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개인후기[2019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TDOR이 시작된 보스턴에서의 참여 후기

2019-12-31

매년 11월 20일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입니다.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캠페인이 시작된 보스턴은 이 날을 어떻게 기리고 있을까요?
조각보의 북미 담당관, 활동가 낙타가 보내준 보스턴의 TDOR 캠페인 참여 후기를 함께 공유합니다.





2019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 TDOR이 시작된 보스턴에서의 참여 후기

오후 4시면 깜깜한 밤이 되어버리는 이곳은 11월 20일의 미국 보스턴입니다. 보스턴은 1998년 11월 트랜스여성이자 지역의 유명한 락앤롤 아티스트이기도 했던 Rita Hester가 혐오범죄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Transgender Day Of Remembrance: TDOR)이 시작된 지역이기도 합니다. TDOR 당일, TDOR이 시작된 지역에서, TDOR 행사에 참여했던 후기를 쓰고 있으니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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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TDOR 행사 프로그램 안내지의 첫 장



TDOR 행사는 Massachusetts Transgender Political Coalition(MTPC)라는 단체의 주도로 당일이 아닌 그 전주 주말 일요일(11월 17일)에 보스턴 도심의 한 성당에서 열렸습니다. 검은 옷으로 무장하고 간 것이 무색하게도 성당 입구에서는 화려하게 수녀 복장으로 드랙을 한 스태프들이 손님들을 환대하였습니다. 

넓은 홀에 켜켜이 들어선 사람들이 앉은 의자 밑에는 2019년 한 해 동안 혐오범죄로 사망한 트랜스젠더들의 이름과 나이, 국가를 붙인 촛불이 놓여있었습니다. 강단 옆 화면에는 그들의 사진과 이름, 나이, 국가가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 재생되었는데, 국가와 상관없이 많은 희생자들이 유색인종의 트랜스여성이었습니다. 이를 반영하듯 본 행사는 트랜스젠더의 교차적 정체성에 집중하고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프로그램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일례로 남미에서 온 이민자들이 큰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지역임을 고려하여 스페인어 해석이 제공되었고, 인종, 연령, 장애/비장애 등 다양한 정체성이 고려되어 발언자들이 선발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실패해왔습니다."

한 발언자가 말했습니다. (트랜스 당사자들을 포함한) 우리들은 유색인종의 트랜스여성을 돕는 것에 실패해왔다고. 발언자는 대단한 것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언제 당신은 마지막으로 그들과 함께 밥을 먹었냐고 물었습니다. 그 발언을 통해 저는 작고 사소해 보이는 시도들이 모여 서로를 연결하고, 많은 문제를 더욱 가시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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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2019년 트랜스젠더 혐오범죄 희생자들의 이름이 붙은 촛불



가장 긴 시간이 할애되었고,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던 프로그램은 트랜스젠더 홈리스 지원 프로그램(Boston Health Care for the Homeless Program’s Transgender Program)의 참가자들이 나와 100여명 이상의 희생자들의 이름과 나이, 국가를 하나하나 읽어 나갔던 부분이었습니다. 모두가 희생자의 이름이 붙은 초에 불을 붙이고, 때로는 이름 모를 희생자의 국가가 읽히는 것을 함께 들었습니다. 그 누구 한 명을 대표로 내세워 추모하는 것이 아닌 모든 희생자에게 긴 시간을 들여 함께 조의를 표하는 것만큼 퀴어한 것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에게 퀴어함이란 어떤 교차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든 개개인 모두가 똑같이 기쁘게 살아 숨쉬고, 또 기억되는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행사는 트랜스젠더들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공유할 수 있음을 축하하듯 드랙 공연자의 신나는 공연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처음 TDOR이 시작된 지역에서 TDOR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뜻 깊었지만,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심리적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에 대비하여 전문 심리상담사가 대기하고 있었던 점, 한국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노년층의 트랜스젠더 당사자들과 함께 했다는 점 등 세세한 부분들 또한 잊지 못 할 것 같습니다. 다만 동양인이자 트랜스젠더인 사람들의 가시화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점은 해가 거듭될수록 나아지길 기원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해가 거듭될수록 희생자의 이름을 읽는 시간이 줄어들길, 그리고 그를 위해 지금 행동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실천해 나가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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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2019년 트랜스젠더 혐오범죄 희생자들의 이름, 나이, 국가를 읽고 있는 모습




_조각보 북미 담당관 낙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