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who menstruate’. I’m sure there used to be a word for those people. Someone help me out. Wumben? Wimpund? Woomud? ‘생리하는 사람’. 예전에는 이런 사람들을 부르는 다른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뭐였는지 누가 좀 도와줘. 요좌? 여좌? 여어자아?
<COVID-19 판데믹 시국에서 생리하는 사람들을 위해 더 나은, 평등한 환경 만들기>를 제안하는 칼럼이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J.K. 롤링은 위와 같이 해당 칼럼이 여성이 아니라 ‘생리하는 사람(people who menstruate, menstruater)’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에서 문제를 제기했지요.
이후 롤링은 긴 입장문을 통해, <자신은 트랜스젠더를 혐오하지 않고 존중하며, 가정폭력과 성폭력 생존자라는 입장에서 트랜스여성이 겪는 남성폭력에 공감하고 연대한다. 다만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단어는 남성폭력적인 시각에서 여성을 바라보고 물화(物化)하는 단어이며, 결코 중립적인 단어가 아니다> 라며 다시 한 번 자신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는 트랜스젠더 혐오임을 지적하기 시작하면서 논쟁이 일고 있습니다. 심지어 한국 트위터에서는 ‘생리하는 사람’이 실시간 트렌드로 오르기도 했습니다. 대체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어떤 문제가 되기에 이렇게나 시끌시끌한 걸까요?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를 오독하는 전형적인 예시.)
출처: 열다북스 페이스북
모 출판사가 말한 것처럼, ‘생리하는 사람’은 정말 트랜스젠더만을 위한 단어인 걸까요?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생리하는 사람=여성’이라는 도식은 누구를 배제하고 있는지, 또 월경권 이슈에 있어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단어가 왜 중요한지를 짚고 넘어가려 합니다.
월경을 한다는 것이 반드시 여성됨과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여성은 단순히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람’으로만 존재하지 않으며, 월경을 하지 않는 여성도 많기 때문입니다. 인터섹스 여성, 난임 여성, 재생산에 필요한 난자가 형성되지 않는 중년 여성처럼요. 마찬가지로 ‘생리하는 사람’들이 모두 여성인 것 또한 아닙니다. 트랜스남성이나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등 AFAB(Assigned Female at Birth : 태어날 때 여성으로 지정받은) 트랜스젠더와 몇몇 인터섹스 당사자들은 월경경험을 겪습니다.
누군가는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여성들, 특히 신체적인 이유에서 월경을 겪지 않는 여성들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그 말도 맞습니다. 여성을 신체 부위별로 평가하고 물화하는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대부분 여성이 주로 겪는 신체 현상을 있는 그대로 칭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줄 수도 있습니다. 모든 언어가 그렇듯이,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말도 결코 완벽한 대안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기존의 언어와 담론이 배제하던 것이 무엇이었고, 대안으로 제안하는 언어로서 어떤 이들의 경험을 포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할 때, 우리의 세계는 점점 더 넓어질 것입니다.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여성의 삶이 포궁(자궁)이 있고 임신을 할 수 있다는 것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음을 선언하며, 월경을 겪는 더 많은 비여성 당사자들의 월경경험을 포용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모두를 위한 월경권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기 위함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수많은 논의와 고민을 뒤로 제쳐두고,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단순히 트랜스젠더의 ‘기부니’를 맞추기 위한 단어라 칭한다면 이 얼마나 편협한 생각인지요.
누구나 건강하고 안전하게 월경을 할 권리를 월경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부터 우리 모두에게 불편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바로 트랜스젠더의 월경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트랜스젠더의 월경권은 당사자들 사이에서도 불편한 주제입니다. 트랜스젠더, 특히 트랜스남성에게 월경이란 단순한 신체적 불편함을 넘어서 극심한 젠더 디스포리아를 겪게 하는 경우가 많고, 어쩔 때는 월경에 대한 경험이 트라우마틱한 기억으로 남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경하는 트랜스젠더의 고충에 대해서는 당사자 커뮤니티 안에서도 잘 이야기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커뮤니티 안에서 월경으로 인한 고충을 토로하면 “빨리 호르몬 시작하셔라.”라는 조언과 위로가 대부분입니다. 사실 호르몬 치료만 시작해도 빠른 시일 내에 비월경 상태가 찾아오기 때문일까요, 트랜스남성으로서 월경은 젠더 디스포리아를 느끼게 하는 부분 중에서도 가장 먼저 극복되면서, 그렇게 '지나간 일'이 되고, 그만큼 쉽사리 잊혀지고 이야기되지 않음을 절실히 느낍니다.
(사실, 어떤 남자는 이미 하고 있다.)
출처: 현실문화연구
이제와서 고백하지만 정체화 초창기 시절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옷을 사 입고 밖을 돌아다니던 때, 넘치는 자신감으로 남자 화장실을 들어갔더랩니다. (사실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면 여기 여자 화장실이라고! 라며 모르는 사람에게서 등짝을 맞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도 지겨웠습니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생리가 터졌던 어느 날, 화장실에서 느꼈던 불안함, 남자 화장실에는 생리대를 버릴 곳이 없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아채고 들었던 당혹스러움을 같은 트랜스남성 지인들에게 이야기 했더니 “그러게 (의료조치도 안 했는데) 왜 남자 화장실을 쓰냐” 라는 쿠사리만 들었더랬죠.
농담조로 제 이야기를 풀어놓았지만, ‘생리하는 트랜스젠더’는 사실 이보다 더 많은 고충을 겪습니다. 많은 당사자들이 매번 월경이 시작될 때마다 심각하게 아웃팅을 걱정하고, 월경으로 인한 아웃팅이 성폭력의 위협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성별 정정에 있어 생식 능력이 없을 것을 요구하는 대법원 예규는 트랜스젠더의 재생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 비판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 포궁 적출 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남성 당사자가 건강상의 이유로 월경 또는 포궁에 대한 진료를 받으러 가려면 병원 문을 들어설 때부터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 트랜스젠더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의료진 등 수많은 관문을 넘어서야 합니다.
건강하고 안전하게 월경할 권리를 위해서는 우선 우리의 경험이 이야기되어야 함에도 트랜스젠더의 월경은 시스젠더 여성의 월경과는 다른 결에서 계속해서 터부시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트랜스남성의 월경권은 재생산권에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안전한 월경권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월경하는 비여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월경하는 비여성 당사자들은 일상에서부터 자신의 월경경험으로 인해 수많은 장벽에 부딪힙니다, 이것은 단순히 당사자가 ‘지금부터 마음을 잘 다잡아서’ 해결하거나 긍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 사회가 인식을 바꾸고 함께 고민해나가야 할 종류의 것입니다.
그래서 ‘생리하는 사람’은 우리에게, 특히 트랜스젠더의 월경권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단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존재가 계속해서 지워지고, 상상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트랜스남성의 월경경험은 분명 실재하는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안전하게 ‘생리하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논의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자신의 ‘불편한’ 월경경험을 이야기하고 안전한 월경권을 누릴 수 있는 포용적인 공간을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나가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트랜스젠더의 월경권에 대한 불편한 말들이 이어지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생리를 한다는 것이 여성됨과 반드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판단입니다.
어떤 트랜스젠더는 생리를 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생리하는 사람’이어서 지금 이 순간에도 겪고 있는 경험은 지금도 존재합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트랜스남성은 남성입니다. 어떤 비여성은 월경경험을 겪습니다. 그리고 트랜스젠더의 월경권 또한 존중받아야 합니다.
조각보의 북미 담당관, 활동가 낙타가 보내준 보스턴의 TDOR 캠페인 참여 후기를 함께 공유합니다.
2019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 TDOR이 시작된 보스턴에서의 참여 후기
오후 4시면 깜깜한 밤이 되어버리는 이곳은 11월 20일의 미국 보스턴입니다. 보스턴은 1998년 11월 트랜스여성이자 지역의 유명한 락앤롤 아티스트이기도 했던 Rita Hester가 혐오범죄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Transgender Day Of Remembrance: TDOR)이 시작된 지역이기도 합니다. TDOR 당일, TDOR이 시작된 지역에서, TDOR 행사에 참여했던 후기를 쓰고 있으니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사진1) TDOR 행사 프로그램 안내지의 첫 장
TDOR 행사는 Massachusetts Transgender Political Coalition(MTPC)라는 단체의 주도로 당일이 아닌 그 전주 주말 일요일(11월 17일)에 보스턴 도심의 한 성당에서 열렸습니다. 검은 옷으로 무장하고 간 것이 무색하게도 성당 입구에서는 화려하게 수녀 복장으로 드랙을 한 스태프들이 손님들을 환대하였습니다.
넓은 홀에 켜켜이 들어선 사람들이 앉은 의자 밑에는 2019년 한 해 동안 혐오범죄로 사망한 트랜스젠더들의 이름과 나이, 국가를 붙인 촛불이 놓여있었습니다. 강단 옆 화면에는 그들의 사진과 이름, 나이, 국가가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 재생되었는데, 국가와 상관없이 많은 희생자들이 유색인종의 트랜스여성이었습니다. 이를 반영하듯 본 행사는 트랜스젠더의 교차적 정체성에 집중하고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프로그램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일례로 남미에서 온 이민자들이 큰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지역임을 고려하여 스페인어 해석이 제공되었고, 인종, 연령, 장애/비장애 등 다양한 정체성이 고려되어 발언자들이 선발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실패해왔습니다."
한 발언자가 말했습니다. (트랜스 당사자들을 포함한) 우리들은 유색인종의 트랜스여성을 돕는 것에 실패해왔다고. 발언자는 대단한 것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언제 당신은 마지막으로 그들과 함께 밥을 먹었냐고 물었습니다. 그 발언을 통해 저는 작고 사소해 보이는 시도들이 모여 서로를 연결하고, 많은 문제를 더욱 가시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2) 2019년 트랜스젠더 혐오범죄 희생자들의 이름이 붙은 촛불
가장 긴 시간이 할애되었고,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던 프로그램은 트랜스젠더 홈리스 지원 프로그램(Boston Health Care for the Homeless Program’s Transgender Program)의 참가자들이 나와 100여명 이상의 희생자들의 이름과 나이, 국가를 하나하나 읽어 나갔던 부분이었습니다. 모두가 희생자의 이름이 붙은 초에 불을 붙이고, 때로는 이름 모를 희생자의 국가가 읽히는 것을 함께 들었습니다. 그 누구 한 명을 대표로 내세워 추모하는 것이 아닌 모든 희생자에게 긴 시간을 들여 함께 조의를 표하는 것만큼 퀴어한 것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에게 퀴어함이란 어떤 교차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든 개개인 모두가 똑같이 기쁘게 살아 숨쉬고, 또 기억되는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행사는 트랜스젠더들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공유할 수 있음을 축하하듯 드랙 공연자의 신나는 공연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처음 TDOR이 시작된 지역에서 TDOR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뜻 깊었지만,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심리적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에 대비하여 전문 심리상담사가 대기하고 있었던 점, 한국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노년층의 트랜스젠더 당사자들과 함께 했다는 점 등 세세한 부분들 또한 잊지 못 할 것 같습니다. 다만 동양인이자 트랜스젠더인 사람들의 가시화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점은 해가 거듭될수록 나아지길 기원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해가 거듭될수록 희생자의 이름을 읽는 시간이 줄어들길, 그리고 그를 위해 지금 행동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실천해 나가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길 바라봅니다.
젠더라는 개념과 관습은 여러 사람을 다치게 할 잠재력을 품고 있다. (…) 자기 ‘젠더’가 몸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심리적 상처로 고통을 겪을뿐더러 (…) 의료적 처치를 받고 난 이들은 사회에서 주변화되고 배제되어 더욱 상처를 받으며, 일부는 돌이키기 힘든 실수를 저질렀다고 후회하기까지 한다. (…) 트랜스젠더 본인만 상처를 입는 건 아니다. 본인이 여자라고 생각하는 남편을 둔 여자들, 여자 파트너가 ‘남자’가 되어버려서 본인의 레즈비언 정체성이 흔들리는 레즈비언들, 딸이나 아들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슬퍼하는 어머니들도 상처를 받는다. (…) 트랜스젠더 현상은 레즈비언 공동체에도 상처를 준다. 트랜스젠더를 하는 남자들이 기를 쓰고 공동체에 잠입하는가 하면, 레즈비언들이 호르몬 요법 및 수술로 만들어진 이성애로 넘어가면서 공동체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페미니즘 운동도 예외는 아니다. 트랜스젠더 활동가와 이론가들은 페미니즘을 무자비하게 비판하며 여자만의 공간과 지원 조직을 비집고 들어가 파괴하려 한다. 이렇게 페미니즘과 여자만 받는다는 원칙을 뒤흔드는 운동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건 ‘젠더’가 무엇인지에 대한 혼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젠더는 해롭다> p. 39-40
‘트랜스젠더 행위’는 트랜스젠더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주며,
성별을 바꾸는 것은 결코 불가능합니다.
트랜스젠더리즘은 남성이 여성의 공간을 침범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이며,
이러한 트랜스젠더리즘의 폐해는, ‘젠더’가 실재한다고 믿는 이들 때문에 생겨납니다.
보수적인 특정 종교단체의 혐오발언이 아닙니다. 쉴라 제프리스는 이처럼 생물학적 성별에 기반한 여성의 공간과 권리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트랜스젠더는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여성 공간을 침범하기 위한 존재’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학자 중 한 명입니다.
새로운 결의 트랜스혐오가 점점 가시화되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지난 9일에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렸던 열다북스와 인천여성의전화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쉴라 제프리스 초청 강연, [젠더박살 프로젝트]에 다녀왔습니다. 인천여성의전화는 [젠더박살 프로젝트]를 여는 입장문에서 ‘젠더를 박살낼 페미니즘’ 이라고 말했습니다. (쉴라와 주최 측이 어떻게든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려 노력하는) 트랜스젠더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의 구성원으로서, 또 페미니스트로서 이들이 말하는 젠더는 대체 무엇이고, 페미니즘적으로 젠더를 박살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 후기를 함께 공유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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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열다북스에서 주최한 쉴라 제프리스에 강연에 참석했다. 몇 분 늦게 도착해서 강연장은 벌써 이미 다 차 있는 상태였다. 신청자를 300명이나 받았음에도 티켓팅이 마감이 된 행사였으니까 예상 밖은 아니었다. 내가 강연장에 들어섰을 때 쉴라는 이미 무대에서 강연을 하고 있었다. 들어가자 마자 내 귀에 들리는 이야기는 크로스드레서와 포르노 이야기. 이미 다 아는 이야기이고 수도 없이 읽어본 주장이지만 이런 강연에서 듣는 건 처음이었다.
“트랜스여성이라는 건 없다. 그냥 크로스드레서이다.”
“여자 교복을 입고 립스틱을 바르면 자신을 더 낮은 지위에 놓고 그것에 성적 쾌감을 느낀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관중은 역겨워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어떻게 이런 말들을 내뱉을 수가 있고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동의할 수 있는 거지? 쉴라는 엄청나게 생생한 장면들은 그려낸다. 대부분 성적인 내용이고 트랜스여성의 문란함을 강조하며 그들을 성범죄자와 비교한다. 트랜스여성을 공포스럽고 혐오할만한 존재물로 만들어갔다. 여기에서 쉴라에 한 마디 한 마디가 관중에 있는 이들에게는 아마도 진실이 되겠지. 이미 마음을 정하고 온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과연 이 사람들 중 트랜스여성을 만나본 사람은 있는 걸까?
“트랜스젠더하는 이들은 더욱더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성적 쾌감을 찾아 여자 화장실을 포함한 공공장소에서 여장한 채로 다닙니다. 여장을 한 상태에서 여자 화장실에서 여성분들께 악수를 요구하기도 하며 그 행위에 사정을 합니다.”
쉴라의 말을 들으면서 고정관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본다. 내가 아는 페미니즘 운동은 고정관념과 맞서 여성 인권을 위해 싸워왔다. 지금까지 수많은 고정관념을 깨며 평등을 추구해왔다. ‘여성은 약하다,’ ‘여성은 소극적이다’와 같은 선입견을 파괴하기 위해 무수한 노력과 운동이 필요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지금까지도 가부장적인 체제가 강요하는 고정관념에 기반한 주장들에 우리는 저항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런데 이 강연에서 그려지고 있고 열다북스가 SNS를 통해 내세우는 트랜스젠더 역시 고정관념일 뿐이지 않을까? 쉴라가 말하는 이 성적 쾌감과 판타지만을 추구하는 트랜스젠더, 자기 자신을 혐오하고 이성애 규범에 집착하여 ‘트랜스젠더’하는 ‘레즈비언’도 존재하기는 할 것이다. 다만 특수한 몇몇 사례를 근거 삼아 트랜스젠더 전체를 모두 흉직한 집단으로 정의하는 건 너무나 어이없는 일이다. 호응하는 청중들은 진짜로 대부분의 트랜스젠더가 이렇다고 믿는 것일까? 실제로 레이 블랜차드(Ray Blanchard)의 논문처럼 구식이고 근거 없는 연구들을 기반으로 하여 트랜스젠더를 정의내리는 방식에 다들 만족하는 것인가?
쉴라가 이 강연에서 하는 이야기는 1979년 트랜스젠더를 비판한 또 하나의 대표적인 책 <트랜스섹슈얼 제국(The Transsexual Empire: The Making of the She-Male)>에 나오는 생각들과 흡사하다. 몇 년 전에 출판된 쉴라의 <젠더는 해롭다>의 감사의 말에서도 쉴라가 <트랜스섹슈얼 제국>의 저자인 재니스 레이몬드(Janice Raymond)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 두 사람의 주장은 앞서 말한 편견들로 가득 차 있어 보인다. 트랜스젠더를 정의하고 설명하려 할 때 자기들의 세계관에 맞는 사례에만 집착하고 증거 삼아 논리를 전개하다 보니 인지부조화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건 아닐까?
‘트랜스젠더가 여성성 또는 남성성을 강조한다.’ 완전히 틀린 말만은 아니다. 다만 트랜스젠더라서 성별 이분법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트랜스젠더의 성별성도 사회에서 용납되는 언어와 행동을 반영할 뿐이다. 이것은 비트랜스젠더도 마찬가지 아닌가? 왜 트랜스젠더에게만 정치적 올바름을 강요하는가? 트랜스젠더만 이상적인 기준에서 평가하는 것은 극히 불공평하다. 더불어 대다수의 트랜스젠더에게 남성성과 여성성은 생존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자신의 젠더 표현에 맞는 패싱이 안됨으로써 야기될 폭력과 불이익에 맞서기 위한 위장이다. 물론 여성 인권을 위해 앞장서는 트랜스젠더도 많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활동이나 운동을 할 여력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고정관념으로 고정관념에 맞서는 건 페미니스트로서 위선적인 행동이 아닐까? 트랜스여성은 전부 성적 판타지에 갇힌 변태일 뿐이자 자기여성애자(autogynephile)이고, 트랜스남성은 여성이기 때문에 받아야 하는 억압으로부터 도피하는 ‘트랜스젠더하는’ 이들. 이런 묘사들이야말로 편견의 씨앗을 뿌리는 행위인 것 같다.
젠더는 그저 라벨이고 틀일 뿐이다. 이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각 개인에게 달려있다. 물론 젠더라는 용어가 지니는 개념에 의해 발생하는 억압도 있다. 틀은 준거를 만들어내고, 준거에 어긋난 행위와 존재는 억압할 대상이 된다. 그래서 나도 젠더를 아예 없애자는 운동에 반대하지 않는다. 더불어 레디컬 페미니즘의 여러 사상들에는 예전부터 동의해왔다. 젠더가 없음으로써 모두가 더욱 자유로울 수 있는 세상을 꿈꿔보기도 한다. 많은 트랜스젠더들도 젠더의 불필요성을 언급해왔다. 하지만 현재로선 젠더는 존재하고 있고, 그 젠더를 통해 자기 자신을 정체화하는 사람들이 많다, 트랜스젠더든 비트랜스젠더든. 이들에게 있어 젠더는 일상이자 생존수단이며 그리고 삶의 일부를 뜻하기도 한다. 마치 성노동에 대한 비판과 같다. 근본적으로는 성노동이 여성을 상품화하고 올바르지 않은 성문화를 퍼뜨린다 하여도 성노동 자체가 생존수단인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사회가 짜놓은 이상의 틀에 맞춰 살아갈 수 있는 것도 권력이지 않을까? 이 틀에 곱게 맞춰 살아가지 못하는 이들을 폄하하고 비가시화 하는 것도 권력의 작용이지 않을까?
왜, 그리고 언제부터 트랜스젠더가 이렇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페미니즘이 현재 직면한 수많은 문제들 중에서 왜 하필 트랜스젠더를 골랐을까? 쉴라 제프리스의 책을 번역하고 그를 해외에서 강연자로 섭외해와야 할 만큼 트랜스젠더가 두려운 현상인가 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의 레디컬 페미니스트들에겐 가부장제와의 전쟁에서 가장 시급한 이슈는 트랜스젠더 문제란 말인가? 아니면 오로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이고 적으로 삼기 손쉬운 상대로 택한 것은 아닐까? 열다북스의 이러한 활동은 오늘날 정치판에서 너무나도 흔하게 목격할 수 있는 포퓰리즘과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쉴라가 했던 말 중 인상 깊었던 말이 있다. 여성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다툼에 대한 질문에 답이자 플로린스 케네디(Florynce Kennedy)의 가설 ‘수평적 적대감’에 대한 발언이다. ‘수평적 적대감은’ 피억압 계층이 억압 계층에게는 직접 저항할 수 없으니 다른 억압 당하는 계층에게 수평적으로 적대감을 보이는 것이라고 쉴라는 설명했다. 지금 트랜스젠더를 향한 적대감이야말로 이에 대한 적절한 예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나도 트랜스여성의 타이틀을 빌려쓰고 있는 한 명으로서, 그리고 페미니스트로서 이 강연은 너무 증오와 혐오로 가득 차 있다 느꼈다. 트랜스젠더를 악마화하며 하나의 목적을 바라보는 ‘젠더박살 프로젝트’는 이분법적이고 이차원적으로 젠더를 다루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물론 이 행사의 주최 측은 대화에 응하지는 않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이 젠더의 대한 고민과 갈등에 대해 같이 이야기 나누고 싶은 바이다.
_ 조각보 활동가 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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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성플라자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강연장은 수많은 인파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비록 바라보는 방향과 가치는 다를지라도, 어찌 되었든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현장이 있다는 것은 언제나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강연은 ‘트랜스젠더는 트랜스젠더리즘이란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실재하지 않는) 존재’임을 강조하며 시작되었습니다. 트랜스젠더리즘은 성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존재들을 만들어내고 수호하는 이데올로기이며, 이는 곧 ‘젠더권과 여성 인권의 충돌’을 일으키고, 그렇기에 (트랜스)젠더의 존재는 여성 인권에 해로우며 이것을 박살내는 것이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의 원동력이고 핵심이란 결론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쉴라 제프리스는 강연 도중 트랜스젠더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폐해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강조하면서, 트랜스젠더는 여성 고유의 공간을 박탈한다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이 대목에서 월경/출산과 관련된 부분을 지원하는 센터에 ‘여성’이 아닌 성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던 영국의 사례를 들어 ‘트랜스젠더리즘의 폐해’의 예시라고 말하며, "마치 남성도 월경이나 임신이 가능하다는 망상”이라고 설명하였는데요.
사실 트랜스젠더리즘과 트랜스젠더가 만드는 폐해를 언급하며 트랜스여성만 강조하는 것은 별로 놀랍지 않았습니다. 기존의 가부장제-남성 중심 사회의 트랜스혐오 또한 주로 가시화된 혐오는 트랜스여성을 향해 나타났으니까요. 덧붙여 이성애자 트랜스여성을 두고 동성애자 남성의 트랜스베스타잇 페티쉬라 일컫고, 레즈비언/바이섹슈얼 트랜스여성에 대해서는 이성애자 여장 남자 등으로 지칭하며 트랜스여성에 대해서는 다양한 성적 지향과 욕망 대해 언급하였음에도 트랜스남성에 대해서는 레즈비언의 (이성애 규범을 따르기 위한) 트랜스젠더화 라고만 언급되더군요. 트랜스남성은 모두 여성애자밖에 없을 것이란 데에 상당한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이 꽤 흥미로웠습니다. 이쯤에서 존재를 부정하는 데에서도 존재가 지워지는 나의 비-이성애자 트랜스남성 친구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여하튼 현실에서는 정말로 남성도 월경이나 출산을 합니다. 트랜스남성도 월경을 하고, 어떤 이들은 임신과 출산을 선택하고, 때로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해 안전한 임신중절을 필요로 하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누군가는 “‘그들(트랜스남성)은 여자다. 여성 신체를 지닌 자이기 때문에 월경을 하는 것이니 월경/임신/출산에 대한 담론에서 성중립적인 언어를 사용하자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라고 말하겠지요. 그렇지만 제가 앞서 말했듯이 트랜스젠더는 지금 이 순간에도 현실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법적 성별 변경에 있어 우리나라와 달리 의료적 조치(생식능력 제거, 외과적 수술)등을 요구하지 않는 국가들의 경우 법적으로도 남성이고, 남성으로 패싱되면서 월경/임신의 당사자인 이들도 존재합니다.
문제는 트랜스남성의 월경/임신은 분명히 존재함에도 비가시화되고 심지어 당사자들 사이에서도 터부시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트랜스남성 당사자들은 기존의 제도와 지원 체계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의료적 지원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쉴라의 바람과는 다르게 월경/임신의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이라 표기된 신분증을 지니고 있고 남성으로 인식되는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현실에 존재합니다.
물론, 단어 하나를 성중립적으로 바꾼다고 이러한 터부와 비가시화가 한 순간에 뾰롱 하고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언어는 주류의 언어이며 사회가 무엇을 정상적으로 여기고 있는지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언어에서 소외되는 이들은 기존의 제도와 담론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입니다. 페미니즘 담론에서 자궁을 포궁이라 지칭하는 등 대안적 언어를 고안하고 사용하려는 움직임과 비슷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젠더는 해롭다> 번역본에서도 ‘아내’가 아닌 ‘여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지요.
말 그대로 임신/출산의 당사자에 해당되는 여성들을 두고 ‘임신/출산의 당사자’로 호명하는 것이 어째서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으로 읽히는 걸까요? 아일랜드에서 낙태죄가 폐지되고 안전한 임신중절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률이 새로 제정될 때, 아일랜드의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Transgender Equality Network Ireland가 트랜스젠더(특히 트랜스남성)도 임신중절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새로운 법안에서 성별중립적인 단어를 사용할 것을 요구하며 했던 말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안전한 임신 중절을 위한) 새로운 법안은 여성들에게 분명 크나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법안에 트랜스젠더가 포함된다 하여, 여성의 권리가 제한되거나 줄어드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 말 그대로입니다. 트랜스젠더와 같이 제도와 지원체계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접근권을 높인다고 여성에 대한 지원 체계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또한 쉴라의 강연에서 디트랜지션(detransition,트랜스젠더 당사자가 진행했던 의료적 조치를 다시 되돌리는 것)에 대해 언급한 부분도 우려스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쉴라는 강연에서 디트랜지션, 특히 의료적 트랜지션을 선택한 이성애자 트랜스남성이 나중에 그 결정을 철회하고 디트랜지션을 진행하며 다시 레즈비언으로 재정체화를 하는 것을 두고 ‘트랜스젠더리즘이 허상임에 대한 레즈비언 자매들의 증언이자 반격’이라고 말했는데요, 이러한 시선 때문에 의료적 트랜지션을 진행하였거나 고민 중인 당사자들 사이에서 디트랜지션에 대한 이야기가 터부시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낙태죄 폐지 담론에서 가장 유명한 슬로건 중 ‘My Body, My Choice’ 라는 말이 있지요. 내 몸에 대한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을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선택은 오롯이 나의 것입니다. 디트랜지션을 선택하는 이유는 많습니다. 한때 나의 신체에 불편감을 느끼고, 그것을 디스포리아로 인식하여 의료적 트랜지션을 선택했더라도 나중에는 그러한 결정을 철회하고 선택지를 다시 되돌리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의료적 트랜지션을 진행하던 중 뜻하지 않은 부작용이 발생했다거나, 신체 변화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타나지 않았다던가, 쉴라가 언급했던 사례들처럼 막상 의료조치를 진행하고 나서 나의 성별 정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래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의료조치를 선택했던 당시에 스스로의 몸에 대해 느꼈던 감정과 불편감은 분명 실재하는 것이었고, 지금 느끼는 몸에 대한 감정 또한 오롯이 당신의 것입니다. 트랜스젠더에게 의료조치를 강요하는 것이 부당한 일인 것처럼, 진행한 의료조치를 다시 되돌리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당사자로서의 진정성을 의심하거나 혐오 논리에 이용될 것이라며 말하지 못 하게 제약하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트랜스젠더의 안전한 의료조치에 대한 지원을 논의하는 만큼 디트랜지션에 대한 논의도 계속해서 이어져야 합니다. 그에 앞서, 쉴라의 강연처럼 디트랜지션이 트랜스젠더 혐오 논리를 퍼뜨리는 데에 악용되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고요. 디트랜지션을 선택한 ‘FTM 스펙트럼’의 당사자들이 모두 쉴라의 말처럼 ‘돌아온 레즈비언 자매’이지 않을 뿐더러, 누군가의 몸에 대한 선택을 두고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이들의 삶을 함부로 규정짓는 것은 지금까지 여성과 소수자가 가부장제가 만든 정상성 규범에서 낙인찍히고 비가시화되었던 방식과 결을 같이 합니다.
이번 강연은 여러모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쉴라는 트랜스젠더 인권 운동은 “이성애자 여장 남자”의 권리를 지켜주는 운동이라 말했습니다만, 조각보만 하더라도 너무나도 다양한 정체성과 지향성을 가진 이들이 저마다 제각기 다양한 고민과 가치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걸요? 우리의 활동 방향과 가치를 규정짓고 왜곡하려는 이들이 있을 때, 어떻게 대응해가야 할지도 너무나 고민되는 지점입니다.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가 바라보는 가치는
트랜스젠더로서의 지속가능한 삶을 주요 가치로 삼습니다.
젠더와 다양성에 대한 고민을 담은 페미니즘적 활동을 하려 합니다.
트랜스젠더 인권을 향상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펼칠 플랫폼이 되고자 합니다.”
제가 몸담고 활동하는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에서는 조각보에서는 올해 초, 수 년간 쌓아온 내부 논의를 바탕으로 단체의 활동가치 항목에 '페미니즘적 활동을 한다'는 말을 추가했습니다. 단순히 단체에서 활동하는 구성원 개개인 모두가 페미니스트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한 현재의 남성-이성애-정상성 중심의 사회는 많은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삶 또한 옥죄고 있으며, 그렇기에 이들이 지속가능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 즉 트랜스젠더의 인권 향상에 있어서도 페미니즘과 페미니즘적 관점을 담은 활동은 필수적이라는 데에 구성원 모두가 동의하였기 때문입니다.
강연은 ‘젠더는 없다’, ‘트랜스젠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주제로 진행되었고, 더 나아가 차별금지법에 대한 언급과 더불어 ‘젠더를 법에 새겨서는 안 된다’와 ‘젠더는 페미니스트에게 해롭다’로 끝났습니다. 외국은 성별 정체성(즉 젠더) 항목이 포함되어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혹은 평등법)이 제정되어 있어 트랜스여성이 범죄를 저질러도 제대로 처벌하거나 대응할 수 없지만 현재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있지 않은 한국의 상황은 페미니스트들이 무언가 해볼 수 있는 희망찬 상황이라고 호도하는 모습을 보며 여러모로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러한 이야기가 명백히 사실이 아님은 둘째치더라도, 강연 내내 젠더에 대해, 젠더가 어떻게 해로운지에 대해 이야기했음에도 저는 강연이 말하고자 하는 ‘젠더’가 무엇을 지칭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트랜스젠더의 존재 자체가 여성 인권에 해가 된다는 말일까요, 아니면 성별 정체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쉴라와 자매들이 모여 ‘다른 자매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그 자리에는, 적어도 둘 이상의 트랜스젠더이자 페미니스트인 개인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여성 신체 트랜스젠더’에 해당되는 FTM 트랜스남성인 저를 두고 존재 자체만으로 여성주의의 배신자처럼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트랜스젠더인 저에게 있어 제가 삶을 지속하는 데에 가장 해로운 것은 젠더도 무엇도 아닌 가부장제라는 것입니다. 제 삶에는 소위 말하는 ‘여성 신체’로 인식되는 몸을 가지고 살아왔기에 요구받았던 규범과 낙인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부장제-이성애-정상성 중심의 규범은 트랜스젠더인 제 몸에도 낙인을 찍습니다.
제가 제 몸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단어는 트랜스젠더였고, 그래서 저는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기를 선택했습니다. 쉴라는 ‘여성 신체 트랜스젠더(트랜스남성)는 여성 신체로 살아가며 생겨난 방어 기제와 탈출 통로로서 트랜스젠더가 되기를 선택하였다’고 설명하지만, 트랜스젠더인 제 몸 또한 여전히 이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정상성 규범에 맞춰나갈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때때로 제 몸은 트랜스젠더이기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몸이 됩니다. 때로는 (트랜스) 남성이기에 어떠한 정상성의 틀과 규범에 맞추기를 요구받으며,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생물학적) 여성이기에 폭력에 노출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잠깐의 안녕과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순응하거나 타협하더라도, 트랜스젠더 당사자 개인으로서, 또 트랜스젠더 인권 운동을 펼치는 단체에서 활동하는 입장에서 저 자신이 가장 먼저 원하고 이루고자 하는 것은 성별 고정관념과 성별에 기반한 차별을 비롯해 가부장제가 만든 정상성 규범을 타파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제 삶에 있어, 그리고 트랜스젠더 인권 운동에 있어 페미니즘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의 삶 속에서 페미니즘은 필수적입니다. 이것은 저뿐만 아니라 쉴라 제프리스와 쉴라의 자매들을 포함해 강연장에 모였던 모든 이들이 함께 바라보고 공감하는 가치일 것이라 믿습니다.
쉴라의 강연에서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이야기되던 트랜스혐오 - 자연적으로 주어진 성별은 절대 바꿀 수 없다, 트랜스젠더는 여성의 공간을 침범하려는 잠재적인 가해자다 등등 - 의 논리는, 사실 전혀 새로운 이야기들이 아닙니다. 가부장제 속의 정상성 규범이 우리 사회에서 지속시켜온 트랜스혐오를 그대로 답습하며 재생산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트랜스혐오는 결코 페미니즘적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트랜스젠더 혐오를 타파하기 위해서, 트랜스젠더 인권 운동에서도 페미니즘은 필수적인 가치입니다.
11월 20일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Transgender Day of Remembrance : TDOR)입니다.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은 1998년 11월 미국에서 한 트랜스여성이 증오범죄에 의해 희생당한 것을 계기로, 증오범죄에 희생당한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을 기억하고 함께 애도하는 날로 시작되었습니다. 조각보는 독립된 단체로서 출범하기 이전, 트랜스젠더 인권운동을 하는 단체를 만들자는 프로젝트 2년차 시기였던 2014년도부터 매년 ‘먼저 떠나간 사람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이들의 삶을 기리되, 이것이 단순한 추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살아남은 우리들, 앞으로를 살아갈 우리들이 서로의 삶을 기억하고 지지하며 응원하고 연대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자’를 모토로 삼으며 추모의 날을 준비해왔습니다.
이번 강연은 트랜스젠더이자 페미니스트인 개인으로서 나와 내 주변의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어떻게 지속가능한 삶을 이어갈 수 있을지, 앞으로의 활동 방향을 새로이 생각해볼 계기를 만들어주는 귀중한 자리였습니다. (이러한 자리를 준비해주신 주최 측에도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저는 제 자리에서 어떠한 관점과 활동으로 우리네 여성과 소수자의 삶을 좀먹는 가부장제 규범을 타파해나갈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활동으로 만들어나가려 합니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아닌, 가부장제 타파를 실천하는 페미니즘이 이어진다면, 그러한 활동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언젠가 만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2018년 12월 5일.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법사위를 통과했고 이틀 뒤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아마 그 과정을 지켜보며 복잡한 기분을 느낀 사람은 나만이 아닐 것 같네요. 특히 저에겐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의 내용에서 사실상 gender violence에 대한 내용이 실종되었다는 점이 너무나 크게 다가왔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놀랍거나 당황스럽지는 않았습니다. 또 소식을 접한 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을 제정하기 위해 사람들이 해온 노력과 고난을 볼수록 오히려 존경심에 가까운 마음이 더 들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시감마저 느껴지는 그 과정은 입맛을 씁쓸케 했습니다.
‘정치역학에서 타협은 필수이다.’ 정치학을 배울 때 교수님이 즐겨하신 말이고 저도 공감하고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일어난 희극적 상황이 적지 않죠. 특히 2013년 강간죄 성립요건이 크게 바뀌었던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있던 유사강간죄를 굳이 만들어 성교와 성교 아닌 것을 구분하고 가해자가 삽입해야지만 성립되는 참 희극적인 법 개정이 기억납니다. 물론 이 개정으로 성폭력으로 피해를 입는 성소수자가 법률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근거가 생겼기에 굳이 말하자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지만요.
차별금지법도 당시로 돌아가면 참 긴박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시한 안은 혐오세력의 말을 들은 법무부에 의해 ‘타협’의 대상이 되려고 했죠.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이 빠진 것을 비롯해 병력, 언어, 출신국가 등이 빠진 반쪽짜리 안이 입법예고되기까지 하였습니다. 입법을 막기 위한 수많이 소수자 단체와 이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 끝에 수정안이 통과되는 참사가 일어나진 않았지만, 차별금지법과 같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법에서도 타협은 여지 없이 일어나려 했지요. 씁쓸한 기억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타협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핵심적인 곳에서 타협이 일어났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네요. 여성폭력의 정의가 바뀌면서 법률의 의미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입니다. 법사위에서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이 한 말 이 머리에 멤도네요. ‘최초로 이 법이 보호하려고 하는 대상이 100 이라고 하면 실제로 여성만 대상으로 하면 그 범 위가 85나 90으로 줄어든다고 할 거예요. 그러면 100은 안 되더라도 90을 보호하는 정도 수준으로 해서 입법을 할 건지 판단하셔야 됩니다. 더 이 상 끌 수는 없어요.’ ...그 말을 수용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비난만 할수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같은 회의에서 언급되었듯 누군가는 “동성애법”이니 뭐니 하는 식의 지적을 하고, 간신히 통과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는데 지금 실패하면 앞으로 영영 기회를 잡을 수 없다는 두려움도 있었겠죠. 하지만 기본법은 관련된 수많은 법률 및 행정에 영향을 줍니다. 앞으로 대한민국 사법/입법/행정에 영향을 줄 기본법에서 손상된 취지가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게 될지... 앞으로의 해석과 사회에서 적용되는 양상을 봐야겠지만 우리는 과거 다른 나라가 여성폭력/젠더폭력을 둘러싸고 수십년간 했던 논쟁과 시행착오를 쓸데 없이 무의미하게 반복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 통과된 이후 바로 개정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말 잘된 일이고 또 응원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원안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겠죠. 특히 입법과정에서 트랜스젠더퀴어에 대한 담론과 생각이 전혀 담기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지금 이 법이 원안에서, 그리고 현재의 법안에서 당사자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예측할 수 없으니까요. 또 원안과 현재의 법안이 한국의 제도가 젠더폭력을 인지하는 방식을 어디까지 반영하고, 또 앞으로 한국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구조와 거기서 나타나는 젠더폭력을 어떤 방식으로 대처하려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는지도 살펴봐야겠죠. 조각보는 앞으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추구하는 바, 즉 젠더폭력의 방지에 트랜스젠더퀴어에 대한 고민이 담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성별이분법을 당연한 사실이라고 가정한 채 형성되어온 젠더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차근차근 해부하고 재정립하려 합니다.
조각보는 앞으로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자체와 법률의 대상이 될 다른 제도 및 사회적 이슈들을 트랜스젠더퀴어적 관점에서 탐구할 것입니다. 또 여성폭력방지법뿐만 아니라 성별이분법을 기반으로 형성된 수많은 제도와 관습을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그 방향성이 지금의 개정 준비를 비롯해 지금까지 있었던, 그리고 앞으로 있을 수많은 이슈에 적극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또다시 타협 속에서 트랜스젠더퀴어의 삶이 침묵 속에 일방적으로 휩쓸리는 일이 없도록 차근차근 놓치는 것 없이 준비해 나가겠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 쯤이었습니다. 이미 혜화역에 도착하기 몇 정거장 전부터 붉은 계열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요.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서로를 발견하고는 옅은 미소와 함께 연대의
눈빛을 주고받았습니다. 저도 그 사이에서 두어 번 쯤 눈빛을 주고받았습니다.
'나도 당신과 같은 것을 경험하고, 같은 단어를 끌어안고, 같은
세상을 꿈꾸고 있어요.' 2차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전철에 오르기까지, 저에게는 많은 고민과 걱정들이 있었습니다. 1차 집회에서 주최 측은 '생물학적 여성만 참가할 수 있다'는 일종의 '자격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규정하는 '생물학적 여성'이
무엇인지 모르지 않습니다. 제 자신이 그 범주에 속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1차 집회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 공간, 공동체에서의 연대는 맹목적이거나 일방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나 2차 집회가 가까워올 즈음, 저는 현장에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집회에서도, '주최는 주체를 아우르는 단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불법촬영 편파수사'를 규탄하기 위해 집회에 참가했고, 제 자신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의견을 가지고
참가했습니다. 다시 말해 주최 측의 의견이 참가자 모두의 의견과 같지 않고, 따라서
주최 측의 요구가 부당한 상황에 저는 부당함에 저항하며 함께 공동의 목표-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를 이룩해가는 쪽이 낫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혜화역 시위에 참가하며 여러 양가적인 감정을 느꼈습니다. 제 목소리는 너무 작고, 공개적으로 제 의견을 낼 수 없어 결과적으로는 혐오성 발언들에까지 힘을 보탠 상황들이 만들어질 때마다 주변에서 집회
구호를 듣고 있을 트랜스젠더 당사자와 엘라이들이 걱정되고 이들에게 한없이 미안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제가 이곳에 있음으로 해서 트랜스젠더들과 엘라이들, 그리고 시위 참가자들에게 '이곳은 트랜스젠더 청정 구역(!)'이 아니다'는
것과, 단일하지 않은 투쟁이 공존하는 집회 현장이 결코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의 참가자들이 트랜스젠더 혐오적인 농담과 발언을 할 때마다 고립감과 위협을 느꼈지만, 불법촬영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이들이 3만 명 넘게 모여 이화사거리까지 가득 메웠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제가 참가한 시위는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입니다. 제가 이 시위에 참가한 이유는, 당연하지만, 불법촬영에
대한 편파적인 수사에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불법촬영 및 편파수사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고, 이는 주최 측에서 배제하고자 했던 '지정성별이 여성이 아닌' 대부분의 트랜스젠더퀴어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7월 7일 토요일,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을 위한 3차 집회가 열립니다. 부디 이번 집회는 '어떤
여성'만을 위한 집회가 아닌, '불법촬영 편파수사의 타깃이 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집회가 되길 바랍니다.
사전투표일. 출근하기 전 투표를 할 요량으로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예전처럼 가장 '남성스러운' 옷을 고르고 제법 후덥지근한 날씨에 모자 달린 바람막이를 쓰고 문을 열었습니다. 무난하게 입어야 얼른 투표를 하고 올테니까요. 그러다 문뜩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투표하겠다는 데 왜 이러고 다녀야 하나?'
그리고 저는 문을 다시 닫았습니다. 그리고 평소에는 불편해서 쳐다도 안 보던 치마를 입고 제 의지로는 거의 하는 일 없는 메이크업까지 했죠. 1이 붙은 주민등록증을 들고 가벼운 긴장감과 함께 다시 밖으로 나갔습니다.
일종의 반항심에 한 소소한 저항이지만 사실 그렇게 걱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전투표소에는 지문인식기도 있고 주민등록증에 붙어있는 사진도 찍은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네요. 역시나 쑥덕거립니다.
"여기(노트북)에는 1이라고 나오는데?" "여기 민증도 1이니까."
행여나 주변에 있는 사람이 못 들을까 하고 큰 소리로 이야기 하던 선거요원들은 제가 자신들을 부끄러움과 분노와 체념을 담은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았는지 잠시 뜸을 들인 후 투표용지를 뽑아주었습니다.
남들보다 더 긴 시간이 든 투표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씁쓸했지요. 지문인식기까지 동원되는 사전투표에서 이런 일을 겪을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요. 만약 본투표였다면 저는 어떤 일을 겪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저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들은 어떤 일을 겪게 될까요?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그리고 외모와 성별 고정관념이 일치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일은 일상과도 같습니다. 적당히 사회와 타협하거나 부딪쳐가며 살아가는 것은 씁쓸하지만 실존하는 현실이죠. 그러나 다른 일도 아닌 투표입니다. 타협을 해야 안전하게 투표할 수 있고 타협하지 않으면 아웃팅을 당하거나 심하면 투표를 하지도 못할 수 있는, 그렇기에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 괜찮은 대안으로 다가오는 현실이 가슴 아프고 화가 납니다.
곧 있을 본선거에서 온전히 나 자신으로서 투표를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굳이 불편을 겪어가며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선거권을 행사했다는 모두가 누려야 할 당연함을 함께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조각보는 2015년 11월 14일 드디어 3년 간 프로젝트를 마치고 정식 단체로 발족하는 역사를 가졌다. 발족식 이후 첫 활동은 바로 다음날 15일에 만나게 되는 TGEU의 활동가 칼라 라가타(Carla LaGata)와의 간담회였지만 발족식 바로 다음 날이기에 규모가 크지 않았다. 작은 준비도 제대로 못한 손님맞이를 간담회 전날 발족식까지 함께 참여해 주며 이해해준 칼라. 빨간 상의와 갈색 머리가 잘 어울리는 매력적인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유럽 지역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연대체인 TGEU는 트랜스젠더들의 현 사회적 상황을 기재하고 개선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는 단체 소개와 함께 칼라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2009년부터 여러 나라의 트랜스젠더 관련 주제들을 다루고 있으며 한눈에 볼 수 있는 리서치를 시작하였고 꾸준히 업데이트 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은 그곳에서 리서치와 유럽 밖 국제 관계 담당하여 맡고 있다고 하였다. 칼라는 80년도 즈음부터 활동을 하고 있는 베테랑 활동가로 베를린 대학에서 문화인류학 학위를 받고 젠더해방운동을 집중적으로 해오며 논문과 리서치 등을 편찬하는 편집의원이라고 한다. 칼라가 보여준 책자에는 세계 각국의 의료, 복지, 차별, 폭력 등 사회적인 트랜스피플의 인권 관련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도표로 정리되어 있었다. 점수화를 하여 각국의 비교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 다음 링크 된 홈페이지를 가면 각 대륙별로 관련된 데이터를 아래의 그림과 같은 표로 만든 정보를 열람하거나 PDF 파일로 다운로드 받아볼 수 있다: http://www.transrespect-transphobia.org/ ) 그 중 한국의 내용에 눈이 머물렀다. 몇 년 간 크게 변하지 않는 수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역시 칼라도 의문을 가졌다.
사진 출처 :tgeu.org
세계의 곳곳이 변하고 있다는 칼라의 말에 우린 적극 동의했다. 미국의 동성간 결혼을 인정하는 바람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까운 나라인 일본의 변화를 이야기하며, 젠더의 인식도 점차 변하게 될 거라고 서로 예측한다. 그러나 한국은 근간의 변화가 더디다. 몇 년 전 이슈화가 되었던 외부 성기 비수술 ftm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 통과 사례를 끝으로 더는 이렇다 할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는 칼라... 사실 그 외에도 한국 내에서는 여러가지 이슈가 꾸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왜 외국에 알려지지 못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은 외국에 비해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트랜스젠더 인권단체는 인프라부터 매우 약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조각보의 이전에도 여러 집단이 존재하였지만,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인권활동에서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의 부재와 활동비의 문제 등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여 기존의 단체와 집단들은 활동을 정지하곤 하였다. 그러다 보니 TGEU에서 진행하는 리서치에도 지속적으로 정보를 전달해줄 현지 담당자가 없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외국 단체에게 무언가를 요청할 수 있을 만큼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칼라는 현지 담당자가 있다면 인터넷을 통해 바로 수정할 수도 있고 자신에게 연락을 주면 바로 한국 상황을 수정하겠다며 이야기해 주었다. 한국 TG단체의 존속을 위해 조각보의 활동 자금 문제에 있어서도 국제적인 사업 지원을 받을 기회와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주겠다고 했다. 고마웠다. 소중한 마음을 후원 받은 느낌이었다.
이후 우리는 칼라에게 한국의 상황과 이슈를 이야기 해 주기 시작했다. 칼라는 놀라움을 표현한다. 신기함보다는 ‘어쩌면 그럴 수 있냐?’는 듯한 느낌을 받은 듯 했다. 우리 한국의 이야기가 너무 심각했나? 필자는 하도 많은 경우를 접해 와서 그런지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먼저 우리는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폭력에 관련된 이슈를 이야기했다. 외부적인 린치를 받는 사례와 정신적인 폭행 사례, 그리고 사회 인식에 따른 사례 등등... 칼라를 만나기 바로 전에 발생한 트랜스 혐오폭력과 폭행 사건은 인권단체들 사이에서는 꽤나 이슈가 되었지만 외부적인 보도는 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폭행 사례는 대부분이 지인으로 트랜스젠더 집단에 대한 혐오폭력보다 큰 비중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경찰이나 공기관의 신고는 친족이라는 자체로 사건을 무마시키기에 바쁜 실정. 칼라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각 지역별로 단체가 준비되어 있지 않냐?”고 물었다. 한지만 한국의 실정상 지부를 운영할 인력도 적은 데다 현재 수가 많지도 않은 퀴어 관련 인권단체는 대부분 서울에 집약되어 있다. 더군다나 가정폭력과 지인폭력의 늪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 할 수 있는 제도가 너무 미약하다. 그들은 어떻게든 그 상황을 스스로 벗어나 보지만 곧 사회적인 폭력에 마주한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입사에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하고, 어렵게 입사를 하였다 하더라도 여전히 달갑지 않은 존재로서 불안한 일코(*‘일반인 코스튬 플레이’를 줄인 속어)를 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잘못한 것 하나 없이도 손가락질 받고 인식적 차별과 시선의 폭력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가정에서 폭력과 강금, 사회적인 대우를 들은 칼라는 매우 끔찍하다며 자신의 문제를 바꾸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럴 수 있는 한국의 여러 가지 개선을 위해 조각보가 필요하다고 격려하였다.
사진 출처 :tgeu.org
칼라는 폭력 외에 다른 이슈들은 없냐고 물었다. 우리는 mtf 트랜스여성의 병역 관련 이슈와 트랜스젠더 의료 관련 상황을 이야기 했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는 아마 따로 논할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징병제의 국가에서는 필수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한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군대는 성소수자의 이해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심하다. 징병검사관의 성기검사, 호르몬투여와 일부 트랜지션수술 관련 기록을 요청하는 등 비수술 트랜스젠더를 존중하지 못하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가 하면, 공공기관이 요청한 자료들을 보고서도 트랜스젠더는 병역거부를 하려 한다는 의심을 하기도 한다. 입대면제 결과를 받은 사람에게 다시 징병검사를 하라고 하거나 재입대를 하라는 어이없는 모습도 보인다. 그뿐인가? 군대라는 집단의 속성은 일체화를 지향하는 사회인 것 마냥 똑같은 공간에서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을 몰아세운다. 이들이 얼마나 무지한지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트랜지션 수술이 말처럼 그냥 스위치 켜지듯 바뀌는 가벼운 수술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목숨을 걸고 수술대에 오르는 사람들, 특히 한국에서 트랜지션은 목숨을 두 번 걸어도 시원찮은 실정. 한국에서는 수술을 집도하는 병원 수가 굉장히 적고 그 안에서도 경험이 있는 의사와 병원은 폭리를 취하기도 하고 수술 후 부작용이 발생하는 등의 문제가 여럿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외국 병원에 예약을 하여 수술을 하곤 하는데, 이 경우도 부작용은 복불복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후속적인 의료조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외국의 병원으로 연결하는 모든 것은 자신의 일이기에 굉장히 번거롭기도 하며 외국병원에 연락이 항시 잘 되지는 않는다. 이런 약점을 이용하여 병원과 연결해 주겠다는 사기를 치는 브로커까지도 등장하였다. 이런 실정의 한국에서 비수술 트랜스젠더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는 굉장한 의문을 가져온다. 태생적으로 수술을 받을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나 사회적, 개인적, 금전적 상황 때문에 수술을 포기하는 사람들, 그리고 본인의 선택이나 정체화의 맥락에 따라 수술을 비롯한 여타의 의료조치를 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수술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별대로 인정받을 수 없는 사회가 지금의 한국 사회이다. 우린 어디까지 참고 기다려야 할까? 우린 스스로 얼마만큼 비수술 트랜스젠더에 대해 받아들이고 있을까? 우리도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칼라는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내부의 이슈를 궁금해 했다. 폐쇄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한국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의 이야기를 답변하는 일은 의외로 단순했다. 자신의 외모나 수술 진척도를 자랑하며 서로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나누는 트랜스젠더만의 쉼터, 생활하면서 발생하는 고민들을 상담하는 상담소, 트랜지션 관련 자료를 열람하는 열람실, 트랜스젠더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집합소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가 ‘진성 TG’와 ‘가성 TG’에 관한 논쟁이 벌어진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커뮤니티 내에 있는 트랜스젠더끼리 성적지향을 잣대로 정체성을 부정하는 이성애 집단이 자리 잡았다. mtf의 경우 여자를 만나면 레즈비언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짜 mtf라고 말하는 것이다. 남성을 만나는 ftm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정체성을 규정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바꾸는 사람들 또한 이해를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기보다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먼저 보이곤 하였다. 결국 자신과 다르면 잘못되었다고 말하면서 사회 속에 다른 자신은 왜 차별을 받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경우이다. 우리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먼저여야야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텐데. 더 나은 한 발짝을 위해...
칼라와 조각보 활동가들의 기념 사진, 왼쪽 세 번째가 칼라
칼라와의 간담회는 규모는 작았지만, 큰 목표들을 조각보에게 던져준 시간이었다. 조각보가 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함께 걸어 나갈 사람들이 누구인지, 지금 어느 지점까지 도달했는지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3년의 시간을 거쳐 조각보가 정식으로 발족했다. 이로써 우리는 한 발짝 나아갔다. 문제가 있다는 것과 도달할 목표가 보인다는 것은 지금이 최상이 아니며 한국의 트랜스젠더 사회는 앞으로도 점차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다. 그 변화에 조각보와 함께 있을 여러분들의 모습이 보인다.
2014년 8월, 세르비아에서 진행한 지인의 FTM 성기재건수술(메토 metoidioplasty)에 함께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지인은 메토로 유명한 Dr.미로에게 수술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국내에서 수술 받거나, 태국으로 수술을 받으러 가는 경우가 많지만 간혹 세르비아에서 수술한 사람도 몇 명 만나보았습니다. 하지만 국내 커뮤니티에 세르비아 수술에 대한 후기는 보이지 않아서 정리해서 공개합니다.
<목차> 1. 세르비아에서의 성기재건수술 -1쪽 2. 세르비아의 Dr. 미로의 성기재건수술 -2쪽 3. 수술준비과정과 비용 -3쪽 4. 수술경험담 -6쪽 5. 세르비아에서의 생활 –9쪽
<주의>
* 본 수술 후기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경험이므로 참고용으로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2014년 8월 기준 작성 내용임을 알립니다. * 본 내용은 병원측으로부터 어떠한 지원이나 협의 없이 작성한 개인경험담입니다. * 각종 용어는 커뮤니티에서 쓰이는 축약어 등으로 작성, 정확한 의료용어보다는 당사자가 읽기 쉬운 용어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 이 글은 성전환자의 성전환수술 및 성기재건수술 일반에 대한 이해가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Someone help me out. Wumben? Wimpund? Woomud?
‘생리하는 사람’. 예전에는 이런 사람들을 부르는 다른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뭐였는지 누가 좀 도와줘. 요좌? 여좌? 여어자아?
<COVID-19 판데믹 시국에서 생리하는 사람들을 위해 더 나은, 평등한 환경 만들기>를 제안하는 칼럼이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J.K. 롤링은 위와 같이 해당 칼럼이 여성이 아니라 ‘생리하는 사람(people who menstruate, menstruater)’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에서 문제를 제기했지요.
이후 롤링은 긴 입장문을 통해, <자신은 트랜스젠더를 혐오하지 않고 존중하며, 가정폭력과 성폭력 생존자라는 입장에서 트랜스여성이 겪는 남성폭력에 공감하고 연대한다. 다만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단어는 남성폭력적인 시각에서 여성을 바라보고 물화(物化)하는 단어이며, 결코 중립적인 단어가 아니다> 라며 다시 한 번 자신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출처: 열다북스 페이스북
월경을 한다는 것이 반드시 여성됨과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여성은 단순히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람’으로만 존재하지 않으며, 월경을 하지 않는 여성도 많기 때문입니다. 인터섹스 여성, 난임 여성, 재생산에 필요한 난자가 형성되지 않는 중년 여성처럼요. 마찬가지로 ‘생리하는 사람’들이 모두 여성인 것 또한 아닙니다. 트랜스남성이나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등 AFAB(Assigned Female at Birth : 태어날 때 여성으로 지정받은) 트랜스젠더와 몇몇 인터섹스 당사자들은 월경경험을 겪습니다.
누군가는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여성들, 특히 신체적인 이유에서 월경을 겪지 않는 여성들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그 말도 맞습니다. 여성을 신체 부위별로 평가하고 물화하는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대부분 여성이 주로 겪는 신체 현상을 있는 그대로 칭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줄 수도 있습니다. 모든 언어가 그렇듯이,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말도 결코 완벽한 대안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기존의 언어와 담론이 배제하던 것이 무엇이었고, 대안으로 제안하는 언어로서 어떤 이들의 경험을 포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할 때, 우리의 세계는 점점 더 넓어질 것입니다.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여성의 삶이 포궁(자궁)이 있고 임신을 할 수 있다는 것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음을 선언하며, 월경을 겪는 더 많은 비여성 당사자들의 월경경험을 포용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모두를 위한 월경권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기 위함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수많은 논의와 고민을 뒤로 제쳐두고,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단순히 트랜스젠더의 ‘기부니’를 맞추기 위한 단어라 칭한다면 이 얼마나 편협한 생각인지요.
사실 트랜스젠더의 월경권은 당사자들 사이에서도 불편한 주제입니다. 트랜스젠더, 특히 트랜스남성에게 월경이란 단순한 신체적 불편함을 넘어서 극심한 젠더 디스포리아를 겪게 하는 경우가 많고, 어쩔 때는 월경에 대한 경험이 트라우마틱한 기억으로 남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경하는 트랜스젠더의 고충에 대해서는 당사자 커뮤니티 안에서도 잘 이야기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커뮤니티 안에서 월경으로 인한 고충을 토로하면 “빨리 호르몬 시작하셔라.”라는 조언과 위로가 대부분입니다. 사실 호르몬 치료만 시작해도 빠른 시일 내에 비월경 상태가 찾아오기 때문일까요, 트랜스남성으로서 월경은 젠더 디스포리아를 느끼게 하는 부분 중에서도 가장 먼저 극복되면서, 그렇게 '지나간 일'이 되고, 그만큼 쉽사리 잊혀지고 이야기되지 않음을 절실히 느낍니다.
농담조로 제 이야기를 풀어놓았지만, ‘생리하는 트랜스젠더’는 사실 이보다 더 많은 고충을 겪습니다. 많은 당사자들이 매번 월경이 시작될 때마다 심각하게 아웃팅을 걱정하고, 월경으로 인한 아웃팅이 성폭력의 위협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성별 정정에 있어 생식 능력이 없을 것을 요구하는 대법원 예규는 트랜스젠더의 재생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 비판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 포궁 적출 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남성 당사자가 건강상의 이유로 월경 또는 포궁에 대한 진료를 받으러 가려면 병원 문을 들어설 때부터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 트랜스젠더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의료진 등 수많은 관문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래서 ‘생리하는 사람’은 우리에게, 특히 트랜스젠더의 월경권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단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존재가 계속해서 지워지고, 상상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트랜스남성의 월경경험은 분명 실재하는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안전하게 ‘생리하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논의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자신의 ‘불편한’ 월경경험을 이야기하고 안전한 월경권을 누릴 수 있는 포용적인 공간을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나가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트랜스젠더의 월경권에 대한 불편한 말들이 이어지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생리를 한다는 것이 여성됨과 반드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판단입니다.
어떤 트랜스젠더는 생리를 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생리하는 사람’이어서 지금 이 순간에도 겪고 있는 경험은 지금도 존재합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트랜스남성은 남성입니다.
어떤 비여성은 월경경험을 겪습니다.
그리고 트랜스젠더의 월경권 또한 존중받아야 합니다.
현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 쯤이었습니다. 이미 혜화역에 도착하기 몇 정거장 전부터 붉은 계열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요.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서로를 발견하고는 옅은 미소와 함께 연대의 눈빛을 주고받았습니다. 저도 그 사이에서 두어 번 쯤 눈빛을 주고받았습니다.
'나도 당신과 같은 것을 경험하고, 같은 단어를 끌어안고, 같은 세상을 꿈꾸고 있어요.'
2차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전철에 오르기까지, 저에게는 많은 고민과 걱정들이 있었습니다. 1차 집회에서 주최 측은 '생물학적 여성만 참가할 수 있다'는 일종의 '자격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규정하는 '생물학적 여성'이 무엇인지 모르지 않습니다. 제 자신이 그 범주에 속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1차 집회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 공간, 공동체에서의 연대는 맹목적이거나 일방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나 2차 집회가 가까워올 즈음, 저는 현장에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집회에서도, '주최는 주체를 아우르는 단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불법촬영 편파수사'를 규탄하기 위해 집회에 참가했고, 제 자신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의견을 가지고 참가했습니다. 다시 말해 주최 측의 의견이 참가자 모두의 의견과 같지 않고, 따라서 주최 측의 요구가 부당한 상황에 저는 부당함에 저항하며 함께 공동의 목표-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를 이룩해가는 쪽이 낫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혜화역 시위에 참가하며 여러 양가적인 감정을 느꼈습니다. 제 목소리는 너무 작고, 공개적으로 제 의견을 낼 수 없어 결과적으로는 혐오성 발언들에까지 힘을 보탠 상황들이 만들어질 때마다 주변에서 집회 구호를 듣고 있을 트랜스젠더 당사자와 엘라이들이 걱정되고 이들에게 한없이 미안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제가 이곳에 있음으로 해서 트랜스젠더들과 엘라이들, 그리고 시위 참가자들에게 '이곳은 트랜스젠더 청정 구역(!)'이 아니다'는 것과, 단일하지 않은 투쟁이 공존하는 집회 현장이 결코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의 참가자들이 트랜스젠더 혐오적인 농담과 발언을 할 때마다 고립감과 위협을 느꼈지만, 불법촬영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이들이 3만 명 넘게 모여 이화사거리까지 가득 메웠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제가 참가한 시위는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입니다. 제가 이 시위에 참가한 이유는, 당연하지만, 불법촬영에 대한 편파적인 수사에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불법촬영 및 편파수사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고, 이는 주최 측에서 배제하고자 했던 '지정성별이 여성이 아닌' 대부분의 트랜스젠더퀴어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7월 7일 토요일,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을 위한 3차 집회가 열립니다. 부디 이번 집회는 '어떤 여성'만을 위한 집회가 아닌, '불법촬영 편파수사의 타깃이 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집회가 되길 바랍니다.
TGEU 활동가 칼라(Carla LaGata)와의 만남으로 느껴보는 한국
-우리는 어디까지 와 있는가-
조각보는 2015년 11월 14일 드디어 3년 간 프로젝트를 마치고 정식 단체로 발족하는 역사를 가졌다. 발족식 이후 첫 활동은 바로 다음날 15일에 만나게 되는 TGEU의 활동가 칼라 라가타(Carla LaGata)와의 간담회였지만 발족식 바로 다음 날이기에 규모가 크지 않았다. 작은 준비도 제대로 못한 손님맞이를 간담회 전날 발족식까지 함께 참여해 주며 이해해준 칼라. 빨간 상의와 갈색 머리가 잘 어울리는 매력적인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유럽 지역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연대체인 TGEU는 트랜스젠더들의 현 사회적 상황을 기재하고 개선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는 단체 소개와 함께 칼라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2009년부터 여러 나라의 트랜스젠더 관련 주제들을 다루고 있으며 한눈에 볼 수 있는 리서치를 시작하였고 꾸준히 업데이트 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은 그곳에서 리서치와 유럽 밖 국제 관계 담당하여 맡고 있다고 하였다. 칼라는 80년도 즈음부터 활동을 하고 있는 베테랑 활동가로 베를린 대학에서 문화인류학 학위를 받고 젠더해방운동을 집중적으로 해오며 논문과 리서치 등을 편찬하는 편집의원이라고 한다. 칼라가 보여준 책자에는 세계 각국의 의료, 복지, 차별, 폭력 등 사회적인 트랜스피플의 인권 관련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도표로 정리되어 있었다. 점수화를 하여 각국의 비교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 다음 링크 된 홈페이지를 가면 각 대륙별로 관련된 데이터를 아래의 그림과 같은 표로 만든 정보를 열람하거나 PDF 파일로 다운로드 받아볼 수 있다: http://www.transrespect-transphobia.org/ ) 그 중 한국의 내용에 눈이 머물렀다. 몇 년 간 크게 변하지 않는 수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역시 칼라도 의문을 가졌다.
사진 출처 :tgeu.org
세계의 곳곳이 변하고 있다는 칼라의 말에 우린 적극 동의했다. 미국의 동성간 결혼을 인정하는 바람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까운 나라인 일본의 변화를 이야기하며, 젠더의 인식도 점차 변하게 될 거라고 서로 예측한다. 그러나 한국은 근간의 변화가 더디다. 몇 년 전 이슈화가 되었던 외부 성기 비수술 ftm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 통과 사례를 끝으로 더는 이렇다 할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는 칼라... 사실 그 외에도 한국 내에서는 여러가지 이슈가 꾸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왜 외국에 알려지지 못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은 외국에 비해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트랜스젠더 인권단체는 인프라부터 매우 약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조각보의 이전에도 여러 집단이 존재하였지만,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인권활동에서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의 부재와 활동비의 문제 등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여 기존의 단체와 집단들은 활동을 정지하곤 하였다. 그러다 보니 TGEU에서 진행하는 리서치에도 지속적으로 정보를 전달해줄 현지 담당자가 없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외국 단체에게 무언가를 요청할 수 있을 만큼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칼라는 현지 담당자가 있다면 인터넷을 통해 바로 수정할 수도 있고 자신에게 연락을 주면 바로 한국 상황을 수정하겠다며 이야기해 주었다. 한국 TG단체의 존속을 위해 조각보의 활동 자금 문제에 있어서도 국제적인 사업 지원을 받을 기회와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주겠다고 했다. 고마웠다. 소중한 마음을 후원 받은 느낌이었다.
이후 우리는 칼라에게 한국의 상황과 이슈를 이야기 해 주기 시작했다. 칼라는 놀라움을 표현한다. 신기함보다는 ‘어쩌면 그럴 수 있냐?’는 듯한 느낌을 받은 듯 했다. 우리 한국의 이야기가 너무 심각했나? 필자는 하도 많은 경우를 접해 와서 그런지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먼저 우리는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폭력에 관련된 이슈를 이야기했다. 외부적인 린치를 받는 사례와 정신적인 폭행 사례, 그리고 사회 인식에 따른 사례 등등... 칼라를 만나기 바로 전에 발생한 트랜스 혐오폭력과 폭행 사건은 인권단체들 사이에서는 꽤나 이슈가 되었지만 외부적인 보도는 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폭행 사례는 대부분이 지인으로 트랜스젠더 집단에 대한 혐오폭력보다 큰 비중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경찰이나 공기관의 신고는 친족이라는 자체로 사건을 무마시키기에 바쁜 실정. 칼라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각 지역별로 단체가 준비되어 있지 않냐?”고 물었다. 한지만 한국의 실정상 지부를 운영할 인력도 적은 데다 현재 수가 많지도 않은 퀴어 관련 인권단체는 대부분 서울에 집약되어 있다. 더군다나 가정폭력과 지인폭력의 늪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 할 수 있는 제도가 너무 미약하다. 그들은 어떻게든 그 상황을 스스로 벗어나 보지만 곧 사회적인 폭력에 마주한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입사에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하고, 어렵게 입사를 하였다 하더라도 여전히 달갑지 않은 존재로서 불안한 일코(*‘일반인 코스튬 플레이’를 줄인 속어)를 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잘못한 것 하나 없이도 손가락질 받고 인식적 차별과 시선의 폭력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가정에서 폭력과 강금, 사회적인 대우를 들은 칼라는 매우 끔찍하다며 자신의 문제를 바꾸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럴 수 있는 한국의 여러 가지 개선을 위해 조각보가 필요하다고 격려하였다.
사진 출처 :tgeu.org
칼라는 폭력 외에 다른 이슈들은 없냐고 물었다. 우리는 mtf 트랜스여성의 병역 관련 이슈와 트랜스젠더 의료 관련 상황을 이야기 했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는 아마 따로 논할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징병제의 국가에서는 필수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한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군대는 성소수자의 이해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심하다. 징병검사관의 성기검사, 호르몬투여와 일부 트랜지션수술 관련 기록을 요청하는 등 비수술 트랜스젠더를 존중하지 못하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가 하면, 공공기관이 요청한 자료들을 보고서도 트랜스젠더는 병역거부를 하려 한다는 의심을 하기도 한다. 입대면제 결과를 받은 사람에게 다시 징병검사를 하라고 하거나 재입대를 하라는 어이없는 모습도 보인다. 그뿐인가? 군대라는 집단의 속성은 일체화를 지향하는 사회인 것 마냥 똑같은 공간에서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을 몰아세운다. 이들이 얼마나 무지한지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트랜지션 수술이 말처럼 그냥 스위치 켜지듯 바뀌는 가벼운 수술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목숨을 걸고 수술대에 오르는 사람들, 특히 한국에서 트랜지션은 목숨을 두 번 걸어도 시원찮은 실정. 한국에서는 수술을 집도하는 병원 수가 굉장히 적고 그 안에서도 경험이 있는 의사와 병원은 폭리를 취하기도 하고 수술 후 부작용이 발생하는 등의 문제가 여럿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외국 병원에 예약을 하여 수술을 하곤 하는데, 이 경우도 부작용은 복불복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후속적인 의료조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외국의 병원으로 연결하는 모든 것은 자신의 일이기에 굉장히 번거롭기도 하며 외국병원에 연락이 항시 잘 되지는 않는다. 이런 약점을 이용하여 병원과 연결해 주겠다는 사기를 치는 브로커까지도 등장하였다. 이런 실정의 한국에서 비수술 트랜스젠더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는 굉장한 의문을 가져온다. 태생적으로 수술을 받을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나 사회적, 개인적, 금전적 상황 때문에 수술을 포기하는 사람들, 그리고 본인의 선택이나 정체화의 맥락에 따라 수술을 비롯한 여타의 의료조치를 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수술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별대로 인정받을 수 없는 사회가 지금의 한국 사회이다. 우린 어디까지 참고 기다려야 할까? 우린 스스로 얼마만큼 비수술 트랜스젠더에 대해 받아들이고 있을까? 우리도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칼라는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내부의 이슈를 궁금해 했다. 폐쇄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한국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의 이야기를 답변하는 일은 의외로 단순했다. 자신의 외모나 수술 진척도를 자랑하며 서로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나누는 트랜스젠더만의 쉼터, 생활하면서 발생하는 고민들을 상담하는 상담소, 트랜지션 관련 자료를 열람하는 열람실, 트랜스젠더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집합소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가 ‘진성 TG’와 ‘가성 TG’에 관한 논쟁이 벌어진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커뮤니티 내에 있는 트랜스젠더끼리 성적지향을 잣대로 정체성을 부정하는 이성애 집단이 자리 잡았다. mtf의 경우 여자를 만나면 레즈비언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짜 mtf라고 말하는 것이다. 남성을 만나는 ftm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정체성을 규정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바꾸는 사람들 또한 이해를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기보다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먼저 보이곤 하였다. 결국 자신과 다르면 잘못되었다고 말하면서 사회 속에 다른 자신은 왜 차별을 받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경우이다. 우리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먼저여야야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텐데. 더 나은 한 발짝을 위해...
칼라와의 간담회는 규모는 작았지만, 큰 목표들을 조각보에게 던져준 시간이었다. 조각보가 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함께 걸어 나갈 사람들이 누구인지, 지금 어느 지점까지 도달했는지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3년의 시간을 거쳐 조각보가 정식으로 발족했다. 이로써 우리는 한 발짝 나아갔다. 문제가 있다는 것과 도달할 목표가 보인다는 것은 지금이 최상이 아니며 한국의 트랜스젠더 사회는 앞으로도 점차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다. 그 변화에 조각보와 함께 있을 여러분들의 모습이 보인다.
현(이승현)님이 세르비아에서 Dr. 미로슬라브에게 FTM 성기재건 수술 경험을
후기로 작성하여 조각보에 공유하여 주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참고하실 수 있는 자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단 개인이나 단체의 홈페이지, 블로그, SNS 등을 통하여 주변에 알리고 싶으실때는
PDF 파일만 따로 올리지 말아주시고
반드시 조각보 홈페이지의 해당 글 링크로 공유를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세르비아_닥터_미로_FTM_성기재건수술_후기20150301_배포용.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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