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1일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는 서울인권영화제와 퀴어영화제가 공동 주체하는 [퀴어,인권] 영화상영회에서 게스트로 참여했다. 트랜스젠더 인권을 위한 활동가로서 영화 [드랙드]와 [내 이름은 마리아나]에 대한 생각을 무대 위에서 관객과 함께 나누었다.
[드랙드]와 [내 이름은 마리아나]는 둘 다 분명 젠더 정체성을 다루는 영화이고 둘 다 다큐멘터리이다. 하지만 많이 다르다. [드랙드]는 정체성의 의미와 즐거움을 화려하게 묘사하고, [내 이름은 마리아나]는 진정한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의 시련을 표현한다. [드랙드]는 드랙퀸들의 일상을 담은 영화이고, [내 이름은 마리아나]는 트랜스젠더 당사자에 트랜지션을 그려내는 영화이다. 하나는 웃기기도 하고 긍정적이다. 하나는 그저 힘들고 슬프다. 그렇지만 두 이야기 다 틀림없이 가치있다. 이 두 영화를 같이 보며 젠더 정체성과 그의 모든 것은 한없이 다양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들의 질문 중 하나는 트래스젠더와 여성성, 남성성의 과장에 대해서였다. 바이너리 트랜스젠더 정체성은 분명 성별 이분화된 체제를 강조한다는 관점에서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젠더에 대한 편견을 전복하자 할 때마다 트랜스젠더들에게서만 요구하는 것은 불공평하지 않은가?
어떠한 젠더 정체성을 가졌다 해도 우리 각자에 이야기들도 모두 다 유일무이하기 나름이다. 인간의 경험을 고정된 하나의 틀로 묶는다는 그 자체가 부조리하다. 이 무한의 다양성 안에서 서로의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서로의 경험들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11월 20일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Transgender Day of Remembrance, TDOR)입니다. 조각보에게도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지요.
올해 TDOR에 조각보는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함께 서울 홍대입구역 근처의 숲길공원에서 촛불 추모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제법 쌀쌀해지기 시작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백 명이 넘는 사람이 모여서 함께 촛불을 들고, 각자의 의미와 뜻을 모아 트랜스젠더로서 살아갔던 이들과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트랜스젠더들을 기리고
지지하는 목소리에 함께 하였습니다.
발언자 명단
이승현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이인섭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임보라 (섬돌향린교회)
이조 (SSCQRC)
라라 (성소수자 부모모임)
이드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올해 해외의 곳곳에서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폭력이 양적으로 더욱 증가하고 그 정도 역시 더욱 잔혹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깊은 우려를 자아내게 합니다. 국내에서도 트랜스젠더에 대한 전환치료를 빙자한 폭력이 보고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슴 아픈 소식이 종종, 그러나 끊임없이 들려오곤
합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 함께 살았다는 것, 남아있는 이들이 먼저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그들의 삶을 의미있게 돌아보는 것... 트랜스젠더로서 살아온 삶은 수시로 잊혀지곤 합니다. 일상에서, 직장에서, 공공장소에서, 심지어는
장례식장에서도 원하는 성별로서 잠들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 삶을 온전히 기억하고 남기면서, 조각보는 한 발 한 발 걸어가려 합니다.
추모회에 찾아오셨던 분들이 남긴 수 많은 추모와 지지의 메시지가, 땅
위에도 하늘에도 널리널리 퍼지길 바라마지 않으며...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가 주최하는 LGBT 상담&성교육 컨퍼런스는 상담사를 지명하는 개인으로서, 그리고 조각보 활동가로서 몇 달 동안 손꼽아
기다린 시간이었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분명히 인지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하는 듯한 상담자, 혹은 상담자 지망생들이 나에게는 그 자체만으로
너무나 멋진 미래에 대한 가능성 그 자체이고, 존경심을 품을만한 분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 관념이 대한 담대한 도전으로 시작된 이 강의는 동성애자 당사자의 삶의 이야기, 그리고 성공회 신부의 이야기로 이어지며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고정된 관념을 뒤흔들었다. 당사자 비당사자를 떠나 많은 관념을 바꾸어주는 강의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격적인 강의가 끝나고 그리고 성소수자를 상담하려는 상담사에게 도움이 되는 단체를 소개하는, 조각보를 알리는 시간이 되었다.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 조각보의 일원으로서 나의 고민은 상담업무를 진행하지 않고 다른 상담 단체와 협조하는 방식으로 상담에 협조했던 조각보가 어떤 역알을
하는지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닿은 곳은 트랜스젠더를 상담하고자 하는 진정성 있는 상담사와 함께
생각해 나가는 과정인 자문, 그리고 참여하는 모든 분들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참여하는 모든 분들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TGG, 그리고 상담사와 함께 하는 연대였다.
발표를
마치고 컨퍼런스가 끝났을 때 한 분이 정말 잘 들었다고 악수를 청해주었다. 이 분이 트랜스젠더를 상담한
경험이 있는지, 컨퍼런스에서 한 이야기들 중 무언가를 실천할 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상담의 역할이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당장 바꾸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듯, 이번 발표가 나에게 악수를 해 준 그 분에게 트랜스젠더 내담자가 왔을 때의 첫 이정표가 되어 준다면 무엇보다도
큰 영광을 것이다.
6월 17일 퀴어영화제에서 <드랙드>http://http://kqff.co.kr/xe/board_BOtb80/50254를 상영하였다. 이
영화는 미국 드랙퀸들에 화려한 일상 생활과 그들의 사연 깊은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묘사하는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관람한
후 참석 가능한 관객들과 "명우형"이라는 근처 카페에서 라운드테이블을 열어, 영화에 대한 소감과 작품의
주제들에 대해 토론을 해보았다.
과연 드랙이란 무엇일까? 한 의미로 통일해 정의 할 수 있는 것일까? 영화 속에서도 드랙에 대한 정의는 여러 다양한 관점에서부터 나온다. 사전에서의 공식적인 정의는 반대 성과 연상되는 옷을 입는 행위이지만 영화에서의
드랙퀸들은 드랙에 있어 퍼포먼스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주장한다. 그녀들에겐 드랙은 의상만의 놀이가 아니라, 그것은 표현이자 정체성이다. 라운드테이블 이벤트에서는 같이 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LGBTQ+내에서는 수 많은 용어가 존재한다. 정의
자체가 필요하긴 하지만, 특히나 이 커뮤니티 내에선 정의 하는 행위조차가 해로울 수도 있다. 그리고 완전한 의미 하나에 대한 집착은 구식적인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는 드랙에 있어 젠더 표현의 요소를 무시할 수 없는 건 사실이다. 대부분의 드랙퀸과 드랙킹들이 스스로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지 않는 반면 드랙 그 자체는 젠더를 전복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성별과
정체성의 대한 대화의 필수적인 주제라고 판단할 수 있다. 드랙을 실천하는 분들이야말로 성별이분법을
저항하는 자유인들이 아닐까?
퀴어문화축제를 준비하던 어느 날의 일이다. 사무실에서 트랜스젠더들의, 지지자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담아 엮은 우리 단체의 이름과 꼭 닮은 ‘트랜스젠더
삶의 조각보 만들기’꺼내들었다. 더욱
많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던 것이다.
준비를 하는 틈틈이 삶의 조각보를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너무나도 다양한 이들의 메시지... 기회가 있었다. ‘힘내자.’‘행복
하고 싶다.’‘웃으며
살자.’등등, 그런데 그 중에 유독 내 마음에 유난히 와 닿는 문장이 있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다.’
바깥에서 크게 울리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배경음악 삼아 즐겁게 단체 홍보를 하던 축제 당일, 우리가 준비한 색지에도 비슷한 말을 쓴 분이 있었다. ‘내가
바란 것이 아니에요!’그런데 왜일까? 그분께 그 짧은 문장은 너무나도 버겁게 느껴졌다. 입술을 가볍게
깨물고 한참을 망설이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느낌표를 찍어 누르듯 써 넣고…물론 그분이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글을 썼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 이 문장은 정말로 각오 없이는 할 수가 없는 말이구나.’
퀴어퍼레이드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물론 이것은 손님으로서 퀴어 퍼레이드를
즐겼던 작년의 나도 이미 알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조각보의 이름으로 참가한 올해의 퀴어퍼레이드는 나에게
한 가지 또 다른 앎을 주었다. 퍼레이드를 찾아온 그 많은 사람들은 단순한 참가자가 아닌 성정체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Ally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단 하루의 1년뿐인 자유의 날. 설명할 필요 없고 설득할 필요 없는 날. 하지만 남은 364일 동안 우리는 누군가를 설득해야 할, 혹은 피해야 할 상황에
부딪친다. 정체성을 드러내는 순간 별종이라는 튀는 존재로 인식되고 사회로부터 추궁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유 없는 편견에 이유를 갖고 대항하는 것은 너무나도 괴로운 일이자,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바르게 찾기 위한 활동을 시도해보는 것조차 망설이는 이유인 것이다.
퍼레이드에 참여해 어렵게 문장을 남긴 그분을 보며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런
당연한 말을 고민해가며 쓰는 일을 없도록 만들고 싶다.’말이 필요 없는 모임을 만들고, 말을 대신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고, 마지막에는 그런 말을 할 필요성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 목표에
얼마나 큰 힘을 보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단 한 걸음, 반 걸음만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기쁠
것이다.
<내 이름은 마리아나>는 mtf 트랜스여성의 트랜지션 과정과 그 과정 속에서 겪는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의 활동가 선율은 <내 이름은 마리아나> 상영에 이어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의 발언 패널로 참여하였다.
이 영화는 어찌 보면, 너무 전형적일 수 있는 트랜스섹슈얼 여성의 트랜지션의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다. 서울인권영화제 측에서도 사전에 조각보에게 이러한 문의를 하기도 하였으니까.
"이 영화의 몇몇 장면 - SRS에 대한 의사의 발언이라든가 주인공인 마리아나의
상황 등 - 이 오히려 남성성과 여성성을 고정된 것으로 보게 하여 성별이분법을 강조해버리는 게 아닐까요?"
하지만, 의료적 트랜지션 과정은 성별이분화된 사회의 축소판 안에서 의료진의 시선과 선입견에 용인하고 회피하면서 얻고자 하는 바(예를 들면 진단서, 호르몬 처방전, SRS 수술 허가 등)를 끊임없이 협상하는 자리라는 점. 그리고 영화 속 마리아나의 상황은 "내 성별을 확신하게 해주는 게 대체 뭐지?"를 거듭 자문하게 하는 일상의 모습이기에, 조각보 사람들은 이 영화에 대한 모니터링 작업에 함께 하였고,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영화의 해설과 관련 주제에 대한 논의를 담은 책자 <인권해설서>에 기고를
하였으며, 관객과의 대화 패널로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사진출처 : 서울인권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영화제 소식 <울림> http://hrffseoul.org/article/2099
현장에는 스무 명이 좀 안 되는 관객이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해주셨다. 선율의 영화에 대한 감상과 몇몇 장면에 대한 설명에 이어서 질의응답이
있었는데, 그 중엔 "자신이 트랜스젠더인지를 어떻게
알게 되느냐?"라는 질문이 있었다.
관객과의 대화 짦은 질의응답에서 답할 수
없는 복잡다단하고 미묘한 질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 트랜스로 정체화하고 있는 사람이든 아니든, 인터섹슈얼이든 아니든, 혹은 여/남으로
불리지 않는 다양한 젠더 정체성으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있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든... "대체
나의 성별을 어떻게 자각할 수 있는 거지?"라는 질문으로 확장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어떻게 보이는가라는 젠더표현, 신분증 상의 성별, 의료적 조치의 효과, 연애 상대의 성별, 성적지향, 좋아하는 악세사리, 즐기는
취미의 속성, 인간관계 등등 성별을 드러내주고 납득하게 해주는 징표들에 하나하나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또한 나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내 주변의 사람들의 성별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인지하게 되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 준우
l 참조할만한 자료 : 세계트랜스젠더보건의료전문가협회(WPATH, World Professional Association for Transgender Health)에서 발행하고 있는 <트랜스섹슈얼, 트랜스젠더, 성별비순응자를 위한 건강관리실무표준(SoC, Standard of Care) 제 7판>의 한국어 번역 PDF 파일을 다운로드 할 수 있는 사이트 :
조각보는 2015년 11월 14일 드디어 3년 간 프로젝트를 마치고 정식 단체로 발족하는 역사를 가졌다. 발족식 이후 첫 활동은 바로 다음날 15일에 만나게 되는 TGEU의 활동가 칼라 라가타(Carla LaGata)와의 간담회였지만 발족식 바로 다음 날이기에 규모가 크지 않았다. 작은 준비도 제대로 못한 손님맞이를 간담회 전날 발족식까지 함께 참여해 주며 이해해준 칼라. 빨간 상의와 갈색 머리가 잘 어울리는 매력적인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유럽 지역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연대체인 TGEU는 트랜스젠더들의 현 사회적 상황을 기재하고 개선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는 단체 소개와 함께 칼라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2009년부터 여러 나라의 트랜스젠더 관련 주제들을 다루고 있으며 한눈에 볼 수 있는 리서치를 시작하였고 꾸준히 업데이트 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은 그곳에서 리서치와 유럽 밖 국제 관계 담당하여 맡고 있다고 하였다. 칼라는 80년도 즈음부터 활동을 하고 있는 베테랑 활동가로 베를린 대학에서 문화인류학 학위를 받고 젠더해방운동을 집중적으로 해오며 논문과 리서치 등을 편찬하는 편집의원이라고 한다. 칼라가 보여준 책자에는 세계 각국의 의료, 복지, 차별, 폭력 등 사회적인 트랜스피플의 인권 관련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도표로 정리되어 있었다. 점수화를 하여 각국의 비교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 다음 링크 된 홈페이지를 가면 각 대륙별로 관련된 데이터를 아래의 그림과 같은 표로 만든 정보를 열람하거나 PDF 파일로 다운로드 받아볼 수 있다: http://www.transrespect-transphobia.org/ ) 그 중 한국의 내용에 눈이 머물렀다. 몇 년 간 크게 변하지 않는 수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역시 칼라도 의문을 가졌다.
사진 출처 :tgeu.org
세계의 곳곳이 변하고 있다는 칼라의 말에 우린 적극 동의했다. 미국의 동성간 결혼을 인정하는 바람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까운 나라인 일본의 변화를 이야기하며, 젠더의 인식도 점차 변하게 될 거라고 서로 예측한다. 그러나 한국은 근간의 변화가 더디다. 몇 년 전 이슈화가 되었던 외부 성기 비수술 ftm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 통과 사례를 끝으로 더는 이렇다 할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는 칼라... 사실 그 외에도 한국 내에서는 여러가지 이슈가 꾸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왜 외국에 알려지지 못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은 외국에 비해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트랜스젠더 인권단체는 인프라부터 매우 약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조각보의 이전에도 여러 집단이 존재하였지만,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인권활동에서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의 부재와 활동비의 문제 등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여 기존의 단체와 집단들은 활동을 정지하곤 하였다. 그러다 보니 TGEU에서 진행하는 리서치에도 지속적으로 정보를 전달해줄 현지 담당자가 없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외국 단체에게 무언가를 요청할 수 있을 만큼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칼라는 현지 담당자가 있다면 인터넷을 통해 바로 수정할 수도 있고 자신에게 연락을 주면 바로 한국 상황을 수정하겠다며 이야기해 주었다. 한국 TG단체의 존속을 위해 조각보의 활동 자금 문제에 있어서도 국제적인 사업 지원을 받을 기회와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주겠다고 했다. 고마웠다. 소중한 마음을 후원 받은 느낌이었다.
이후 우리는 칼라에게 한국의 상황과 이슈를 이야기 해 주기 시작했다. 칼라는 놀라움을 표현한다. 신기함보다는 ‘어쩌면 그럴 수 있냐?’는 듯한 느낌을 받은 듯 했다. 우리 한국의 이야기가 너무 심각했나? 필자는 하도 많은 경우를 접해 와서 그런지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먼저 우리는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폭력에 관련된 이슈를 이야기했다. 외부적인 린치를 받는 사례와 정신적인 폭행 사례, 그리고 사회 인식에 따른 사례 등등... 칼라를 만나기 바로 전에 발생한 트랜스 혐오폭력과 폭행 사건은 인권단체들 사이에서는 꽤나 이슈가 되었지만 외부적인 보도는 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폭행 사례는 대부분이 지인으로 트랜스젠더 집단에 대한 혐오폭력보다 큰 비중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경찰이나 공기관의 신고는 친족이라는 자체로 사건을 무마시키기에 바쁜 실정. 칼라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각 지역별로 단체가 준비되어 있지 않냐?”고 물었다. 한지만 한국의 실정상 지부를 운영할 인력도 적은 데다 현재 수가 많지도 않은 퀴어 관련 인권단체는 대부분 서울에 집약되어 있다. 더군다나 가정폭력과 지인폭력의 늪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 할 수 있는 제도가 너무 미약하다. 그들은 어떻게든 그 상황을 스스로 벗어나 보지만 곧 사회적인 폭력에 마주한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입사에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하고, 어렵게 입사를 하였다 하더라도 여전히 달갑지 않은 존재로서 불안한 일코(*‘일반인 코스튬 플레이’를 줄인 속어)를 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잘못한 것 하나 없이도 손가락질 받고 인식적 차별과 시선의 폭력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가정에서 폭력과 강금, 사회적인 대우를 들은 칼라는 매우 끔찍하다며 자신의 문제를 바꾸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럴 수 있는 한국의 여러 가지 개선을 위해 조각보가 필요하다고 격려하였다.
사진 출처 :tgeu.org
칼라는 폭력 외에 다른 이슈들은 없냐고 물었다. 우리는 mtf 트랜스여성의 병역 관련 이슈와 트랜스젠더 의료 관련 상황을 이야기 했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는 아마 따로 논할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징병제의 국가에서는 필수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한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군대는 성소수자의 이해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심하다. 징병검사관의 성기검사, 호르몬투여와 일부 트랜지션수술 관련 기록을 요청하는 등 비수술 트랜스젠더를 존중하지 못하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가 하면, 공공기관이 요청한 자료들을 보고서도 트랜스젠더는 병역거부를 하려 한다는 의심을 하기도 한다. 입대면제 결과를 받은 사람에게 다시 징병검사를 하라고 하거나 재입대를 하라는 어이없는 모습도 보인다. 그뿐인가? 군대라는 집단의 속성은 일체화를 지향하는 사회인 것 마냥 똑같은 공간에서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을 몰아세운다. 이들이 얼마나 무지한지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트랜지션 수술이 말처럼 그냥 스위치 켜지듯 바뀌는 가벼운 수술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목숨을 걸고 수술대에 오르는 사람들, 특히 한국에서 트랜지션은 목숨을 두 번 걸어도 시원찮은 실정. 한국에서는 수술을 집도하는 병원 수가 굉장히 적고 그 안에서도 경험이 있는 의사와 병원은 폭리를 취하기도 하고 수술 후 부작용이 발생하는 등의 문제가 여럿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외국 병원에 예약을 하여 수술을 하곤 하는데, 이 경우도 부작용은 복불복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후속적인 의료조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외국의 병원으로 연결하는 모든 것은 자신의 일이기에 굉장히 번거롭기도 하며 외국병원에 연락이 항시 잘 되지는 않는다. 이런 약점을 이용하여 병원과 연결해 주겠다는 사기를 치는 브로커까지도 등장하였다. 이런 실정의 한국에서 비수술 트랜스젠더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는 굉장한 의문을 가져온다. 태생적으로 수술을 받을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나 사회적, 개인적, 금전적 상황 때문에 수술을 포기하는 사람들, 그리고 본인의 선택이나 정체화의 맥락에 따라 수술을 비롯한 여타의 의료조치를 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수술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별대로 인정받을 수 없는 사회가 지금의 한국 사회이다. 우린 어디까지 참고 기다려야 할까? 우린 스스로 얼마만큼 비수술 트랜스젠더에 대해 받아들이고 있을까? 우리도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칼라는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내부의 이슈를 궁금해 했다. 폐쇄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한국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의 이야기를 답변하는 일은 의외로 단순했다. 자신의 외모나 수술 진척도를 자랑하며 서로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나누는 트랜스젠더만의 쉼터, 생활하면서 발생하는 고민들을 상담하는 상담소, 트랜지션 관련 자료를 열람하는 열람실, 트랜스젠더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집합소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가 ‘진성 TG’와 ‘가성 TG’에 관한 논쟁이 벌어진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커뮤니티 내에 있는 트랜스젠더끼리 성적지향을 잣대로 정체성을 부정하는 이성애 집단이 자리 잡았다. mtf의 경우 여자를 만나면 레즈비언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짜 mtf라고 말하는 것이다. 남성을 만나는 ftm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정체성을 규정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바꾸는 사람들 또한 이해를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기보다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먼저 보이곤 하였다. 결국 자신과 다르면 잘못되었다고 말하면서 사회 속에 다른 자신은 왜 차별을 받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경우이다. 우리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먼저여야야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텐데. 더 나은 한 발짝을 위해...
칼라와 조각보 활동가들의 기념 사진, 왼쪽 세 번째가 칼라
칼라와의 간담회는 규모는 작았지만, 큰 목표들을 조각보에게 던져준 시간이었다. 조각보가 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함께 걸어 나갈 사람들이 누구인지, 지금 어느 지점까지 도달했는지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3년의 시간을 거쳐 조각보가 정식으로 발족했다. 이로써 우리는 한 발짝 나아갔다. 문제가 있다는 것과 도달할 목표가 보인다는 것은 지금이 최상이 아니며 한국의 트랜스젠더 사회는 앞으로도 점차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다. 그 변화에 조각보와 함께 있을 여러분들의 모습이 보인다.
‘퀴어, 인권’
12월 11일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는 서울인권영화제와 퀴어영화제가 공동 주체하는 [퀴어,인권] 영화상영회에서 게스트로 참여했다. 트랜스젠더 인권을 위한 활동가로서 영화 [드랙드]와 [내 이름은 마리아나]에 대한 생각을 무대 위에서 관객과 함께 나누었다.
[드랙드]와 [내 이름은 마리아나]는 둘 다 분명 젠더 정체성을 다루는 영화이고 둘 다 다큐멘터리이다. 하지만 많이 다르다. [드랙드]는 정체성의 의미와 즐거움을 화려하게 묘사하고, [내 이름은 마리아나]는 진정한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의 시련을 표현한다. [드랙드]는 드랙퀸들의 일상을 담은 영화이고, [내 이름은 마리아나]는 트랜스젠더 당사자에 트랜지션을 그려내는 영화이다. 하나는 웃기기도 하고 긍정적이다. 하나는 그저 힘들고 슬프다. 그렇지만 두 이야기 다 틀림없이 가치있다. 이 두 영화를 같이 보며 젠더 정체성과 그의 모든 것은 한없이 다양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들의 질문 중 하나는 트래스젠더와 여성성, 남성성의 과장에 대해서였다. 바이너리 트랜스젠더 정체성은 분명 성별 이분화된 체제를 강조한다는 관점에서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젠더에 대한 편견을 전복하자 할 때마다 트랜스젠더들에게서만 요구하는 것은 불공평하지 않은가?
어떠한 젠더 정체성을 가졌다 해도 우리 각자에 이야기들도 모두 다 유일무이하기 나름이다. 인간의 경험을 고정된 하나의 틀로 묶는다는 그 자체가 부조리하다. 이 무한의 다양성 안에서 서로의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서로의 경험들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사진 출처>
서울인권영화제 홈페이지 : http://hrffseoul.org/ // 트위터 : @hrffseoulorg
11월 20일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Transgender Day of Remembrance, TDOR)입니다. 조각보에게도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지요.
올해 TDOR에 조각보는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함께 서울 홍대입구역 근처의 숲길공원에서 촛불 추모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제법 쌀쌀해지기 시작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백 명이 넘는 사람이 모여서 함께 촛불을 들고, 각자의 의미와 뜻을 모아 트랜스젠더로서 살아갔던 이들과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트랜스젠더들을 기리고 지지하는 목소리에 함께 하였습니다.
발언자 명단
이승현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이인섭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임보라 (섬돌향린교회)
이조 (SSCQRC)
라라 (성소수자 부모모임)
이드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올해 해외의 곳곳에서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폭력이 양적으로 더욱 증가하고 그 정도 역시 더욱 잔혹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깊은 우려를 자아내게 합니다. 국내에서도 트랜스젠더에 대한 전환치료를 빙자한 폭력이 보고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슴 아픈 소식이 종종, 그러나 끊임없이 들려오곤 합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 함께 살았다는 것, 남아있는 이들이 먼저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그들의 삶을 의미있게 돌아보는 것... 트랜스젠더로서 살아온 삶은 수시로 잊혀지곤 합니다. 일상에서, 직장에서, 공공장소에서, 심지어는 장례식장에서도 원하는 성별로서 잠들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 삶을 온전히 기억하고 남기면서, 조각보는 한 발 한 발 걸어가려 합니다.
추모회에 찾아오셨던 분들이 남긴 수 많은 추모와 지지의 메시지가, 땅 위에도 하늘에도 널리널리 퍼지길 바라마지 않으며...
-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활동가 준우
http://kscrc.org/xe/board_hWwy34/15626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가 주최하는 LGBT 상담&성교육 컨퍼런스는 상담사를 지명하는 개인으로서, 그리고 조각보 활동가로서 몇 달 동안 손꼽아 기다린 시간이었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분명히 인지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하는 듯한 상담자, 혹은 상담자 지망생들이 나에게는 그 자체만으로 너무나 멋진 미래에 대한 가능성 그 자체이고, 존경심을 품을만한 분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 관념이 대한 담대한 도전으로 시작된 이 강의는 동성애자 당사자의 삶의 이야기, 그리고 성공회 신부의 이야기로 이어지며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고정된 관념을 뒤흔들었다. 당사자 비당사자를 떠나 많은 관념을 바꾸어주는 강의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격적인 강의가 끝나고 그리고 성소수자를 상담하려는 상담사에게 도움이 되는 단체를 소개하는, 조각보를 알리는 시간이 되었다.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 조각보의 일원으로서 나의 고민은 상담업무를 진행하지 않고 다른 상담 단체와 협조하는 방식으로 상담에 협조했던 조각보가 어떤 역알을 하는지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닿은 곳은 트랜스젠더를 상담하고자 하는 진정성 있는 상담사와 함께 생각해 나가는 과정인 자문, 그리고 참여하는 모든 분들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참여하는 모든 분들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TGG, 그리고 상담사와 함께 하는 연대였다.
발표를 마치고 컨퍼런스가 끝났을 때 한 분이 정말 잘 들었다고 악수를 청해주었다. 이 분이 트랜스젠더를 상담한 경험이 있는지, 컨퍼런스에서 한 이야기들 중 무언가를 실천할 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상담의 역할이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당장 바꾸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듯, 이번 발표가 나에게 악수를 해 준 그 분에게 트랜스젠더 내담자가 왔을 때의 첫 이정표가 되어 준다면 무엇보다도 큰 영광을 것이다.
-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활동가 희정
2016년 9월 3일 토요일 오후,
인권중심사람 2층 다목적홀 한터에서
조각보가 주최하는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정기 설명회>의 첫 번째 자리가 열렸습니다.
총 27명의 신청자들이 설명회 강연을 들으러 오셔서
좌석을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설명회 강연을 해주신
조각보의 객원활동가이자 법학박사 이승현 님의
열띤 강연과 질의응답은 두 시간 동안 쉼 없이 이어졌답니다.
설명회 강연의 주된 내용은
그동안의 법원의 판례,
현재 법원의 요구 기준,
신청에 앞서 준비할 서류와 작성 방법,
실제로 성별정정을 신청할 때 생기는 일들,
신청 후 진행되는 상황과 그에 대한 대응 방법,
성별정정 허가 결정이 나온 후에 할 일,
성별정정 의료적 요건의 세계적 추세 등
성별정정 신청하려 할 때
실질적으로 도움되는 정보를 전달하는 데 집중하였고요.
또한 막연히 떠도는 "~카더라" 정보가 아니라,
현재까지 파악된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정확한 정보 전달이 이뤄지는 자리가 되게끔 노력하였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당장 필요한 정보일 수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직 막연해 보이는 앞날을 위한 대비책일 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본인/본인 주변의 트랜스젠더가 법적 성별에 대한 고민을 할 때 참조할만한 팁이 될 수도,
....
설명회에서 나온 얘기들이
(모든 이들에게는 아니더라도,) 꼭 필요한 누군가에게는 잘 닿았기를,
또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자리였습니다.
* 조각보의 성별정정 설명회는 정기적으로 진행됩니다. 현재 계획 상으로는 1년에 3번, 정기적인 날짜에 설명회를 갖자는 목표 하에 추진되는 사업입니다. (아직 다음 설명회 날짜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올해 연말 혹은 내년 연초에 열릴 수 있게끔 준비하고 있습니다)
2016년 8월 20일 무더운 토요일 오후
마포에 위치한 민중의집에서
트랜스젠더 지지모임 TGG의 역사적인 첫 번째 자리가 열렸습니다.
날은 덥고, 장소 준비는 더뎌지고,
하지만 소소한 대로 준비를 열심히 하고
오늘은 어떤 사람들이 모일까 기다렸답니다.
한 명 두 명 참가자들이 들어오고
아직은 어색한 듯 인사를 나누며 자리를 잡고 둘러 앉았습니다.
참가자들이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을 공유한 후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기 소개를 하며
TGG 자리에 오면 난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는 걸 한 두 단어로 만들어
색지에 적어 벽에 붙여두었습니다.
"돈", "연애", "가족", "혐오",
"가족", "평등", "돈",
"행복", "힐링", "편안함", "대화",
"같이 사는 것", "꿈"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별 거 아닌 거 같은 소소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때로는 개인의 입장과 생각을 강변하고 싶어하는 분도 계셨고,
아직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데에 더 집중하는 이도 계셨습니다.
누군가는 그 자리를 통해 편함과 해방감을 느꼈을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조차 불만과 상처를 만났을 수도 있을 겁니다.
첫 시작하는 자리이기에
조각보의 준비가 아직은 미흡한 점도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참가자들의 표정에 나타난 감정들을 보며
이런 자리를 만들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조각보는 '트랜스젠더로서 행복하게 지속가능한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활동의 큰 가치로 삼고 있습니다.
TGG 자리는 그러한 가치에 중요한 한 조각이 될 거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가야겠지요.
그러니, 다음 TGG 자리에서 또 만나요~
* 트랜스젠더 지지모임 TGG는 매달 셋째 주 토요일에 정기적으로 열릴 예정입니다. 참가를 위해서는 사전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
(신청 방법은 공지의 행사 안내를 참조하세요)
* TGG 자리에서 오고 간 내용은 조각보의 내부용 아카이빙 기록 외에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습니다.
* 따라서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를 본 후기에서도 밝히지 않는 점 양해 바랍니다.
6월 17일 퀴어영화제에서 <드랙드>http://http://kqff.co.kr/xe/board_BOtb80/50254를 상영하였다. 이 영화는 미국 드랙퀸들에 화려한 일상 생활과 그들의 사연 깊은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묘사하는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관람한 후 참석 가능한 관객들과 "명우형"이라는 근처 카페에서 라운드테이블을 열어, 영화에 대한 소감과 작품의 주제들에 대해 토론을 해보았다.
과연 드랙이란 무엇일까? 한 의미로 통일해 정의 할 수 있는 것일까? 영화 속에서도 드랙에 대한 정의는 여러 다양한 관점에서부터 나온다. 사전에서의 공식적인 정의는 반대 성과 연상되는 옷을 입는 행위이지만 영화에서의 드랙퀸들은 드랙에 있어 퍼포먼스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주장한다. 그녀들에겐 드랙은 의상만의 놀이가 아니라, 그것은 표현이자 정체성이다. 라운드테이블 이벤트에서는 같이 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LGBTQ+내에서는 수 많은 용어가 존재한다. 정의 자체가 필요하긴 하지만, 특히나 이 커뮤니티 내에선 정의 하는 행위조차가 해로울 수도 있다. 그리고 완전한 의미 하나에 대한 집착은 구식적인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는 드랙에 있어 젠더 표현의 요소를 무시할 수 없는 건 사실이다. 대부분의 드랙퀸과 드랙킹들이 스스로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지 않는 반면 드랙 그 자체는 젠더를 전복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성별과 정체성의 대한 대화의 필수적인 주제라고 판단할 수 있다. 드랙을 실천하는 분들이야말로 성별이분법을 저항하는 자유인들이 아닐까?
라운드테이블에서 이러한 진지한 이야기들도 나누고, 즐겁게 각자의 좋아하는 색과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조합하여 드랙 예명도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 무엇보다도 이 공간 안에서 젠더에 대한 또 다른 측면에 대해 대화하고 배울 수 있었던 게 이 이벤트의 장점이었던 것 같다.
- 다니
퀴어문화축제를 준비하던 어느 날의 일이다. 사무실에서 트랜스젠더들의, 지지자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담아 엮은 우리 단체의 이름과 꼭 닮은 ‘트랜스젠더 삶의 조각보 만들기’ 꺼내들었다. 더욱 많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던 것이다.
준비를 하는 틈틈이 삶의 조각보를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너무나도 다양한 이들의 메시지... 기회가 있었다. ‘힘내자.’ ‘행복 하고 싶다.’ ‘웃으며 살자.’ 등등, 그런데 그 중에 유독 내 마음에 유난히 와 닿는 문장이 있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다.’
바깥에서 크게 울리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배경음악 삼아 즐겁게 단체 홍보를 하던 축제 당일, 우리가 준비한 색지에도 비슷한 말을 쓴 분이 있었다. ‘내가 바란 것이 아니에요!’ 그런데 왜일까? 그분께 그 짧은 문장은 너무나도 버겁게 느껴졌다. 입술을 가볍게 깨물고 한참을 망설이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느낌표를 찍어 누르듯 써 넣고… 물론 그분이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글을 썼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 이 문장은 정말로 각오 없이는 할 수가 없는 말이구나.’
퀴어퍼레이드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물론 이것은 손님으로서 퀴어 퍼레이드를 즐겼던 작년의 나도 이미 알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조각보의 이름으로 참가한 올해의 퀴어퍼레이드는 나에게 한 가지 또 다른 앎을 주었다. 퍼레이드를 찾아온 그 많은 사람들은 단순한 참가자가 아닌 성정체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Ally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단 하루의 1년뿐인 자유의 날. 설명할 필요 없고 설득할 필요 없는 날. 하지만 남은 364일 동안 우리는 누군가를 설득해야 할, 혹은 피해야 할 상황에 부딪친다. 정체성을 드러내는 순간 별종이라는 튀는 존재로 인식되고 사회로부터 추궁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유 없는 편견에 이유를 갖고 대항하는 것은 너무나도 괴로운 일이자,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바르게 찾기 위한 활동을 시도해보는 것조차 망설이는 이유인 것이다.
퍼레이드에 참여해 어렵게 문장을 남긴 그분을 보며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런 당연한 말을 고민해가며 쓰는 일을 없도록 만들고 싶다.’ 말이 필요 없는 모임을 만들고, 말을 대신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고, 마지막에는 그런 말을 할 필요성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 목표에 얼마나 큰 힘을 보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단 한 걸음, 반 걸음만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기쁠 것이다.
- 희정
제 21회 서울인권영화제 "나는 오류입니까"
[나의 몸이 세상과 만날 때] 섹션의 <내 이름은 마리아나> 관객과의 대화 참여 후기
<내 이름은 마리아나>는 mtf 트랜스여성의 트랜지션 과정과 그 과정 속에서 겪는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의 활동가 선율은 <내 이름은 마리아나> 상영에 이어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의 발언 패널로 참여하였다.
이 영화는 어찌 보면, 너무 전형적일 수 있는 트랜스섹슈얼 여성의 트랜지션의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다. 서울인권영화제 측에서도 사전에 조각보에게 이러한 문의를 하기도 하였으니까. "이 영화의 몇몇 장면 - SRS에 대한 의사의 발언이라든가 주인공인 마리아나의 상황 등 - 이 오히려 남성성과 여성성을 고정된 것으로 보게 하여 성별이분법을 강조해버리는 게 아닐까요?"
하지만, 의료적 트랜지션 과정은 성별이분화된 사회의 축소판 안에서 의료진의 시선과 선입견에 용인하고 회피하면서 얻고자 하는 바(예를 들면 진단서, 호르몬 처방전, SRS 수술 허가 등)를 끊임없이 협상하는 자리라는 점. 그리고 영화 속 마리아나의 상황은 "내 성별을 확신하게 해주는 게 대체 뭐지?"를 거듭 자문하게 하는 일상의 모습이기에, 조각보 사람들은 이 영화에 대한 모니터링 작업에 함께 하였고,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영화의 해설과 관련 주제에 대한 논의를 담은 책자 <인권해설서>에 기고를 하였으며, 관객과의 대화 패널로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사진출처 : 서울인권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영화제 소식 <울림> http://hrffseoul.org/article/2099
현장에는 스무 명이 좀 안 되는 관객이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해주셨다. 선율의 영화에 대한 감상과 몇몇 장면에 대한 설명에 이어서 질의응답이 있었는데, 그 중엔 "자신이 트랜스젠더인지를 어떻게 알게 되느냐?"라는 질문이 있었다.
관객과의 대화 짦은 질의응답에서 답할 수 없는 복잡다단하고 미묘한 질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 트랜스로 정체화하고 있는 사람이든 아니든, 인터섹슈얼이든 아니든, 혹은 여/남으로 불리지 않는 다양한 젠더 정체성으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있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든... "대체 나의 성별을 어떻게 자각할 수 있는 거지?"라는 질문으로 확장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어떻게 보이는가라는 젠더표현, 신분증 상의 성별, 의료적 조치의 효과, 연애 상대의 성별, 성적지향, 좋아하는 악세사리, 즐기는 취미의 속성, 인간관계 등등 성별을 드러내주고 납득하게 해주는 징표들에 하나하나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또한 나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내 주변의 사람들의 성별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인지하게 되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 준우
TGEU 활동가 칼라(Carla LaGata)와의 만남으로 느껴보는 한국
-우리는 어디까지 와 있는가-
조각보는 2015년 11월 14일 드디어 3년 간 프로젝트를 마치고 정식 단체로 발족하는 역사를 가졌다. 발족식 이후 첫 활동은 바로 다음날 15일에 만나게 되는 TGEU의 활동가 칼라 라가타(Carla LaGata)와의 간담회였지만 발족식 바로 다음 날이기에 규모가 크지 않았다. 작은 준비도 제대로 못한 손님맞이를 간담회 전날 발족식까지 함께 참여해 주며 이해해준 칼라. 빨간 상의와 갈색 머리가 잘 어울리는 매력적인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유럽 지역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연대체인 TGEU는 트랜스젠더들의 현 사회적 상황을 기재하고 개선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는 단체 소개와 함께 칼라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2009년부터 여러 나라의 트랜스젠더 관련 주제들을 다루고 있으며 한눈에 볼 수 있는 리서치를 시작하였고 꾸준히 업데이트 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은 그곳에서 리서치와 유럽 밖 국제 관계 담당하여 맡고 있다고 하였다. 칼라는 80년도 즈음부터 활동을 하고 있는 베테랑 활동가로 베를린 대학에서 문화인류학 학위를 받고 젠더해방운동을 집중적으로 해오며 논문과 리서치 등을 편찬하는 편집의원이라고 한다. 칼라가 보여준 책자에는 세계 각국의 의료, 복지, 차별, 폭력 등 사회적인 트랜스피플의 인권 관련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도표로 정리되어 있었다. 점수화를 하여 각국의 비교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 다음 링크 된 홈페이지를 가면 각 대륙별로 관련된 데이터를 아래의 그림과 같은 표로 만든 정보를 열람하거나 PDF 파일로 다운로드 받아볼 수 있다: http://www.transrespect-transphobia.org/ ) 그 중 한국의 내용에 눈이 머물렀다. 몇 년 간 크게 변하지 않는 수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역시 칼라도 의문을 가졌다.
사진 출처 :tgeu.org
세계의 곳곳이 변하고 있다는 칼라의 말에 우린 적극 동의했다. 미국의 동성간 결혼을 인정하는 바람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까운 나라인 일본의 변화를 이야기하며, 젠더의 인식도 점차 변하게 될 거라고 서로 예측한다. 그러나 한국은 근간의 변화가 더디다. 몇 년 전 이슈화가 되었던 외부 성기 비수술 ftm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 통과 사례를 끝으로 더는 이렇다 할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는 칼라... 사실 그 외에도 한국 내에서는 여러가지 이슈가 꾸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왜 외국에 알려지지 못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은 외국에 비해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트랜스젠더 인권단체는 인프라부터 매우 약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조각보의 이전에도 여러 집단이 존재하였지만,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인권활동에서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의 부재와 활동비의 문제 등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여 기존의 단체와 집단들은 활동을 정지하곤 하였다. 그러다 보니 TGEU에서 진행하는 리서치에도 지속적으로 정보를 전달해줄 현지 담당자가 없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외국 단체에게 무언가를 요청할 수 있을 만큼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칼라는 현지 담당자가 있다면 인터넷을 통해 바로 수정할 수도 있고 자신에게 연락을 주면 바로 한국 상황을 수정하겠다며 이야기해 주었다. 한국 TG단체의 존속을 위해 조각보의 활동 자금 문제에 있어서도 국제적인 사업 지원을 받을 기회와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주겠다고 했다. 고마웠다. 소중한 마음을 후원 받은 느낌이었다.
이후 우리는 칼라에게 한국의 상황과 이슈를 이야기 해 주기 시작했다. 칼라는 놀라움을 표현한다. 신기함보다는 ‘어쩌면 그럴 수 있냐?’는 듯한 느낌을 받은 듯 했다. 우리 한국의 이야기가 너무 심각했나? 필자는 하도 많은 경우를 접해 와서 그런지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먼저 우리는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폭력에 관련된 이슈를 이야기했다. 외부적인 린치를 받는 사례와 정신적인 폭행 사례, 그리고 사회 인식에 따른 사례 등등... 칼라를 만나기 바로 전에 발생한 트랜스 혐오폭력과 폭행 사건은 인권단체들 사이에서는 꽤나 이슈가 되었지만 외부적인 보도는 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폭행 사례는 대부분이 지인으로 트랜스젠더 집단에 대한 혐오폭력보다 큰 비중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경찰이나 공기관의 신고는 친족이라는 자체로 사건을 무마시키기에 바쁜 실정. 칼라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각 지역별로 단체가 준비되어 있지 않냐?”고 물었다. 한지만 한국의 실정상 지부를 운영할 인력도 적은 데다 현재 수가 많지도 않은 퀴어 관련 인권단체는 대부분 서울에 집약되어 있다. 더군다나 가정폭력과 지인폭력의 늪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 할 수 있는 제도가 너무 미약하다. 그들은 어떻게든 그 상황을 스스로 벗어나 보지만 곧 사회적인 폭력에 마주한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입사에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하고, 어렵게 입사를 하였다 하더라도 여전히 달갑지 않은 존재로서 불안한 일코(*‘일반인 코스튬 플레이’를 줄인 속어)를 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잘못한 것 하나 없이도 손가락질 받고 인식적 차별과 시선의 폭력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가정에서 폭력과 강금, 사회적인 대우를 들은 칼라는 매우 끔찍하다며 자신의 문제를 바꾸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럴 수 있는 한국의 여러 가지 개선을 위해 조각보가 필요하다고 격려하였다.
사진 출처 :tgeu.org
칼라는 폭력 외에 다른 이슈들은 없냐고 물었다. 우리는 mtf 트랜스여성의 병역 관련 이슈와 트랜스젠더 의료 관련 상황을 이야기 했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는 아마 따로 논할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징병제의 국가에서는 필수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한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군대는 성소수자의 이해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심하다. 징병검사관의 성기검사, 호르몬투여와 일부 트랜지션수술 관련 기록을 요청하는 등 비수술 트랜스젠더를 존중하지 못하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가 하면, 공공기관이 요청한 자료들을 보고서도 트랜스젠더는 병역거부를 하려 한다는 의심을 하기도 한다. 입대면제 결과를 받은 사람에게 다시 징병검사를 하라고 하거나 재입대를 하라는 어이없는 모습도 보인다. 그뿐인가? 군대라는 집단의 속성은 일체화를 지향하는 사회인 것 마냥 똑같은 공간에서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을 몰아세운다. 이들이 얼마나 무지한지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트랜지션 수술이 말처럼 그냥 스위치 켜지듯 바뀌는 가벼운 수술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목숨을 걸고 수술대에 오르는 사람들, 특히 한국에서 트랜지션은 목숨을 두 번 걸어도 시원찮은 실정. 한국에서는 수술을 집도하는 병원 수가 굉장히 적고 그 안에서도 경험이 있는 의사와 병원은 폭리를 취하기도 하고 수술 후 부작용이 발생하는 등의 문제가 여럿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외국 병원에 예약을 하여 수술을 하곤 하는데, 이 경우도 부작용은 복불복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후속적인 의료조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외국의 병원으로 연결하는 모든 것은 자신의 일이기에 굉장히 번거롭기도 하며 외국병원에 연락이 항시 잘 되지는 않는다. 이런 약점을 이용하여 병원과 연결해 주겠다는 사기를 치는 브로커까지도 등장하였다. 이런 실정의 한국에서 비수술 트랜스젠더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는 굉장한 의문을 가져온다. 태생적으로 수술을 받을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나 사회적, 개인적, 금전적 상황 때문에 수술을 포기하는 사람들, 그리고 본인의 선택이나 정체화의 맥락에 따라 수술을 비롯한 여타의 의료조치를 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수술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별대로 인정받을 수 없는 사회가 지금의 한국 사회이다. 우린 어디까지 참고 기다려야 할까? 우린 스스로 얼마만큼 비수술 트랜스젠더에 대해 받아들이고 있을까? 우리도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칼라는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내부의 이슈를 궁금해 했다. 폐쇄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한국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의 이야기를 답변하는 일은 의외로 단순했다. 자신의 외모나 수술 진척도를 자랑하며 서로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나누는 트랜스젠더만의 쉼터, 생활하면서 발생하는 고민들을 상담하는 상담소, 트랜지션 관련 자료를 열람하는 열람실, 트랜스젠더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집합소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가 ‘진성 TG’와 ‘가성 TG’에 관한 논쟁이 벌어진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커뮤니티 내에 있는 트랜스젠더끼리 성적지향을 잣대로 정체성을 부정하는 이성애 집단이 자리 잡았다. mtf의 경우 여자를 만나면 레즈비언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짜 mtf라고 말하는 것이다. 남성을 만나는 ftm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정체성을 규정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바꾸는 사람들 또한 이해를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기보다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먼저 보이곤 하였다. 결국 자신과 다르면 잘못되었다고 말하면서 사회 속에 다른 자신은 왜 차별을 받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경우이다. 우리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먼저여야야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텐데. 더 나은 한 발짝을 위해...
칼라와의 간담회는 규모는 작았지만, 큰 목표들을 조각보에게 던져준 시간이었다. 조각보가 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함께 걸어 나갈 사람들이 누구인지, 지금 어느 지점까지 도달했는지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3년의 시간을 거쳐 조각보가 정식으로 발족했다. 이로써 우리는 한 발짝 나아갔다. 문제가 있다는 것과 도달할 목표가 보인다는 것은 지금이 최상이 아니며 한국의 트랜스젠더 사회는 앞으로도 점차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다. 그 변화에 조각보와 함께 있을 여러분들의 모습이 보인다.