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후기2018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활동후기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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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추모의 날(Transgender Day of Remembrance; TDOR). 1998년 트랜스젠더 혐오 범죄에 희생된 트랜스여성 리타 헤스터를 기리기 위해 시작된 이 날은, 이제 혐오와 차별로 인해 먼저 세상을 떠난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국제적인 기념일이 되었습니다.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에,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이야기해야 할까?"



추모의 날. 한 마디로 말하기 참 어려운 날입니다. 그 안에는 너무나도 많은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세상을 떠난 트랜스젠더 당사자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누군가에겐 숨가쁜 일상을 살아가며 어느덧 흐릿해졌던, 그렇지만 마음 깊은 곳 한 구석에 언제나 남아 있던 친구들을 다시 기억하기 위해 모이는 날입니다. 누군가는 그렇게 한데 모인 이들이 연대하는 모습을 보며 용기를 얻습니다. 떠나간 사람을 잊지 않기 위해 모였던 연대는 남은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갈 힘이 됩니다.

그렇기에 이 날은, 추모의 날이지만 마냥 슬픔에만 잠겨 있는 날이 아닙니다. 떠나간 이들의 죽음을 그들의 삶과 함께 기억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앞으로의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얻기 때문입니다.



조각보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촛불문화제를 준비하게 된 것도 어느덧 세 번째 입니다. 

올해 조각보는 TDOR이 있는 전 주 주말인 11월 17일 토요일에, 
마포구 인권재단 사람에서 <TDOR 촛불문화제 사전행사>를, 
경의선 숲길공원에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촛불문화제>를 진행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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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OR 촛불문화제 사전행사>

2018. 11. 17. 12:30 - 17:00
인권재단 사람 1층 모임방


- 촛불문화제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잠깐이나마 들를 수 있는!
- TDOR을 위해 하루 종일 오픈된 공간이 있다면 어떨까?


TDOR 촛불문화제 사전 행사는 이런 아이디어와 함께 되었습니다. 오로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만을 위한 공간, 동시에 누구나 잠깐 들렀다 갈 수 있는 편안한 공간. 그렇게 17일 토요일 오후 12시 30분, 조각보 활동가들이 준비한 프로그램과 함께 사전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미니 Trans 영화제, 거북이 편지 쓰기, 미니 퀴어 책방, 지지와 응원의 메세지 남기기 등 인권재단 사람의 작은 모임방 안에서 복닥복닥하게 여러 행사가 진행되었는데요, 단연 인기가 많았던 프로그램은 역시 미니 Trans 영화제였습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고양이가 고양이 나라의 여권을 발급받으려 가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은 <고양이 손님>, 트랜스젠더의 일상을 담담하게 담아낸 <헤드스페이스>. 단편영화는 매 시간 30분마다 상영했는데요, 상영 시간을 끝까지 기다리다가 영화를 보고, 각자 감상을 나눠주고 가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 영상을 제공해주신 한국퀴어영화제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내년의 나에게 다시 만나자는 약속' 

1년 뒤의 나 자신에게 보내는 격려의 메세지, 내 친구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담은 편지. 거북이 편지는 무엇보다도 '1년 뒤에 무사히 또 만나요' 라는 약속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참여해주신 여러분의 거북이 편지는 조각보가 잘 지키고 있다가 1년 뒤 꼭 다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주소 변경 혹은 편지 발송을 철회하고 싶으신 분은 언제든 조각보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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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촛불문화제>
2018. 11. 17. 18:00 - 20:00
경의선 숲길공원


사전 행사가 ‘누구나 들를 수 있는 준비된 공간’이었다면, 연대의 장이 펼쳐지는 공간은 촛불문화제였습니다.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여러 성소수자 인권단체와 함께 준비했던 2016년과 2017년의 촛불문화제에 이어, 올해도 어김없이 경의선 숲길공원에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촛불문화제가 열렸습니다.

해가 지날수록 TDOR에 대한 인지도가 점점 더 높아지는 걸 실감합니다. 특히 올해 TDOR에는 이 날을 기념하는 행사와 모임이 동시다발적으로 정말 많이 열렸지요. 그만큼 이번 촛불문화제를 준비하는 조각보 활동가들의 고민도 깊었습니다. 특별히 ‘촛불문화제’라는 자리를 통해서 말할 수 있는 것, 말해야 하는 건 무엇일까요.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촛불문화제는 그동안 트랜스젠더 혐오와 차별에 치여왔던 사람들이 그 무엇보다도 우선으로 지지받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트랜스젠더 당사자와 앨라이(Ally)가 함께 모여 만드는 공간 속에서 먼저 떠나간 이들이 살아왔던 삶에 대해 말하기. 또 지금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 안전한 공간 속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지지받는 공간에서의 특별한 공연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올해 촛불문화제에서는 너무나도 멋진 두 아티스트가 지지 공연으로 함께했습니다. 전설적인 밴드 퀸의 음악으로 강렬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셨던 드랙킹 퍼포머 아장맨님,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연대의 자리를 만들고 계신 싱어송라이터 서예린님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감동적인 공연을 보여주셨던 두 분께 다시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지지 발언은 조각보 활동가들이 TDOR 촛불문화제를 준비하며 가장 열심히 논의하고 기획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지난 두 번의 TDOR 촛불문화제에서의 지지 발언은 소속 단체 또는 정체성의 이름으로 나서는 하나의 연대 선언이었습니다. 올해의 촛불문화제는 행사를 연다는 것 자체보다는, 촛불문화제라는 공간과 그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기획의 중점에 두었기에 지지 발언의 방향에 대해서도 많은 의견이 오갔습니다.

수많은 고민 속에서 떠올린 지지 발언의 모습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 떠나간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삶을 기억하기’ 였습니다. 

트랜스젠더 인권운동을 하면서, 그동안 해왔던 활동에 대한 의미와 고민들. 
트랜스젠더의 이전의 삶(특히 정체화/트랜지션 이전의 삶)이 계속해서 잊혀지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예전의 나를 기억하기’에 대한 이야기.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기, 그리고 살아남기. 살아가며 내 정체성을 받아들이기.
세상을 떠난 트랜스젠더 당사자를 기억하기. 떠나간 이들이 살았던 삶을 기억하기.

짧은 준비 시간에도 불구하고 행사의 방향성에 공감하며 너무나도 좋은 지지 발언을 준비해주신 네 명의 발언자분께, 또 현장에서 함께 지지 발언에 참여해주신 참가자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지지 발언 전문은 조각보 페이스북에도 업로드되었으며, 아래 링크로 가시면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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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는 ‘트랜스젠더로서 지속 가능한 삶’을 가장 주요한 활동 가치로 삼고 있습니다. 조각보가 꿈꾸는 내일은 수많은 정체성이 조각보라는 이름처럼 어우러지며 다양한 결의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세상입니다. 

그렇기에 꼭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언제나 트랜스젠더 혐오와 차별과 싸워오고 있습니다. 트랜스젠더 당사자로서, 그리고 트랜스젠더 인권을 지지하는 앨라이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한데 모여, 앞으로의 내일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삶이 모여서 만드는 내일은, 분명 오늘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내년에도 꼭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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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행사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_조각보 활동가 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