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형법상 존재했던 ‘낙태죄’는 공식적으로 법적 효력을 상실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습니다.
우리가 이루어낸 낙태죄 폐지 1주년을 기념하고
안전한 임신중지와 재생산권 보장을 요구하기 위해
4월 10일 보신각 앞에서 우리는 모였습니다.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도 이날 공동주최 단위와 자유발언으로 함께했습니다.
참여한 활동가들의 소감과 발언문을 함께 덧붙여봅니다.
<리나>
낙태죄가 폐지된 지 1년이 되었습니다. 분명 기뻐해야 할 일인데, 모두를 위한 안전한 재생산권을 위해서는 갈 길이 멀어보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그 무엇보다도 트랜스젠더 당사자들도 안전한 임신중지와 재생산권에서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2018년 아일랜드에서도 이러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낙태죄가 폐지되고, 안전한 임신중지와 재생산권에 대한 새 법률이 제정될때, 법률의 당사자를 ‘여성’으로 한정하면 FTM 트랜스남성과 논바이너리 당사자 중 임신/출산의 당사자인 이들이 배제될 수 있다고요. 아래는 아일랜드에서 안전한 임신중절을 위한 새 법안이 제정될 때 아일랜드 의회에서 발언한 국회의원 메리 루 맥도날드의 발언입니다.
“역사적으로 국가가 권리를 제한해왔던 소수자 공동체들은 함께 싸워왔고, 우리의 투쟁은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법안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사회적 다양성을 반영하고 또 포용적이어야 합니다.”
안전한 임신중절 및 재생산권에 대한 새로운 법안과 정책, 논의들이 임신/출산의 당사자인 모든 트랜스젠더퀴어를 포함하는 방향으로 앞으로도 이어지기를 바라며, 이번 후기를 마칩니다.
<희정>
SNS로 온갖 정보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는, 혹은 그렇게 느끼는 시대에도 저는 한 번 고비를 넘긴 일을 잊기 시작하네요. 낙태죄 폐지도 그렇습니다. 위헌이라는 큰 성과 속에 끝났다는 생각이 저를 남아 있는 과제로부터 눈 돌리게 만든 것 같습니다.
축하 자리가 아닌 1주년 집회를 보며 느꼈습니다. 코로나의 여파가 가시지 않았음에도 모인 많은 사람들과 빵 하고 크락션을 울리고는 도망치듯 사라지는 자동차 소리 속에서도 줄어들지 않는 목소리를 통해 연대의 힘을 느낄 수 있었지만 동시에 낙태죄 폐지를 위해 뭉친 이들이 앞으로도 해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았음을 선언하는듯 했습니다.
단순히 한 번 두 번 함께 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가볍게 잊지 말고 계속해서 꾸준히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는 마음을 준 이번 집회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온도>
집회… 오랜 시간 수 많은 집회 그 의의에 동의함에도 함께 하지 않았던 시간들을 반성합니다.
처음 큰 용기와 결심으로 참석한 4.10 집회에서 많은 간절한 목소리를 들었고 가슴 아프게 공감했으며 결코 그 이야기들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였습니다.
나, 내 가족, 내 사랑, 내 친구의 이야기들…”안전하고 싶다!”
대책없이 흘러버린 1년이란 시간이 부디 하루 빨리 멈춰야만 합니다!
<이음>
조각보 소속으로 처음으로 참여한 집회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여성으로 패싱되는’ 뭉뚱그려진 저로서가 아닌 ‘트랜스젠더에 포함되는’ 정체성을 가진 저로서 연대하는 분들과 만날 수 있어 기뻤습니다. ‘낙태죄’가 법적 효력을 상실했음에도 여전히 안전한 임신중지에 접근하기 어려운 현재에 우려와 분노를 느낍니다. 하루 빨리 안전한 임신중지가 가능해지는 날을, 배제되는 사람 없이 모두가 재생산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날을 기대합니다.
아래는 현장 자유발언으로 함께 한 리나 활동가의 발언문입니다.
전체 발언문은 이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리나 /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활동가
안녕하세요. 저는 리나라고 합니다.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트랜스젠더의 안전한 임신중지와 재생산권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저는 트랜스젠더입니다. 그리고 성폭력 생존자이기도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저는 성폭력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의료적 트랜지션을 진행하지 못했기에, 성폭력 피해를 겪고 난 후 제가 가장 처음 걱정했던 것은 임신에 대한 공포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곧바로 임신중지에 대한 여러 정보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가장 처음 겪었던 장벽은 ‘여성’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임신에 대한 공포는 원하지 않았던 저의 성별을 끊임없이 되새기고, 성별불쾌감과 마주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임신중지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사회에서 내 몸이 ‘여성의 몸’으로 분류되고, 임신중지를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일’로 설명하는 말들은 저를 더욱 힘들고 지치게 만들었고, 그 무엇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만약 그 당시 임신을 했었다면, 저는 안전한 임신중지에 접근하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많은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 당사자들이 이러한 상황을 겪습니다. 임신중지 클리닉이 설치된 국가에서도,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은 안전한 의료 서비스의 접근에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나의 정체성이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거나, 의료진이 트랜스젠더의 신체에 대한 이해도가 없거나, 임신중지의 경험이 나를 원하지 않는 성별로 다시 낙인찍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낮은 접근권은, 제대로 된 의료 조치를 받지 못하여 위험에 빠지는 상황도 만듭니다. 그러나 임신중지와 관련된 연구나 통계에서 트랜스젠더 당사자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에서도 이어질 것입니다. 한국은 아직까지 트랜스젠더가 법적 성별 정정을 하기 위해서 ‘생식능력 제거 수술’을 필수적으로 요구합니다. 법적으로 트랜스젠더를 생식 능력이 없는, 재생산권을 제한받아야 하는 무성적인 존재로만 인지하고 있습니다. 국가 통계 및 각종 실태조사에서도 트랜스젠더는 기록되지 않고 배제됩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자리에서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 지금 트랜스젠더의 재생산권에 대한 이야기는 법적으로도, 정책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심지어 당사자들 사이에서도 지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전한 임신중지에서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이야기합시다. 포용적인 언어와 논의로 함께 해주시길 요청드립니다. 트랜스젠더에게도 재생산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연대해주시길 바랍니다. 안전한 임신중지와 재생산권 보장은 모두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1월, 형법상 존재했던 ‘낙태죄’는 공식적으로 법적 효력을 상실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습니다.
우리가 이루어낸 낙태죄 폐지 1주년을 기념하고
안전한 임신중지와 재생산권 보장을 요구하기 위해
4월 10일 보신각 앞에서 우리는 모였습니다.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도 이날 공동주최 단위와 자유발언으로 함께했습니다.
참여한 활동가들의 소감과 발언문을 함께 덧붙여봅니다.
<리나>
낙태죄가 폐지된 지 1년이 되었습니다. 분명 기뻐해야 할 일인데, 모두를 위한 안전한 재생산권을 위해서는 갈 길이 멀어보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그 무엇보다도 트랜스젠더 당사자들도 안전한 임신중지와 재생산권에서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2018년 아일랜드에서도 이러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낙태죄가 폐지되고, 안전한 임신중지와 재생산권에 대한 새 법률이 제정될때, 법률의 당사자를 ‘여성’으로 한정하면 FTM 트랜스남성과 논바이너리 당사자 중 임신/출산의 당사자인 이들이 배제될 수 있다고요. 아래는 아일랜드에서 안전한 임신중절을 위한 새 법안이 제정될 때 아일랜드 의회에서 발언한 국회의원 메리 루 맥도날드의 발언입니다.
“역사적으로 국가가 권리를 제한해왔던 소수자 공동체들은 함께 싸워왔고, 우리의 투쟁은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법안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사회적 다양성을 반영하고 또 포용적이어야 합니다.”
안전한 임신중절 및 재생산권에 대한 새로운 법안과 정책, 논의들이 임신/출산의 당사자인 모든 트랜스젠더퀴어를 포함하는 방향으로 앞으로도 이어지기를 바라며, 이번 후기를 마칩니다.
<희정>
SNS로 온갖 정보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는, 혹은 그렇게 느끼는 시대에도 저는 한 번 고비를 넘긴 일을 잊기 시작하네요. 낙태죄 폐지도 그렇습니다. 위헌이라는 큰 성과 속에 끝났다는 생각이 저를 남아 있는 과제로부터 눈 돌리게 만든 것 같습니다.
축하 자리가 아닌 1주년 집회를 보며 느꼈습니다. 코로나의 여파가 가시지 않았음에도 모인 많은 사람들과 빵 하고 크락션을 울리고는 도망치듯 사라지는 자동차 소리 속에서도 줄어들지 않는 목소리를 통해 연대의 힘을 느낄 수 있었지만 동시에 낙태죄 폐지를 위해 뭉친 이들이 앞으로도 해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았음을 선언하는듯 했습니다.
단순히 한 번 두 번 함께 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가볍게 잊지 말고 계속해서 꾸준히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는 마음을 준 이번 집회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온도>
집회… 오랜 시간 수 많은 집회 그 의의에 동의함에도 함께 하지 않았던 시간들을 반성합니다.
처음 큰 용기와 결심으로 참석한 4.10 집회에서 많은 간절한 목소리를 들었고 가슴 아프게 공감했으며 결코 그 이야기들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였습니다.
나, 내 가족, 내 사랑, 내 친구의 이야기들…”안전하고 싶다!”
대책없이 흘러버린 1년이란 시간이 부디 하루 빨리 멈춰야만 합니다!
<이음>
조각보 소속으로 처음으로 참여한 집회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여성으로 패싱되는’ 뭉뚱그려진 저로서가 아닌 ‘트랜스젠더에 포함되는’ 정체성을 가진 저로서 연대하는 분들과 만날 수 있어 기뻤습니다. ‘낙태죄’가 법적 효력을 상실했음에도 여전히 안전한 임신중지에 접근하기 어려운 현재에 우려와 분노를 느낍니다. 하루 빨리 안전한 임신중지가 가능해지는 날을, 배제되는 사람 없이 모두가 재생산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날을 기대합니다.
아래는 현장 자유발언으로 함께 한 리나 활동가의 발언문입니다.
전체 발언문은 이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리나 /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활동가
안녕하세요. 저는 리나라고 합니다.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트랜스젠더의 안전한 임신중지와 재생산권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저는 트랜스젠더입니다. 그리고 성폭력 생존자이기도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저는 성폭력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의료적 트랜지션을 진행하지 못했기에, 성폭력 피해를 겪고 난 후 제가 가장 처음 걱정했던 것은 임신에 대한 공포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곧바로 임신중지에 대한 여러 정보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가장 처음 겪었던 장벽은 ‘여성’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임신에 대한 공포는 원하지 않았던 저의 성별을 끊임없이 되새기고, 성별불쾌감과 마주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임신중지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사회에서 내 몸이 ‘여성의 몸’으로 분류되고, 임신중지를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일’로 설명하는 말들은 저를 더욱 힘들고 지치게 만들었고, 그 무엇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만약 그 당시 임신을 했었다면, 저는 안전한 임신중지에 접근하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많은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 당사자들이 이러한 상황을 겪습니다. 임신중지 클리닉이 설치된 국가에서도,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은 안전한 의료 서비스의 접근에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나의 정체성이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거나, 의료진이 트랜스젠더의 신체에 대한 이해도가 없거나, 임신중지의 경험이 나를 원하지 않는 성별로 다시 낙인찍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낮은 접근권은, 제대로 된 의료 조치를 받지 못하여 위험에 빠지는 상황도 만듭니다. 그러나 임신중지와 관련된 연구나 통계에서 트랜스젠더 당사자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에서도 이어질 것입니다. 한국은 아직까지 트랜스젠더가 법적 성별 정정을 하기 위해서 ‘생식능력 제거 수술’을 필수적으로 요구합니다. 법적으로 트랜스젠더를 생식 능력이 없는, 재생산권을 제한받아야 하는 무성적인 존재로만 인지하고 있습니다. 국가 통계 및 각종 실태조사에서도 트랜스젠더는 기록되지 않고 배제됩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자리에서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 지금 트랜스젠더의 재생산권에 대한 이야기는 법적으로도, 정책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심지어 당사자들 사이에서도 지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전한 임신중지에서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이야기합시다. 포용적인 언어와 논의로 함께 해주시길 요청드립니다. 트랜스젠더에게도 재생산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연대해주시길 바랍니다. 안전한 임신중지와 재생산권 보장은 모두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