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K.롤링의 트위터)
‘People who menstruate’. I’m sure there used to be a word for those people.
Someone help me out. Wumben? Wimpund? Woomud?
‘생리하는 사람’. 예전에는 이런 사람들을 부르는 다른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뭐였는지 누가 좀 도와줘. 요좌? 여좌? 여어자아?
<COVID-19 판데믹 시국에서 생리하는 사람들을 위해 더 나은, 평등한 환경 만들기>를 제안하는 칼럼이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J.K. 롤링은 위와 같이 해당 칼럼이 여성이 아니라 ‘생리하는 사람(people who menstruate, menstruater)’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에서 문제를 제기했지요.
이후 롤링은 긴 입장문을 통해, <자신은 트랜스젠더를 혐오하지 않고 존중하며, 가정폭력과 성폭력 생존자라는 입장에서 트랜스여성이 겪는 남성폭력에 공감하고 연대한다. 다만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단어는 남성폭력적인 시각에서 여성을 바라보고 물화(物化)하는 단어이며, 결코 중립적인 단어가 아니다> 라며 다시 한 번 자신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는 트랜스젠더 혐오임을 지적하기 시작하면서 논쟁이 일고 있습니다. 심지어 한국 트위터에서는 ‘생리하는 사람’이 실시간 트렌드로 오르기도 했습니다. 대체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어떤 문제가 되기에 이렇게나 시끌시끌한 걸까요?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를 오독하는 전형적인 예시.)
출처: 열다북스 페이스북
모 출판사가 말한 것처럼, ‘생리하는 사람’은 정말 트랜스젠더만을 위한 단어인 걸까요?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생리하는 사람=여성’이라는 도식은 누구를 배제하고 있는지, 또 월경권 이슈에 있어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단어가 왜 중요한지를 짚고 넘어가려 합니다.
월경을 한다는 것이 반드시 여성됨과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여성은 단순히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람’으로만 존재하지 않으며, 월경을 하지 않는 여성도 많기 때문입니다. 인터섹스 여성, 난임 여성, 재생산에 필요한 난자가 형성되지 않는 중년 여성처럼요. 마찬가지로 ‘생리하는 사람’들이 모두 여성인 것 또한 아닙니다. 트랜스남성이나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등 AFAB(Assigned Female at Birth : 태어날 때 여성으로 지정받은) 트랜스젠더와 몇몇 인터섹스 당사자들은 월경경험을 겪습니다.
누군가는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여성들, 특히 신체적인 이유에서 월경을 겪지 않는 여성들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그 말도 맞습니다. 여성을 신체 부위별로 평가하고 물화하는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대부분 여성이 주로 겪는 신체 현상을 있는 그대로 칭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줄 수도 있습니다. 모든 언어가 그렇듯이,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말도 결코 완벽한 대안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기존의 언어와 담론이 배제하던 것이 무엇이었고, 대안으로 제안하는 언어로서 어떤 이들의 경험을 포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할 때, 우리의 세계는 점점 더 넓어질 것입니다.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여성의 삶이 포궁(자궁)이 있고 임신을 할 수 있다는 것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음을 선언하며, 월경을 겪는 더 많은 비여성 당사자들의 월경경험을 포용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모두를 위한 월경권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기 위함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수많은 논의와 고민을 뒤로 제쳐두고,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단순히 트랜스젠더의 ‘기부니’를 맞추기 위한 단어라 칭한다면 이 얼마나 편협한 생각인지요.
누구나 건강하고 안전하게 월경을 할 권리를 월경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부터 우리 모두에게 불편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바로 트랜스젠더의 월경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트랜스젠더의 월경권은 당사자들 사이에서도 불편한 주제입니다. 트랜스젠더, 특히 트랜스남성에게 월경이란 단순한 신체적 불편함을 넘어서 극심한 젠더 디스포리아를 겪게 하는 경우가 많고, 어쩔 때는 월경에 대한 경험이 트라우마틱한 기억으로 남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경하는 트랜스젠더의 고충에 대해서는 당사자 커뮤니티 안에서도 잘 이야기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커뮤니티 안에서 월경으로 인한 고충을 토로하면 “빨리 호르몬 시작하셔라.”라는 조언과 위로가 대부분입니다. 사실 호르몬 치료만 시작해도 빠른 시일 내에 비월경 상태가 찾아오기 때문일까요, 트랜스남성으로서 월경은 젠더 디스포리아를 느끼게 하는 부분 중에서도 가장 먼저 극복되면서, 그렇게 '지나간 일'이 되고, 그만큼 쉽사리 잊혀지고 이야기되지 않음을 절실히 느낍니다.
(사실, 어떤 남자는 이미 하고 있다.)
출처: 현실문화연구
이제와서 고백하지만 정체화 초창기 시절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옷을 사 입고 밖을 돌아다니던 때, 넘치는 자신감으로 남자 화장실을 들어갔더랩니다. (사실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면 여기 여자 화장실이라고! 라며 모르는 사람에게서 등짝을 맞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도 지겨웠습니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생리가 터졌던 어느 날, 화장실에서 느꼈던 불안함, 남자 화장실에는 생리대를 버릴 곳이 없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아채고 들었던 당혹스러움을 같은 트랜스남성 지인들에게 이야기 했더니 “그러게 (의료조치도 안 했는데) 왜 남자 화장실을 쓰냐” 라는 쿠사리만 들었더랬죠.
농담조로 제 이야기를 풀어놓았지만, ‘생리하는 트랜스젠더’는 사실 이보다 더 많은 고충을 겪습니다. 많은 당사자들이 매번 월경이 시작될 때마다 심각하게 아웃팅을 걱정하고, 월경으로 인한 아웃팅이 성폭력의 위협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성별 정정에 있어 생식 능력이 없을 것을 요구하는 대법원 예규는 트랜스젠더의 재생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 비판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 포궁 적출 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남성 당사자가 건강상의 이유로 월경 또는 포궁에 대한 진료를 받으러 가려면 병원 문을 들어설 때부터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 트랜스젠더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의료진 등 수많은 관문을 넘어서야 합니다.
건강하고 안전하게 월경할 권리를 위해서는 우선 우리의 경험이 이야기되어야 함에도 트랜스젠더의 월경은 시스젠더 여성의 월경과는 다른 결에서 계속해서 터부시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트랜스남성의 월경권은 재생산권에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안전한 월경권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월경하는 비여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월경하는 비여성 당사자들은 일상에서부터 자신의 월경경험으로 인해 수많은 장벽에 부딪힙니다, 이것은 단순히 당사자가 ‘지금부터 마음을 잘 다잡아서’ 해결하거나 긍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 사회가 인식을 바꾸고 함께 고민해나가야 할 종류의 것입니다.
그래서 ‘생리하는 사람’은 우리에게, 특히 트랜스젠더의 월경권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단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존재가 계속해서 지워지고, 상상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트랜스남성의 월경경험은 분명 실재하는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안전하게 ‘생리하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논의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자신의 ‘불편한’ 월경경험을 이야기하고 안전한 월경권을 누릴 수 있는 포용적인 공간을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나가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트랜스젠더의 월경권에 대한 불편한 말들이 이어지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생리를 한다는 것이 여성됨과 반드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판단입니다.
어떤 트랜스젠더는 생리를 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생리하는 사람’이어서 지금 이 순간에도 겪고 있는 경험은 지금도 존재합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트랜스남성은 남성입니다.
어떤 비여성은 월경경험을 겪습니다.
그리고 트랜스젠더의 월경권 또한 존중받아야 합니다.
_활동가 리나
Someone help me out. Wumben? Wimpund? Woomud?
‘생리하는 사람’. 예전에는 이런 사람들을 부르는 다른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뭐였는지 누가 좀 도와줘. 요좌? 여좌? 여어자아?
<COVID-19 판데믹 시국에서 생리하는 사람들을 위해 더 나은, 평등한 환경 만들기>를 제안하는 칼럼이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J.K. 롤링은 위와 같이 해당 칼럼이 여성이 아니라 ‘생리하는 사람(people who menstruate, menstruater)’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에서 문제를 제기했지요.
이후 롤링은 긴 입장문을 통해, <자신은 트랜스젠더를 혐오하지 않고 존중하며, 가정폭력과 성폭력 생존자라는 입장에서 트랜스여성이 겪는 남성폭력에 공감하고 연대한다. 다만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단어는 남성폭력적인 시각에서 여성을 바라보고 물화(物化)하는 단어이며, 결코 중립적인 단어가 아니다> 라며 다시 한 번 자신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출처: 열다북스 페이스북
월경을 한다는 것이 반드시 여성됨과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여성은 단순히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람’으로만 존재하지 않으며, 월경을 하지 않는 여성도 많기 때문입니다. 인터섹스 여성, 난임 여성, 재생산에 필요한 난자가 형성되지 않는 중년 여성처럼요. 마찬가지로 ‘생리하는 사람’들이 모두 여성인 것 또한 아닙니다. 트랜스남성이나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등 AFAB(Assigned Female at Birth : 태어날 때 여성으로 지정받은) 트랜스젠더와 몇몇 인터섹스 당사자들은 월경경험을 겪습니다.
누군가는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여성들, 특히 신체적인 이유에서 월경을 겪지 않는 여성들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그 말도 맞습니다. 여성을 신체 부위별로 평가하고 물화하는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대부분 여성이 주로 겪는 신체 현상을 있는 그대로 칭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줄 수도 있습니다. 모든 언어가 그렇듯이,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말도 결코 완벽한 대안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기존의 언어와 담론이 배제하던 것이 무엇이었고, 대안으로 제안하는 언어로서 어떤 이들의 경험을 포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할 때, 우리의 세계는 점점 더 넓어질 것입니다.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여성의 삶이 포궁(자궁)이 있고 임신을 할 수 있다는 것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음을 선언하며, 월경을 겪는 더 많은 비여성 당사자들의 월경경험을 포용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모두를 위한 월경권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기 위함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수많은 논의와 고민을 뒤로 제쳐두고, ‘생리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단순히 트랜스젠더의 ‘기부니’를 맞추기 위한 단어라 칭한다면 이 얼마나 편협한 생각인지요.
사실 트랜스젠더의 월경권은 당사자들 사이에서도 불편한 주제입니다. 트랜스젠더, 특히 트랜스남성에게 월경이란 단순한 신체적 불편함을 넘어서 극심한 젠더 디스포리아를 겪게 하는 경우가 많고, 어쩔 때는 월경에 대한 경험이 트라우마틱한 기억으로 남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경하는 트랜스젠더의 고충에 대해서는 당사자 커뮤니티 안에서도 잘 이야기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커뮤니티 안에서 월경으로 인한 고충을 토로하면 “빨리 호르몬 시작하셔라.”라는 조언과 위로가 대부분입니다. 사실 호르몬 치료만 시작해도 빠른 시일 내에 비월경 상태가 찾아오기 때문일까요, 트랜스남성으로서 월경은 젠더 디스포리아를 느끼게 하는 부분 중에서도 가장 먼저 극복되면서, 그렇게 '지나간 일'이 되고, 그만큼 쉽사리 잊혀지고 이야기되지 않음을 절실히 느낍니다.
농담조로 제 이야기를 풀어놓았지만, ‘생리하는 트랜스젠더’는 사실 이보다 더 많은 고충을 겪습니다. 많은 당사자들이 매번 월경이 시작될 때마다 심각하게 아웃팅을 걱정하고, 월경으로 인한 아웃팅이 성폭력의 위협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성별 정정에 있어 생식 능력이 없을 것을 요구하는 대법원 예규는 트랜스젠더의 재생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 비판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 포궁 적출 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남성 당사자가 건강상의 이유로 월경 또는 포궁에 대한 진료를 받으러 가려면 병원 문을 들어설 때부터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 트랜스젠더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의료진 등 수많은 관문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래서 ‘생리하는 사람’은 우리에게, 특히 트랜스젠더의 월경권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단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존재가 계속해서 지워지고, 상상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트랜스남성의 월경경험은 분명 실재하는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안전하게 ‘생리하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논의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자신의 ‘불편한’ 월경경험을 이야기하고 안전한 월경권을 누릴 수 있는 포용적인 공간을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나가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트랜스젠더의 월경권에 대한 불편한 말들이 이어지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생리를 한다는 것이 여성됨과 반드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판단입니다.
어떤 트랜스젠더는 생리를 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생리하는 사람’이어서 지금 이 순간에도 겪고 있는 경험은 지금도 존재합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트랜스남성은 남성입니다.
어떤 비여성은 월경경험을 겪습니다.
그리고 트랜스젠더의 월경권 또한 존중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