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투표일. 출근하기 전 투표를 할 요량으로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예전처럼 가장 '남성스러운' 옷을 고르고 제법 후덥지근한 날씨에 모자 달린 바람막이를 쓰고 문을 열었습니다. 무난하게 입어야 얼른 투표를 하고 올테니까요. 그러다 문뜩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투표하겠다는 데 왜 이러고 다녀야 하나?'
그리고 저는 문을 다시 닫았습니다. 그리고 평소에는 불편해서 쳐다도 안 보던 치마를 입고 제 의지로는 거의 하는 일 없는 메이크업까지 했죠. 1이 붙은 주민등록증을 들고 가벼운 긴장감과 함께 다시 밖으로 나갔습니다.
일종의 반항심에 한 소소한 저항이지만 사실 그렇게 걱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전투표소에는 지문인식기도 있고 주민등록증에 붙어있는 사진도 찍은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네요. 역시나 쑥덕거립니다.
"여기(노트북)에는 1이라고 나오는데?" "여기 민증도 1이니까."
행여나 주변에 있는 사람이 못 들을까 하고 큰 소리로 이야기 하던 선거요원들은 제가 자신들을 부끄러움과 분노와 체념을 담은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았는지 잠시 뜸을 들인 후 투표용지를 뽑아주었습니다.
남들보다 더 긴 시간이 든 투표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씁쓸했지요. 지문인식기까지 동원되는 사전투표에서 이런 일을 겪을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요. 만약 본투표였다면 저는 어떤 일을 겪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저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들은 어떤 일을 겪게 될까요?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그리고 외모와 성별 고정관념이 일치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일은 일상과도 같습니다. 적당히 사회와 타협하거나 부딪쳐가며 살아가는 것은 씁쓸하지만 실존하는 현실이죠. 그러나 다른 일도 아닌 투표입니다. 타협을 해야 안전하게 투표할 수 있고 타협하지 않으면 아웃팅을 당하거나 심하면 투표를 하지도 못할 수 있는, 그렇기에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 괜찮은 대안으로 다가오는 현실이 가슴 아프고 화가 납니다.
곧 있을 본선거에서 온전히 나 자신으로서 투표를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굳이 불편을 겪어가며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선거권을 행사했다는 모두가 누려야 할 당연함을 함께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그 사이에 조각보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활동했던 사람들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듯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각보 내적으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정말로, 정말로 적었음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올해 상반기에는 긴 호흡을 갖고 조당이들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4번의
조당이들이 있었다.
트랜스젠더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구체적인 사안부터 당시에 이슈가 되었던 많은 사건들.
그리고 조각보가 지금까지 해 온 다양한 행사들에 대한 생각까지.
평소에
가볍게 담았기에 말하지 못했던 생각,다른 사람들이 비난할까봐 쉽게 말할 수 없었던 생각까지 공유하였다.
조당이들을 진행하며 서로의 생각이 이만큼이나 달랐다는 것을 느끼며
‘잘도 이렇게 다른 사람들끼리 조각보를 진행해왔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렇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마련된 자리에서
정말로 말하기 힘들었던 것을 말한다는 행위에는 결코 작지 않은 신뢰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을 느낀다.
조각조각 모인 개인이 정말로 조각보가 되어 하나됨을 느끼게 해준 조당이들,
정말로
잘 시작했다는 생각과 함께 다음 조당이들도 가벼운 긴장감과 큰 기대를 안고 기다리고 있다.
트랜스젠더 스펙트럼에 속한 많은 성소수자들이 한번쯤은 고민해보게 되는 법적 성별정정. 지금의 삶에 있어서도, 앞으로의 미래 계획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법적인’ 영역이라는
점에서 마냥 어렵고 무겁게만 느껴지고, 정확한 정보를 얻기 어려운 것도 현실입니다. 혼자 성별정정을 준비하며 내가 찾은 정보가 맞는 정보인지, 아직까지도 유효하게
쓰일 수 있는 정보인지 확신할 수 없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조각보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무엇보다 성별정정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함을 목적으로 네 번째 성별정정
설명회를 준비했습니다. 여전히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주시는 것을 보면서, 성별정정이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삶에 얼마나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문제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지난 1~3회 설명회에 이어 이번 성별정정 설명회 또한 조각보 객원활동가이자
비온뒤무지개재단 이사이신 법학박사 이승현님이 강사로 참여하셨습니다. 법학 전문가이신 이승현님께서 기본적인
법률 용어와 법적 절차에 대한 설명부터, 법원에서 요구하는 조건과 예규 등 성별정정 신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정보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설명해주셨습니다.
현재 한국의 법적 성별정정 절차에는 아직까지도 불합리한 면이 많습니다. 법적
성별을 결정하거나 변경하는 법률이 존재하지 않고, 대법원의 예규에 따라 각 법원의 판사가 재량으로 허가 혹은
기각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의료보험 적용이 되지 않고 있음에도 영구적인 생식능력 제거 수술을 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고, 법적 미성년자거나 미성년자 자녀가 있으면 정정을 허가받기가 더더욱 어렵습니다. 많은 판사들이 전형적인 ‘여성’ 혹은 ‘남성’의 모습을 지닌 트랜스젠더만을 생각하고, 또
그러한 전형적인 서사들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함께 모여 정확한 정보와 동향을 나누는 자리가 더더욱 필요합니다. 이승현
박사님의 설명에 따르면, 2013년 외부 성기 성형 없이 FTM 성별정정이
통과된 경우, 6개월간 법적 논리를 개발하고 해외 사례를 조사했으며 약 200페이지의
서류를 제출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새로운 통과 사례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허가된 혹은 기각된 사례를 모으고 공유하면서 성별정정을 준비했던 사람들과 앞으로 정정을 준비할 사람들이 연대하고
이야기할 자리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설명회는 성별정정 절차에 대한 이승현 박사님의 강의로 진행되었지만, 참가자들의
질문과 답변이 함께 만들어나가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정보나 동향에 대해, 또는 평소 우려했거나 궁금했던 부분에 대해 질문하고 이승현 박사님의 답변을 들었습니다. 정정을 준비하는 당사자들이 어떤 부분을 고려하고 알게 되는 자리였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앞으로도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설명회를 함께 만들어나가주신 참가자 여러분께,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설명회를
진행해주신 이승현 박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자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조각보의 활동에
많은 관심과 후원 부탁드립니다.
매년 봄이 되면 퀴어문화축제가 각 도시마다 열리는 나라의 이야기를 건너건너 듣고는 부러워했던 적이 있었더랬죠.
지금의 퀴어문화축제도 너무나 즐겁고 멋진 행사지만, 만약 우리나라에서도 더 많은 지역에서 더 많은 축제가 열린다면, 그렇게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청량한 어느 가을날, 해운대 앞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불어라, 변화의 바람”이라는 축제의 슬로건처럼, 서울과 대구에 이어 드디어 부산에서도 불어온 무지개 바람 속에서 조각보 또한 부푼 기대감을 안고 함께 했습니다.
부산퀴어문화축제에서도 조각보 부스는 <트랜스젠더 에티켓 캠페인>을 중심으로 꾸려졌고 서에티켓 캠페인 문구를 인쇄한 팔찌를 열심히 나누어 드렸습니다. 부스를 후원해주신 분들게 드리는 답례품도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성들여 준비해갔는데요, 웹진 조각보자기 책자가 가장 인기가 많았답니다. 부스에 방문해주신 분들에게서 새로 나올 웹진을 비롯한 앞으로의 조각보 활동에 대한 많은 기대감을 받았답니다.
퀴어문화축제의 꽃은 행진이라고들 하죠. 부산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조각보 활동가들은 하늘색, 분홍색, 흰색의 트랜스젠더 프라이드 깃발을 들고서 부산의 무지개 행렬에 합류했습니다. 부산에서도 어김없이 이어진 혐오세력의 피켓 행렬에 처음에는 긴장하기도 했지만, 다른 참가자들과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며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불어오는 변화의 무지개 바람을 온 몸으로 느꼈던 하루.
오랜 이동시간에도 불구하고 피로를 잊을 만큼 뿌듯했던 그 감정을 되새기며, 조각보는 앞으로도 변화의 바람에 함께 할 것입니다.
그동안 모임을 위해 마땅한 공간을 못 찾아 힘들기도 하고 모임을 진행하며 말실수할까 봐 조마조마한 적도 많습니다. 가끔은 어떤 참여자들은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해서 다른 분들께 상처주는 말씀을 하지 않을까도 우려가 됐습니다. 물론 고민도 많았습니다. ‘모임마다 매번 같은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닐까? 또는 우리가 너무 처음 참석하시는 분들에게 초점을 맞추나? 앞으로 TGG 모임을 어떻게 성장시켜 나아갈까?’ 이런 질문들을 계속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할 것입니다.
[2017년 열렸던 열 번의 TGG 참가자 모집을 알렸던 웹자보들]
처음 조각보 내에서 TGG 모임을 기획할 때도 사실은 걱정이 많이 있었습니다. 트랜스젠더 당사들이 같이 모여서 힘들고 기쁜 일들을 같이 나누며 공감하는 게 목적이지만 모두 경험은 다르기 마련이고 오히려 소외감을 느끼고 가는 사람이 있을수 있는 모임이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했습니다.
이렇게 어려웠던 시간들도 있었지만 이런 모임 자체를 기획하고 진행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보람을 느낍니다.
모임이 첫 시작한 지 1년이 넘은 지금은 잘 정착해서 원활하게 진행되는 거 같습니다. 트렌스젠더 당사자들이 모여서 사소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하지 못 하는 이야기를 TGG 모임에서 풀어나갈 수 있어 좋습니다. 비슷한 경험과 시련들을 겪으신 분들과 함께 공감하고 다른 경험을 한 분들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어 기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내년에도 더욱 멋지고 의미 있는 모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조각보 활동가로서 처음으로 참여하는 행사였습니다. 처음으로 참여하는 행사가 1주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을 꽉 채우는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추모주간(Transgender Day of Remebrance, 이하 TDOR 추모주간)이라니 기대 반, 걱정 반이었습니다. 과연 내가 얼마나 이 행사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과 트랜스젠더로서 매우 의미 있는 행사 전반에 함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대가 함께했던 것이지요.
[사진 전시회 준비 중]
TDOR 추모주간의 첫 행사로는 사진전 ‘드러내다’를 하였습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감사하게도 여러 SNS를 통해, 지인들을 통해 꽤 여러 장의 사진들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소중한 사진들을 최대한 어떻게 배치를 하고 어떻게 꾸며야 전시회에 찾아오시는 분들이 편하고 자연스럽게 관람을 하실 수 있을까 고민하며 전시회를 뚝딱뚝딱 열심히 준비하였습니다.
[사진 전시회 시작]
이렇게도 배치해보고 저렇게도 배치해보면서 드디어 전시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전시회에 얼마나 많은 분들께서 찾아오실까 초조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원래 4일간 예정되어 있던 사진전을 하루 더 연장 할 만큼 사진전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사진 전시장 내부]
다양한 트랜스젠더/퀴어들이 과거에, 현재에 이렇게 존재하고 이런저런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사진으로 확인하고 또 사진전에 찾아주신 분들이 사진에 남긴 코멘트들을 정리하면서 일종의 프라이드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어떤 이들이 우리들의 존재를 지우려 노력한다 해도 우리들은 끈질기게 서로를, 그리고 우리가 지나온 길을 기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그 기억을 지닌 채 현재를 살아갈 것이고 이 현재들이 모여 보다 자유로운 미래가 구성될 것이라는 희망을 느낄 수 있었던 사진전이었습니다.
ps. <드러내다 - 트랜스젠더 사진전 '노출, 두 번째 '>의 사진 공모에 응해주신 분들과 찾아와주신 분들, 그리고 행사가 잘 진행될 수 있게끔 협조해주시고 참여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2017년 조각보는 인권재단사람으로부터 <2017 인권프로젝트-온 기금>의 후원을 받아 성별정정 설명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안타깝게 일정이 맞지 않아서 3월에 열렸던 1차 설명회 자리에는 참여를 못 해서 못내 아쉬웠는데, 다행히 2차 설명회에는 참여를 할 수 있었답니다. 이번에도 역시 법학을 전공하시고 조각보 객원 활동가이시기도 한 이승현 법학박사님께서 강연자로서설명회 행사를 진행하셨습니다.
이승현 박사님께서 발표를 하시며 성별을 정정하는 절차에 대해서 섬세하게 설명을 해주시고 자신이 성별정정과정을 거치며 직접 작성하였던 서류(*주요한 개인정보는 보호함)들 직접 보여주시면서 생생한 예를 들어주셨습니다.
강의를 하시면서 박사님께서는 아직 한국에서는 성별정정에 대한 명확한 법조차도 없다고 하십니다. 판사들은 가이드라인(대법원 예규)에 따르되 판사 각자의 판단에 따라 결정을 내린다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법정에서는 MTF라면 최대한 여성스럽게 보이게끔 치마나 드레스를 입고 FTM라면 최대한 남성스럽게 하고 가면 도움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최종적으론 재판부로 하여금 신청인의 성별 정체성을 믿게 만들어야하는 과정이라고요.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성별표기(주민등록번호의 뒷자리 첫 번째 숫자) 하나를 바꾸려면 너무나도 많은 절차를 거처야 하고 때로는 원하지 않는 수술을 강요받기도 합니다. 더불어 논-바이너리(non-binary)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성별표기와 성정체성이 불일치하면 생기는 불안정과 불이익 때문에 이처럼 복잡한 절차와 원하지 않는 수술에 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별정정 설명회는 트랜스젠더 당사자분들에게 성별정정에 절차들을 설명하지만, 단순히 지식 소유자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강연 후 참여자 모두가 서로 묻고 답하며 각자의 정보를 공유하고 검증하고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성별정정 결정문을 손에 쥐기 위해 여러 노력과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기도 하고 때로는 과장된 여성다움/남성다움을 보여주어야 하는 부당함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적 필요라는 장벽을 넘어 트랜스젠더가 좀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성별정정에 대한 더 공인된 정보가 유통될 필요가 있지요. 그러한 측면에서 성별정정 설명회는 참가자 모두가 트랜스젠더 인권운동의 주체가 되는 자리라고 보입니다.
그리고 덜 부당하고 덜 어려운 성별정정 과정을 만들기 위한 노력과 함께 성별체계에 대한 문제제기와 다양한 성별 정체성이 인정되고 모두가 자신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이 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들었습니다. 조각보 역시 그러한 세상이 올 수 있게끔 하는 방향으로 꾸준히 활동해갈 것이고요. 그러한 한 걸음이 더해져서, 더 앞으로 나아가서는 이런 절차 없이도 자신에 정체성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 수 있는 시대가 한국에도 도래하길 바랍니다.
"조각보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래서 조당이들. 듣다보면 배실배실 웃음이 나오는 단어는
조각보 활동가들의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자는 의미에서 시작한 토론회의 타이틀이다.
조각보가 2013년에 처음 프로젝트로 시작한 지도 벌써 햇수로 6년,
그 사이에 조각보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활동했던 사람들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듯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각보 내적으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정말로, 정말로 적었음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올해 상반기에는 긴 호흡을 갖고 조당이들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4번의 조당이들이 있었다.
트랜스젠더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구체적인 사안부터 당시에 이슈가 되었던 많은 사건들.
그리고 조각보가 지금까지 해 온 다양한 행사들에 대한 생각까지.
평소에 가볍게 담았기에 말하지 못했던 생각, 다른 사람들이 비난할까봐 쉽게 말할 수 없었던 생각까지 공유하였다.
조당이들을 진행하며 서로의 생각이 이만큼이나 달랐다는 것을 느끼며
‘잘도 이렇게 다른 사람들끼리 조각보를 진행해왔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렇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마련된 자리에서
정말로 말하기 힘들었던 것을 말한다는 행위에는 결코 작지 않은 신뢰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을 느낀다.
조각조각 모인 개인이 정말로 조각보가 되어 하나됨을 느끼게 해준 조당이들,
정말로 잘 시작했다는 생각과 함께 다음 조당이들도 가벼운 긴장감과 큰 기대를 안고 기다리고 있다.
제 4회 성별정정 설명회 활동 후기
트랜스젠더 스펙트럼에 속한 많은 성소수자들이 한번쯤은 고민해보게 되는 법적 성별정정. 지금의 삶에 있어서도, 앞으로의 미래 계획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법적인’ 영역이라는 점에서 마냥 어렵고 무겁게만 느껴지고, 정확한 정보를 얻기 어려운 것도 현실입니다. 혼자 성별정정을 준비하며 내가 찾은 정보가 맞는 정보인지, 아직까지도 유효하게 쓰일 수 있는 정보인지 확신할 수 없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조각보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무엇보다 성별정정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함을 목적으로 네 번째 성별정정 설명회를 준비했습니다. 여전히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주시는 것을 보면서, 성별정정이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삶에 얼마나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문제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지난 1~3회 설명회에 이어 이번 성별정정 설명회 또한 조각보 객원활동가이자 비온뒤무지개재단 이사이신 법학박사 이승현님이 강사로 참여하셨습니다. 법학 전문가이신 이승현님께서 기본적인 법률 용어와 법적 절차에 대한 설명부터, 법원에서 요구하는 조건과 예규 등 성별정정 신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정보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설명해주셨습니다.
현재 한국의 법적 성별정정 절차에는 아직까지도 불합리한 면이 많습니다. 법적 성별을 결정하거나 변경하는 법률이 존재하지 않고, 대법원의 예규에 따라 각 법원의 판사가 재량으로 허가 혹은 기각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의료보험 적용이 되지 않고 있음에도 영구적인 생식능력 제거 수술을 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고, 법적 미성년자거나 미성년자 자녀가 있으면 정정을 허가받기가 더더욱 어렵습니다. 많은 판사들이 전형적인 ‘여성’ 혹은 ‘남성’의 모습을 지닌 트랜스젠더만을 생각하고, 또 그러한 전형적인 서사들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함께 모여 정확한 정보와 동향을 나누는 자리가 더더욱 필요합니다. 이승현 박사님의 설명에 따르면, 2013년 외부 성기 성형 없이 FTM 성별정정이 통과된 경우, 6개월간 법적 논리를 개발하고 해외 사례를 조사했으며 약 200페이지의 서류를 제출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새로운 통과 사례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허가된 혹은 기각된 사례를 모으고 공유하면서 성별정정을 준비했던 사람들과 앞으로 정정을 준비할 사람들이 연대하고 이야기할 자리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설명회는 성별정정 절차에 대한 이승현 박사님의 강의로 진행되었지만, 참가자들의 질문과 답변이 함께 만들어나가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정보나 동향에 대해, 또는 평소 우려했거나 궁금했던 부분에 대해 질문하고 이승현 박사님의 답변을 들었습니다. 정정을 준비하는 당사자들이 어떤 부분을 고려하고 알게 되는 자리였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앞으로도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설명회를 함께 만들어나가주신 참가자 여러분께,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설명회를 진행해주신 이승현 박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자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조각보의 활동에 많은 관심과 후원 부탁드립니다.
3월 31일은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이었습니다!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TDOV)을 맞아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하여 조각보에서는 캠페인을 진행하였습니다.
“트랜스젠더, 어디에도 없을 것 같아도 어디에나 있다! 조각보에서 제안하는 트랜스젠더 가시화를 위한 문구를 포스트잇에 적어, #트랜스젠더_가시화의_날 #TDOV 해시태그와 함께 인증샷을 올려보아요!”
이렇게 안내문구를 올리고, 아래와 같은 7가지의 해시태그를 제시하였습니다.
#나_여깄지롱 #나도_알지롱 #함께_하지롱
#안_보이는_게_아니라_안_보는_것일_뿐
#없는_게_아냐_네가_안_볼_뿐
#나_여기_있는데_넌_안_보지
#평소엔_튀지_않는_티지
조각보에서 열심히 머리를 싸매고 의논하여 만든 여러 해시태그들을 활용하여, 센스 넘치는 인증샷을 많은 분들이 올려주셔서 왠지 감동적이고 즐거웠습니다.
단지 주변에 보이는 몇명이 아니라 정말 많은 분들이 이렇게 한국 사회에서 열심히
자기만의 방식으로 정체성을 품에 안고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곧 다가올 IDAHOBIT 에서 여러분들과 소통할 날이 또 기대됩니다 :)
*사진 활용에 동의해주신 정**님,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활동가 다니입니다.
제가 <트랜스젠더 지지모임 TGG>를 담당한 지는 1 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모임을 위해 마땅한 공간을 못 찾아 힘들기도 하고 모임을 진행하며 말실수할까 봐 조마조마한 적도 많습니다. 가끔은 어떤 참여자들은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해서 다른 분들께 상처주는 말씀을 하지 않을까도 우려가 됐습니다. 물론 고민도 많았습니다. ‘모임마다 매번 같은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닐까? 또는 우리가 너무 처음 참석하시는 분들에게 초점을 맞추나? 앞으로 TGG 모임을 어떻게 성장시켜 나아갈까?’ 이런 질문들을 계속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할 것입니다.
처음 조각보 내에서 TGG 모임을 기획할 때도 사실은 걱정이 많이 있었습니다. 트랜스젠더 당사들이 같이 모여서 힘들고 기쁜 일들을 같이 나누며 공감하는 게 목적이지만 모두 경험은 다르기 마련이고 오히려 소외감을 느끼고 가는 사람이 있을수 있는 모임이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했습니다.
이렇게 어려웠던 시간들도 있었지만 이런 모임 자체를 기획하고 진행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보람을 느낍니다.
모임이 첫 시작한 지 1년이 넘은 지금은 잘 정착해서 원활하게 진행되는 거 같습니다. 트렌스젠더 당사자들이 모여서 사소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하지 못 하는 이야기를 TGG 모임에서 풀어나갈 수 있어 좋습니다. 비슷한 경험과 시련들을 겪으신 분들과 함께 공감하고 다른 경험을 한 분들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어 기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내년에도 더욱 멋지고 의미 있는 모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기록사진을 제공해주신 터울 님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