셔츠에 자켓과 바지를 입고 복도를 지나 교무실 문을 열었다. 내가 들어서자, 다른 선생님들도 나를 어느 정도씩 노려보았다. 그들의 눈초리가 나의 자존심을, 나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힘겹게 실내화를 끌며 담임 선생의 자리로 갔다.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며 무언가를 하던 담임은 나를 보자마자 꾸짖기 시작했다. “너 교복 치마는 어디 두고 사복을 입고 온 거니? 정신이 나갔구나 아주. 너 치마로 얼른 안 갈아입으면 어머니 부른다.” 담임은 아주 적절하게도 우리 엄마 탓을 하며 말을 맺었다. “나 이런 말까지 하기 싫은데 너 어머니 혼자서 키워서 이런 거니 혹시?”

 그 마지막 말이 내 마음에 비수처럼 꽂혔다. 순간 나는 다시 초등학교로 돌아간 듯 하였다. “아빠 없는 아이래요, 연옥이는 아빠 없대요” 나에게 온종일 맴돌던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중학교 시절, 화장실 바닥에 엎어진 나를 내려다보며 한 여자아이가 한 말, “야, 너네 엄마 무슨 일 해? 당연히 창녀지?” 그 날 나는 홀로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갓난아이처럼 울었었다. 고통스런 기억들이 나의 말문을 막히게 하였지만 나는 주먹을 꼭 쥐고 담임에게 말했다.


  “아니요. 교복 치마가 입기 싫어요. 그건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치마가 얼마나 불편한지 아세요? 지하철 계단 올라갈 때, 의자에 앉을 때, 항상 불편해요. 교복 바지가 있어야 한다고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으시겠죠 당연히. 근데 저는 항상 생각해요. 교복 치마 때문에 아침마다 열 번은 넘게 고민해요, 학교 가야 하나?” 담임 선생은 역시 선생답게 일을 처리했다. “너 나가. 이런 쓸데없는 투정 부릴 거면 나가. 치마 안 입으면 어머니 부른다.” 나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굵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세요. 엄마 부르세요.” 나는 교무실 밖으로 뛰쳐나가 엄마에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응 연옥아, 무슨 일이야?” 그리고 나는 엄마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나의 긴장으로 인해 떨리는 목소리로. 연옥이라고 불리는 게 얼마나 지옥 같은지. 여고라고 불리는 학교가 왜 나에게는 지옥인지. 그리고 체크무늬 교복 치마가 나를 얼마나 옥죄어 왔는지. 엄마의 반응은 예상보다 담담했다. 그리고 엄마는 나를 공학 학교로 전학시키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은 내게 엄마가 주었던 그 어느 것보다 값진 선물이었다.


 전학한 학교로 가는 첫 날, 엄마는 나를 차에 태워 데려다 주었다. 나는 회색 교복 바지와 “김연옥”이라고 새겨진 파란색 이름표가 달린 검은 자켓을 입고 있다. 엄마는 운전을 조심스럽게 하며 내게 물어보았다. “연옥아, 이제 바지 교복 입을 수 있어서 좋지?” 나는 “연옥아”라는 소름 끼치는 내 “여자아이” 이름을 듣고 심장이 또 흔들리는 듯 하였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는 바지 교복을 입게 되었다. 다른 남자애들처럼. 우선은 그것에 만족한다. 그래서 난 대답했다. “응, 좋아. 고마워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